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음
굉장히 친하긴 한데 자주 만나고 그런 친구는 아니었고
만날 때마다 기분 나쁜 일 없는 그런 친구였음
보통 친한 친구면 좀 허물 없이 지내고
막말도 하고 치부도 좀 건드리고 그러는데
얘랑은 그런게 없고
평온한 분위기에서 즐겁게 놀고 그런 애였음
사람이 좀 차분하고 조용한데
그게 가식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사람임
어쨌든 2년 전 쯤인가 얘한테 돈을 빌려주게 됨.
그때 나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공장에 다닐 때라
현금이 좀 있었음 그때가 27살일 때임
1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면서
한번도 나한테 돈 얘기를 꺼낸 적이 없는 앤데
새벽에 전화가 와서는
돈을 좀 빌릴 수 있겠느냐고 묻길래
당연히 빌려줄 수 있다고
얼마 필요하냐 물어보니까 머뭇거리더니
1000만원 혹시 되겠냐고 하는거임
그래서 아니 너 무슨 나쁜일에 휘말렸냐
무슨 일 있느냐 물어봤더니
대답을 안하고 아무말도 안하는거
그러다 침묵 깨고 걔가
아 역시 아니다 괜한 말을 했다 너무 미안하다
하고 전화 끊으려고 하길래
알았다 일단 빌려줄게 하고
1000만원 계좌이체 해줬음.
그때 사실 속으로 아니 무슨 일이 있길래
돈 천만원 가까이 되는걸 빌려달라고 하지?
집안에 무슨 큰일이 생겼나?
이 색기 도박빚 같은걸로 사채 썼나?
막 이런 생각도 들고
돈을 보내자마자 드는 생각이
‘아 이 돈은 이제 내 것이 아니구나
이건 못받는다..’ 딱 이거였음..
근데 참 돈 못 받는거보다
하 이새끼 이제 다시는 못보겠네
싶은 마음이 드는게 더 슬프긴 했음
솔직히 잊고 지낼만한 돈은 아니잖음
암튼 그 후로 지금은 안 다니지만 공장 한참 다닐 때
나도 돈이 아쉬울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계속 생각이 나는거임
나도 막 대인배는 못됨
전에 사촌누나한테 300만원 빌려준 적이 한번 있는데
그땐 진짜 불지옥 심판관 모드로
악착 같이 다 받아냈거든
근데 걔한테는 그러질 못하겠는거임..
연락도 함부로 못하겠고
다른 친구들이랑 접점이 있는 애도 아니고
그냥 1대1 로만 만나오던 친구라 걍 좀 잊고 지냄
그렇게 2년이 흘렀음
SNS 같은거? 전혀 안함
카톡 프로필? 이새끼 아직도 기본프사임
그래서 소식 전혀 모르고 지냈다.
먼저 연락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마치 채권추심 하는 느낌 줄까봐 어렵고
힘들어 할까봐 못했음..
그러다 저번주에 갑자기 이새끼한테 연락이 옴..
조만간 한번 만나고 싶다
요즘 어디에서 지내느냐 하고
2년만에 전화가 옴..
진짜 안부 전화였고 돈 얘기는 없었음.
그래서 나는
‘2년동안 소식도 없더니 이제야 연락하네?’
이런 생각은 전혀 안 들었고
‘와 이새끼를 드디어 만날 수 있구나’ 하고 존나 설렜음
그러고 오늘 딱 만나서 술집 들어갔는데
자리에 앉자말자 돈 갚으러 왔다고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1100 만원
딱 얼굴 마주보고서 내 카뱅으로 이체해줌..
존나 오랜만에 보니 너무 반갑고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다시 얘랑
국밥>햄버거>베스킨 코스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음.
근데 왜 1100만원 보냈냐 잘못보냈냐 물어봤더니
많이는 아닌데 이자라고 받으라고 하길래
받을 생각 없다고
그냥 갚아준 것도 너무 고마울 뿐이고
이자 대신 오늘 술값 니가 계산하라고 하고
걍 그동안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봄
이새끼가 도박에 손 댈 놈이 절대 아닌데
합법토토>불법토토 테크를 탔더라..
진짜 진짜 충격이었음
이새끼 남한테 막 훈계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긴 해도
도박 같은거 손대서
인생 조질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었거든
첨엔 삼만원 오만원 재미로 하다가
십만원 백만원 이백만원 이렇게 늘어났다는거임
그러다가 그동안 모은 돈 싹 다 날려먹고
지인들한테 돈 빌리긴 싫어서
대출을 좀 땡기면서 했다고 함
근데 뭐 다들 알다시피 도박 결말은 뭐..
그러다 금융, 사채까지 손대게 됐는데
도저히 감당이 안되서 일단 사채만 좀 정리하려고
나한테 힘들게 도움! 외친거였음
솔직히 내가 거절할 줄 알았는데
무슨 일 생겼냐고 한번 물어보고
군말없이 깔끔하게 돈 보내준게
미친듯이 고마웠다고 함
내가 빌려준걸로 일단 사채 해결하고
남은 2금융권 월 상환금액이 너무 많아서
숙식 노가다 가서 죽은듯이 일했다고 함
얘가 빡센 일을 해본 애가 아니라서
매일 매일이 고통이었는데
부모님이랑 내 얼굴 생각하면서 버텼다더라
생활이 너무 빡빡해서
내 돈을 바로 갚기가 힘들었고
조금씩이라도 갚으려 했는데
그걸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음
2년 정도 빡세게 일해서 나한테 갚을 돈을 마련했다는데
원래 있던 채무 상환하면서
돈도 모으려니까 힘들었겠다 생각이 들었음
지금은 그럼 다 해결했냐고 물으니까
사채 정리하고 지금까지 한번도 손안댔고
로또도 사본적 없다고 함
이제 그런 상황에 빠지는게 지긋지긋 하다고
아직 남은 대출 있긴한데 그렇게 크진 않다고
남은거 상환하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할거라고 함
어쨌든 오늘 진짜
오랜만에 내 친구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도박했다는 거에 솔직히 좀 실망하긴 했지만
뭐 어떰 나도 코인으로 도박중인데
그리고 오늘은 지 야간에 일하러 가야된다고
다음에 술한잔 하면서 또 얘기하자고 해서
일단 들어왔음
솔직히 기분 너무 좋다
나도 요즘 사정이 안 좋아서
존나 힘들고 절망적인 타이밍이었는데
예전에 주었던 은혜 덕분에
넉달은 숨통 좀 트일 것 같음
요번주 금요일 저녁에 다시 보기로 했는데
비트코인 얘기 조심히 꺼내면서
내 레퍼럴로 선물계정 만들어줘야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