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 큰집에 가서 친척들 만났는데
올해 고3 되는 사촌동생이 공부를 좀 잘했어.
근데 걔가 할게 없어서 심심했던지
우리형(28살)보고 바둑을 한판 두자고 했나봐.
우리형은 바둑은 배워본적도 없는데
착해가지고 알았다고 둬보자고 했나봐.
사촌동생 새끼는 취미가 바둑인데
전에는 학원도 다녔다고 하더라고.
나는 친구들 만나러 밖에 나갔다가 오니까
형이 얼굴이 심각해가지고
바둑판 앞에 쭈그려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라.
표정이 너무 안좋으니까 엄마한테 물었지.
왜 저러냐구.
들어보니까 사촌동생 새끼가 바둑두면서
형한테 아니꼬운 말을 한모양이야.
울형이 바둑 초보니까
아홉점 깔고 시작을 했는데
그새끼가 초보자 상대로 가지고 놀면서
바둑은 머리로 하는거라
딱히 안배워도 처음부터 잘하는사람도 있다고
형보고 머리가 나쁘다는식으로 말을 했다는거야.
울형은 실업계 고등학교 나오고
바로 취업해서 집살림에 돈 보태느라고
대학도 못간터라 은근 기분이 더 상했을테지.
이새끼가 한참 동생인데도
아주 울형을 개 호구로 본 모양이야.
엄마도 옆에서 그 광경을 보면서
기분이 좋으실리가 없었지.
대강 상황설명 듣고나서
내가 옆에 앉아서 구경했어.
참고로 나는 대학 2학년때부터
바둑동아리 들어서 밤낮으로 술먹고 바둑만
존나게 둔 진성 바둑수용소 새끼임.
지금 넷마블에서 아마 4단으로 두고있다.
첨에는 둘이 바둑두고 있길래
‘오 바둑두네?’하고 반가웠는데
전후사정 듣고나니까 좀 열받더라고.
몇수 두는거 보니까 2~3급 정도는 두는거 같던데.
근데 내가 보는 수를
걔는 못보는거 같길래
내가 실력적으로 좀 위라고 판단이 들었다.
암튼 형이 아홉점 깔고도 개쳐발리는걸 끝까지 지켜봤어.
어느새 집안 어르신들도
바둑판 주위로 하나둘 모여서 구경하더라고.
작은할아버지랑 고모부가 사촌동생보고
머리가 좋아서 공부도 잘하고
바둑도 잘둔다면서 칭찬을 하는데
울형은 기가 팍 죽어서 불쌍하더라.
자기딴엔 사촌동생새끼
심심해하는거 놀아준다고 해준건데
거기다 대고 머리가 안좋다느니
개무시를 하니까 이게 뭔 개같은 경우임?
그새끼 기고만장 해가지고 으시대고 있길래
내가 얼른 바둑판앞에 앉아가지고
“나도 바둑 좀 갈켜주라. 몇번 둬보긴 했는데” 하니까
존나 쳐웃으면서 형 지금 나한테 도전하는거냐고
몇점 깔아주면 되겠냐고 그러는데
존만한 새끼 따로 불러내서 죽빵 날려주고 싶더라.
내가 승부는 정정당당해야하지 않겠냐고
걍 안깔고 맞수로 둬보자고 하니까
친척어른들 다 있는데 1분을 쳐웃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깔아주면 재미없을거 같다는둥 존나 궁시렁대길래
내가 도발을 하지않을 수 없잖아?
바둑판 옆에 5만원짜리 두장 놓으면서
10만원빵 내기하자 그랬어.
그새끼도 알겠다고 하면서
존나 땡잡은 표정을 하더니
세뱃돈 받아놓은거 꺼내더라.
내기돈도 올려지고 그새끼가 시끄럽게 쳐웃는통에
친척들도 하나둘씩 바둑판 주위로 모이고,
주방에 있던 작은엄마랑 울엄마도
일 멈추고 옆에 와서 앉더라.
갑자기 집안의 자존심이 걸린 빅매치가 됐다는 생각에
내가 몇살 더 쳐먹은 형이지만 긴장이 존나 되더라..
나까지 져버리면 울형 복수도 못해주고
집안의 자존심이 짓밟힐 상황이었음.
단 한수도 실수 안한다는 일념으로 바둑을 시작했지.
