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30대 아재임.
우리 엄마 얘기를 좀 해볼까함.
우리 엄마는 60년대생이고 집에 언니 하나,
아래로는 여동생 하나, 남동생 둘있는 둘째였음.
그당시 남동생들과 여동생은 대학보내고
첫째와 둘째는 상고 졸업후에 빠르게 취업함.
일하면서 동생들 학비벌었다고 함.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결혼하며 퇴사하고 전업주부했음.
그리고 내가 5살~6살때쯤 이혼했음.
이유는 아빠의 바람임.
돈 모아서 어디어디에 있는 아파트 들어갈 생각으로
꿈에 부풀었는데 아빠는 나랑 엄마를 버리고 도망갔고
바람핀 여자랑 그 아파트에 들어갔다고 함.
어릴땐 몰랐던건데
나중에 커서 이모들이 얘기해줬음.
어린 아들하나 두고있는 그당시 엄마의 심정을
지금의 내 나이가 되서 생각해보니
정말 너무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엄마는 나름 씩씩하게 살았음.
백화점 옷 매장에서 일하고,
야쿠르트 배달부로 일하고..
나를 케어해줄 사람이 필요하니
외할머니댁 근처로 이사를 왔음.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댁에서 반쯤 살다시피했지
어릴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따라서
뒷동산으로 등산다녔던 기억이남.
우울하지도 않았고 불행하다고 느끼지도 않았음.
원래 그렇게 사는건줄 알았지.
장판도 안깔려있는 시멘트 바닥의 부엌이
부끄럽다는 생각이나,
내가 가난한 삶을 살고있다는 생각같은것도 해본적 없어.
그냥 그당시 초딩들 그렇듯
으레 놀이터 나가서 흙장난 하며 놀았고
한발두발이며 오징어, 경찰과 도둑같은거 하고 놀았지.
근데 어느날 내가 일기장에다가
아빠랑 목욕탕 갔다는걸 거짓말로 썼던거야.
지금와서 생각하면
왜 일기장에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왠지 모를 이유로 그렇게 썼더라고.
근데 그걸 엄마가 봐버렸어
“아직도 왜 아빠 있는거처럼 그렇게 썼어?”
라고 물어보던 엄마가 어렴풋이 생각나
나는 “그냥” 이라고 그랬지.
1~2년 후쯤에 엄마가 재혼을 했어
새아빠는 대형 화물차 운전기사였고
얼마안가서 나랑 성씨가 다른 동생이 생겼지.
그쯤해서 나한테 이름을 바꿀생각 없냐고 물어봤었는데
갑자기 이름이 바뀌면
주위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거 같아서 싫다고 그랬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새아빠랑 나는
참 물과 기름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안맞았던거같아.
나는 그당시 운동하는걸 별로 안좋아했고
진짜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어지간한건 다 읽는 독서광이었거든
그당시에 셜록홈즈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거 달고 살았지
근데 새아빠는 축구에 푹빠져서
공차는게 인생의 낙이던 사람이었거든
참 새아빠 입장에서도 축구도 같이하고
땀빼고 어울리면 친해질줄 알았었겠지만
나는 그당시 축구하는게 진짜 너무너무 싫었어
그냥 나는 소설책 몇권이면
하루종일 재미나게 놀수있는 사람인데
억지로 땡볕에 붙들려 나가서 공차려니까
진짜 죽을맛이었지.
진짜 다리 부러트리면 축구 안해도 될까?
아님 어디 무릎으로 떨어져서
인대라도 파열시키면 축구 안해도 될까?
이런 생각까지 했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랑 새아빠의 사이가 점점 안좋아졌어.
아직도 정확히 어떤 이유들로 그렇게 싸웠는지는 잘 몰라
아마 나랑 안맞아도 너무 안맞는 새아빠 사이에서
갈등도 있었고
그 갈등속에서 엄마도 힘들었겠지.
근데 기억나는건 새아빠가 화나서
엄마한테 부엌칼을 던지던거랑
엄마 때리는 새아빠를 내가 뒤에서 팔로 붙잡아서
말렸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라.
이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때쯤 방을 구해서 나혼자 따로 살았어.
