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적
아버지는 레미콘 운전을 하셨고
80년도 말 90년도 초
건설 경기가 좋을 때라
매일매일 일이 넘치셔서 격주로
하루만 쉬어가며 돈을 정말 많이 버셨음.
그리고 많이 번 돈으로
철물 자재 등을 다루는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IMF가 터짐..
진짜 10년을 모아오신 돈이
한순간에 거의 다 사라져버리고
이제 좀 느긋하게 노후준비 해보신다던 아버지는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 마저 반토막 나시고..
그래도 여느 가정집들이
풍비박산 나면서 개판나던 것에 비하면
우리집은 그냥 씀씀이 줄여가며 살면
굶지는 않고 나름 괜찮은 상황이었던걸로 기억함.
시간이 흘러
IMF는 끝났지만 아버지의 경제활동력은
현저히 떨어져버리셨고
하루 9시간, 11시간씩 운전할 여럭이 없어지며
병원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짐..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를 전역하고
고졸 빡통 애매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에
점점 약해지는 아버지와
무언가라도 같이 해보고 싶었음..
적어도 한달 두달 정도
아버지랑 여행을 가보고 싶었어
어머니는 당시 구형 엑셀을 몰며
일 다니시고 계시던 때고
아버지는 정말 하루하루 초췌해져가고 있었어
당시 내가 모아둔 돈 중
어머니에게 일 잠시 쉬고 지내시라고
500만원 정도 드리고
아버지 병원수술비와 약값 300정도 결제
그리고 중고로 산 아반떼 투어링 700만원
중고차 점검 후에 조금 고쳤더니 200정도 들고..
싸구려 캠핑장비들 사니 80만원 정도..
그렇게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무작정 떠남
서해안을 따라 무작정 달려가며
안면도의 뻘밭도 달려보고
땅끝마을
진주 유등제
붓싼과 태종대
경포대
낙산사
통일전망대
수목원
강릉 오죽헌
안동댐
창녕
지리산
양떼목장
자라섬
통영
문경세재
하여간 지도상에서 보이는 곳
차신호가 직진 뜨면 직진
좌회전이 뜨면 좌회전
그냥 아무곳이나 마구 달린 기억이 남
중간에 차가 한번 뻗어서 고친 기억도 나고
냉각수도 터져보고
오바이트도 나고..
아버지랑 여행 경비 벌어볼까? 해서
근처 블루베리 밭에서
블루베리 수십박스 사다가
근처 관광지 초입에서 팔아본 적도 있고
(얼마 못팔고 다 버림..ㅎㅎ)
지방에 사는 아버지 친구네 가서
밥도 얻어먹고 술도 한잔 먹고
양말공장에서 양말 떼어다가
시골 장날에 판적도 있고
(이건 좀 짭잘했음..)
뭐 이런저런 여행을 한참하다가
눈이 펑펑 오기 시작하는 겨울에
직직 체인 감고도 미끄러져가며
집으로 겨우 돌아왔던 기억이 남..
그후엔 아버지가 마음이 치유되셨는지
재활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공공근로도 나가시고
소일거리도 찾아서 하시고
나는 아반떼 투어링으로 3년 가량 출퇴근 하다가
점차 여러 회사 거치며 경력 쌓고
지금은 나쁘지 않은 회사 다니는 중임..
지금은 투싼 타고 있는데
가끔 아반떼 투어링이 겹쳐보일 때가 있음..
걍 간밤에 술한잔 먹고
감성적이 되어 똥글 한번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