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4학년 병원 임상실습이 한창이던 초봄에
젊고 건장한 두사람의 청년이 등산을 떠났다.
6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동안
그리 쉽지않은 시간이었지만,
두사람의 친구는 가끔 시간이 날때마다 산을 자주 찾았고,
아마추어로서는 쉽지않은 암벽등반을 익혔다.
한 사람은 의과대학에 입학하기전
고등학교 시절 산악부로 활동했고,
또 한 친구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의 영향으로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두사람이 같이 산을 다닌지가 햇수로 6년째니
두사람의 우정은 학장시절의 그것에
악우로서의 그것이 더해져
마치 친형제의 그것과 같았다.
그날 두사람이 찾은 곳은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밀양 재약산의 어느 암벽이었다.
먼저 한사람이 깎아지른 암벽을 올랐고,
한친구는 밑에서 자일을 확보했다.
먼저 오른 친구가 암벽의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이제 남은 오버행 구간만 통과하면
밑에서 다른 친구가
뒤따라 바위를 오를 것이었다.
(암벽이 모자의 챙처럼 머리위로 꺾여 있어서,
매달려서 자일을 타거나 기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어서 오를 수는 없는 구간)
사실 바위를 하는 사람들을 아래에서 살피면,
아차하면 낙상으로 큰일이 날 것 같지만,
처녀봉을 등정하는 것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앞서 등반한 사람들이
바위에 미리 박아둔 하켄에 자일을 걸고,
매듭을 지은 자일에 캐러비나로
단단히 고정을 한 뒤이기 때문에
떨어지더라도, 하켄(바위 못)에
자일이 끼워진 캐러비나가 걸리면서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안전이 확보된다.
그래서 암벽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긴장을 풀지 않지만,
또 그만큼 매번 긴장을 유지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그렇게 한 친구가 바위에 매달려
오버행 구간을 통과하려하고 있었고,
한 친구는 아래쪽에서
친구가 매달린 자일의 끝을 잡고,
친구의 등반을 올려다 보고 있는 순간
갑자기 산 아래쪽에서 돌풍이 불어왔고,
머리위로 “ㄱ”자로 꺾인 바위를 넘어서기 위해,
암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조금씩 오버행 구간을 돌파하려던 친구의 몸이
순식간에 돌풍에 휩쌓였다.
바람은 사정없이 그를 바위쪽으로 밀어 붙였다.
친구는 허공에 매달린 상태에서
정면에 있는 암벽에 몸을 세차게 부딪혔고,
그는 그 순간 정신을 잃고 허공에 늘어져 버렸다,
재차 돌풍이 허공에 매달린 친구의 몸을 휘감았다,
친구는 허공에서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면서
바위에 계속 충돌했고,
아래쪽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남은 친구는
속절없이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친구는 무려 한시간동안 허공에 매달려,
바람이 불 때마다 바위에 몸을 부딪혔고,
그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갔다..
아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친구가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질러도,
이미 바위 위에 도달한 다른 팀들이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러도
아무도 그를 구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의 사지는 골절이되고,
그의 뇌는 기능을 멈추기 시작했다.
한시간이 넘게 흐른 후 119에 구조된 친구의 몸은
이미 형체를 알아 볼 수가 없이 변해있었고,
그의 축 늘어진 상처입은 몸은
친구의 안타까운 울부짖음속에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어졌다.
..
일요일 오후..
모처럼 당직실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선생님 지금 인공호흡기가 긴급히 필요한데,
저희과에는 남는게 없습니다,
혹시 그쪽 중환자실에 남은 인공호흡기 한대 없습니까?”
신경외과 일년차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인공호흡기? 글쎄..
우리도 지금 남는게 없는데 무슨일이야?
어쩌면 밤에 한사람 익스튜베이션 할지도 모르겠는데..
왜 꼭 필요해?” 라고 물었다.
“선생님 본과 4학년 학생이
지금 산에서 조난을 당해서 병원에 왔는데,
거의 뇌사상태입니다, 혹시 아십니까?
농구부 주장하는 김** 말입니다,
얼마전에 외과 실습을 했을 텐데요..”
머리에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그 친구는 내 고등학교 후배이자,
얼마전에 우리과 실습을 돌면서
대단히 좋은 인상을 남겼던 친구였다.
황급히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뛰어가보니.
불과 일주일전에 건장한 모습으로
병원 복도를 멀쩡하게 뛰어다니던 후배녀석이,
이제는 도저히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퉁퉁 붓고,
이마에는 지혈용 엘라스틱 밴드를 칭칭감고,
팔 다리 세군데는 응급기브스를 한
그야말로 중환자가 되어
자신이 실습하던 바로 그자리에 누워있었다.
사람의 운명이란 그런것일까..
바로 직전까지 웃음을 짓고 떠난 사람이
불과 하룻만에 생사를 가르는 경계선에 서 있는 것,
오늘 숨을 쉰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는 것,
신경외과에서 수술은 불가능이라고 했다.
뇌부종이 워낙 심했다.
머리를 암벽에 계속 부딪히면서
뇌가 부어버린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헬맷을 하고 있어서
뇌출혈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몸에 충격이 오면 몸이 붓듯이
뇌가 두개골 속에서 부으면서 뇌압이 급상승을 한 것이다.
팔다리의 골절은 문제가 아니었다.
