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하는 여자 앞에서 팔씨름 진게 쪽팔려서 2년동안 운동만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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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1년 전

20살에 대학을 입학했을 시기였다.

나는 여느 남자들과 다를 바 없이

키만 조금 큰 179cm에 62kg로 멸치 그 자체였다.

얼굴도 그냥 흔한 얼굴이었고

운동에는 관심 1도 없는

그래도 고딩때 공부는 나름 성실하게 해서

인서울 중위권 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대학교 새내기 생활에

잔뜩 부풀어진 기대감을 가지고 대학을 갔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잘 노는 애들은 어떻게든 잘 놀고 술 마시러 다니는데

나는 재미도 없고 그냥 기만 빨리더라.

그러다가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

빠른이라 나보다 1살 어렸는데 그냥 친구처럼 지냈다.

근데 보통 과에 1명 정도는

잘생기고 키도 큰 그런 남자애들 있잖냐.

우리 과에도 그런 놈이 1명 있었다.

과 동기들끼리 엠티 갔을 때나

학교 주변에서 단체로 술 마실 때도

그 남자애 주변으로 여자애들이 몰리는 그런 애.

마치 남자애 주변으로 중력장이 있는 것 같더라

그 남자애가 술 마시러 간다고 하면

평소 술 못 마신다 했던 여자애들도

풀메이크업 하고 어디선가 나타나는데

슬프게도 그 당시 내가 좋아했던 애도

이 놈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근데 이게 엄청 비참한 기분이라 해야하나

별 영양가 없는 문자 카톡에도

의미 부여 하면서 기다리게 되고

하루종일 걔 생각만 하고 그랬다.

그렇게 그냥 여사친 남사친 사이로 서로 장난도 치고

밥도 같이 먹는 사이로 발전했었을 무렵이었다.

우리과 건물 2층에 과실이 있었는데

동기들끼리 거기서 자주 놀고

밤엔 술도 마시고 그랬었다

그날도 동기 9명이랑 중간고사 끝난 기념으로

술집에서 다 같이 마시다가

알딸딸한 기분으로 과실에 와서 쉬고 있었는데

거기서 느닷없이 팔씨름 얘기가 나왔다.

나랑 아까 말한 잘생긴 남자애 포함해서

남자 4명, 여자 5명이었는데

솔직히 그 잘생긴 놈 빼면

나머지 남자애들 중에서 내가 키도 제일 크고

나름 팔씨름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다 여자애 하나가 잘생긴 애랑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는지

너 팔씨름 세냐고 자기랑 한 번 해보자 그러더라.

그래서 둘이 하는데

남자애가 가지고 놀다가 일부러 져주더라

그러다가 여자애들이 너네 중에서

누가 제일 팔씨름이 센지 궁금하다고

한 번 해보라고 하는데

알게 모르게 자존심이 걸린 팔씨름 대회가 열린 것이다.

이미 판은 깔렸고

남자애들은 은연 중에 여자애들 앞에서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데

그 앞에서 절대 지기 싫었다.

그렇게 나랑 잘생긴 놈 빼고

나머지 남자애 둘이 먼저 붙었는데 막상막하였다

솔직히 승부가 안나서

평소대로면 둘 중 한 명이 포기했어야 정상인데

둘 다 지기 싫었는지

진짜 얼굴 새빨개질 때 까지 하더라

이미 술 마셔서 빨갰는데

더 빨개질 수가 있더라 사람이.

결국 둘이 무승부로 끝이 났고

두 번째 매치는 나랑 그 잘생긴 놈이었다.

난 나름 지더라도 졌잘싸? 하고 싶었고

나름 내가 힘이 약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어서

멋진 모습을 좋아하던 여자애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근데..

1초 컷 당했다. 1초 컷.

자기보다 팔씨름 월등히 강한 사람이랑 해봤냐?

진짜 힘으로 벽이 느껴지더라.

아니 사실 그 놈이랑 손을 잡은 순간 깨달았다.

나보다 손도 크고

그냥 잡는 순간 느꼈다고 해야하나

‘절대 못 이긴다’

본능적으로 그게 느껴졌었다.

근데 막상 옆에서 심판 보던 여자애가

“시작!” 하는 순간

1초 만에 책상에 내 손이 깔리니까

존나 큰 쿵소리와 함께 내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다.

힘을 분명히 미친듯이 주는데도

그 불가항력적인 더 큰 힘이

내 팔을 무시하듯 그대로 넘겨버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손 잡고 좌우로 이리저리 농락까지 하는데

진짜 끝까지 안 놔주더라.

잘생긴 놈이 힘까지 세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걔가 이러더라

“너 존나 약하네 ㅋㅋ 여자애랑 해도 지겠는데?”

이때 진짜 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진짜 눈물날 것 같더라

아직도 그 애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약간 동정하듯 쳐다보는 그 눈빛이

내 마지막 자존심을 찢어 발겼다.

그 이후로 뭐 나머지 무승부 났던 남자애들도

자존심 회복하고 싶었던 건지

나랑 한판 하자면서 덤벼드는데

얘네한테도 한 2초 버티다가 졌다.

