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8년차에 접어드는 남자입니다.

지금부터 약 3년 전,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혼을 해야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지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저한테도 큰 원인이 없었고

와이프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면서

회사 생활과 여러 집안 일로 지쳐있던 저도

그렇게 하자고 맞받아 쳤었습니다.

그때부터 서로 각방 쓰고

같은 집에 있어도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져갔고,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고요.

하지만 어린 아들이 있었기에

서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 내고 잘 울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아들을 보면

아내는 화를 불같이 내고

저는 왜 아들한테 왜 화풀이냐 화내고

그냥 계속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솔직히 아이가 그러는 것이

우리 때문에 그렇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척 했던게 큽니다.

가끔 외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잔소리도 관심이 있는 사람한테 하는 거라고

저에 대한 정내미가 아예 없었는지

외박하고 집에 들어가도 신경도 안쓰더라고요.

뱀이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듯이

결국 정답은 이혼 말곤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달이 흘러,

하루는 늦은 퇴근길에

집 근처에 어떤 과일 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 간곡히 부탁하시기에

남은 귤을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었습니다.

그리고 주방 탁자에 올려둔 뒤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왔는데,

와이프가 사온 귤을 혼자 까먹고 있더라고요.

몇개를 까먹더니 하는 말이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쏙 들어갔었습니다.

당시 저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이라

저 말을 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고,

갑자기 순간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결혼 후 8년동안 내 손으로 귤을 사서

집으로 들어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였죠.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생각치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순간 뭔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연애할 때 길가다가

아내는 귤좌판상이 보이면

꼭 1000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으면서

행복하게 지냈던 그 연애 시절이 생각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울컥해져서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먹거렸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때는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몇백원도 안하는 귤 한개를 사준 적도 없다니,

연애를 하다 결혼한 뒤부턴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아이 문제와 내 문제는 핑계였고

그냥 저 자신이 바뀐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아내는 저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 한 가지를 만들어도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신경써줬고

어느덧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그 며칠 후,

늦은 퇴근길에 또 그 과일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길래

저도 모르게 또 귤을 샀습니다.

그리고 오다가 하나 까먹었는데

며칠 전 아내 말대로 진짜 맛있더라고요.

그리고 들어와서 주방탁자에 살짝 올려놓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대화 한번을 하지 않던 아내가

“이 귤 어디서 샀어요?”

“어 집 근처 좌판에서”

“귤이 참 맛있네”

그날 몇 달만에 아내가 웃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에게

몇알 입에 넣어주면서

저한테 귤을 주고 오라는 말을 하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 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내 모습과

또 한번 비교하게 되었고

뭔가 잘못 되고 있었다는 걸 크게 깨달았습니다.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다음날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해주고 있더라고요.

저와 사이가 안 좋아진 이후로는

아침을 해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혹시나 싶어서 그냥 가려고 하니

아내가 절 잡더라고요.

한 술만 뜨고 가라고요.

마지못해 첫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도저히 안 넘어가더라고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울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고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말을 한 뒤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워서 도망치듯 나왔다고 해야하나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한 가지의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 일에도 감동 받아

내게로 기대올 수 있다는걸 몰랐던 저는

정말 바보 중에도 제일 바보가 아니었나 싶은 게

그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제 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날 이후,

저희는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잘 해결되어 사이 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싸우긴 하지만,

서로가 싫어서 싸우는 게 아닌,

서로에게 관심이 생겨 싸우는게 대부분이라

걱정할 것도 전혀 없어졌고요.

이젠 귤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많았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말자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