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친척들 사이에서
귀신 보는 애로 소문나 있었고
꿈에서 데자뷔처럼 이거저거 보는 일 많았음..
자잘하게는 평소 대화나
친구 SNS에 올라온 게시글.
크게는 주변인들 사고나 병으로 실려가는 거.
현실이랑 구분 못하고
‘저번에도 이러지 않았음?’ 하고
물어보는 일 몇 번 겪고 나서야 예지몽이구나 했음
근데 걍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기억력 안 좋은 애 컨셉 잡아서
‘다른 사람이랑 헷갈렸다~’
하면서 무마하고 살았음
그 상태에서 회사 땜에 자취하러 이사를 감.
근데 터가 무지 안좋았는지
매일 가위 눌리고 그랬음.
몸도 아프고 힘들고..
분명 몸에 좋다는건 다 챙겨먹고 있는데도
건강은 최악이라 병원도 여러번 다녀봄.
효과는 X.
그리고 뭣보다
그 집에서 살면 이상한 꿈을 엄청 많이 꿨음
특히 조선시대 꿈 같은거.
그 집에서 살던 어느날
꿈에서 굿판 소리가 들리더니
어떤 한복 입은 애가 찾아와서 집에 살게 해달라고 함.
일단 집에 들여놓고 생각해보니
입을 옷이랑 먹을 밥도 없어서
안된다고 거절했는데
그 다음부터 꿈에 무당이 나타나서
이거 너 쓰라고 돈 쥐여주고 감
돈을 스지는 않았지만 그게 시작이었음.
다음날부터 가위가 이상하게 변함
센과 치히로에나 나올법한 한옥에 있는데
누가 문 좀 열아달라고 하거나
들여보내달라고 하거나
꿈에서 내 소지에 빨간실 있어서
그거 따라가보니까
신선 같은 할배랑 용 그려진 그림 있고,
눈 떠보면 구름 걸릴만큼 높은 산에서
무복 입은채로 앉아있고
독수리가 날아와서 내 팔 위에 앉거나
주사도 없고 발작해본 적도 한 번도 없는데
갑자기 발작도 함.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진정제도 안통하고
정신병자 취급 받기 시작하더라
그 흔하다는 우울증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조현병 어쩌고 하는 사람들 있을까봐
미리 말해보자면
정신과에서도 검사 진료 받아봤는데
그냥 우울증이랑 불안장애만 있다고 나왔음.
그마저도 불안해서 우울증이 왔다
뭐 그런식으로 의사가 이야기 하더라
양약신봉자였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무속쪽 사람들을 만나게 됨
얘네가 하는 말 들어보니
내가 겪고 있던 게 신병이라고 하더라
애초에 이런쪽 믿던 사람도 아니었고
믿기 힘들어서
그 이후로 무당집이랑 절 몇곳 가봄
근데 가는 곳마다 신병 맞다고 하더라
천 뽑는 것도 다 맞추고
절으로 알고 갔던 곳이
무슨 신 내림 받았는지도 딱 맞추고..
나도 모르게 울면서
‘지금 할아버지 오셨잖아요’
라고 말했을 때는 나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음.
만나는 무당, 법사들마다 하는 말이 그랬음
신내림 받아도
굳이 무당될 필요는 없으니 걱정말라
대신에 계속 기도하고
종교인인 것처럼 담백하게는 살아야 한다.
굿 하라는 소리도 안하더라.
그렇게 2년을 불경외고 기도하면서 살다가
어느날 무신론자 한 명을 만남
그 친구가 내 이야기 듣더니
“근데 신내림이라는 건 결국 종교인이 되겠다는 거고
어떤 종교에 귀속되겠다는 뜻 아니냐?”
라고 함.
병 주면서 영업하는 종교는 사이비다 어쩌고 했었는데
다른 건 기억 안나고
신병=종교 영업으로 분류하던 게 기억에 남음
맞는 말 같아서
진심으로 종교 믿어보자, 하는 결론에 도달함.
근데 기존 종교 단체랑 어울리기는 싫었음.
그런데 무신론자 친구가
‘나라면 제우스 믿는다ㅋㅋ’
소리를 함
진짜 종교도 아니고
신화적으로 농담 패싱 될 것 같고
그리스 신화는 재미도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음
그 후로 그리스 신화 서적 구매하고
매일 그거 읽고
하루 세번 제우스한테 기도하기 시작함
기도도 존나 대충했음
옛날 그리스 사람들 마냥
‘성공하게 해주시면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일단 해주십쇼!’
이딴 기도였음
근데 그 이후로 놀랍게도
예지몽, 무속 관련 꿈을 꾸는 빈도가 줄어듦.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계속 했음.
하다보니 개그같아서 재미는 있더라
종교보단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했음
그리고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낮잠을 자는데 꿈을 꿈
나한테 밧줄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줄 끝이 이어진 곳에서
한복인지 뭔지를 입은 노인들이
우르르 등장하는 꿈이었음
노인네들은 엉엉 울면서 말함
‘거기로 가지 마라’
‘그곳은 안된다’
‘거긴 아주 삿된 곳이다’ 등등
씹어도 괜찮을 거 같아서
무시하고 줄이랑 정 반대 방향으로 갔음
가다보니 줄이 어느 샌가 사라져 있더라
그리고 그 꿈을 꾼 다음날부터
가위나 그 무엇도 겪지 않게 됨.
무당을 몇번 더 만나봤는데
만나는 무당마다 괜찮아 졌다는 소리만 들었음
무당 말에 따르면 신병을 이겨냈다나
아직도 종종 예지몽은 꿈
되게 사소한 것들이지만서도
하지만 전과 비교하면 진짜 평범하게 살만해짐.
웃기게 끝났고 웃으면서 적었지만
당시 나한텐 매우 힘든 일이었고
정말 뭐든 다 해도,
옆에서 누가 도와주는데도
상황이 나빠져만 가는게 진짜 무서운거더라.
그래서 요지는 뭐냐면..
신병이 단순 정신병이라고 하긴 좀 어려운 것 같다고.
진자 무지 힘듦..
이건 겪어본 사람들만 안다.
그래도 한 번 걸려보면
10년치 술안주 술술 나오니까
한 번은 걸려봐도 괜찮은 거 같다고 생각함
글을 어케 마무리 지어야 하지..
무신론자 친구야 고맙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한다
네 덕에 신병 웃기게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제우스는 강X범이더라.
농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