부어버린 뇌는 두개골이라는 단단한 외피로 인해
두개골 내에서 압력만 증가된다,
마치 효모에 빵이 부풀리는 것처럼
뇌가 부풀고,
그 부풀어 버린뇌는 뇌압을 증가시켜서
뇌세포를 죽게 만든다,
신경외과에서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했지만
그래도 뇌압을 낮추려는 필사적인 시도를 계속 했다.
만니톨이 혈관으로 쏟아지고,
스테로이드가 퍼부어졌다.
혈관으로 들어간 만니톨의 몇배나 되는 양의 수분이
소변으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체내의 수분량을
감소시켜 뇌압을 낮추려고 했지만,
그의 뇌는 전혀 기능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마침 병원내의 인공호흡기가
한대도 여유가 없었다,
도리없이 녀석의 기관지로 삽관된 튜브에
수동식 앰부백을 달아
손으로 공기를 불어 넣는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지금 앰부를 잡고 있는 사람은
우리병원 의사가 아니라
어떤 처음보는 초로의 남자였다.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 아이가 내 외아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선생님보다 훨씬 오래전에
이 학교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제가 그냥 앰부를 잡고 있을테니 양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외과에도 인공호흡기가 없다면
지금 어디 의료기상에 연락해서
인공호흡기를 제가 한대 사오면 안되겠습니까?
이 아이 죽으면 세상에 무엇인들 필요한게 있겠습니까?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어서 인공호흡기 한대 구입할 수 있게
알아봐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는 애써 침착하게 말을 했지만,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경황중에 선배에 대한 예의를 차릴 수도 없었지만
선배의 아들이자 내 후배인 관계를 떠나,
지금 침상에 누워있는 젊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리도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정말 더이상 방법이 없었다.
주말에 갑자기 인공호흡기를 사올 수도 없었고,
수술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밤 12시 경에 드디어 내과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가 한 대 여유가 생겼다.
그제서야 그분이 잡고 계시던 앰부백이
기도관에서 떼어지고,
인공호흡기가 그자리를 대신했지만,
이제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인공 호흡기가 부착되었다는 것은
단지 사람의 손으로 불어 넣던 숨을
기계가 대신한다는 것,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신경외과에서는 만니톨-코마 테라피 라는
레지멘을 이용한 만니톨과
안정제 투입외에는 달리 다른 수단이 없는
그야 말로 속수무책의 상황이었다.
소변량은 무서운 속도로 증가했다.
뇌부종을 가능한한 신속히 줄여주지 못하면
뇌 자체의 압력으로 뇌 조직의 괴사가 일어나므로
어떡해서던 뇌압을 낮추어야 했고,
그러자면 고농도 삼투압을 지닌 만니톨을 투입해서
몸안의 수분을 가능한한
밖으로 빼내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뇌 부종을 가라앉히기 위해,
만니톨을 계속 투여하면
뇌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만큼
몸안의 수분이 수분이 급속도로 사라지게 되고,
그것은 곧 최종적으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변량이 계속 증가했다.
그렇다고 뇌부종이 줄어들지도 않는데,
만니톨은 계속 주입되었다.
우리는 신경외과에서 하는 일이라,
지켜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상태가 하루종일 지속되자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었다.
사실 환자는 신경외과 소속이고
신경외과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지만,
신경외과에서도 만니톨- 코마 레지멘 외에는
달리 해줄 것도 없었고,
오히려 우리과에서
동맥관,경정맥관,인공호흡기를 컨트롤 하기위해
그녀석의 옆을 지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본과 4학년 학생들이 2명씩 조를 짜서
병상을 24시간 지키기로 했고.
총의국에서도 ( 전체 전공의 협의회) 각과의 인턴과
레지던트 선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살필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는데다,
교수회의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기로 결의했다.
그것은 동문선배의 아들이자,
우리들의 후배인 환자에 대한 예의였다.
혹여 일반인들은 역시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비난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난센스다,
경찰관이 도둑의 손에 살해당하면
전 경찰이 스스로 특근을 하면서
범인체포에 나서고 전장에서 전우의 죽음에
눈이 뒤집히듯이.
그점에서는 의사도 사람인이상 다르지않다.
의사란 모든 생명에 경의를 표하고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손을 내밀어야 하지만,
동료의 죽음 앞에서는 인간적인 무엇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 뿐이었다.
실제 우리가 녀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수술도,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니톨만 속절없이 들어가고,
소변량은 무서울 정도로 증가했다.
이제 곧 한계가 오는 것이다.
신경외과 일년차에게 물었다,
“최선생, 만니톨 언제까지 이렇게 줄거야?
이러다가 ECF 볼륨이 고갈되는거 아냐?
하이포 볼레미아가 오면 그때는 어떡하지?
일렉트로라이트는 어때?
이정도로 유린이 나오면 포타슘이나
나트륨은 문제가 없어? 만니톨 몇 병째야?”
그러자 어제 밤새 한줌도 자지못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신경외과 일년차의 입에서
“아.. 아직 만니톨이 아직 들어가나요?
일렉트로라이트요? 아참,,
그러고보니 스터디를 못해봤네요..”
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다혈질인 우리 2년차 김선생의 주먹이
최선생의 턱을 향해 날아갔다.
