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원룸에서 혼자 자취할 때 화장실에 갇힌 적이 있음..
밤 11시쯤 드라마 보다가
똥이 마려워서 화장실 갔다가 나오려는데
문 손잡이가 무한회전 하면서 안 열리는거임..
뭐가 풀린 것처럼 헐렁해져 있고
손잡이가 계속 돌아감..
별 생각 없이 조여서 다시 열면 되겠지를
어느덧 2시간..
안 열림..
창문이라도 있으면 밖에 소리라도 질러보겠는데
내 방 화장실은 창문이 없고
천장에 환풍기 하나만 뚫려 있음..
똥쌀때 담배와 스마트폰은 필수인데
하필 드라마 중요한 장면이라
급하게 간다고 담배만 들고 들어감..
상황이 이런데도 차마 소리질러서
옆방이 듣게 해야겠다는 용기는 안나더라
쪽팔렸음..
그냥 내가 고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음
솔직히 이때만해도 이 상황이 존나 웃겨서
술마실때 재밌게 썰 풀 생각에 실실 쪼개고 있었음..
다시 도전하길 또 2시간..
문 손잡이는 계속 헛돌고
이때부턴 좃됐단 생각 들기 시작..
화장실에 갇혔다는게 실감이 나기 시작함..
우리 원룸이 방음이 안되는 곳이라
그냥 다 내려놓고 옆집 사는 사람 집오기만을 기다림..
최후의 순간엔 문 부시고 나가면 된다고 생각함
화장실 안에 혼자 멍때리고 있자니
시간도 안가고 슬슬 지겨워짐..
할건 없고 줄담배나 피우고 있었는데
환풍기로 환기되는 속도가 느려서
담배 피다가 질식하는 줄 알았음..
화재났을때 탈출방법처럼 수건에 물 적셔서
담배연기 빠질 때까지 입이랑 코 막고 숨쉼..
시간이 너무 안가서 양치질만 10번은 함..
지금쯤 날이 밝았을 것 같은데
옆방에 사람 들어오는 소리가 안 들림..
근데 생각해보니 이미 저녁 일찍 들어와서
자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함..
왜 꼭 새벽에 들어올거라고 생각한거지..?
물론 걔가 거의 새벽에 들어오긴 했음..
그때부터 환풍기에 대고 소리 지름..
첨엔 옆방 호수로 소심하게 지르다가
나중엔 그냥 나 OOO호 화장실에 갇혔으니까
들리는 사람 아무나 구해달라고 절규함..
아침일테니까 출근하는 사람이 한명은 듣겠지..
근데 실패..
진짜 문을 부셔야 되나 고민하다가
쫌만 더 기다리기로 함..
너무 더워서 샤워하고 싶은데
그 안에 사람 지나갈까봐 샤워도 안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샤워 한판 때렸더니
피곤해져서 화장실 바닥에 수건 깔아놓고
잠깐 잠을 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음..
밖에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깸
한참 울리더니 잠시 후 카톡이 옴
첨엔 카톡이 5분 10분 간격으로 오다가
갑자기 까까까까까톡 이렇게 오는거임..
아 ㅅㅂ 뭔지 존나 궁금해짐..
그때 알람시계가 울림
핸드폰 알람은 잠결에 맨날 꺼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알람시계를 따로 샀었는데
그게 울린거임
그럼 지금 9시..
아니 ㅅㅂ 10시간을 화장실에 갇혀있었음..
근데 알람시계는 나한테 기회였음
아날로그 알람시계는 못해도 10분 이상 울림..
그 알람된 시간을 시침이 완벽하게 지나갈 때까진 울림..
그럼 옆방 뒷방 앞방 어떤놈이든
시끄럽다고 주인한테 항의하면 주인이 올거고
그때 구조요청 하면 됨..
돈없어서 싸구려 샀더니 소리도 존나 크고
경박스러움.. 소화전 소리 같음..
제발 성격 까칠한 새끼가 듣길 기도하면서
기다리는데 알람이 끊김
한 15분은 울린 것 같은데 실패함..
결국 문을 부시려고 자세를 잡음..
바닥에 누운 자세로 손은 반대쪽 벽에 지지하고
존나 쎄게 문을 발로 걷어참..
근데 문이 안 부셔짐..
이번엔 서서 차 자세로 걷어참..
안 부셔짐..
원룸 화장실 싸구려 자재만 썼을텐데
나무 문이 철문 마냥 존나 강함..
계속 걷어차면 구멍이라도 뚫리겠지 싶어서 찼는데
이거 무슨 나무로 만든건지 안 뚫림
내가 약한건지 문이 쎈건지 모르겠지만
문은 결국 안 부셔지고 발만 부서지게 생김..