마지막엔 여자애들 중에서

좀 다부지고 힘 세 보이는 그런 애 있잖아

걔랑도 붙게 됐는데

진짜 온힘을 끌어모아서 겨우겨우 이겼다

이겨도 이긴 게 아니더라

차라리 지는 게 맞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내 자존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무렵

그 잘생긴 놈이 한마디 더 거들더라

“야 너 두 손으로 해도 나한테 못이기는 거 아니냐?”

그리고 난 여기서

이 놈의 자존심 세워주는 판에 제대로 말려들어갔다.

사실 대부분 알거다

팔씨름은 웬만해서 두 손으로 하면 지기 힘들다.

당연히 두 손으로 하면 이길 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한 3초 정도 버티다가 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 남자애가 평균 남자들보다 존나 셌다.

물론 내가 평균보다 많이 약한 것도 한 몫 했으니

그 두 개가 만나서 이런 결과를 낳았겠지..

그렇게 두 손으로도 지니까

이게 사람이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더라.

거기서 찌질하게 나는 나 배 아파서 집 갈게 하고

그대로 집으로 와서 펑펑 울었다.

진짜 많이 울었다.

뭐 팔씨름 졌다고 남자새끼가 질질 우냐 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두 손으로도 못 이기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고

약한 내가 너무 혐오스러웠다.

그 여자애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 사건 이후로

자연스럽게 걔네 무리에서 내가 자진해서 멀어졌고.

기말고사 끝난 직후

난 바로 가장 빠른 날짜로 입대를 했다.

그리고 훈련소에서 내 은인을 만나게 된다.

군대는 여름엔 존나 덥고 겨울엔 존나 춥다.

내가 입대했을 시기가 7월달이었는데

이게 가장 빠른 날짜로 지원했다고

바로 최전방에 걸렸더라.

7사단 신병교육대 라고 뜨길래 검색했더니

무슨 칠성부대 어쩌구

나름 이름 있는 사단이었고 네이버 지식인에는 죄다

“공포의 7사단” “GOP” “GP”

“걸리면 ㅈ댄다” “공병” “포병” 어쩌구 저쩌구

이때 당시 존나 쫄았어서 입대 취소하려고 하니까

취소하고 다시 신청해도

그 근방 부대 걸린다 경고 메세지 뜨길래

눈물을 머금고 그냥 입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 어머니랑 차 타고

화천까지 올라가서

연병장에서 마지막으로 부모님들께 인사 드리고

바로 더블백 들고 보급품들 받는데

날은 덥고 그냥 진짜 모든 게 싫었다.

이런 곳에서 1달 넘게

아니 2년 가까이 어떻게 버티나 싶었다.

그렇게 딱 중간만 하자 식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그때 우리 소대 담당 조교가 엄근진 그 자체였다.

키도 크고 몸도 우락부락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나보다 2살 형이더라.

고등학교 때 유도 했었다는데

진짜 존나 무서웠다.

성격도 불 같았고 개 심한 다혈질이었는데

한 번은 훈련병중에서 보급품 받을 때

어리버리 까다가 수량 자꾸 틀려서

조교가 책상 내리 쳤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부분 움푹 파여져 있더라..

근데 또 이상한 포인트에서는 빵터져서

처음엔 미친놈인가 싶었다.

암튼 훈련소 2~3주 정도 지나고

조교들이 훈련병 애들 중에서

조교 할 애들 미리 침 발라 놓는 것처럼

애들을 꼬시기 시작하더라.

훈련병 중에서 덩치 크고

목소리 크고 키 큰 놈들 위주로 물어보는데

그 조교 되려면 체력? 최저 조건이 있었다.

3km 달리기 몇 분 이내, 팔굽, 윗몸 몇 개

횟수까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나는 그 근처도 못가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화생방 각개 할 무렵까지

조교 지원하는 애들이 많이 없었던 건지

슬슬 우리 조교도 꼬시기 시작하더라.

미리 점찍어 둔 애들부터 꼬시는데

그때 만큼은 천사가 다름 없었다.

“군 생활 피게 해줄게”

“조교 사실 개꿀이야” 등등

그러다가 나한테 까지 조교가 접근하더라.

난 멸치 그 자체였지만

키는 평균 이상이어서 그랬는지

날 딱 보더니 조교가 먹잇감 찾은 하이에나 마냥

씨익 웃더라 ㅋㅋㅋㅋ

훈련소 초기에 소대장이랑 상담했던 내용에서

정신이상, 우울증 그런 소견 없는 것 까지

확인하자마자 바로 물꼬를 틀었다.

알다시피 훈련소 때는 어딜 가든 전우조 필수에

밥 먹고 나면 그 밖에서 줄서서 대기 타야 했는데

그때 먼저 다 먹은 조교가 슬쩍 부르더니

나한테 어깨동무 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라

“00아 조교하자 체력테스트는 걱정하지마

형이 너는 특별히 팔굽 윗몸 1개당 4개로 가라 쳐줄게.

뜀걸음도 그냥 완주만 해”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꼬셨고

그 귀하다는 몽쉘까지 한 박스 px에서 사다 주더라

그러니까 생활관 애들이

왜 쟤만 몽쉘 주냐고 불만 가진 질문 했는데

“불만있으면 니네도 조교하던가~” 라고

시원하게 대화 끝내버리더라.

