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고개를 든다.
문득 머리 속에
나를 떠나가던 한 사람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15년이 지났지만, 돌아서서 진료실 문을 나가던
그 사람의 등과 어깨가 아직도 생생히 그려진다.
그 환자를 만난 것도 이맘때였다.
그리고, 그 날도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전임의 1년차 시절.
갓 전공의 딱지를 떼고 전문의로 첫 발을 내디뎠던 시절.
아직 독자적으로 환자를 볼 정도의 실력은 되지 않아
여전히 교수님들의 그늘 밑에 있다가
내 이름으로 환자를 받아서 스스로 결정하고
치료하기 시작한 게 10월이었다.
그 환자는 내 다섯번째 환자였다.
27세 남자, 경희대학교 법학과 학생이었다.
진단명은 뇌종양.
1-2개월 전부터 눈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면서
몇몇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최종적으로는 뇌종양으로 판명이 났다.
외과적 수술이 가능한지 여부를 위해
신경외과 진료를 봤고,
종양이 너무 크고 광범위해
외과적 절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돼
나한테 의뢰가 왔다.
뇌 MRI 영상을 통해 확인한 종양은
뇌기저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시력이 자꾸 떨어졌던 건
종양이 시신경을 압박했기 때문.
종양이 이렇게 크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시력이 떨어지는 것 외에
다른 증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치료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이렇게 큰 뇌종양을 외과적으로
잘라내지도 못 한 상태에서 방사선 치료만으로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나이가 겨우 27살 밖에 안 됐는데, 참 안타까웠다.
설상가상으로 환자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뇌에 혹이 있는데
심각한 건 아니고 치료 잘 받으면
나을 수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경희대학교 법학과 3학년 학생입니다.
시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외에
다른 데 아픈 곳은 전혀 없는데,
여기를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환자는 진료실로 들어오자마자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천성이 밝고 착한 사람 같았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환자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고향이 경상남도 창원이고,
삼수를 해서 대학에 입학했다고.
군대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은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외동아들이라 집에서 기대가 커서
사법고시에 꼭 합격해야 한다고.
합격하고 연수원 성적이 좋으면
판사나 검사를 하고 싶기도 한데,
2년마다 근무지를 이동해야 해서
그냥 고향에 변호사 개업해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기도 하다고.
제대하고 복학했더니 신세대 후배들하고
세대 차이가 느껴져서 힘들다고 말이다.
마치 형을 만나러 온 동생처럼,
그렇게 편하게 수다를 떨면서 자기 얘기를 했다.
“큰형님 뻘 되는 선생님 앞에서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정말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더라구요.
꼰대 취급만 하려고 하지, 선배 대접을 안 해줘요”
이렇게 말하며 멋적게 웃는 환자를 보면서
나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MRI 상 보이는 종양의 모양으로 봤을 때
환자의 머리에 있는 종양은
교모세포종(glioblastoma) 가능성이 높았고,
교모세포종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대략 1년.
그나마 이 환자는 종양의 크기가 매우 컸기 때문에
1년도 채 못 살 것 같았다.
안타깝지만 환자는 사법시험을 못 볼 것이고,
고향에서 변호사 개업도 못 할 것이다.
꼰대 취급 받고 있는 학교 생활도
앞으로 얼마 못 할 것이다.
하지만, 환자는 아무 것도 모른채
밝고 천진한 표정으로 본인의 미래를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담당의사로서 얘기해야 했다.
당신의 머리 속에는
매우 악성도가 높은 뇌종양이 자라고 있다고.
이미 시신경을 침범해서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종양의 크기가 매우 커서
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복학생 생활이니, 사법고시니 하는 것들
모두 다 못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이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래를 꿈꾸는 밝고 싹싹한 젊은 학생에게
감정이입이 됐던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환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가슴은 뜨거워도 머리는 냉철해야 하는데,
환자를 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의욕과 열정만 앞선 나머지
너무 쉽게 환자한테 감정이입이 됐던 것 같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당신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고,
1년 내에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형이 동생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첫 진료에서 이미 감정이입이 되어
그 환자를 동생처럼 생각하게 되어버린 나는
어떤 얘기도 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병의 심각함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 한 채,
일단 치료는 시작해보기로 했다.
‘나이도 젊은데, 아무 치료도 안 할 순 없잖아?
일단 치료는 해 봐야지.
방사선 치료에 굉장히 반응이 좋을 수도 있고,
그럼 수술도 다시 고려해볼 수 있겠지.
만약 치료에 반응이 없으면
그 때 가서 사실대로 얘기해도 늦진 않을거야’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당시 나로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방사선 치료가 시작됐다.
며칠에 걸쳐서 방사선 빔의 방향과
세기를 조절해가며
최적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정말 이 환자를, 아니 단순한 환자가 아닌
내 동생이 되어 버린 이 사람을 살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했고,
환자도 젊은 나이여서 그런지
큰 어려움 없이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치료가 진행될수록
빨리 환자에게 정확한 병의 상태를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점점 커져갔다.
