엄마가 대학가면 여친 생긴다고 했는데
진짜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여자친구가 생겼고
1년 6개월간 잘 사귀다가 군대에 입대함.
입대 당시 여자친구가 엉엉 울면서
나는 못기다릴 것 같다 자신이 없다 말하길래
기다리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니 맘이 어떻든 나는 군대 안에 갇힌 군인이고
기다려라, 기다리지마라 등
무슨 말을 해도 별 의미가 없다 너 맘 가는대로 해라
라고 쿨하게 말하고 입대함.
근데 기다리기로 결심을 한건지
훈련소때부터 매일매일 편지 보냈음.
그러다 백일휴가를 나와서 여친을 만났는데
여친 반응이 좀 묘하다고 해야하나
날 보더니 눈물이 글썽글썽 하는데
그게 반가움이나 연애감정 과잉 때문이 아니라
뭔가 미안함과 죄책감의 눈물 같다는 느낌을 받음.
그래서 애써 시간 많이 보내려 하지 않았고
백일휴가때 딱 하루만 만남.
그리고 부대 복귀하고 일병 달고 일주일인가 지났는데
여자친구한테 편지가 옴.
‘이젠 니가 내 남자친구 같지가 않아, 헤어지자’
편지를 받고 바로 전화했더니
여자친구가 펑펑 울면서 말함
‘니가 남자친구라는 사실 조차 어색해 우리 그만 만나자’
사실 그 ‘그만 만나자’ 라는 말조차 뭔가 이상했음.
우리는 어차피 만날 수가 없는데;
그렇게 전화로 헤어졌고,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전했음.
친구들과 후배들이 위로한답시고
편지도 보내고, 먹을 것도 보내주고 했는데
뭐 그게 위로가 되겠음..?
그렇게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한달이 지나고
금요일 오후 4시쯤
갑자기 위병소에서 중대로 전화가 왔음
‘ooo일병 면회입니다’
누가 면회 왔다는 얘길 듣고
업무중에 굉장히 혼란스러웠음.
금요일 면회? 뭐지?
뭐 나쁜 일 생겼나
혹시 어머니나 누나가 왔나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복귀하자마자
중대장이 옷 갈아입고 면회실로 가보라길래
중대장한테 물어봄.
‘누가 왔습니까? 가족입니까?’
당시 아버지가 암수술 후
항암치료 중이셨기 때문에 불안감은 훨씬 더 커졌음.
수술도 잘 됐고 치료경과도 좋긴 했지만
혹시 뭔가 잘못되는건 아닐까 불안감이 늘 있었음..
근데 중대장이 씩 웃더니
‘여자야. 빨리 가 봐.’
혼란스러운 머리속을 부여잡고 면회실로 뛰어갔더니
1년 후배인 여자후배가 다소곳하게 앉아있었음.
순간 머리속이 멍해지면서 좀 황당해짐.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서서 쳐다만 보고 있었음.
그 후배는 얼굴도 이쁘고
붙임성도 좋고 성격도 명랑하고 좋아서
선후배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던 아이였는데
평소 나하고도 제법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
군대 온 이후에도
나한테 학교 소식 편지로 보내주고 그랬었음.
그래서 나도 두번에 한번 꼴로
답장을 보내주곤 했는데
갑자기 통보도 없이 금요일 오후에 면회를 온 것.
후배가 먼저 일어나며 ‘선배!’ 하고 말을 거는데
아니 얘가 대체 왜 온거지 하고 머리속이 하얘짐.
정신차리고 너가 왜 여기에 있냐 하고 물으니
씨익 웃으며
‘선배 보러 왔죠. 제가 왜 강원도까지 왔겠어요!’ 라고 대답함.
머리속으로는 내가 얘한테 꾼 돈이 있었나?
아니면 뭔가 크게 잘못한게 있었나?
라고 생각하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음.
근데 앉아서 얘길 들어보니까
진짜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함.
‘..왜 대체 강원도까지..? 왜?’
그랬더니 뭘 주섬주섬 꺼냄.
뭔가 했더니 도시락을 싸옴.
‘야 나 지금 일과중이고 나 일병 나부랭이라
여기 오래 못있어 바로 들어가야돼 지금 못먹어’
했더니 갑자기 씨익 웃으며
‘선배 걱정마요 내가 다 부탁했어요!’
‘뭘 부탁해 누구한테 뭘 얘기했는데?’
라고 말하는 순간 중대장이 면회실에 들어옴.
그리곤 나보고 남은 일과 빼줄테니
면회 편하게 하고 외박 나갔다오라 함.
‘외박 말입니까? 갑자기 무슨 외박말입니까?’ 했더니
중대장이 음흉하게 웃으면서
‘너 후배님이 꼭 같이 가야할 곳이 있다며
외박 보내주실 수 있냐고 요청해서 보내주는거다
행정반 가서 외출외박계 작성하고
택시는 중대장이 불러줄게.’
라고 해서 정신없이 외박을 나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외박을 나오게 되니
정신이 진짜 혼미해짐.
무엇보다도 군인 아니랄까봐
택시 안에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은
후배 화장품 향기에 정신이 더더욱 혼미해졌었음.
어쨌든 외박을 나왔으니
방을 잡아야 해서 근처에서 가장 괜찮은 여관을 들어감.
들어갔더니 후배가 다시 도시락을 펼침.
나 먹이려고 엄청 오랫동안 쌌다고 하며 먹으라고 함.
그래서 일단 젓가락을 들고
도시락을 먹긴 먹었는데
진짜 대체 왜 온거냐 물으니까
내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소식을 들었고
이제 선배는 솔로가 됐으니
자기랑 오늘 같이 있어보고 마음에 들면 사겨야 된다함.
도시락 먹다가 뱉을 뻔함.
내가 왜 너랑 사귀어야 되냐 물으니까
군대 안에 있으니 다른 여자 만날 기회는 없을거고
그럼 내가 제일 먼저 가서 선배한테 말해야
다른 애들보다 먼저 기회를 잡는거고
그래야 선배랑 사귈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다고 함.
..아니 니가 사귀자고 하면 내가 사귀어야 하냐 물으니까
해맑게 웃으면서
‘선배 나랑 친하잖아요
이러다가 조금 더 친해지면 사귀는거죠’
라고 헤헤 웃으며 대답하는데
도저히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가 없었음.
그래서 일단 도시락부터 먹고 얘기하자며
음식을 입에 넣는데
대체 이게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음.
그래서 도시락을 우걱 거리다가 다시 물어봄.
‘아니 근데 왜 외박 요청한거야 내 의사도 묻지 않고’
‘선배가 나인거 알고 외박 안나간다고 하면 어떡해요.’
아.
거기서 그냥 무장해제가 되어버렸음.
이 상황에 너랑 사귈 일 없다 다시 돌아가라
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됨..?
그래서 도시락을 절반쯤 먹다가
그래 니 말대로 해보자 라고 함.
그리고 그렇게 여자친구와 헤어지자마자
여자친구가 생김.
그것도 군대 안에서..
PS.
토요일 저녁에 부대 복귀 하자마자
온 중대원에게 소문이 쫙 퍼져있었고
여기저기서 빨리 썰 풀으라며 고참들한테 한동안 시달림.
그리고 그 여관에서 너무 무리한 탓인지
며칠동안 다크서클이 엄청 심했음.
뻥치고 있네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텐데
저렇게 3년을 만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