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이었다
당시 동네 문방구에 팔던 “화약 장난감 총”은
개나소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장난감이었고
특히 화약권총 장난감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이 글을 읽는 할배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생 당시
이상하게 폭탄이라는 것에 제대로 미쳐있었다
오락실에서는 항상 네오 봄버맨만 주구장창 했고
가끔씩 용돈만 받았다 하면
화약총과 폭죽을 풀매수해서 놀이터에서 혼자 놀았다
그런 나에게 고작 8개 실린더로는
품지 못할 꿈이 있었는데
1.화약으로 날아가는 로켓 만들어보기
2.화약으로 날아가는 대포 만들어보기 였다.
하지만 용돈도 적고 참을성도 작았던 나는
그걸 실현해볼만큼의 화약을 가질 수 없었는데
마침 시의적절하게
나에게 기회가 생겨버리고 말았으니
문방구의 필요성과 수요가 점점 줄어들며
낡은 점포들이 한두곳씩 폐업정리를 시작한 것이었다
이게 한두곳만의 사정이 아니란걸 알게 된 나는
보통 폐업을 하게 되면 물건을 떨이로 팔기 때문에
3주동안 끌어모은 용돈으로
우리 동네를 작정하고 쑤시고 다니며
평소엔 상상도 못할 양의 화약을
헐값에 입수하게 된다..
그렇게 모은 화약을 나는 송곳과
귀이개 등으로 살살 긁은 뒤
가루만 추출하는데 성공했고
모든 화약을 비닐백에 담아두어 결사의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거사일,
나는 당시에 살고있던
모 빌라의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짐을 풀고
‘당시의 대포 구상도’
거기 있던 조그만 파이프에 돌로 구멍을 뚫은 뒤
한쪽을 자갈과 나무껍질을 짓이겨 꽉 틀어막고
가운데에 화약을 채운 뒤
대포알이 될 이쁜 돌을 포구에 넣었다
투박하게 뚫린 구멍에 휴지를 말아
나름의 심지를 만들고
집에서 몰래 갖고온 지포라이터 기름을 뿌린 뒤
라이터를 들고 발사 준비를 마쳤다
이 영광스러운 장면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미친놈인 나에게 친구라곤
놀이터 고목을 파먹는 곰개미 일가족밖에 없었으니
빌라 벽에 대포 쏴재낄 생각에
폴짝폴짝 뛰던 리틀 몽키의 모습은
기가 막히고 한숨만 푹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목격자가 없다는 행운을 내게 주었으니
이 미친 초등학생은 이 나약하고 기름진 창작욕에
라이터를 갖다댔고,
일이 터졌다
아 ㅆ1발
내가 만든건 파이프 폭탄이었다
그렇게 난 짧고 굵은 폭음과 섬광을
후폭풍도 생각하지 않은 덕에
코앞에서 휩쓸리게 되었으며
순식간에 영광의 잔상처들과
왼팔에 박힌 파편을 얻게 되었다
좃되버림을 직감한 나는
폭발 현장을 수습도 못하고 도망간 뒤
당시 저녁 이후로 컴퓨터 금지였던 우리집이라
일부러 몰컴하다 들키는 상황을 만들어서
어머니가 퇴근하시고 회초리를 맞느라
죄목을 겨우 감출 수 있었다
내 알리바이는 집에서 몰컴을 하다가 걸린 초딩이니까.
그 이후 나는 큰 화약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고
다시는 화약에 눈길도 주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그렇게 얼마 후 다시 일이 터지게 된다..
나는 당시 초등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과학 영재 특강에 합격해
방과후마다 버스를 타고가서 실습을 했었다
옛날에는 이런 방과 후 활동이 엄청 많았다
그림영재, 피아노영재, 과학영재, 로봇영재,
뭐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나도 당시엔 영재였다 자부할 수 있다
분야가 조금 반사회적이었을 뿐
그 날 수업은 드라이아이스랑 페트병으로
실로폰을 만드는 실험이었다.
실험방법은 다음과 같다
1.페트병에 물을 소량 넣는다
2.안에 드라이아이스를 매우 조금 넣고
천천히 페트병의 표면에 굴린다
3.다 언게 확인되면 뚜껑을 닫고
뚱땅뚱땅 두들겨 실로폰 실습을 하면 끝.
과학실험이라고 하긴 좀 그랬던 것 같지만
무튼 우리 팀은 맨 뒤에 배치되어 있었기에
다른 팀이 돌아가며
드라이아이스를 넣는 것을 보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어린노무 새끼들이
드라이아이스 덩어리를 다 써버리고
우리 조에 도착했을 땐
드라이아이스는 이미 가루만 남아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걸 유리막대로 슬슬 긁어모아
페트병에 3등분 해보기로 의견을 맞췄고
실험종료시간이 다가오니
빨리 얼어버리라고 물도 몇배나 더 넣어줬다
물은 적을수록 빨리 어는데
그랬으면 드라이아이스를 덜 써도 된 거 아니냐고?
초등학생=어리석음
집단지성=틀려먹음
초등학생의 집단지성=어리석게 뒤지기 딱 좋음
이렇게 완벽한 삼박자가 이루어져서 그랬다
ㅅㅂ 근데 문제가 생겼다
완성된 병을 최대한 힘을 주고 섞어도,
실로폰은 커녕 살얼음 하나 생기지 않아서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는데
어찌됐든 보고서를 써야 했기에
우리는 아직 얼음이 기화중인 페트병 세개를
전부 꽉 잠궈버린 뒤
선생님이 보라는 듯이 힘차게 뚱땅뚱땅 두들겼다
말했다시피 잠긴 뒤에도
드라이아이스는 페트병 안에서
순식간에 기화중이었고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 맹세했던 폭탄을
또 만들어버렸고 결국 터지고야 만다
나는 면상으로 압축 이산화탄소+
폭음+페트병 파편을 그대로 맞으며
충격을 받은 나는 대리석 바닥에
뒷머리를 빻으며 정신을 거의 잃었었다
대략 스무명 가량 있던 교실은
순식간에 일어난 친환경 폭탄 테ㄹ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학생들은 출구로 존나 뛰며 울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애들을 진정시키려고 마이크에 호소했지만
그순간 두번째 폭탄은
선생님의 마음도 몰라주고 눈치없이 뻥!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
하나의 사제폭탄이 남아있는 상황
특히 겁도 없고 싸가지도 없던
우리 조원 2번은 도망가는 것을 관두고
싸늘하게 쓰러진 내 앞에 있던 페트병을 집어
냅다 창문밖으로 던진 뒤 대피했다
상황이 진압될 때까지 난 아무도 구하지 않아
대리석과의 차가운 교감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 좀 데려가라 의리없는 새끼들아..
아무튼 그렇게 사건이 종결되고,
보고서는 커녕 시말서를 쓰게 된 선생님의
캄캄한 낯빛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일찍 하교하게 되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세번째 폭탄이 운동장 한가운데서 뻥!!!!!
그건 아마, 조기하교 하게 된
우리를 기리는 축포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 이후 과학을 쳐다도 보지 않게 되었다
내가 계속 과학영재 클럽을 다녔다간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수명이
그리 길진 않을 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요즘 잼민이들 중에
나랑 비슷한 놈들이 있을까 하고 검색해보니
있다
흔하진 않지만 이런걸 만드는 놈들이 가끔 있다고 한다..
이 친구들에게 내 조언 하나 해주고 싶다
“그거 이미 내가 15년전에 거쳐간 길이다”
뒤지기 싫으면 그만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