최선생이 주먹에 맞아 비틀거리는 순간,
연이어 김선생의 주먹과 발길질이
최선생을 향해 날아들었고,
나는 갑자기 일어난 사태를 말릴 겨를도 없이
순간 멍하니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김선생이 최선생의 멱살을 끌고
중환자실과 이어져있는 당직실로 끌고 들어갔다.
” 야이 개새끼야 니 후배가 저렇게 사경을 해메는데
주치의라는 새끼가 뭐?
만니톨이 아직 들어가냐고?
뭐 일렉트로라이트를 몰라?”
성질급한 김선생이 최선생을
거의 초죽음을 만들고 나서야
다른사람들이 나서서 겨우 상황을 수습했다.
그랬다..
감정적으로야 최선생이 무심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어쩌면 최선생의 머리속에는
이미 죽은 아이를 그렇게 괴롭힐 필요가 뭐 있느냐는
현실적인 판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의 매일밤을 잠한숨 못자고 시달리던
외과계 일년차의 머리속에는
그저 가능성이 있는 환자와 없는 환자,
그 둘만이 존재 할 뿐,
그 사람이 누구이건
그것에 대한 분별심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일년차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화를 삭이지 못하는 김선생에게
가벼운 주의를 주고,
입술이 터져서 피를 흘리며
당직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최선생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최선생.. 힘들고 정신이 없는줄은 알지만
그래도 우리 동료잖아..
설령 이대로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되는 일이 아닐까?”
하고 타박을 하고는,
역시 수술실에서 이틀째 못나오고 있는
신경외과 치프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음 상황을 논의했다.
역시 다른 수단은 없었다.
신경외과에서 잠정적으로 만니톨 투여를 중단하기로 했다.
만니톨을 중단해서 뇌부종이 생기건,
만니톨을 투여해서 저혈량성 쇼크가 생기건
결과는 같았지만,
이제 만니톨까지 중단된 이상
더이상의 실제적인 의학적 치료는 모두 중단된 셈이었다.
녀석은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동공은 열려있었고.
동공에 프래쉬를 비추어도 동공의 움직임이 없었다,
이제 기계가 밀어주고 당겨주는 강제호흡과,
아직은 뛰고있는 심장의 박동,
이 두가지만이 아직 이녀석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였을 뿐
녀석은 서서히 실제적 뇌사상태에 접어들었다.
병상을 지키며 밤새 울어 눈이 퉁퉁부은 녀석의 동기들,
녀석의 여자친구,
그리고 걱정스레 오가는 전공의들과,
녀석의 아버지이자 우리들의 선배인
한 중년남자의 애잔한 울먹임.
이 중환자실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게 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
다음날 아침 의국회의에서
이식파트를 담당하는 스텝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박선생 신경외과에 있는 그 본과 4학년 학생 말이야,
뇌사라며? 혹시 보호자가 도너로
장기를 제공할 의사는 없는지 한번 물어보지?
지금 간이식을 기다리는 레시피언트가 있는데.
그나마 도너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전에
장기를 하베스트 해야 하지 않겠어?”
분명 타당한 이야긴데.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당시만해도 간이식은 거의 시행되지 않았고,
그나마 국내에 시도된 몇 케이스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뇌사에 대한 정의나
규정도 확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제 막 이식수술이 시도되는 발아기에 해당했다.
세상의 모든 의술이 다 그렇듯이.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또 그만큼 많은 희생자들이 있다.
지금 심장 수술은 상당히 보편적인 수술에 속하지만,
당시만 해도 심장 수술,
그것도 인공심장 수술은 시도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당시 심부전을 앓던
“닥터 클라크”라는 미국 의사가
스스로 자신을 인공심장 이식수술의 대상자로 자원했고,
그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듯이
수술 후 일주일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런 닥터 클라크의 희생을 시작으로
또 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고서야.
오늘의 이식수술의 결과가 있게 된 것이다.
당시에도 그랬다.
그러나 간이식의 경우는 문제가 달랐다.
이식받은 사람의 문제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공여자를 구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죽은자의 몸을 훼손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때였다.
지금도 겨우 사후 각막 이식을 위한 공여는
하는 분들이 있지만,
자신이 뇌사에 빠지면
자신의 간과 심장,신장,각막을
모두 타인에게 주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구나 사체에서 장기를 제공받는 것도 아니고
상태가 좋은 생체에서 공여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혹은 내 가족이
누군가의 몸을 물려받아야
살아 날 수 있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자.
혹은 나나 혹은 내 가족이 이식외에는
대안이 없을 때 의료수준이
그만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타인에게 바라는 만큼
나를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
그렇지만 나는 이식담당 스텝이 못마땅했다.
스텝의 논리는 그나마 보호자가 의사인데다,
환자가 의학도 였으니,
어쩌면 장기를 제공 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것 이었지만,
나는 아직 뇌사에 대한 확신이 없는 후배의 몸을 두고
아직 그런 논의를 한다는 것을 참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나는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의사의 공명심이란 무서운 것이다,
자신의 의료술기를 발전 시키는 것은
곧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사들의 공명심은 때때로
상당히 위험한 도덕적 경계선을 넘는 수가 있다.
예를들어 이식수술의 대가가 되고 싶은 외과의사는
눈에 불을 켜고 장기공여자를 찾게 마련이고,
이런 경우 공여자의 몸이 정말 회생가능성이
100% 없는 것인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덜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뇌사판정을 할 때는
이식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뇌사판정에 참여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나는 내 오해인지 모르지만
우리 스텝의 눈에서도
바로 그 공명심으로 인한 초조감을 읽었다,
일단 알았다고 대답하고 회진을 마치고
다시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갔다.