초코파이만 판치던 곳에서

몽쉘이 나타나니까 애들이 눈이 돌아버렸다.

어떤 새끼는 초코파이 3개랑

몽쉘 1개랑 바꿔가고 그랬음

그리고 주말에 종교행사 갔다 와서 쉬고 있는데

조교가 슬쩍 부르더니

니 새낀 운동 좀 해야된다.

나중에 조교 되서도 그러면 애들이 무시한다 등등

쉬던 애한테 극딜을 박더니

원래 원칙적으로 훈련소에서는

운동이 금지되어 있는데

조교가 나한테 더블백으로 운동하는 법을 알려주더라

더블백에 있는 거 다 빼고

조교가 자기 자리 위에 있는 책들 존나 집어 넣더니

이두 운동 하는 걸 알려줬었다.

저녁 먹고 30분 정도 자유시간 있는데

그때 놀지 말고 하라고

난 그 당시 편지 쓸 사람이 부모님이랑

친구 1~2명 뿐이었어서

애들 다 편지 쓸 때 나는

더블백으로 운동하고 팔굽도 했었다.

사실 난 조교 보직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군대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기도 하고

실제로 나이 차이도 안나는데

누굴 가르킨다는 거 자체가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각개, 수류탄, 행군까지 모두 끝마치고

수료를 했다.

부모님은 두분 다 바쁘셔서 수료식날 못 오셨고

부모님 못 오시는 병사들 소수랑

나는 조교들과 같이 화천시내에서 놀았다.

그때 다른 조교 선임들이랑 많이 친해졌다.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대부분 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다가 나를 조교로 만들어준

소대 훈육조교가 나한테

“00아 너는 근데 군대를 왜 이렇게 일찍 왔냐?”

라고 물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갑자기 존나 우울해져서 아무말도 못했다.

내가 선뜻 말 못하고 있으니까

조교가 나한테 괜찮으니까 말해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훈육선임조교 포함해서

3~4명 앞에서 30분 정도 썰을 풀었다.

대학에 와서 어떻게 지냈고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잘생긴 동기 남자 놈한테 팔씨름 쳐발리고 울고

도망치듯 군대 온 얘기까지.

다른 조교들은 대부분 반응이

“존나 약골이네 이새끼 ㅋㅋㅋ” 하면서 놀리거나

겨우 그런 걸로 신입생 생활을 버리고 군대를 오냐

같은 반응이었는데

내 훈육조교는 달랐다.

진지하게 듣고 있다가 내 얘기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날 존나 째려보더니

자기랑 팔씨름을 해보자더라

그래서 해봤는데

와 진짜 존나 세드라

1초가 아니라 0.1초 컷 당했다.

그것도 두 손으로.

버티려고 해도 카페 테이블이 내 몸이랑

같이 들리는데 어떻게 버티냐고..

그렇게 난 조교의 힘에 놀라고 있었는데

갑자기 딱 이렇게 말하더라

“내가 그새끼보다 세냐?”

그래서 난 당연히 조교님이 더 셉니다 라고 바로 말했고

그러더니 씨익 웃으면서

“넌 전역하고 복학하면 그 새끼랑 다시 팔씨름해라

못이기면 나한테 뒤진다 진짜.”

라고 말하더라.

근데 나한테는 그 말이

어떤 위로보다도 더 값지게 느껴졌고

내 가슴속에서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불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 날 이후로

개인 정비 시간에는 그 훈육조교한테 운동을 배웠다.

자기가 유도하던 시절에 했었던 웨이트랑

자기도 취미로 팔씨름 좋아한다고

팔씨름 기술이나 운동법도 알려주더라.

내가 너무 고마워서 더 자라고

불침번도 대신 서준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은인이다.

그렇게 운동을 상병 될 때 까지

하루도 빼 먹은 적이 없었다.

군대에서 주는 밥이 은근 영양이 잘 갖춰져있고

평생 안하던 운동을 매일 했더니

몸이 점점 올라오는 게 보였다.

하지만 타고난 힘이 약하고

뼈도 통뼈가 아니었어서

일꺽 시절 부터는 전완근 운동이나

팔씨름에 특화된 운동을 자주 했었다.

신교대 체단실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서

지금처럼 핸드폰도 못쓰고 뭐 정보랄게 없으니까

싸지방이나 휴가 나가서도

팔씨름 관련 동영상이나 운동 법을 검색했었고

그때 처음 존블젱크 형님을 알게 되었다.

(미국 팔씨름 선수임)

어쨌든 그렇게 계속 운동하고 조교 생활하고

위로휴가 나갔다오고 반복하다 보니까

계절이 바뀌고 내 훈육조교가 전역하더라

ㅋㅋㅋㅋ 그때 존나 울었다

조교가 번호 써주더니

“너 걔한테 팔씨름 지면 형한테 뒤진다”

이 한마디 하고

나가서 보자 하고 쿨하게 위병소 밖으로 나가더라.

그렇게 훈육조교가 전역했고

나도 슬슬 전역이 보일랑말랑 하던 시점에

진짜 동기 조교애들이랑 후임 조교들이랑

팔씨름이랑 운동을 더 미친 듯이 했다.

