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하시는 치킨집에 알바생이 두명 있다.
한명은 평범한 집안, 한명은 평범하지 않은 집안.
평범하지 않은 알바생은
이 좁은 동네의 가게 사장님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아버지가 안계시고 어머니가 작은 가게를 하시고
형편이 어렵다는 것
그리고 무리하게 일을 한다는 것
평범한 집안 알바생은 가족끼리 여행 다니고
외식하는게 일상이다.
“사장님 ㅇㅇ식당 가보셨어요?
어제 부모님이랑 갔다 왔는데 거기 진짜 맛있어요”
“아빠가 사주셨는데 어때요? 예쁘죠?”
그 평범한 얘기들에 나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얘기들에 나는 웃지 못한다.
“사장님 동생 학원비가 밀렸는데
월급 절반 가불 받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가 일하다가 다치셔서 병원에 가셨대요”
떨면서 말하는 친구를 데리고
급하게 병원으로 뛰어갔다.
거기엔 지쳐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있었고
언제나 씩씩했던,
아니 씩씩하려고 했던 그 아이는 내 앞에서 울었다.
병원비는 내가 냈다.
어머님이 내 손을 잡으며 꼭 갚겠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드님이 일을 잘해줘서 저희가 더 고맙다고,
항상 도움 받고 있으니 천천히 갚으셔도 된다고 했다.
그 애는 자기가 갚겠다고 했다.
“이번달 월급도 가불 받아간 애가 어떻게 갚을건데~”
장난스럽게 묻자 그 애는 일을 더 하겠다고 했다.
학교도 졸업 안한애가
일하는 시간을 어떻게 더 늘리겠다는건지
나는 더이상 웃지 못했다.
중3때 전단지로 첫 알바 시작해서
그 이후로 번 돈은 모두 집에 가져다줬다고 한다.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엄마랑 동생이 힘든게 더 싫다고 했다.
자신이 너무 어릴 때부터 엄마가 고생하는걸 봤다고,
빨리 어른이 되서 엄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단다.
신메뉴가 나올때면 그 친구의 여동생을 가게로 불러낸다.
맛 평가를 부탁한다는 핑계로 치킨을 먹인다.
평소에 집에 한마리씩 가져가라고 해도
안 가져가니까 이런 핑계로 불러낼 수 밖에 없다.
그 애 동생은 치킨을 정말 좋아한다.
동생은 가게에 올때면 오빠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뭘 거들겠다고 나선다.
오빠는 그런 동생에게 절대 일 시키지 않는다.
한번은 둘이 수학여행 문제로 싸우기도 했다.
오빠는 돈 걱정말고 수학여행 보내줄테니
가라고 하고,
동생은 재미없다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오빠는 그래도 가야한다고 했고,
동생은 “오빠도 수학여행 안갔잖아!” 라고 했다.
그 애는 멋쩍은 얼굴을 했다.
우리 엄마는 수학여행비를 대신 내주고 싶어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동정으로 비춰질까봐 걱정됐다.
애들이 상처받을까봐.
고민끝에 내 남자친구랑 큰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주말 중 하루 날 잡아서 친구들이랑
우리 가게에서 모임 하면 안돼?
서비스 많이 주겠다며 꼬셨다.
남자친구는 고맙게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회사 사람들까지 데려왔다.
그 친구는 쉬는 날이었지만
단체 손님이 있다고 와달라고 했다.
폭풍같은 5시간이 지나고
돌아가는 그 친구에게 20만원을 주며
오늘 고생한 보너스라고,
너 안왔으면 큰일 날뻔 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10만원은 여동생 수학여행가는데
예쁜 옷 한벌 사주라고 따로 챙겨줬다.
안 받겠다고 극구사양하길래
안 받으면 해고 시키겠다고 협박 했더니
마지못해 받아갔다.
동생이 나에게 항상 챙겨줘서 감사하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 아이들 나이에 나는
아침마다 밥 한술 먹이려는 엄마에게 잠투정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지 않으면 삐지기도 했고
용돈을 올려 달라고 시위하기도 했다.
학원을 몰래 빠지기도 했고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기 위해
알바하겠다고 나서다 병원비가 더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애를 보고 있으면
가끔은 과거의 내가 부끄럽고
또 가끔은 슬퍼진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조금은 철 없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사는 그 아이들을 동정하는건 아니다.
감히 내가 뭐라고 그 아이들의 삶을 동정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들을 보면 슬퍼진다.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장려할게 아니라
태어나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아이는 아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빨리 철 든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