녀석은 여전히 COMA 상태였고.
내 눈에도 회생의 가능성은 1%도 없어 보였다,
녀석의 동기들이 교대로 킵을 하면서 지키고,
신경외과 스텝들도 수시로 드나들면서
녀석을 살폈지만,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처치도 없는 셈이었다.
녀석의 아버지도 의사였으므로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 들였다..
..
우리과 이식담당 스텝의 압력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나는 처음 3-4 일간 그 지시를 애써 무시했지만,
4일이 지나면서 나도 그것에 동의했다,
주변의 다른 동료들의 의견도
이제는 차라리 그것이 낫지 않겠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순간에
“이식을 위한 공여자가 되어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한 우리들과,
사고 다음날 아침에
“이식수술”이야기를 꺼낸 이식담당 스텝의 생각은
출발선이 다른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결과적으로 희생적 이식을 고려하는 것과,
이식도 너가 되어줄 가능성이 높은
뇌사환자가 하나 생겼다고 기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관점에서는
엄연히 다른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선배.. 그러니까
녀석의 아버지와 당직실에서 대면했다.
누가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
나는 신경외과와 내과 치프를 같이 불러서
셋이서 선배에 대해 정중한 예의를 갖춘 다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어떻게던 살려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신경학적 검사를 해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의 판단으로는
거의 뇌사상태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이제 이녀석의 죽음을 어떻게하면 헛되게 하지 않을까
그것을 고민하는 것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허락하신다면
더이상 장기의 기능이 악화되기 전에
이식을 위한 장기제공을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녀석도 의업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그것을 마다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침 간과 신장을 필요로하는 대기자가 있고
다른병원 대기자 중에
심장을 필요로하는 환자도 한사람 있다고 하는데,
만약 가능하다면 시기를 늦추면 안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공여자가 될 수 없을만큼
장기기능이 악화 될 것 같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애써 담담하게 우리의 뜻을 전달했다.
노선배는 한참동안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면서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그분이 거절하기를 바랬다,
나는 아직 생명체로 존재하는 후배의 몸에
칼을 대고, 아직 살아있는 몸에서
간과.신장,심장을 제거하는 수술에
참여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녀석의 몸에서 장기를 떼어내는 순간
녀석의 생명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자가 아닌 사람이
사체이식도 아닌 생체이식을 감행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그점에서는 아직도
그 난감한 철학적 고민에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노선배가 조용히 눈물을 훔치면서 말을 했다.
“박선생.. 내가 의사지만
그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야.
내 생각만으로 결정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집사람과 상의해보고, 오후에 내가 답을 주지..
만약 저 애가 장기를 기증해서
몇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야겠지만.
그래도 집사람 의견을 들어야겠지..
그동안 너무 마음 써줘서 미안하네..
내 이 상황이 끝나고나면 자네들하고 술한잔하고 싶네..”
그는 말을 마치고 조용히 일어나서
그의 아내가 기다리는 대기실로 향했다..
그렇게 하루가 또 흘러갔다..
믿음이 크신 분들께는 여러모로 송구스럽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는한
“보지않고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사람의 정신이란
그 육체적 건강성과 비례관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아무리 정신이 강고하고
신념이 확고한 사람도,
뇌의 일부분에 손상을 입거나,
신체의 다른 부분의 질병으로 뇌로가는 영양이나
혈액 공급이 줄어들면
금새 의식이 옅어지거나, 퇴행하게 된다.
영육이 분리된 것이라면
우리는 머리를 다친 사람의 퇴행적 모습에.
혹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일탈적 사고에,
혹은 나이가 들어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노인이나,
치매 환자의 그것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사람의 정신은 몸의 전기신호가 만들어 내는
스파크의 결과물이라면,
우리의 의식도, 정신도, 철학도, 신념도, 소신도,
욕망도, 꿈도, 희망도, 절망도,
그 모든것이 전원을 꺼버리면
그 즉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컴퓨터상의
전자오락처럼 하나의 부호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의사로서 그런일을 경험 할 때마다.
내 무의식을 지배하는 신앙의 그림자를
벗어나려는 유혹을 종종 받곤한다.
..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학교 농구서클과
산악부로 활동하던 튼튼하고 건장한 친구가
하루아침에 뇌사자가 되어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해도
이 판단은 그리쉽지 않은 일이었다.
명백하게 심장이 뛰고,
소화기관이 작동하고 손발이 따뜻한 사람을
가슴을 걸개하고 배를 갈라 장기를 적출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때문에 우리는 그를 공여자로 삼기전에,
우리는 좀 더 가능성 있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가능성이적은 사람의 생명을 양보한다는
명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것이다.
다음날 노선배와 회의실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우리 주임과장님과 동기인데다
다른 스텝들에게도 대선배가 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스텝들은
이 문제에 간여하려들지 않았고,
이 문제에 대한 의사교환은
의국에서 치프가 창구가 되어야했다.
(물론 이식담당 스텝 역시 본인은 제 3자로 빠지고,
의국에는 빨리 장기공여 각서를 받으라고 압력을 가했다)
노선배가 어렵사리 말씀을 꺼냈다
“박선생. 병원측의 제안대로 장기공여를 하기로 했네.