시간도 안가고 할게 없으니까

진짜 애들이 다 운동 밖에 안하더라

그리고 이게 신기하게 힘이 아무리 약했던 사람도

후천적으로 뼈 빠지게 노력하니까

일반인 보다는 강해지게 되더라.

처음으로 팔씨름 되게 쎄다는 말을

훈련병한테 들었는데 진짜 기분 좋았다.

그리고 존블젱크 형님의 경기 영상도 찾아보면서

팔씨름 기술들도 익히니까

나랑 힘이 비슷한 애들 상대로는

내가 기술써서 이기고도 했고

휴가 나가서 사온 악력기는

처음에 34kg도 클로징 못했는데

맨날 하니까 coc1 클로징 성공하고 coc1.5 사서 연습했다.

추감기도 처음에 2.5kg 매달고 하다가

전역할 때 쯤 7.5kg 두고 했다.

그렇게 어느덧 2014년 새해가 밝았고 전역을 했다.

집에 갈 때 마다 부모님은

몸이 왜 이렇게 좋아졌냐고 흡족해 하셨고

전역 한 날도 이제는 못 알아보시겠다면서

고생했다고 꼭 안아주셨고 나는 큰 절을 했다.

복학 신청을 운 좋게 할 수 있어서

난 곧 바로 1학년 2학기로 엇학기 복학을 했는데

이미 내 동기 여자애들은

3학년 2학기거나 아니면 휴학했다고 하더라

남자애들은 대부분 군대 갔거나

이제 곧 입대를 앞 둔 애들 뿐이었다.

난 13,14 학번들 아예 모르니까

그냥 가서 조용히 술이나 먹고 오자는 마음으로

개강총회 뒷풀이를 갔는데

거기에 그 남자애랑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가 있었다.

걔네를 보는 순간 2년 전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순간 힘들었는데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노력했었다.

엄청 큰 고깃집에

우리과 애들이 전부 꽉 차 있었는데

난 어디 앉을지 몰라서 그냥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아디다스 캡 모자 눌러쓰고

교수님들 몇 마디 하시더니 건배샷 하고

나랑 비슷한 아싸? 무리 후배 남자애들이랑

이런 저런 얘기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가 툭툭 치더라

“야 너 000 맞지?”

눈 앞에서 삼겹살이 시끄럽게 익어가는 소리와

주변의 소음을 모두 꿰뚫고

그 여자애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 목소리를 몸이 기억 하는 것 같더라

내가 좋아했던 그애였다.

그리고 뒤에는 그 남자애랑

그때 과실에 있던

여자애들 2명이랑 남자애 1명이 서있었다.

그렇게 난 ㅈ댔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찰나에

나랑 같은 테이블에 있던

남자애들이 먼저 일어나서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하면서 인사했고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몸을 뒤로 돌려서 인사하려는데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보자마자

더 이뻐졌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 실력도 늘은 것 같고

머리도 기르고 염색도 했던데.

그 잘생긴 남자놈은 여전히 잘생겼더라..

옷도 멋있게 입었어서 순간 나 스스로 꿇렸었다.

난 후리하게 입고 왔었으니까 더 그랬던 것 같다.

한 2~3초 정도 걔네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순간 다시 정신 다 잡고 일어났다.

뭐라고 인사할지 몰라서 어버버 거리고 있었는데

“와 너 00 맞네? 잘못 본 줄 알았는데

군대 갔다와서 이번에 복학한 거야?”

“어 이번에 복학했어 1학년 2학기로 오랜만이네 다들”

이런 식으로 대화가 오갔는데

난 존나 긴장해서 말도 크게 못하고 어버버 거렸었다.

특히 그 여자애 옷에서 나던 향수 향이

나를 더욱 긴장 시켰었다.

그렇게 어색하게 서있었던 찰나에

뒤에 있던 여자애가 나보고

2년 전이랑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

되게 많이 바뀌었다고.

진짜 너 맞냐 하던데 나름 이때 기분 좋았었다

약간 좋은 쪽?으로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어서

어쨌든 그렇게 애들이 날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그 잘생긴 놈이 한 마디 하더라

“ㅋㅋ야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저기 우리 테이블 가서 같이 마시자”

난 근데 이 말이 이새끼가 해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뭔가 존나 재수 없었다.

근데 뭐 거절할 명분이 없으니까

테이블에 있던 후배들이랑 인사하고

걔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난 되게 어색하고 불편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름 전역 했다고 술도 말아주고 그러더라

좋아하는 여자애랑 같이 마셔서 그런가 존나 달았다.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듣는데

남자애 2명은 이번 학기 끝나고 군대를 간다더라

ㅋㅋㅋㅋㅋ 이때 속으로 존나 웃었다

나름 얘네가 인싸였고 과에서 학생회도 하고

여러 동아리 활동도 많이 했어서

아는 선후배들도 많고 그런 애들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까

2년 전에 다른 여자 애들이랑은 싸워서

몇 명은 휴학하고 손절했다고 하고

그리고 역시나 그 잘생긴 놈은

선 후배 여자애들한테도 인기가 많아서

중간 중간 연애도 했는데 오래는 못 갔다 하더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는

신기하게도 그 남자애를 좋아한 게 분명한데

고백 안하고 계속

남사친 여사친 사이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적당히 마시다가

교수님들 가시고 끝나갈 무렵

2차로 간단하게 맥주 마시러 갈 사람들을 구했고

물론 난 거의 반 강제로 같이 따라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포함 인싸끼가 충만해 보이는

남자, 여자 후배들 한 10명이랑

같이 2차로 근처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밖으로 나가니까 추워서 주머니에 손 넣고 걷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가 나한테 번호 찍어 달라고 하더라

내가 군대 가기 전에 폰 번호를 바꿔서

아마 카톡에 다른 사람 떴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와 이때 존나 설렜다.

