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웃기고 복잡한 얘기인데
완전 어릴 때부터 엄마랑 새아빠랑 같이 살았음
친아빠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기도 했고
새아빠에게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아서
한번도 엄마랑 새아빠한테
친아빠에 대해 물어본 적 단 한번도 없었음
근데 세달 전에 새아빠가 초조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면서 말을 흐리길래
할말 있으면 빨리 얘기하라고 했더니
조심스럽게 “oo아 친아빠랑 만나볼래?” 하고 물어봄
그래서 걍 “ㄴㄴ 나한테 없는 사람이야”
하고 그냥 넘겼는데
생각할 수록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길래
만나본다고 하고 약속 잡고 오늘 만났음
게장이 존나 유명한 한정식집에서 만나기로 함
친아빠가 예약했다는데
내가 간장게장 좋아한다는 거 듣고
수소문해서 한달 전부터 예약했다고
아빠가 미리 말해줌
그래서 걍 나도 나름 처음 만나는 거니까
어느정도 차려입고 감
카운터가서 이름 대고 들어가는데
이때 친아빠 성함도 처음 알았음
막상 도착하기 전까지는 안 떨렸는데
아빠가 데려다주면서
“안 떨려 딸~?” 이럴 때도
뭐가 떨려ㅋㅋ 이랬는데
막상 문앞에 서니까 존나 떨리는거임
그래서 크게 숨 한 번 쉬고
노크 세번하고 들어갔는데
왁스로 머리 한껏 힘주고
양복 차려입은 아저씨가 어정쩡하게 일어나더니
어색하게 한쪽에 꽃다발 들고
암말도 안하고 어색한 미소 지으면서
누가봐도 긴장한 사람이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거임
근데 ㅋㅋ 진짜 누가봐도 내 핏줄이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거울 보는 줄;
나랑 진짜 똑같이 생겼더라
진짜 존나 닮았음;
그래서 나도 모르고 푸풉 하고 웃으니까
친아빠가 “앉으세요..” 이러길래
아 네네 이러면서 앉고 난 뒤에
어색한 식사시간이 시작됨..
나보고 “게장 좋아하신다고..” 이러길래
아 말 편하게 하세요 하니까
“좋아한다고..” 이러길래
완전 좋아해요 게장 좋아하세요? 이러니까
“환장하지..” 이래서 걍 둘이 또 웃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
27년 평생 살아오면서
친아빠에 대한 원망 같은건 전혀 없었음
사실 기억 자체도 없기도 했고
엄마한테 들어본 얘기로는
나였어도 아빠 입장에서 그랬을 거라고
그리고 친아빠가 엄마랑 헤어지고
나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돈도 꼬박꼬박 보내줬단 것도
대학 들어가고 나서 처음 알았음
그래서 딱히 원망보단
어떻게 생겼을까가 궁금했는데
27년만에 드디어 그 궁금증이 풀림
진짜 존나 닮음
역시 첫째딸은 아빠 닮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거 아님..
그렇게 친아빠랑 나는 첫만남부터
게장 뜯은 사이가 됨
게장 뜯으면서 학창시절은 어땠냐
제일 친한 친구가 있냐
좋아하는게 있냐
남자친구는 있냐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 하다가
밥 다 먹고 한옥카페 같은 곳에 갔는데
어쩌다보니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새아빠랑
세명에서 같이 가서 삼자대면 함
그때 돌아가신 엄마 얘기도 하고..
분위기는 진짜 좋았음
그리고 친아빠가 밥 먹을 때 사과를 엄청 하더라
그래서 사과 안해도 된다고
새아빠가 빈자리 안 느끼도록 엄청 잘 해주셔서
원망 같은거 한번도 안했다고
그런 말 안 하셔도 된다고 했는데
그런데도 계속 미안하다고 하면서
무슨 박스 같은 걸 주길래 열어봤더니
몇 십년동안 나 보고 싶을 때마다 적은
편지들이 한박스 담겨있었음
이걸 줘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었는데
아빠가 이런 걸 나쁘게 받을 딸이 절대 아니라고
그냥 주라고 했대
그리고 늦게 줘서 미안하다고
대학입학 선물이랑 취업선물도 주심..
그리고 나도 백화점에서
넥타이 고른 거 선물로 드렸는데
선물 받고 눈 빨개지시더니
화장실 갔다가 한참 있다가 오심
마지막에 헤어질 때 머뭇머뭇 거리길래
연락 먼저 하셔도 된다고
먼저 연락처 드렸더니 고맙다고
자주 연락해도 되냐고 조심히 물어보시길래
그럼요! 자주 연락하세요! 했더니
진짜 고맙다고 계속 말하다가 헤어짐
아빠랑 차타고 집오면서 이런 저런 얘기하는데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고
친아빠도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신 줄 알았는데
편지 박스 보고 나니까
항상 내 생각 많이 하고 사신 것 같아서
기분이 좀 진짜 이상하긴 했음
암튼 27년만에 친아빠 만나고 옴
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