어제 밤새 집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무래도 집사람이야 의사도 아니고,
또 여자니까 이 문제에 쉽게 동의 할 수는 없었네..
아무리 나도 의사고
또 내 아이의 죽음이
다른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그것이 막상 내 문제가 되고서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네..
그래도 그나마 그자리에서 죽지않고
자기가 십슬하던 모교병원까지 와서
이렇게 이식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쩌면 그것도 하늘의 뜻이 아니겠나..”
하늘의 뜻.
그렇다, 내가 병원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도저히 자신들이 받아 들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물 대해 대개
“하늘의 뜻” 이라는 체념적 의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 하늘의 뜻으로 장기 공여를 하거나,
하늘의 뜻으로 “좋은 사람은 하늘에서 쓰려고
일찍 하늘로 데려간다..”는 생각들이야 말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그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녀석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늘의 뜻”으로 생체이식을 위한 장기공여자가 되었다.
나는 상황이 내키지 않았지만,
가능한한 다른 생각들을 접어버리고
내가 해야 할 임무에만 충실했다.
석의 양친 모두에게 장기기증 동의서를 받고
각서를 받았다, 각서에 서명을 하는 순간,
노선배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녀석의 어머니는 서명 후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부축을 필요로 했다.
기증 날짜는 가능하면 빨리 잡아야했다..
기증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몰라도,
이왕 기증을 할 것이라면,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공여자의 인공호흡기 부착시간이 길어 질 수록
폐기능이 악화되고,
그로인해 산소포화도가 나빠지면
신장과 심장의 세포조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것은 다시 이식장기의 생착율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왕 이식을 할 것이라면
녀석의 몸이 다른사람의 생명으로라도 남아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속하게 수혜자를 찾았다,
지금은 국립장기이식센터가 있지만,
그때만해도 모든것이 주먹구구였다,
우리로서는 두번째 간이식 수술이었고,
(첫번째 수술은 대외적으로는 수술성공으로 발표되었지만,
내용상으로는 실패였다,
우선 수술의 성공과 수술받은 사람이
얼마나 오래사는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장은 이미 많은 대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병원내에서는 간경화로
상황이 좋지 않았던 간이식 대기자 세 분과
신장이식 대기환자,
각막 대기환자들에게 연락이 취해지고,
심장과 췌장은 다른병원에서
애타게 공여자를 찾는 중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적출한 심장을
그쪽병원으로 가져가서 이식을 하기로 했다.
이식팀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조직적 합성검사를 위해 대기 환자 세분과
녀석의 조직을 매치해서
그중에서 가장 적합한 분중에
우선순위를 두어 이식을 하게 될 것이다,
다른 장기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중에서 간과 신장은
특히 조직적합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병리팀에서 수혜자들에 대한 체크가 이루어지고
우리과에서는 이식수술팀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동안
다른 한편으로는 뇌사판정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외사판정 위원회에는 우리 외과팀은 들어 갈 수 없다.
이식 공여자를 빨리구하려는 외과 의사들의
조급함이 자칫하면 0.00001%의 생존 가능성을
덮어 버릴 수도 있음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에는 뇌사판정기준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서,
내과,신경과,를 주축으로 한
뇌사판정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그 다음날 오후 뇌사판정 위원들이
각자의 임무대로 녀석의 몸을 하나하나
정밀하게 체크하기 시작했다.
뇌사판정위원들이 판정을 해나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장기를 이식받을 수혜자들이
장기이식 적합성에 대한 판정을 받고 있었다.
이제 그분들은 녀석의 사고로 인해
절망속에서 뜻밖의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보호자들은 희망으로 들떠
연신 수술일자를 문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공여자와의 조직적합성에 문제가 있어서,
자신들이 이식후보자에서
제외되지 않을까에 대해 노심초사했다.
인생은 그런 것일까?
장기를 이식받을 사람과 가족들이
공여자의 부모가 지금 어떤 고뇌에 빠져있는지를
굳이 알아야 할 필요까지야 없다하더라도,
그곳의 분위기는 그저
“어떤 용기있는 사람이 아들의 죽음에
장기를 기증했으니 그런 고마울 데가 있나..
아니,솔직히.. 이렇게 다행스러운 일이있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분들은 그분들 입장대로
그저 혹시나 그새 공여자의 마음이 변할까봐,
또 혹시나 공여자와 자신의 조직적합성이 맞지 않을까봐..
그분들에게 절대절명의 명제는 단지 그 두가지 뿐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내 목숨이 달린일인 것이다.
사람이란 비록 수술로인해
내 삶이 얼마가 연장될 수 있을지,
설령 운이 나쁘면 수술실에서,
혹은 수술직후 중환자실에서 생명을 다한다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지금처럼 “나의 죽음이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벗어 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던지 하고 싶어 질 것이다.
간경화로 길어야 6개월의 삶이 예고된 사람과,
비후성 심근염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길어야 4-5 개월을 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각막이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
신부전으로 일주일에 네번씩 혈액투석을 하다가,
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른 사람.. 등등
지금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나의 운명을 미리 알고 싶지 않다는 것..”
오직 그것 뿐이다.
설령 내가 오늘 이렇게 글을 적다가
내일 아침에 명운이 달라 지더라도,
지금 그 사실을 모르는 나는 행복하고,
화나고, 슬퍼하고, 희노애락과
탐욕으로 뒤덮힌 삶에 집착한다.