그렇게 사회 공기를 마시면서 걷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2년 전의 그 사건 때문에

내가 스스로 오해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나 혼자 쪽팔리다고 뻘짓하고 산건가?

얘네는 그렇게 나쁜 애들이 아닌데

내가 너무 나쁘게 봤던 건 아닐까? 한 그런 생각..

근데 막상 이런 생각이 드니까

뭔가 갑자기 되게 부질 없고

2년동안 얘네가 남겼던 트라우마 생각하며

운동만 했던 인생이 덧없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2차로 맥주 집에 들어갔는데

테이블 자리가 존나 이상했다

16명이 전부 긴 일자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는데

8명 8명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다행히 다들 어느 정도 술을 마셨어서 그런지

텐션도 높고 ㅈㄴ 시끄러웠다.

그렇게 난 그냥 생맥500cc 마시면서

애들 대화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반대쪽 끝에 앉아있던 후배 남자애가 말하더라

“근데 혹시 저 선배님이 그분이에요ㅋㅋㅋㅋ?”

난 이때 본능적으로

저 선배가 내 얘기라고 단 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게 그다지 좋지 못한 얘기일 것이라는 것 까지.

후배 남자애 얼굴이 존나 새빨개서

누가 봐도 거의 반 만취 상태였다.

그런데 저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모든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더라.

그때 중앙 쪽에 앉아있던 동기 남자애가

갑자기 그 남자 후배가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 눈치라도 챈 듯

“야야! 쟤 취했네 누가 과실 데려가서 재워라”

라고 다급하게 말했는데

그 남자 후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더라

“그 팔씨름 졌다고 휴학한 그 선배 맞죠? ㅋㅋㅋㅋㅋ

여자한테도 팔씨름 졌다면서요 !!!”

이렇게 말하고 그대로 테이블에

대가리 박고 골아 떨어지더라.

ㅋㅋㅋㅋㅋㅋㅋ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냐.

후배들 중에는 뭔 얘기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애들이랑

이미 아는 얘기고 당사자인 나를 직접 보니

신기한 눈빛을 짓던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이때 나는 다시 2년 전 기억이 더 또렷하게 떠오르더라..

아.. 내가 팔씨름 그렇게 지고

추하게 집에 가버렸던게

얘네들한테는 엄청 재미났던 안줏거리였구나

내가 그때 무슨 마음으로 집에 간지도 다 알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미 소문도 날대로 났구나 라는

그 사실까지 인지하게 됐을 때

나는 손에 들고 있던 500cc 맥주를 그대로 원샷 때렸다.

근데 사실 거기서 끝났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만취해서 엎어진 애 옆에 있던 남자 후배가

또 한마디 거들더라

“와.. 혹시 저랑도 한 번 팔씨름?.. 가능하신가요?..”

이렇게 검지 손가락으로 1자 들어 올리면서 말하는데

ㅋㅋㅋㅋ거기서 정신줄 놀뻔했는데 겨우 잡았다..

속에서 열불이 끓더라.

누가 봐도 얼마나 약했으면 여자한테도 지냐? 라는

궁금증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난 그 상황에서 짧게 “하” 이렇게 한숨을 쉬었더니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가 어떻게든

대화 주제를 바꿔보려고 노력하더라

“얘들아 너네 많이 취했는데 먼저 들어가”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나한테 “00아 어떻게 된 거냐면

너 힘 약하다고 놀리려고 한게 아니라

너 그때 팔씨름 하고 난 뒤로

우리랑 거리 두고 다음 학기부터 안보여서

그거 얘기하다가 이렇게까지 번진 것 같애..”

이렇게 최대한 미안하다는 말투로 해명을 하는데

솔직히 내 기분은 이미 상할 대로 상했고

더는 얘도 못 믿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조차 전부 보여주기 식인 것 같아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

“ㅋㅋㅋㅋ 왜? 진짜 다시 한 번 해봐

그때 00가 봐준 거였을 수도 있잖아”

그 놈이었다.

대각선에 앉아서 재미있다는 듯

그저 자기한테는 한낱 유흥 거리에 불과한

이야기라는 듯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는

“야 그만해” 하면서 말렸는데

그때 있었던 여자애 2명이랑 남자애는

나랑 눈은 못 마주치고 있었지만

나름 그 잘생긴 놈이 말 한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듯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들이 미묘하게나마 느껴졌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 순간 내 정신은 맑아졌다.

다시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군대에서 정말 고생했던

내 자신에게 미안해서였을까

군대에서 정말 열심히 운동했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순간적으로

내 기억 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바로 그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훈육조교 형의 말이 떠올랐다.

“넌 전역하고 복학하면 그 새끼랑 다시 팔씨름해라.

