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동네에서 마주친 잼민이
아주 그냥 혼쭐을 내줬습니다
그냥 울려버렸습니다
어른이 뭔지 보여줬고요
부모님 집이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부모님 집 내려왔다가
이른 아침 목욕탕에 가서 시원하게 때 밀고
깨끗하게 샤워하고 슬리퍼 질질 끌면서
바나나우유 쪽쪽 마시며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집 앞에 옛날 문방구가 하나 있는데
다들 어렸을 때
그 문방구 앞에 있는 뽑기 아시죠?
그게 여긴 아직도 많이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애기 한 명이
한 손에는 동생 손을 꼬옥 잡고
한 손에는 천 원짜리 몇 장을 들구
포켓몬 키링 뽑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그거 보면서 꼭 어렸을 때의 저를 보는 듯 해서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동생으로 보이는 애기가
형한테 리자몽 갖고 싶다고 하면서
뽑아달라고 하고 있더라구요
라떼는 뽑기 한 번에 500원도 안 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2000원이나 하더라고요..
암튼 그러다 형 애기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천원짜리를 한장 한장 넣으면서
총 두 번을 뽑았는데
아니 무슨 이상해씨랑 피카츄만 나오고
리자몽은 안 나왔습니다
뒤에서 그거 보면서 아오 아쉽다
개꿀잼이네 하면서 구경하고 있는데
애기 형이 울상인 애기 동생한테
oo아 괜찮아~ 형이 형 저금통에 있는
동전 들고 와서 꼭 뽑아줄게! 라고 하더라고요
애기도 씩씩하게
갠차나 피카츄 나았으니까 라고 얘길하는데
거기서 이 사나이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거기서 바로 제가 얘들아 나와봐
형이 뽑아줄게 바나나우유 들고 있어
라고 한뒤 문방구에 들어가서
3만원 천원짜리로 전부 바꿔달라고 한 뒤
으른들의 FLEX를 보여줬습니다
총 12번 시도했고요
마지막에 리자몽이 나왔네요.
안 나왔으면 돈 더 바꿀 생각이었는데
요즘 뽑기 뭣같더라고요
뽑는 순간 다 같이 껴안고 소리 질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소리 듣고 문방구 사장님도 나오셔서
뽑았어? 이러시더라구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귀여운 동생 애기가
와.. 형아 짱이다 이러더라구요
그리곤 묵묵히 뽑은 리자몽을
동생 애기한테 건네줬습니다.
“자 가져 리자몽”
저를 무슨 신 보듯이 쳐다보더라구요
그 순간만큼은 솔직히 손흥민 안 부러웠습니다.
총 12마리를 뽑았는데 다 가지라고 하니까
애기들이 알아서 좋아하는 포켓몬으로
각각 6마리씩 나눠갖더라고요
사실 저도 하나 갖고 싶었는데
바나나우유 마시면서
포켓몬 키링 달랑달랑 들고 가면
어머니한테 등작 맞을 것이 뻔하니까요
그 뒤로 나눈 대화입니다
“너희 포켓몬 좋아해?”
“네”
“카드도 좋아해?”
“네!”
“여기 있어봐”
그리고 문방구에 들어가서
남은 현금으로 포켓몬 카드 각각 두팩씩 사 줬습니다.
감사합니다! oo아 아저씨한테 감사하다구 인사해야지
라고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애기들을 보니
뭔가 심장 안에서 알 수 없는게 느껴지고
가슴이 미친듯이 뛰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속으로
이게 형이야.. 이게 으른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바나나우유 돌려받고 멋있게 뒤돌아서며
빠이빠이 했습니다
두 애기 사나이의 가슴을 울려버린 저는
정말 나쁜놈이 아닐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요
이게 으른이니께
이게 낭만이니께
후..
오늘 점심은 컵라면에 김밥 먹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