그러나 내가 만약 길어야 한달, 아니면 두달,
아니면 6개월로 죽음이 예고된 자의 입장이 된다면
그 느낌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순간에도 나는 과연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싶을까?
아니면 놓아버리고 싶을까.
외람된 말이지만,
나는 공여자가 나타난 후의 그분들의 모습에서
전자의 모습을, 공여자가 없어 절망속에 놓여 있을 때의
그분들의 모습에서 후자의 모습을 읽었었다.
뇌사판정위원회의 판정이 나왔다.
그것은 놀랍게도 “뇌사인정 불가” 판정이었다.
비록 모든 상황이 회생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뇌파에서 미미한 파동이 검출되고,
발바닥의 신경학적 검사에서
가녀린 신경반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의사들의 진찰소견상으로는
거의 뇌사로 보였던 상황이지만,
정밀판정에서는 뇌가 완전한 불가역적
(영구 회복불가능) 손상이라는 증거가 없었다.
상황이 일거에 급변했다.
이식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순간 모든 것을 멈추었다.
장기이식을 받기위해 들뜬 심정으로
수술전 사전검사를 받던 분들은
순식간에 다시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젊은이의 사고와,
뇌사판정 결과로 인해,
그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또 다른 한무리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파도를 타야했다.
그들에게 바람처럼 다가왔던 “희망”이 달아나 버리고,
다시 깊고 깊은 절망속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지난 몇년간 수십마리의 개를 잡으면서
이식을 준비해온 이식팀의 움직임도
일시에 중지되고, 이번 이식수술의 성공을 위해
며칠째 밤을 세우며
이식 수술을 준비하던 담당 스텝의 움직임도
그자리에서 그대로 멈추어섰다.
녀석의 부모님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랬다.
이제는 녀석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타인의 생명이라도 건지고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들이 원위치로 돌아온 다음,
이제는 녀석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의 숙제가 던져진 것이다.
그렇다면 영구히 식물인간으로 남아
의식없이 살아가는 것은 생명에 대한 존중일까?
이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냥 지켜보는 것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녀석은 지금 이순간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혼란스러웠고,
이제는 부모의 선택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일반인이 알고 있는 식물인간과 뇌사는 다르다,
식물인간은 의지적 삶을 살 수 없을 뿐이지만,
정상적인 생체 반응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뇌사자는 심장과 기타 내장기관을 제외하고
의지적으로 해야 할 모든 것들이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으면,
조만간 무기폐가 생기고,
그리고 폐렴이 오고,
그러면 우리는 항생제를 투여하고,
분비물을 제거 할 것이고,
그리고는 다시 폐렴이 오고,
농양이 오고, 결국에는 패혈증이 오게 될 것이다,
이런식이라면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를뿐
언젠가는 녀석은 기관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때는 이미 장기이식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아무도 그 다음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삼일이 흐른 후,
신경외과 주임교수께서
노선배에게 힘든 제안을 하나했다.
두분은 동기생이었다.
“어차피 이대로가면 끝이 보인다는 것은
자네도 알것이네.. 그렇다고
알다시피 우리가 해줄 수 있는것은 하나도 없네..
다만, 한가지 어차피 이대로 가서
절망적인 일이라면,
우리 아이의 뇌압을 떨어뜨려보는 것은 어떨까 싶네..
사실 지금 만니톨이던 무엇이던
뇌압을 떨어 뜨릴 수 있는 약물치료는
모두 소용이 없네..
혹시라도 뇌압이라도 떨어져야
그나마 1%라도 가능성이나 생각해보지,
이대로라면 정말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싶네..
그래서 말인데.. 수술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네..
뇌부종이 심해서 뇌가 부풀어서 가라앉지 않으니
차라리 뇌를 일부 잘라내는 수술을 해서
뇌 용적을 줄여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물론 쉬운일은 아니네.
사람의 뇌를 일부 절단해버리면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네만,,
그래도 속수무책으로 이러기 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나..
내 생각에는 절단해도 제일 문제가
적은 전두엽을 절제하면 어떨까 싶네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놀랍게도 두개골내의 뇌압을 떨어뜨리기 위해
뇌수술을 감행해서,
뇌의 앞쪽 일부를 제거하자는 제안을 하신 것이다.
물론, 회생 가능성이 없는 녀석에게
전두엽이 남고 아니고는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뇌종양으로 종양조직을 제거하는 것도 아니고,
뇌압을 낮추기위해 뇌의 앞부분을 제거 한다는 것은
의사인 나로서도
상당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생각이었다.
그렇게 녀석의 뇌수술이 감행되었다.
친구의 아들에게 뇌절제술을 하려는 신경외과 과장님도,
회복에 대한 1%의 기약도 없이
아들의 뇌수술을 받아 들여야하는 부모의 심정도,
오로지 녀석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한다는 강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중환자실에서 목을 절개하고,
인공호흡기가 연결된 녀석의 주기관지를 통해
인공호흡기는 끊임없이 “쉭쉭” 소리를 내며
바람을 불어 넣고 있었고,
녀석의 가슴 6부위에 연결된 심전도 도자와,
양팔의 동맥으로 연결된 동맥혈 분석기,
경정맥을 통해 주입된
중심정맥압 측정 카데타 등등
현대의학에서 이용되는 모든 기계장치들이
녀석의 몸을 휘감고 있었지만,
의사인 내 눈에도 그것은 가끔
문어의 흡판처럼 수십개의 징그러운 촉수를
들이들이대고 있는 괴물처럼 보일때가 있었다.