못이기면 나한테 뒤진다”

이 모든 기억들이 복잡하게 내 머릿속을 헤집다가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고

마침내 난 입을 열었다.

“야 다시 해볼래 팔씨름?”

내가 팔씨름 다시 해보자고 무덤덤하게 제안하니까

신입생 애들은 이미 취해서 뻗은 애들 제외하고

다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반면에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는

얘가 지금 뭐라고 하는거지? 라는 표정으로

나랑 그 잘생긴 놈을 번갈아 쳐다보더라

막상 내가 이렇게 나올지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 잘생긴 놈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더라.

내 옆옆에 앉아 있던 동기 남자애도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에 당황한 듯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아쇠를 당긴 건 여자 동기였다.

“헐 대박 너 괜찮겠어? 애들 다 보는데

여기서 지는 사람은 엄청 창피할텐데”

이런 식으로 내가 무조건 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한 말투로 말하더라.

“선배~ 그러면 얘랑 먼저 해봐요~

클라이밍 하는 앤데 팔 힘 엄청 세거든요~”

반대쪽에 앉은 금발 머리 여자 후배가

지 옆에 있는 남자 후배를 가리키면서 말하더라 ㅋㅋㅋ

그 남자 후배는 “에이 아니에요 저 약해요~” 하면서

손사래 치는데 막상 붙어보자 하면

바로 자기는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손 내밀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그 잘생긴 놈은 저 남자 후배가 먼저

나랑 붙는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이

금세 얼굴에 생기가 돌더라 ㅋㅋㅋㅋ

마치 나랑 붙기 전에 나를 테스트? 하는 느낌이었고

혹시라도 내가 지면 거기서

자기랑 붙을 필요도 없겠구나 하는 속셈이 보였다.

거기 있는 16명의 사람들 중에서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나의 패배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얘는 내가 또 다시 힘도 못 써보고

처발리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 연민까지 느껴졌었다.

그렇게 테이블 가운데에 있는 치킨이랑

맥주를 양 사이드로 치우고

그 남자 후배랑 나는 가운데 자리로 이동하려는데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나한테 작은 소리로 속삭이더라

“00아 하지마 그냥 대충 넘어가”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못들은 척 걔 자리를 지나쳐서

가운데 자리에 착석했다.

어느새 떠밀려서 오기라도 한 듯

그 클라이밍 한다는 남자애가 앞에 앉았고

겉옷을 벗더라 ㅋㅋㅋㅋㅋㅋ

옆에서 신입생 애들은 00화이팅~!! 하면서 응원하는데

이미 지네가 이긴 듯 사기가 하늘을 찌르더라.

남자애는 계속 손사래 치면서

“하지마 하지마” 하는데

그 웃음에서 여유로움과 자신감이 어이가 없더라

그 남자 후배는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말라깽이에

클라이밍 잘할 것 같은 몸이었다.

키도 작은 편 이었고 그냥

클라이밍 열심히 해서 전완근이랑 이두랑

크기가 비슷한? 딱 그런 체형 이었다.

나도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었다.

안에 머슬핏 흰색 반팔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동기 후배 할 것 없이 내 팔에 모든 시선이 집중 되더라

진짜 그때 뒤늦게 깨닫고

팔 더 두꺼워 보일려고 힘 존나게 줬다.

가뜩이나 머슬핏 티셔츠를 입어서 팔이 두꺼워 보일텐데

물론 신입생 애들은

멸치 시절의 나를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팔이 많이 두꺼웠던 탓에 놀란 것이었다.

내가 그 당시 181cm에 77~78kg로

인바디 재면 골격근량 38~39kg에

체지방 11%정도 나왔었던 거로 기억한다.

아쉬운 건 멸치 시절 골격근량을 모른다는 건데.

그래도 키가 있으니 한 35 정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멸치 시절엔 체지방도 적었어서

그 마른 복근에 갈비가 보였는데

그 당시는 체지방도 많이 쪘었고

덩치가 꽤 많이 커졌었다

어쨌든 후드티 입은 멸치일 줄 알았던 애가

군대 갔다와서 벌크업 되어왔으니

다들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정작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 반응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약간 움츠러들었던 남자 후배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마지 못해서 손을 내민 남자 후배의 눈에는

장난기가 사라지고 진지함이 가득해 보였다.

그렇게 서로 손을 맞잡았고 난 잡은 순간 느꼈다.

기술을 일체 사용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

“시작”

옆에 있던 남자 동기놈이 시작을 외침과 동시에

그 후배 놈이 순간적으로 팍 주면서 넘기려고 하는데

난 가소롭다는 듯이 그냥 버텨줬다.

한 3초 정도 버티다가

서서히 힘을 주면서 넘기기 시작했다.

내가 서서히 넘기니까

어떻게든 버티려고 힘을 진짜 꽉 쥐는데

거의 마지막엔 아까 만취해서 자는 놈보다

얼굴이 더 빨개지더라

얘도 생긴 거랑 다르게 승부욕이 강해 보였다.

그렇게 넘기는데 진짜 악을 쓰면서 버티길래

다칠 것 같아서

그냥 살짝 기술 써서 안 다치게 끝내버렸다.