엄마는 나중에 따라 나오겠다고 했었는데,
어린 동생때문에 바로 나오지 못했던거같아.
그 당시 엄마는 고등학교 급식 조리원으로 일했어.
동생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학교로 출근해서 급식 만들고 퇴근하면서
동생 데리고 집에오고
집에서는 또 동생케어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지금와서 생각하면 진짜 말도 못할 고생이지.
인문계 고등학교였으니까
저녁까지 만들어야 했으니
아마 동생도 어린이집에서
제일 늦게까지 남는 애들중 하나였을거야.
어찌되었든 원래는 나 혼자 따로 사는 시간은
중학생을 넘어서 고등학생때까지 이어졌지.
사실 고등학생때는 인문계 고등학교다보니
밥은 학교에서 다 먹고
집에서는 걍 잠만 자는 생활이었지.
여차저차 수능까지 마치고 대학교 1학년까지 혼자살다가
내가 제대하고나서 다시 엄마랑 같이 살게 되었어.
동생도 얼추 머리가 굵어지고
엄마도 이만하면 됐다 싶었던것 같기도 해.
이혼을 위해서 법원까지 다녀오시고 그랬지.
근데 나도 잘 몰랐는데 이혼이라는게
우리 이혼하겠습니다 땅땅 하고선
바로 이혼되는게 아니더라고.
꽤 오랜시간동안 조정기간같은걸 거쳐야
이혼이 되는거라고 하더라고.
여튼 그러던 와중에
내가 제대할때 즈음에 갑상선암에 걸리셨어.
갑상선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암중에서 생존율이
거의 80~90% 정도 될정도로 치료가 쉬운암이야.
다들 그당시에는 다행이라고 했지.
여튼 그렇게 임파선 절제하고
호르몬 관련한 약들을 달고 사시게 되었지.
엄마랑 같이살면서
엄마가 급식 조리원으로 일하게 된
초등학교 쪽으로 이사를 했어.
근데 그게 내 대학교랑 지역이 다른곳이다보니
나는 버스 2번 갈아타면서 학교를 다녔지.
운좋게 버스 아다리가 잘 맞아서
진짜 빠르면 1시간 반,
웬만하면 2시간 정도 통학시간이 걸렸던거같아.
그렇게 여차저차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했어.
그리고 그 취업하기 직전즈음에
엄마가 직장암에 걸렸지.
그때부턴 뭐 점차 점차 병세가 악화되고
약해져가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병원-회사 병원-회사 다니는 삶을 5년정도 보내다가
결국 최근에 돌아가셨어.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
가끔 그런생각을 해보곤해.
만약에 우리 엄마도 동생들처럼
대학에 가서 번듯한 직장을 잡았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결혼하면서 은행원으로 퇴사를 안하고
쭉 다녔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더 나은 삶이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이렇게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가진 않았을 거같다는 그런 생각들.
야구에 만약이 없듯이
인생에도 만약은 없는거지만 뭐. 어쩌겠어.
나이를 먹고 회사에서 세상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좀 배우고
어느정도 이 세상의 정규분포가
이런식으로 그려져 있구나를 깨우치게 되는 순간
아, 내 어린시절, 학창시절, 대학교시절이
그 정규분포의 저 꼬랑지에 달려있는 인생이었구나.
그걸 잘 모르고
그냥 그렇게 지나왔던거구나 싶더라고.
해외여행? 한번도 안가봤고 여권도 없어.
심지어 아직도 없어.
유일하게 비행기 타본게
제주도로 가는 수학여행 비행기였지.
근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당시의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그렇게까지 크게 생각 안했던거같아.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엄마랑 티비보면서
웃긴장면에서 깔깔대며 웃은거.
극장가서 영화 봤던거.
광해였나? 이병헌 주연인 영화.
집에서 삼겹살에 상추쌈해서 먹었을때.
어릴때 디즈니 만화영화 보면서
김 간장 참기름으로 주먹밥 만든거에 케찹 찍어먹는거.
학교앞 문구점에서 뽑기로 토끼 당첨돼서 키워본일.
