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떠나버린 7년 만난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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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 여자친구가 갑자기 떠났습니다.

그날 저희는 2800일 기념으로

비싼 코스만 골라 1박2일로 데이트를 했습니다.

사귄 세월 중 가장 고급지게 놀았던 날이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좋아할만한 걸 그날 다 했던 것 같아요.

원래 1년 이후 몇백일 기념은 안하기로 하고

몇 주년으로만 챙기기로 했는데,

요근래 서로 바빠 못만나기도 하고

또 여자친구 생일에 여자친구가 출장가느라

못만나서 속상해 하길래 생일 이벤트 겸

요새 힘들어 하는거 위로해주려고

성공적으로 데이트 마치고 집에 데려다 준 그날,

그애는 가버렸네요.

그것도 타의적으로요.

장례식에서 몸도 마음도 못가누시는 그애 부모님을 대신해

비록 법적 가족은 아니지만

그 관계를 앞둔 사람으로서 조문객들 받고

상주로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여자친구에 대한 슬픔이나 사랑보다는,

그냥 그게 제 일 같았어요.

사람의 가는길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또 아무것도 못하는 여자친구 가족분들을 대신하느라

정신 없어서 그거 다 하느라 장례식부터

여자친구의 신체였던 뼛가루가 뿌려지는 순간까지

눈물 한방울 안 흘렸습니다.

그럴 틈도 없었어요.

집에 돌아와서도 눈물이 안났습니다.

슬프긴 슬픈데, 멍하기는 해도

딱히 드라마에서처럼 오열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여자친구가 갔다는 소식듣고

그날 저녁 먹은거 다 토하고

바로 여자친구 있는 병원으로 가긴 했지만

눈물 한방울이 나오지 않았어요.

여자친구 마지막으로 가는 모습 봤을때도

마치 자는 모습같아 덤덤했고,

장례식에서 며칠을 밥 안먹고 안자는 거

여자친구 가족분들은 제가 슬퍼서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조문객맞고 절차 진행하느라 바빠서 그랬을 뿐이라

그렇게 안 슬퍼서 죄송스러웠어요.

이상합니다. 여자친구는 꿈에서도 안나와요.

사실 죽은지도 모르겠어요.

굳이 여자친구 흔적도 안 지웠고요.

그애의 물건, 커플용품, 편지, 사진

다 그대로 제게 있어요.

전과 달라진게 있다면 연락이 안올 뿐인데

그냥 그애가 해외출장 자주갔던 그때처럼 느껴져요.

20대 초반에 4년 사귀고

한 8개월 정도 잠시 헤어진적이 있는데

그때랑 비슷한 감정입니다.

그냥.. 허전하고 먹먹하긴 한데 울지않네요 제가.

어쩔때는 죽은것도 깜빡해서

여자친구가 가고싶어하던 유럽여행 계획하려

비행기표 사다가 아차 한적도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치고 눈물흘려야 하는데,

그냥 모든것이 귀찮기만 합니다.

너무 귀찮아서 밥먹고 자는 것조차 귀찮습니다.

사람 만나는것은 물론 회사도 귀찮아서 그만둔다는거

사정 다 아시는 상사 분이 말려서 길게 휴가냈습니다.

그냥 멍합니다. 멍하기만 합니다.

그저께는 여자친구 어머니께서

여자친구가 저랑 사귀기 시작한 날부터 쓴

편지형식의 일기장 몇권을 주셨어요.

당연히 대부분 제 얘기로 가득했습니다.

좋은 날은 좋게,

싸운날은 나쁘게 제 얘기가 적혀 있었어요.

가장 최근 내용은 그 친구가 떠나기 3일 전에 쓴건데

오랜만에 저를 만나서 기쁘다고 적어뒀네요.

좋아한 티는 났는데 이렇게까지 좋아할줄이야.

여자친구 취직한 이후로 저희는

장거리 연애를 해서 자주 못봤거든요.

