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당시에는 식탐 많은 줄 몰랐습니다
1년 만나고 바로 결혼했는데
같이 생활 해보니까 도저히 못참겠네요
먹을 거 가지고 싸우는게 창피해서
베프한테도 말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혼합니다.
연애 당시에는 식탐의 식자도 모르는
그냥 매우 평범한 남자였고
결혼하고도 한동안은 정상적으로 식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치킨이나 햄버거를 시키면 집까지 안 시키고
배달기사 힘들다는 핑계를 대면서
굳이 1층 공동현관까지 받으러 내려간 뒤
닭다리나 감자튀김을 1층부터 먹으면서 옵니다
첨엔 왜 저러나 싶다가 점점 빡친게
깨끗하게 포장 뜯어서 먹고 싶은데
케찹 줄줄 빨면서 기름 범벅인 손으로
이리저리 후정거린거 보면 밥맛 바로 뚝 떨어지고
배달음식 시켜먹기 시작한 뒤로
봉인해제라도 된건지
진짜 식탐이 미친놈 마냥 시작됐는데
같이 밥 먹다가 잠깐이라도 자리 비우면
내 국그릇 뒤져서 고기 건져가느라
식탁에 비온거 마냥 후두둑 국물 흘려놓습니다.
고기반찬이나 햄이라도 있는 날엔
젓가락에 꼬치 만들듯
주르륵 꽂아서 먹는데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젓가락질 하기 귀찮아서 라고 합니다
열받아서 한 그릇 음식하면
침 잔뜩 발라놓은 숟가락으로
나 한숟갈만 그러면서 음식 다 뒤집어놓고요
매번 모든 음식을 너무 빨리 먹어서
먹을 때마다 큭! 큭! 거리면서 물 쳐마시는데
집에선 모르겠지만
식당에서 같이 밥 먹으면 진짜 사람 미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먹을거 해놓거나 사다두면
밤에 국냄비나 냉장고 뒤져서 다 쳐먹고
그마저도 없으면
참치나 꽁치 캔 따서 손으로 집어처먹은 다음
냉장고 문이나 식탁
그리고 바닥에 기름 범벅을 해놓습니다.
그래도 결혼했고 남편이라
잘 먹으면 좋다는 생각으로 참아보려 했는데
오랜만에 고생해서 김밥 쌌더니
오 김밥 하면서 양푼하나 들고와선
김밥 다 터트린 다음에 비빔밥처럼 만든 뒤
숟가락으로 퍼먹습니다.
그거 보고 있으면 내가 왜 개고생해서
김밥 싼지도 모르겠고
비위 상해서 그냥 너 다 쳐먹어라 하면
먹는 걸로 서럽게 한다고
장모님한테 다 이를거라고 난리.
전 솔직히 식탐도 없는 편이고
밥보다 디저트를 좋아해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밥 대신
좋아하는 케익이랑 커피 마시면서
드라마 보고 싶을 때도 많은데
일부러 홀케익으로 주문해서 냉장고 넣어두면
먼저 퇴근하고 집에와서
한 가운데를 손으로 다 파쳐먹어 놓습니다.
제가 비위 약하니까 못 먹게 하려고요
결국 대형마트에서 제일 싼 빵이나
제일 싼 케익 잔뜩 사다놓게 되고
솔직히 이새끼보다 제가 더 버는데도
돈 벌면서 좋아하는 디저트 하나
맛있게 못 먹는 내 처지가 한심해서 현타가 오더라고요
그냥 가리는 음식도 없습니다.
배도 안 고프면서 일단 음식이 있으면
영역표시 하는 것도 아니고
음식에다가 지 침 다 발라놓습니다
처음 1년은 어리둥절 했었고
그러다 말겠지 배가 고팠겠지
잘 먹는게 나쁜건 아니니까 하다가
2년차 부터는
식탐 때문에 이혼했다는 말 안 들으려고
이를 악물고 죽기 아님 살기로 참았고요
제 한계는 3년차까지 였나보네요
어제 이혼하자고 말했더니
뭔 먹는 걸로 이혼하자고 하냐며 노발대발
도저히 이새끼랑은 못 살겠습니다.
맨날 일하고 집와서 살림하는데
이혼하고 밥이라도 사람처럼 먹으면서 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