물론 이건 나중에 토끼 죽었을때 진짜 펑펑 울었지만.
엄마가 일하던 백화점으로 자전거타고 찾아가본거 등등
진짜 별거아닌 그런 소소한일이
그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더라고?
엄마가 죽기 한 2주 전쯤에
한번 크게 위기가 와서
내가 휴가를 5일정도 쓰고 엄마랑 같이있었는데
그때도 진짜 그냥 티비보면서
웃긴장면에서 같이 웃었어.
링거 여러개 꽂고 몸도 제대로 못가누고
소변 배출도 관을 꽂아서 하는 상황에서도 말야.
쟤는 저게 너무 웃겨. 하하.
얘는 이렇다 저렇다. 시시콜콜한 드라마 이야기.
예능 이야기.
내가 사회생활을 해보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건
인생은 원래부터 불공평하다라는거야.
어떻게 세상이 칼로자른듯
공명정대하게 개개인에게 모든 조건들을 맞춰주겠어?
누구는 3루타에서 태어났을수도 있고
누구는 1루타
혹은 아얘 출루조차 못하고 아웃되기도 하겠지.
4인가족 200만원으로 살아집니다 라는 글 본적이 있어.
알뜰살뜰하게 똑소리나게 잘 사시네
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아래 댓글들이 너무 충격적이더라.
애들이 불쌍하다고.
가난에 허덕이며 불행하게 자랄거라고.
양심이 없다고. 먹을건 제대로 먹이고 있냐고.
댓글들을 쭉 읽고 있으니까
어린시절의 나를 향해 말하는거 같았어.
너는 불행한놈이야! 넌 불행해야만해!
이렇게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
나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는데.
본인 혼자 사는데에도 200씩 쓰며 산다고
4인 가족이 200으로 사는게
뭐가 그렇게 눈꼴시려워서 저렇게 돌을 던지는걸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했어.
아 이사람들은 만족을 모르고
그저 더 갖지 못해 끝없이 불행하게 살 사람들이구나.
행복이라는건
그 개개인마다 느낄 수 있는 역치가 다 다른법이지.
누구는 한달에 200만원씩 쓰며 살아도
부족하다고 느낄수도 있겠지만
누구는 50만원만 쓰며 살아도 행복할수도 있잖아?
왜 그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역치를
자기 기준으로 멋대로 판단내리고
동시에 스스로는 불행해지려는걸까.
나는 한달에 200만원씩 쓰며 사는데
쟤는 400씩 쓰며 살다니.
내가 너무 초라해. 나는 너무 불행해.
그런거 있잖아
30살에 1억 못모으면 병신이라는 논리 같은거.
내가 생각한 기준은 ‘이정도’야.
이 선 안에 못들어 온 너는 병신.
나이는 어려야하고 돈은 많아야하고.
가끔 그런 댓글들을 보곤해.
본인의 생각이랑 다르거나
아니면 뭔가 거슬린다 싶으면
어짜피 방구석 백수로 살고있을거라느니,
지잡대 나왔을거라느니 하는식으로.
그럼 발끈해서 나 어디어디 대기업에 다니고
연봉은 얼마고
너보다 한참 잘산단다~ 라는 논리의 글들.
근데 대기업에 안다니고
너보다 연봉이 낮아도
자기 생각정도는 표현 할 수 있는거 아닌가?
왜 대기업 다니고 연봉 높은 사람이 쓴 글에는
자연스러운 권위가 부여된다고 생각하는거지?
이거 완전 중국 게임 광고에서 보이던
새치기 하면서 ‘나는 무려 5성 초월급
화염드래곤이라고! 비켜!’ 하는거랑 뭐가 다른걸까?
우리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부디 평범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고문하며 살지 않았으면 해.
왜 얼마전에 보였던 사천짜파게티 빌런처럼.
그렇게 살면 되는거 아닐까 싶어.
우리 엄마도 내가 그렇게 살길 바라셨을거 같아.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가
그래도 나랑 동생이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해줬거든.
난 SNS도 안하고
그냥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도 해보고 하는 김에
내 생각도 여기다가 두서없이 적어봤어.
다들 행복하자
인생 한번 뿐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