원래 나는 초반에 집 모양 잡아가면서
수비적으로 하다가
나중에 두세번 작은전투 이겨서 경기를 잡는 타입인데,
오늘 형이 당한거 생각하니까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존나 이세돌식 공격형 바둑으로 나가기로 맘먹었다.
초반 구석탱이 화점 두개씩 나눠먹은 다음부터는
그새끼 둘때마다 다 끊어먹고 싸움 걸었다.
조금이라도 띄워서 두면 바로 갈라치고,
초반부터 삼삼 쳐들어가서 귀 집 다 뿌셔먹고,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
표정보니까 50수도 안뒀는데
존나 얼얼해보이더라 ㅋㅋㅋㅋㅋ
웃음소리 싹들어가고 바둑판에 얼굴쳐박고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그런다고 수가생기나 븅신.
이 새끼가 나도 울형이랑 마찬가지로
당연히 존나 못하겠지라고 생각했나봐.
진짜 미친듯이 통쾌했다.
나 바둑 가르쳐준 동아리 선배가 새삼 존나게 고맙더라.
고모부랑 작은할아버지가
첨엔 사촌동생쪽에 붙어서 보더니
어느새 내 쪽으로 와서 나보고
엄청 잘둔다고 놀랜 눈치더라
전판에 울형한테 9점 주고도 일방적으로 이긴새끼가
나랑 다이다이 맞짱떠서 개발리는 상황이라
두고있던 나도 존나 흥미진진했다 ㅋㅋㅋ
손에 땀이 존나 나는데
그거 안들킬라고 계속 양반다리한 상태로
허벅지에 손바닥 계속 닦았다.
레알 진짜 독하게 맘먹고 단 한수도 안봐줬어.
아주 개 깔아뭉개버릴 작정으로
걔가 전투 피하고 다른곳으로 도망가서 두면
거기 쫓아가서 다 끊어먹고
수상전 하나도 안밀리고
대마 존나큰거 다 싸먹은 다음에
두집 못나게 치중하니까
대략 2/3 정도 두고 그새끼 돌던지더라.
그새끼 완전 넋나가고 울형이랑 엄마 미소짓는데
와 진짜 효도한거 같더라.
“?너 머리 좋아서 공부 잘하는 줄 알았는데
걍 노력파인가보네.
삼촌은 머리 좋은데 넌 왜그러냐” 이러니까
그새끼 얼굴 존나 빨개짐
옆에 작은엄마 있었는데도
걍 신경안쓰고 일침 꽂아줬다.
발끈했는지 나보고 바둑 오래배웠냐고 묻길래
재미로 몇번 둬본게 다지
너만큼 학원까지 다니며 둬봤겠냐고 하니까
피꺼솟하면서 한판 더하자고 하길래
속으로 존나 통쾌해하면서도
차근히 그냥 말했다.
“그냥하면 재미없을거 같으니까 9점 깔아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형이 9점깔고 발린 상황이라
나도 똑같이 복수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무리라고 생각되긴 했지만
한판 해보니까 해볼만할거같더라고.
꼴에 자존심은 있는지 안깐다고 버티길래
난 걍 20만원 들고 밖으로 나가는척 하니까
알았다고 9점 깐다고 하드라.
솔직히 빡셌는데 결과적으로는 이겼다.
불계승으로 이기고 싶었는데
9점은 진짜 빡세긴 하더라.
그새끼가 작정하고 수비하길래 미친개 빙의해서
죄다 쑤시고 들어가서 다 끊어먹고
한곳 전투에서 이긴걸 토대로 세력확장해나가고
나머지부분 차근히 뽀개줬다.
내가 백 덤 6집반까지 해서
도합 13집반 이기고 돈들고 조용히 일어났다.
나 친척들한테 칭찬 존나 받고
졸지에 바둑스타 된 기분이었음.
고모부가 자기랑도 둬보자고 막 그러는데
나가봐야한다고 일어났다.
형이 어깨 두번 두드려주더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형제애였음.
아까 큰집 나올때까지 그새끼
나한테 인사도 안하고 꽁해있는데
기분 진짜 미친듯이 좋다.
차타고 집에 돌아올때쯤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놓을걸 생각나드라..
인증못한게 천추의 한이다.
그래도 레알 실화 100%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