우리는 그때 녀석을 두고 많은 것들을 고민했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의학적 한계와 그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무엇..
그리고 그것들의 유용성에 대해 거듭 고민했다.
사실 이때 의사가 보호자가 아닌 다른 부모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과연 뇌사에 가까운 아들의 머리를 열고
뇌의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선택 할 수 있을까?
나는 병원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죽음보다 깊은 사랑을 목격하기도 했고,
또 그만큼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기심도 같이 경험했다.
내가 그동안 병원이라는 무대에서 목격한 장면은
이후 내가 사회에서 부딪혀갈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지옥을 같이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같이 뒤를 따르는 처절한 사랑을,
또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부여안고
십수년을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던 남편을,
자식을 떠나보내며 결국 실어증에 걸려
평생 말문을 닫아버린 어머니를..
다른 한편으로는 의료사고의 보상금을 좀 더 타내기위해
여름날 육탈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버지의 시신을
한달동안 병원 로비에 방치하는 아들을,
또 교통사고 합의금을 더 받기위해
홀어머니가 사경을 헤매는 중환자실 앞에서
형사합의금을 더 받아내려고
가해자를 협박하는하는 딸과 사위를,
혹은 병원비가 부담이 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숨이 붙어있는 부모를 들쳐입고
병원을 떠나던 아들딸의 눈물겨운 사연을.. 보았다.
그런데 이경우는 과연 무엇일까?
가능성이 없는 아들을 위해,
뇌수술을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이기심일까?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이었을까..?
단지 “나는 부모로서 너를 위해 최선을 다 했노라”
라는 자기선언이었을까?
아니면 살아나기만 한다면
뇌의 일부가 없는 사람으로 살아도 좋으니
어떻게던 0.1 % 라도 살아남아서
제발 내 옆에 있기만 해달라는
부모의 애끊는 사랑이었을까?
혼돈스러웠다.
수술이 이루어졌다.
수술전날 녀석의 머리에는
하얀색 비누거품이 칠해지고,
신경외과 일년차가 면도칼을 들고
녀석의 머리카락을 모두 깨끗이 제거했다.
녀석의 두피 곳곳에는 암벽에 부딪혀 입은
좌상의 흔적들이 아직도 곳곳에 피멍으로 남아 있었다.
녀석이 수술실에 들어가기전,
임상실습을 하던 녀석의 동기생들이
종교를 가리지않고 모두 중환자실앞 복도에 줄을지어
무릎을 꿇고 녀석의 회생을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녀석은 마치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사열식을 치르듯,
스트레치카에 누운 채
자신의 동기생들이 도열한 복도를 지나 수술실로 들어갔다.
마취과에서 마취를 걸고,
신경외과에서 두피를 절개하고
두개골의 앞부분을 열었다.
두개골을 자르는 날카로운 전기톱의 소음이 멈추자,
엄청난 뇌압으로 억눌려있던 녀석의 뇌조직들이
열려진 두개골의 앞부분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어렵사리 수술이 마무리 지어졌다.
신경외과 과장님은 가능한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덜 미치는 부분을 골라
뇌의 전두엽과 두정엽의 일부를 제거했다.
일련의 수술과 지혈과정을 거쳐
몇시간만에 수술이 끝났지만,
녀석의 두개골에서 게거된 두개골의 일부는
그자리에 덮여지지 않았다,
여전히 뇌가 부어있었기 때문에
두개골을 덮지 못하고,
그대로 두피를 덮어쒸운 채 봉합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수술실에는 신경외과 수술팀 뿐 아니라,
외과 이식팀도 같이 대기했다,
만약 수술중에 환자에게 안좋은 일이 생기면
즉시 장기적출을 감행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 모든과정들에서 현기증을 느꼈다.
혹시 녀석의 수술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식수술이 이루어 질 수 있으므로
대기하고 있던 이식수혜자들의
또 다른 실낫같은 희망과, 혹시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공여자의 장기를 그자리에서
하베스트 하겠다는 우리 이식 스탭의 집요한 의지,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이 가능성 없는 수술을 통해서라도
아들의 회생을 간곡히 기도하는 부모들의 간절한 기도까지..
세상의 모든 모순과
삶의 불확정성이 이 모든것에 모여져 있었다.
구토를 하고 싶어졌다.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
그토록 집요하게 붙들어야 할 만큼 삶이란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들은 ,혹은 우리는 정말 삶에 대한 그 지독한 연민 만큼이나
자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일까?
중환자실로 옮겨진 녀석의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수술후 일시적으로 뇌압이 더욱 상승하면서
혈압이 200 까지 치쏟았다.
의료진은 만니톨과 나이푸라이드를 쏟아부으면서
녀석의 뇌압을 떨어뜨리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녀석의 뇌압은 떨어질줄을 몰랐다.
그렇게 하루,이틀,사흘,나흘이 흘렀다..
녀석의 상태는 다시 수술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뇌를 짤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수술로 인해 얼굴이 퉁퉁부은 점과,
뇌수술 후 머리에 칭칭 동여진 압박붕대를 제외하면
다시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식물인간..
녀석의 모습은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벤틸레이터 (인공호흡기)의 알람 경보가 울렸다.