환자는 아직 자신의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 요새 눈이 더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책 보는데 눈도 더 피곤하고.
머리도 조금 아픈 것 같구요.”
예정된 치료가 중간쯤 진행됐을 때였다.
아마도 암이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방사선 치료로 인한 염증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CT를 찍어봤다.
하지만, 역시나 종양은 더 커져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방사선 치료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암이 자라고 있었다.
당연히 더 악화된 상황에 대해
환자에게 정확하게 얘기해줘야 했지만,
역시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널 속였다고,
넌 곧 죽을거라고 얘기해야했지만,
내 동생이 되어 버린 환자의 얼굴을 보면서
도저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음.. 글쎄. 방사선 치료 부위가 염증 때문에
조금 부어서 그런 것 같다.
너무 걱정 말고, 공부도 물론 좋은데,
치료 중에는 너무 무리하지 마라.”
환자의 눈길을 피하며 이렇게 얼버무려버렸다.
환자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모든게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치료는 계속됐다.
환자는 증상이 조금씩 악화되는 와중에도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았다.
사실대로 말해야했고,
더 미뤘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도저히 환자와 얼굴을 마주하고는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아서
결국 나는 환자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환자의 현재 상태가 심각하다는 점,
앞으로 예후가 매우 안 좋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얘기를
아직 환자한테 하지 못 했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을 우셨다.
어머니의 눈물이 내 마음까지 차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서글프게,
그리고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셨다.
“죄송합니다. 너무 제 동생 같이 생각돼서
차마 말을 못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걔가 나이만 들었지,
마음이 여려서 아직 어린애에요.
거기서 그 아이 혼자 지내는데,
선생님한테 그런 말 들으면 많이 놀라고 당황할겁니다.
제가 집으로 불러서 얘기하겠습니다.
제 곁에 두고 얘기해야 돼요.”
다음날 내 진료실로 들어온 환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집에 잠깐 다녀와야 해서
치료를 며칠 못 받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마 어머니랑 통화를 했겠지.
어머니가 집으로 잠깐 내려오라고 얘기를 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치료도 받고 공부도 해야 되는데,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잠깐만 꼭 집에 내려오라고 하네요.
공부 방해된다고 전화도 자주 안 하시는 분인데.
잠깐 집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별 일 아니면 금방 다시 올게요.
하루이틀이면 될 겁니다.”
다시 오겠다는 말이 가시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정말 나한테 다시 올까?
1년도 채 못 살고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치료해도 소용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나한테 다시 올까?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환자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이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진료실 문을 나가면 아마 다시 오지 않겠지.
내 동생 같았던 사람.
지켜주고 싶고 꼭 치료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해주지 못 한 사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환자의 얼굴을
더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더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어와서
환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래. 잘 다녀오고, 금방 다시 와.
치료 너무 오래 쉬면 안 되니까.
다음 환자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다. 그만 나가봐.”
서둘러 환자를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대로 있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의자에서 일어나 진료실 문을 나서는
환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내가 보는 그 환자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몰랐다.
그 등과 어깨. 내 마음이 스며든 듯,
환자의 등과 어깨도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환자를 그렇게 보내고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었다.
내 마음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10월 초.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쌀쌀한 바람과 함께
가을이 성큼 다가오겠지.
봄과 여름을 뒤로 하고
겨울을 향해 가을은 한걸음씩 짙어져갈 것이다.
내 동생 같았던 환자.
그 환자도 나를 형처럼 생각했을까?
어머니한테 모든 사실을 듣고 난 후
환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충격과 혼란의 시간이 흘러가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를 이해해줄까?
아니면 그냥 설명도 제대로 해주지 않은
무책임한 의사였다고 분노할까?
만약 나와 비슷한 감정이었다면,
그래서 무책임한 형을 이해해주고
한번만이라도 다시 와준다면,
꼭 미안하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꼭 안아주고 싶었다.
슬퍼보였던 그 어깨와 등을
그저 조용히 토닥여 주고 싶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내 마음도 한없이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어언 15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15년간 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또 많은 환자들과 헤어졌다.
치료가 잘 돼서 웃으면서 헤어진 환자들도 있었고,
상태가 나빠져서 제대로 인사조차 못 하고
헤어진 환자들도 있었다.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나도 이제 감정의 동요 없이
의연하게 환자들과 헤어질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환자들과
헤어져야 할지 모르겠지만,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환자들과 헤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15년 전 그 환자의 뒷모습이 떠오르는건
지금도 어찌할 수 없다.
결국 나한테 오지 않았던 그 환자.
결국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 했고,
슬퍼보였던 그 환자의 등과 어깨도 토닥여주지 못 했다.
그저 진료실 문을 나서는 그 환자의 마지막 뒷모습만
내 마음속에 각인되어,
낫지 않는 상처처럼
때때로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