보더라도 너무 바쁜 사람이라

제가 가야지만 볼 수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못내 서운했지만 이해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자친구한테 아주 못해줬다고 생각한적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다만 잘해줬다 여긴적은 더 없습니다.

특히 제가 취직 직전 1년 반정도 사정이 안 좋았을 때

여자친구가 데이트비용을 전액 부담한 대신

제게 온갖 화풀이를 했는데

그걸 다 받아주면서도 힘들다고

아주 잠깐 그애로부터 도망치고 싶다고 여긴적이 있습니다.

그게 두고두고 미안해서 취직하고

대부분의 월급을 여자친구한테 부었습니다.

그러면 좋아할줄 알았고,

실제로 좋아했다고 일기장에 써놨네요.

참 바보같습니다.

본인은 1년반이나 나를 책임져줬으면서

고작 8개월 받았다고 좋아한다는게.

나는 절반도 해주지 못했는데.

늘 바보같은 여자였습니다.

늘.

겉보기에는 참 쌀쌀맞고 차가운 여장부라

연애 초에는 속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저랑 사귀기 전에 오랜기간 저를 짝사랑 했다는데

티 하나 안날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애가 눈물 많다는 것도,

남들이 아무렇게 뱉는 말 고대로 다 비수처럼 듣는것도,

행여 남에게 피해끼칠까봐

늘 스스로를 지나치게 돌아보며 채찍질 한다는 것도,

남이 괜찮다는데 자기가 안 괜찮아

잘못 하지 않았을 때조차 가슴치는 것도,

거짓말 못하는것도,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것도..

가족들이랑 저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남들은 그런 여자친구가 괜찮은줄 알고

참 많이 상처줬습니다.

저조차도 사귀고 1년 지나서 알았으니

저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냥 여자친구편에 서서 같이 싸워주고 미워는 했지만요.

일기장을 봐도 속상하지만 눈물은 안납니다.

저 참 싸이코패스 같죠.

그저 여자친구를 얼마든지 볼 수 있을거 같아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아요.

남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따라 죽을 생각도 한다는데

저는 왜 그런 생각이 안 들까요.

오늘은 여자친구의 일기장에

예쁜 옷을 사고 싶단 글귀가 있어서

그애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사려고

일주일 만에 집밖에 나가 백화점으로 갔는데

이내 머리가 핑핑 돌고 귀가 울려서

옷도 사지 못한채 집에 왔습니다.

나간 김에 커피 마셔볼까 해서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달달한 커피도 샀는데

마시다가 ‘아 이거 내가 싫어하는거였지’ 라고

뒤늦게 생각나서 토했네요.

토하다 토하다 나중에는 노란물만 나왔습니다.

저는 나쁜 놈입니다.

결혼앞둔 여자가 죽었는데 울지 않고 살아갑니다.

정신과 가서 싸이코패스 검사라도 받아야하나 고민됩니다.

사실 움직이는게 너무 귀찮지만,

가끔 아직도 여자친구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거 보면

미친거 같긴 하니 병원 가봐야겠죠?

저 욕 좀 해주세요.

그 후 3년 지난 후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부끄럽게도 제가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것을 보고

글을 삭제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제게 도움되는 댓글들을 남겨주시고

이를 통해 위로도 엄청 받아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것도

여자친구와의 추억인거같아 차마 그러진 못했네요.

늦었지만 댓글 남겨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3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드문드문 기억 안나는 시점도 있는데

더 울면 여자친구가 슬퍼할 것 같아

요즘은 밥 잘 먹고 약물덕이긴 하지만

잠 잘자고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여전히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요즘들어 가장 후회가 되는게 있다면

여자친구 생전에 동영상을 많이 안 찍어뒀다는 것이

가장 많이 후회가 됩니다.

근황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3년이 지난 지금 조심스럽게 글 적어보고 떠나봅니다.

잘 지내지 못하지만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아 많이 사랑해. 나중에 내가 찾아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