당연히 다들 생각도 못한 결과가 나왔으니

벙쪄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 후배는

이미 내 과거 썰을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존나 분해서 표정관리가 1도 안되더라

계속 눈만 감았다 뜨면서

현실을 인지하려고 노력중인 것 같았다.

그냥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남자들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그렇게 분위기는 약간 푹 가라 앉았는데

그 찰나에 잘생긴 동기 놈이 한마디 하더라

“오~ 군대에서 열심히 운동했나 보네?”

근데 난 이 짧은 순간에

이놈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특유의 여유로운 말투가 있는데

저 한마디에서는 초조함이 느껴졌었다.

근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내가 열심히 운동해서 체격이 커지긴 했지만

사실 나도 ㅈ밥 시절 내 힘으로는

저 놈의 최고치를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확실한 건

훈육조교형 보다는 약하다는 것 정도?

근데 문제는 나도 훈육조교형 상대로 버틴 것이 전부였고

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정도로

이놈과의 팔씨름은

내 지난 2년간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할 수도 있는

아니면 이놈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그런 상대인 것이다.

난 이 승부에 앞서서 힘에서 밀릴지언정

절대 지지는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내가 배운 팔씨름 기술을 총동원해서라도

절대 지지 않을 생각이었다.

군대에서 힘들 때, 쉬고 싶을 때,

정신이 해이해져갈 때마다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며

드랍세트 슈퍼세트가 아닌

분노세트를 조지면서 다짐했던 나다.

오히려 정말 노력했기에

만약 지더라도 난 깔끔하게 승복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정신 무장을 하고 있던 찰나

마침내 그 놈이 내 앞에 앉았다.

그러던 사이에 어느새

가게 온 시선이 우리 테이블에 몰려있었다.

우리 테이블이 시끄러웠던 탓도 있었지만

호프집 특성상 아저씨들도 많고

가족 단위로도 많이 왔어서 그런지

우리 테이블이 금방 주목을 받았고

몇몇 커플끼리 온 같은 학교 학생들까지

우리 테이블을 주목하고 있었다.

가게 사장님이랑 남자 여자 알바생도

대놓고 와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더라

내가 손을 앞으로 내밀자 그 놈도 손을 내밀었다.

역시나 손 크기가 마지막 기억 속의 크기와 비슷했다.

훈육조교형보다 아주 살짝 작았다.

근데 손 두께는 그렇게 두껍지 않았어서

체감상 훈육조교형 손이 고릴라 손이라면

이 놈은 그냥 침팬지 손 만도 못하게 느껴졌었다.

그래도 막상 잡아보니까 알겠더라

내가 그 멸치 시절에 두 손으로 진 게

절대 요행이 아니었다는 것을.

만약 이놈이 따로 운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놈도 마찬가지로

타고난 통뼈에 장사체질 이라는 것을.

그렇게 팔씨름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져

슬쩍 돌아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 여자애가

잘생긴 놈이 아닌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분명 나를 응원하는 눈빛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껴졌었다.

눈빛으로 힘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 그러면 시작한다? 시작!”

잠시 흐트러진 집중력을 바로 잡고

시작 소리와 동시에 나는 맞잡은 손을 강하게 쥐었다.

내 전략은 우선 선 방어 후 공격이었다.

저놈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나는 버틸 수 있는 확신이 있었다

훈육조교형의 공격도 수차례 방어했던터라

순간적인 힘에도 반응 할 수 있게

방어기술도 철저히 익혔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이 녀석은 시작과 동시에

나를 2년 전 그때처럼 한 번에 넘기려고 했다.

근데 생각보다 놀랐다.

내 예상보다 더 강했다.

체감상 넘길 수 없고 버티는 것만 가능한 느낌이었다.

물론 아직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순수 힘으로는 나보다 살짝 우세했던 것 같았다.

만약 내가 팔씨름 기술을 몰랐다면

점점 이놈은 본능적으로 탑쪽을 잡고

서서히 넘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럴 때를 대비해서 악력 연습도 꾸준히 했다.

점점 악력을 더 세게 잡자

이놈이 아픈지 살짝 표정을 찡그리기 시작했고

나는 조금씩 탑쪽을 공략해나가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연습했던 탑롤이다.

나는 프로네이션을 기반으로

점점 탑쪽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놈이 당황한 기색을 하면서 더 힘을 꽉 주더라.

내가 탑롤을 사용하자 점점 이놈의 손이 열리기 시작하고

난 그 힘을 그대로 이용해서

손목을 제압한 상태로 넘기기 시작했는데

이놈도 그 군시절 상사와 동일하게

본능적으로 방어를 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엘보를 세우면서 훅을 치더라

물론 본능적으로 방어하려는 게 분명했지만

거기서 내 1차 공격이 막혔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니까

이 놈이 다시 힘을 쥐고 넘기려 하는데

내가 옐로우가 강해서 당기면서 버티고 있었다.

그때 잠깐 이 놈의 얼굴을 봤는데

얼굴이 엄청 빨갛더라.

이 놈도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총동원하는 느낌?

그래서 나름 신기했다.

이정도로 성장한 내가 대견스러운 느낌도 있었지만

얘는 아무 노력 없이 타고난 근력이 이정도라니

이런 생각도 들면서 순간 현타가 올뻔 했다.

