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랑 만난지 1년 좀 넘었습니다
술담배 안하고 친구들 적당히 있고
이상한 신념없고 멍청하지도 않고요
완벽하다기 보다는 모난점 없는 남자이고
저나 남자친구나 직업 안정성 보장되고
둘다 인물 좋은 편입니다
둘다 30대 초반이기도 했고
애초에 결혼해도 되겠다 생각해서 시작한 연애입니다
서로 20대에 연애 질리도록 해보기도 했구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남자친구가 꽤 많이 진행된 대머리였습니다.
순화하자면 중증 탈모인이라고 해야하나요
저 살면서 진짜 대머리는 처음봤고
그 깔끔한 얼굴이 처참히 부서지는걸 보고
충격은 진짜 아직도 말로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쌩얼이 못생겼다’ 이 수준이 아니라
‘알고보니 여자였다’ 수준의 충격이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열이나고 아픈 적이 있었는데
제가 죽 싸가지고 집으로 갔더니
그날 그일이 너무 감동 받았나보더라구요.
그일 이후 같이 차에서 얘기하다가
저에게 진지하게 나랑 결혼 생각하고 있다며
너는 어떻냐고 묻길래
뭘 묻냐 당연히 해야지 라고 했더니
사실 자기가 고백할게 있다는거예요.
그래서 얘기하라니까
자기가 사실 탈모라고, 아버지도 가발을 쓰고 계시고
자기도 시작된지 꽤 됐다고 하길래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어느정도 이마만 넓겠지 해서
“아 난 또 뭐라고ㅋㅋ괜찮아! 보자!” 했더니
가발을 벗는데
그냥.. 온통 이마였습니다.
이마가 계속 있었어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냥 다른 사람이 되더라구요
너무 충격받아서 표정관리도 못했는데
남자친구가 제 표정 보더니
“걱정하지마 나 머리 심을거야 병원도 알아놨어”
이러는데 심고 나발이고
제가 이미 봐버렸잖아요.
고백하지말고 그냥 심던가..
알고보니 앞머리 옆 M자 쪽에
붙임머리 하듯 뭐가 있더라구요
상처 받을까봐 더 자세히 보진 않았습니다.
진짜 너무 어이가 없는게
너무 큰 충격 받아서 그런진 몰라도
그날 밤에 꿈을 꾸는데
타코야끼를 먹는데
타코야끼마다 남자친구 얼굴이 있고
사라지라고 던져버려도
다른 타코야끼에서 남자친구가 또 나오고
꿈까지 꾼 후로 지금까지
남자친구 얼굴을 제대로 못 쳐다보고 있습니다.
제일 큰 걱정이 뭐냐면
그 사람과 내가 앞으로도
키스를 하고 잠자리를 해야하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처럼 그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계속 듭니다.
절대 안 될 것 같거든요..
남자로 보이고 자시고 타코야끼로 보입니다.
속인 것도 괘씸하고
유전이라는데 미래에 자식도 머리가 없는 것도 걸리고
흠없는 남자라 생각했고
대머리인 것만 빼면 완벽한 남자친구인데
왜 굳이 그런 흠까지 안고 가야하나 생각도 들고요..
저 같은 경험 있는 분 있으신가요..?
머리 심으면 정말 감쪽 같아요?
미치겠습니다.
+후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헤어졌습니다.
지금 상태도 괜찮고 후련해요.
솔직히 후회도 안올 것 같고
시각적쇼크 정서적 쇼크 다 당해서
그냥 1년의 연애를 없던 일로 치고 싶을 정도입니다.
남자친구 마지막으로 만나러 가기 전
친하게 지내던 남사친과 상담을 했는데
미안하다고 하거나
솔직하게 말하면 떠날까봐 무서웠다 등등
이런식으로 나오면 일단 좀 지켜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주변에도 탈모 있는 애들 엄청 힘들어한다고
그거 가벼운 일 아니라고요.
하지만 적반하장으로 나오면
뒤도 돌아보지말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건 대머리를 떠나서 인성 문제라고요.
암튼 남자친구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됐고
남자친구가 차로 저희 집 앞으로 와서
차에서 얘기를 했습니다.
만나서 차에 탔는데
오히려 오빠가 더 무게를 잡길래 기분 안 좋았습니다.
잘지냈냐, 몸은 괜찮냐 이런저런 얘기를 하길래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1년동안 왜 숨겼냐 했더니
한참을 가만히 아무말도 없이 있다가
“근데 어느정도 알고있지 않았어?”
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머리숱 없는거 컴플렉스고
그래서 탈모샴푸 쓴다고도 말하지 않았냐고.
그래서 탈모샴푸는 나도 쓰고
주변에 쓰는 여자 남자도 많다
가끔 컨디션 안 좋을 때 머리 빠지는 것과
숨만 쉬어도 계속 빠지는건 다르지 않냐
가발은 뭐냐 진짜 생각도 못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어느정도 알고
입 다물어준다고 생각했답니다.
이게 이렇게 시간 가질 일인 줄 몰랐다면서요.
근데 얘기하다보니
은근히 제가 잘못했단 식으로 몰아가는게 열받아서
오빠 먼저 고백할게 있다고 한건 오빠다
난 정말 전혀 몰랐다
작정하고 속이는데 어떻게 알았겠냐
미안하다고 하는게 먼저 아니냐
언제까지 속일 생각이었냐 등등 나오는대로 말했습니다.
말하는 도중에 눈물도 나왔는데
슬퍼서 운게 아니라 화나서 울었거든요
그랬더니 한참 말 없이 있다가
남자친구가 울기 시작하면서 말을 하는데
전여친이랑도 자기 탈모 심해지고
권태기가 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는건 알고 있어서
그거 때문에 헤어졌냐 물어보니까
맞다고 권태기를 극복 못했대요.
그걸 듣는데 연민이 느껴지는게 아니라
그냥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좀 벙쪄있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는데
그제서야 자기가 정말 미안하다고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고
정말 자길 사랑한다고 느껴질 때
그때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하는데
이 얘기를 애초에 탈모 고백할 때
그때 진지하게 얘기 했더라면
조금은 흔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이런저런 얘기도 다 끝냈고
돌이킬 수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탈모 때문에 헤어지자고 하면
전여자친구 문제부터 저 문제로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고
그냥 진짜 모르겠더라고요..
탈모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 생각해봐도
안고 가야할 것들이 너무 많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난 거짓말 하는 사람과는 계속 못만난다고
오빤 거짓말을 했기에
나와 1년을 만난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오빠가 거짓말 하는 쪽을 선택했기에
1년으로 끝을 내는 거라고.
오빠 자신을 사랑하고 떳떳하게 살라고 한 뒤
차에서 내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따라내리진 않았지만
그날밤에 전화와서 정말 미안하다고
사랑해서 그랬다며
장문 카톡도 왔는데 그냥 읽씹했습니다.
그 뒤로는 연락 없어요.
가족한테는 성격이 안 맞았고
결혼까진 아닌 것 같아서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뭐 그렇네요 이렇게 됐습니다.
다시 사귈 일은 없을 것 같아서
후기 쓸일은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탈모 있으신 분들은
상대방이 못 받아들일 것 같다면
그 여자 나중에도 못 받아들입니다.
거짓말하고 시간 지나서 고백하지 마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