초딩때 아빠가 알콜중독인 친구네 놀러가면
맨날 화장실문에 빵구 존나 크게 나있던데
그거 ㄹㅇ 쉬운거 아니었음..
술취했을때 나오는 파워야만 가능한가보더라..
이때부턴 정신 돌아가지고
벽에 붙여논 스텐선반으로 지렛대 만들려다가
손 찔려서 피 터지고
환풍기에 소리지르고
다시 문 발로 차고 무한반복..
그리고 어디서 봤는데 화장실에 갇혔을때
계속 물 틀어놓으면
아래층에서 이상한 낌새 느끼고 신고해준다길래
샤워기 틀어놨는데 개소리임
아무도 안옴..
상식적으로 이정도 했으면
누가 노크라도 해보는게 정상인데
진짜 거짓말처럼 아무일도 안생김..
다른건 그렇다 치고
나무로 된 문이 안 부셔진다는게 존나 말이 안됨..
심심해서 다시 양치질을 함..
피곤이 몰려와서 잠을 잠..
또 시간이 얼마가 지났을까 눈을 떴는데 깜깜한거임
아 ㅅㅂ 화장실 전구 나갔다..
사방이 암흑천지..
근데 와중에 목이 너무 말라서 고민하다가
세면대 물 벌컥벌컥 마심..
또 한참을 소리지르길 수십분..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름
원룸 주인이 가끔 나 만나면
화장실에서 담배피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남..
자기 화장실에 담배냄새 들어온다고.
아마 각방 환풍기 통로들이
주인 집 화장실 하고도 연결된 것 같았음
종이컵에 모아둔 수십개의 꽁초들을
하나씩 태우기 시작..
담배냄새 계속 나면 승질난 주인이
우리집에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함..
근데 꽁초 한 15개 정도를 필터까지 다 태우고도
주인은 안왔고
결국 또 연기가 안 빠져서 뒤지는 줄 알았음
수건에 물 적셔서 코 막고 바닥에 엎드려 숨쉼..ㅅㅂ
바닥에 누워있는데 눈물이 찔끔 남..
그때 핸드폰에서 배터리 경고음이 남
갇히기 전에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였는지 기억나길래
소모율 계산하면서 현재 시간을 추정하니
지금 현재 시간은 알 수가 없지 ㅅ바꺼..
그때 갑자기 인터폰이 울림
누가 눌렀는지는 모르겠음
올 사람은 없는데 추측으론 택배인듯 했음..
엄마가 과일 보냈다고 했음..
내 방 인터폰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으면
뭐 주인집이라도 콜해서 열어달라고 할거고
내 방 앞까지만 오면 나는 나갈 수 있는거임..
막 웅~~~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엘레베이터 올라오는 환청도 들리는 것 같음
근데 기다려도 노크소리가 안 들림..
잠시 후 문자오는 소리가 들림
그 소리는 절망의 소리였음..
아마 택배기사가 보관함에 놓고 간다는 문자같았음
걍 다시 포기하고 바닥에 누웠음..
어둠에 적응됐는지 공포는 이제 좀 극복함..
땀을 너무 흘려서 염분 섭취를 위해
죽염치약을 조금 짜서 혀에 발라봄..
존나 맛있더라
삼키고 싶었는데 이 악물고 참음..
최대한 머금고 있다가
염분이 혓바닥에 흡수되길 기다린 다음 뱉어냄..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인데
뭔가 베어그릴스 같아서 스스로 뿌듯해함
갇혀있는 동안 샤워만 한 30번은 한 것 같음..
양치질은 50번은 한 것 같음
소리지르고 문 걷어차고
샤워기 틀어놓기 계속 반복..
그때 알람이 또 울림
감금 22시간을 알리는 알람소리..
그리고 체감상 한 2시간 있었나..
옆집에서 소리가 작게 들림..
바로 일어나서 환풍기에다 대고
미친듯이 살려주세요 라고 소리 존나 지름..
잠깐 조용해지더니
현관에서 누가 초인종 누르는 소리가 들림..
그러다 다시 조용..
그래서 환풍기에다 대고 비밀번호 1111 이라고
존나 크게 외쳤더니
현관문 열고 들어와서 망치로 문 열어줌..
나오자마자 고맙다고 큰절 바로 박고
냉장고에 엄마가 준 깍두기에
밥 한통 다 비운다음 그대로 기절함..
정신 차렸는데 20시간을 쳐 잤음..
그 뒤로 화장실 갈때 문 절대 안 닫음..
화장실에 드릴이랑 망치도 구비해두고 삼..
너네도 화장실 갈때 조심해라..
진짜 뒤질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