나는 끝내야겠다고 마음먹고

탑롤 포지션을 다시 잡은 상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프레스로

플렉션 기술이 들어감과 동시에

그대로 어깨를 넣어서 내리 찍어버렸다.

얘도 버티는 게 불가능했던지

그대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그 놈의 손이 부딪혔다.

그 순간 정적이 흘렀고

잠시 뒤에 우리 테이블을 지켜보고 있던

아저씨들이 박수를 치더라

“키야~~ 고놈 쎄다 응?”

이러면서 호탕하게 웃으면서 박수를 쳤고

다른 테이블 사람들도

재미있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더라.

물론 내 앞에 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거의 멘탈이 반 나가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 아무랑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고

동기 애들은 서로 쳐다보기만 하더라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의외로 공허했다.

아니 나에겐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했다

난 그만큼 노력했기에

그리고 어느새부터인가 이 놈을 이기는 것 보다

더 중요하고 값진 가치를 찾았기 때문인지

이 놈을 이기는 건 어느 순간 목표가 아니라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져 왔었던 것 같다.

난 살포시 이 놈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푹 가라 앉은 분위기 속에서 조금 더 마시다가

난 옷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차시간이라 먼저 일어날게 재밌었다 얘들아”

이렇게 말하고 난 호프 집을 나왔다.

무척 긴장 했던 탓인지 밖에 나오니

식은 땀 때문인지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엄청 추웠는데

그냥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서

반팔 차림으로 그냥 걸었다.

그런데 뒤에서 누가 날 부르더라

“야 00아!”

그 여자애였다.

난 아무 기대감 없이 뒤를 돌아 봤는데

그 여자애가 내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더라.

“저기.. 2년 전에 그때 일 말이야

절대로 우리가 의도적으로 소문 낸 게 아니야.

00랑 00 그리고 00가 말한 게 아니라

지금은 더 이상 연락도 안하지만

그 때 같이 있었던 00이랑 00가 소문 낸거야.

그래서 우리가 남의 이야기 함부로 하고 다닌다고

너 이야기 말고도 걔네가

다른 애들 소문도 이상하게 낸 적 많거든

그래서 싸우게 된거고..”

난 그때 이 말을 듣고 놀라웠던 건

소문을 낸 게 얘네가 아니라는 사실과

정말로 얘네가 순수하게 내가 반가워서

말을 걸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으니까 잠시 뒤에 이렇게 말하더라

“정말 미안해. 우리도 감쪽같이

그때 일을 까먹고 있었어서 차마 생각 못했어”

난 이 말을 듣고도 계속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이 여자애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뒤돌아서 돌아가려는 순간

내가 입을 열었다.

“야 나 너 좋아했고 그래서 쪽팔려서 도망간거다”.

그러자 그 여자애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뒤돌아보더라.

난 그때 내 기억이 온전치 않아서

확실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이런 느낌으로 말했던 것 같다.

“너가 그때 쟤 좋아하고 있는거 눈치채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너 얼굴 보는 게 너무 쪽팔렸다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 휴학하고 바로 군대간거고.

그리고 나한테는 그날이 트라우마라서 상처가 컸었고.”

“..”

여자애는 아무 말 없이 계속 날 쳐다봤고

이렇게 말하고도 아무 말 없길래

난 할 말 다했으니 가려고 했는데

그때 얘가 엄청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더라

“나 00 좋아한 적 없어.

그리고 너는 나한테 한 번도

먼저 둘이서 술먹자 어디 놀러가자

말 한 적도 제대로 마음을 표현한 적도 없잖아.”

얘가 이렇게 말하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더라.

“이번에 혹시나 복학하지 않을까 싶었었는데

오늘 고기 집에서 만나서 얼마나 반가웠는데

넌 번호도 바꿔버렸고

난 자퇴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어”.

점점 여자애의 말투에서 감정이 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난 이때까지도 얘가

나한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갔다.

설마 얘도 나를 좋아했다고? 라는 상상은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 같았거든.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렇게 말했는데

얘가 “하” 하고 짧게 한숨을 쉬더니

“됐어 그냥 가”

하고 화난 표정으로 뒤돌아서 가려고 하더라

난 그제서야 에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얘한테 달려가서 손을 붙잡고 말했다

“혹시 너도 나도 나한테 마음 있었어?”

라는 매우 찌질한 대사를 날렸고

이 여자애는 더 화가 났는지 손을 뿌리치려 했고

난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말했다.

“00아 좋아해. 사실 지금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사실 아까 네가 나 불렀을 때도

난 바로 너인 줄 알았어 몸이 기억하나봐”.

이렇게 마지막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는데

그제서야 여자애가 날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짧게 웃더니

“그게 고백이냐 이 ㅅㅂ놈아!”

하고 나한테 헤드락을 걸더니

귓속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더라

난 너무 얼떨떨해서 가만히 눈사람처럼 서있었는데

“아 빨리 가자고 나 춥다고!”

하면서 내 후드 주머니를 잡아 끌더라 ㅋㅋㅋㅋ

그렇게 정류장까지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일주일 후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얘 이상형에 가까웠다고 하더라

근데 얘도 엄청 소심한 성격이라

티를 전혀 안낸 거였고

그렇게 우린 예쁘게 사귀었고

2년 정도 후에 헤어졌다..

내가 차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