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7살이 된 남자입니다.
1년 5개월동안 진지하게 만난
2살 어린 여자친구가 있으며
이 사람에게 만나는동안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이번달에 졸업을 하는데
다행히 졸업 전에 취직도 됐고
여친한테 청혼은 아니지만 결혼 얘기를 꺼냈어요.
여친은 대학교 졸업하고
지역신문사에서 근무하는 중이라
제가 결혼 얘기 꺼내니깐 자기도 좋다고 하면서
대충 올해 6월이나 7월에 하는 걸로 계획 잡고
천천히 준비해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 경에
저희 부모님에게 여친을 보여드렸는데
성격도 좋고 이쁘다며 좋아하셨고
올해 1월에 제가 여친 부모님 찾아뵈러 갔을 때도
무난하게 잘 흘러가는 줄 알았습니다.
(저희 집이랑 여친 집이나 배경이 비슷합니다.)
문제는 양가 상견례를 2번 정도 하고 난 뒤인데
여친 할아버지께서
지방에서 저보러 상경을 하신겁니다.
전 그 말을 듣고 별 생각 없이 있었는데
여친이 저한테 미리 경고한다면서
자기네 할아버지 호랑이라고,
엄청 무섭다고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조선시대 사람처럼 행동하라며
자기네 아빠도 할아버지 앞에선
진짜 꼼짝도 못한다고요.
뭐 얼마나 무서우면 저럴까 하고 넘긴 뒤
당일이 되고 여친네 집으로 갔는데
할아버지가 진짜 무섭게 생기셨더라고요..
살면서 그렇게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는 처음 봤습니다.
조심히 제 소개 드리고 몇마디 얘기하는데.
대뜸 “자네 무슨 김씨인가? 경주김씨인가?”
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전 그런거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자기 본관도 모른다고
갑자기 극대노 하시면서 호통을 치시더라고요..
그래서 황급히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엄마도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아빠한테 물어보고 전화주겠다고 하곤
5분 뒤에 전화가 다시 왔어요.
“경주김씨래 근데 왜?”
아니라고 바로 전화 끊은 뒤
할아버님께 “경주김씨 입니다” 하니까
할아버지 하는 말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자네 이름 끝자 보고 항렬이 그게 경주김씨
무슨무슨파 항렬이라며 역정을 내시면서
그러니까 자네는 김부식이 후손이구만
우리 집안이 서경정씨 정지상 선생 몇대 손인데
고려시대때 어쩌구 화를 내시는데
하.. 할아버지 말을 대충 요약하자면
여친은 서경정씨 정지상의 후손이고
저는 경주김씨 김부식의 후손인데,
고려때 무슨 난때인가?
여친의 선조인 정지상 님이
우리 선조인 김부식님한테 참살을 당했다는 겁니다.
아니 무슨 국사시간에 나올법한걸 가지고
나한테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고..
더군다나 여친 아버님이
요즘 그런게 어딨냐고 아버님 그만하세요
라고 하시는데도
니는 잠자코 있으라며 화를 내더라고요.
아무튼 저는 절대 안된다는 겁니다.
할아버지 문중에
경주김씨랑은 절대 결혼 못시킨다고요.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고
(저도 대충 고등학교때 들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선조분 일은 정말 죄송하다고
제가 사과를 하는데도 노발대발 하시더라고요;
솔직히 무슨 몰카나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습니다.
그날 할아버지가 도저히 안 말려져서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그냥 웃으면서 아버지도 그쪽은 잘 모른다고
좀 기다려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로 여친에게도 울면서 전화가 오더니
할아버지가 집에 안 내려가고 계속 계신다고
죽어도 저랑 결혼은 안된다면서
역정을 내셔서 미쳐버리겠다고 하더라고요.
며칠 후에 저희 할아버지도 시골에서 올라오셨는데
아버지가 있었던 일을 다 말씀드렸더니
노발대발 하시며
“뭐 그런 노망난 할아방탱이가 다 있냐고”
저희 할아버지도 극대노 하셨고요..
결혼 없던 걸로 하고 만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자존심도 없냐고.
근데 전 걔 아니면 안될 것 같다고
진짜 사랑하는데 헤어지고
걔 다른 남자랑 결혼하면
진짜 정신 이상자 될거 같다고 하니까
저희 할아버지,아버지,어머니
전부 저를 딱해하는 분위기더라고요.
여친도 자기네 엄마 아빠는
결혼하게 해주고 싶어하지만
할아버지 때문에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하는데,
아무튼 저희 아버지랑 할아버지랑
약주 하시면서 기나긴 얘기를 하신 끝에..
오늘 아침 저희 할아버지는 집에 내려가셨고
아버지가 할아버지 배웅하신 뒤
저에게 조용히 얘기 좀 하자고 하더라고요.
근데 얘기를 들어보니
깊게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지만
그간 집안 얘기를 안하신 이유가 있었네요..
사실 경주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아버지께서
구한말 경주김씨 양반집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굳이 말하면 머슴이요..
그러다 갑오개혁 땐가
노비들도 전부 호적신고를 하게 되어서
(노비들은 성이 없으니)
그 당시 노비들이 전부 자기가 일하던
집안 성씨를 따랐는데
저희 집안도 그 케이스였다 하더라고요..
어쩐지 보여주시는 족보가
너무 새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기쁜 맘으로 여친한테 전화해서
“자기야 오빠네 경주김씨 아니래
그냥 노비였대!!!”
하니까 여친도 크게 좋아하면서
할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엔 또 어디서 그런 근본도 없는 놈을
들이냐고 화를 내고 계신답니다.
하 어쩌라는건지
노비 얘기 안했으면
그냥 로미오와 줄리엣 되는건데
괜히 노비 얘기 꺼냈다가
로미오네 머슴과 줄리엣 되었네요.
미치겠습니다 진짜.
할아버지 한분 때문에 원형 탈모 생기겠습니다.
이 결혼 어떻게 할 방법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