마침 그 순간을 지나치던 간호사는
“설마..” 하면서 기계를 잠시 살핀 후
무심코 지나쳤다,
그로부터 십분 후 다시 인공호흡기의 알람이 울렸을 때는
중환자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우리과와 신경외과뿐 아니라
신경과, 호흡기내과,흉부외과, 마취과 의사들까지
모조리 호출되었다.
인공호흡기의 CMV 모드에서 경보음이 울린다는 것은
자발 호흡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의 CMV 모드는 사람이
전혀 숨을 쉴 수 없거나,
혹은 약물로 숨을 쉬지 못하게
완전히 근육을 이완시킨 후에 사용하는 모드이다.
즉, 사람의 호흡근육은 100% 가만있고,
기계가 체중 1 킬로당 10-12 CC 의 숨을
환자의 폐속으로 불어 넣어주는 모드이므로,
만약 이때 환자가 스스로 호흡을 하려고 하면
적당한 간격으로 바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기계장치에 혼란이 생기면서
경보가 울리게 되는 것이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의 인공호흡기에서
알람이 울렸다..
이 엄청난 사건은 보호자들 뿐만 아니라
병원의 모든이들을 흥분시켰다,
그는 비록 미약하지만
자기 스스로 가슴근육을 움직여
호흡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호흡기를 전공한 의사들이 그의 옆을 지켰다.
이것은 그가 동료이어서가 아니라,
의학적으로도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이틀 후
그의 인공호흡기의 모드는 SIMV
(환자의 자발 호흡이 있을 때
인공호흡기가 숨을 도와주는 것,
일방적인 인공호흡이 아닌,
환자의 호흡을 보조해주는 모드)로 변환되었고,
그로부터 20일 후
녀석의 목에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녀석의 뇌가 완전히 죽지 않았으며,
후두엽에 있는 숨골이 아직 살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호흡이 돌아왔다고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어쩌면 호흡이 돌아 왓다는
그 사실은 이제 녀석과 가족들이 투쟁을 벌여야 할
끝이없는 기나긴 여정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녀석은 뇌사자에서 문자 그대로 녀석은
튜브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완벽한 식물인간으로 전환된 것 뿐이었다.
아들을 향한 노선배의 눈물겨운 재활투쟁이 시작되었다.
일단 자발 호흡이 돌아온 이상,
다른 기능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는 아들의 병상을 하루동일 지키면서
축 늘어진 팔다리를 움직이고, 자극했다,
심지어 자부담으로 EST (전기충격 물리치료기)를
사서, 녀석의 옆에 두고 치료를 계속했고,
어머니는 하루종일 녀석의 귀에 사랑과
기원을 담은 말들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녀석은 사고 두달만에
드디어 손가락을 불수의적으로 움직이게 되었고,
몸에 자극을 가하면 근육들이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기적이란 말 밖엔 달리 이 상황을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몇달 후 녀석은 그렇게 병원문을 나섰다.
목까지 올라오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호킹박사보다 백배는 더 무력한 모습으로,
녀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은
눈꺼풀을 움직이는 것 뿐인 상태로
6년을 공부했던 교정과
학교를 가로질러 천천히 우리곁을 떠났다.
그렇게 녀석은 우리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졌지만,
그래도 녀석과 같이 등반을 했던 친구를 비롯한
녀석의 동기들이 그 다음해
인턴으로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기 때문에,
가끔 녀석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은 필사적인 재활에 매달려 있고,
노선배는 병원을 접고
하루종일 아들의 재활에 매달려 있다고 했으며,
지금 녀석의 상태가 아주 많이 좋아져서
몇마디 말도하고,
보조기를 짚고 일어서기도 한다고 했다.
정말 기적이었을까?
부모란 그런 것일까? 부모에게 자식은 무엇일까?
당신의 뱃속에 자신이 아닌 생명체를
열달이나 품는 어머니의 사랑은 또 어떤 것일까?
어쩌면 그 사랑이 곧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를 낳아준 부모님, 그를 사랑했던 연인,
그리고 그를 아끼던 수많은 동기생들의 염원이
곧 기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로부터 몇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글을 읽는 분들은 정말 믿기 어렵겠지만
녀석은 그로부터 4년 후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했다.
비록 동기들보다 4년이나 늦었지만
그는 결국 스스로 일어서고, 걷고, 말하고, 생각했다,
녀석의 동기생들의 입에서 전해진 얘기로는
최근의 기억중에 일부 구간을 잃어버리기는 했어도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고
학업이나 삶에 전혀 영향이 없는
지적능력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녀석은 올해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시험을 통과했으며
드디어 올 말에는 전문의 자격증을 받게된다.
아울러 녀석은 마침 이지역에 소재한
모종합 병원을 자신이 전문의로서의 일할
첫 근무지로 선택했고,
때문에 지난주에 그 병원에 들러
미리 부임절차를 밟은 다음,
인사차 선배이자 당시 자신을 치료한
담당의사중의 하나였던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날 녀석과 함께 안동댐의 까치구멍집에서
헛제사밥을 먹고 들어와 이글을 쓴다..
삶과 죽음.
내가 그 당사자가 되기전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지 할 수 있을까..?
혹은 내가 그 당사자가 되었을 때
과연 얼마나 초연 할 수 있을까..?
나는 혹은 당신은 삶에 대해 얼마나 충실할 수 있을까..
그의 극적인 삶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렵고도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