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부리고
지잡으로도 안 쳐주는 대학 가겠다고
자취방 보증금 받아가고
사실 대학을 안 가도 됐는데
남들 하는거 나도 해보고싶고 엄마랑 반지하 사는게 싫고
안 좋은 기억만 가득했던 동네를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음
그렇게 지방으로 혼자 가서 자취방 잡고
엄마한테 보증금 보내달라고 하고
매달 월세며 생활비며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엄마한테 용돈 받아가며 엄마를 속이고 괴롭혔음
그래도 엄마는 자식 대학 갔다고 좋아해주고
자취하면서 인스턴트만 먹지 말라고
반찬 만들어서 몇시간 동안 버스 기차 타고 와서
큼지막한 밥솥에 토종닭 넣고 백숙을 해주더라
그러다 1학년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
군대에서 철이 좀 들었던건지
전역하자마자 쓸모도 없는 대학 자퇴하고
기숙사 있는 직장 구해보잔 생각에
엄마 냅두고 지방에 중소기업으로 들어갔음
그때도 엄마는 기뻐해주고 걱정해주더라
일이 좀 힘들기도 했고
군대 갔다오자마자 사회 물 좀 먹으니까
재밌어서 엄마는 잊고 연락오는거도 거의 안 받고
1년에 한두번 집에 갈까 말까였음
그렇게 한두살 먹다가
어느덧 나이 서른이 됐는데
엄마가 보고싶다고 전화와서 갔더니
무슨 큰 박스를 내미길래 열어봤는데
아빠 돌아가시기 전에
같이 찍은 가족사진들이 들어있더라
너무 어릴 때라 기억도 안 나는데
보니까 괜히 그리워지는 사진들이었음
그날 엄마가 집에서 자고 가랬는데
내 방에 들어가보니 몇년만에 왔는데도
먼지 한톨 없이 청소를 꾸준히 해뒀던 티가 났는데
엄마가 방에서 아들~ 하고 부르면서
오늘 엄마 방에서 같이 자고 가 하셔서
난 바닥에 이불 깔고 잤는데
일어나니까 엄마가 압력밥솥에 한약재 잔뜩 넣고
토종닭 백숙 해줘서 먹고
다시 회사 기숙사로 돌아갔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가족끼리 있는게
얼마나 그리웠으면 저랬을까 싶음
암튼 그렇게 2년쯤 더 지나고
그동안 모은 돈이랑 대출 좀 껴서 집을 샀음
당연히 중소 다니다 보니까 좋은 집은 아니고
발코니 달린 투룸 빌라였음
엄마한테 이사한 거 보여줬더니
집 구경 온다길래 터미널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했더니
흰머리 숭숭 난채로 끌차에
밥솥이랑 까만 봉다리 넣어서
횡단보도 신호 기다리는 엄마가 보이더라
엄마 앞에 차를 대고 트렁크에 짐 싣는데
성인 남자가 들어도 무겁게 느껴질 정도의 무게더라
엄마한테 사먹으면 되지 왜 이렇게 힘들게 가져왔냐고
괜히 미안한 마음에 한소리 하게되고
엄마는 또 아무런 말 없이 나만 보더라
그렇게 집에 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엄마랑 식탁에 앉았는데
손톱 사에에 낀 고춧가루가
아들 준다고 얼마나 김치를 버무려댔는지
빨갛게 물든 손 끝을 보니까 맘이 시려지더라
그렇게 앉아서 오랜만에 얘기 나누다가
엄마가 일어나서 밥 해준다고
밥솥에 닭이랑 이것저것 넣고
불 올리길래 난 샤워해고 나왔더니
밥솥에서 칙칙칙 거리면서 김 새어 나오는데
엄마 우는 소리 처럼 들리더라
엄마는 내가 나와도 밥솥만 바라보고 있고
다가가서 보니까 뭔가 엄마가 우는거 같았음
그렇게 십분 정도 흐르고 밥 차리고 먹는데
아니나 다를까 밥 먹을때 보니까
엄마 눈시울 붉어져 있었는데
환하게 웃으면서 그 뜨거운 닭을
맨손으로 뜯어서 내 접시에 닭다리 얹어주더라
그때 깨달은게
엄마는 내가 대학에 가서 자취방에 왔었을 때도,
처음 취업하고 몇년만에 엄마를 찾아갔을 때도,
내가 집을 사서 엄마를 처음으로 손님으로 불렀을 때도
울었던 거 같단 생각이 들더라
단지 내가 엄마를 쳐다보지 않았어서 몰랐던 거였을 뿐
엄마는 항상 내가 잘되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해주고 계셨던걸
너무 늦게 깨달았음
자식은 부모를 위해 살진 않는데
부모는 자식을 위해 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