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잠시 모스크바에 산적이 있었음
난 도피성으로 간거라 학교 출석은 했지만
말 그대로 출석만 했지 공부 안했음
그냥 알파벳이랑 기본 단어, 문장 정도만 익힘.
수업 없고 일도 없는 날에는
그냥 혼자서 여기저기 산책을 다님.
모스크바는 전철도 되게 잘되어있고
공원도 많아서 산책하기 참 좋았음
다만 완전 관광지가 아니면
러시아어 모르는 외국인이 다니기에
편의성이 그닥 좋지는 않음.
메뉴판에 사진이 없고 글만 잔뜩 있거나
영어 메뉴판은 아예 없고 불친절한 경우도 은근 많음.
극복해야 되는거겠지만 그냥 마상 당하기 싫어서
(성격탓도 있고 그 시기가 정신적으로 워낙 힘들때라)
키오스크 잘되어있는 맥도날드를 자주 다녔음
주말에는 교회 한글학교 봉사활동을 다녔는데
거기 가면 현지 학생들이랑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음.
봉사활동이라는게 그냥 수업할때 좀 도와주고
숙제 도와주고 행사있으면 지원하고 그런거임
거기 다니다보면
친해지려고 말거는 현지 학생들도 꽤 있음.
실제로 사귀는 경우도 있고
나도 그런 케이스인데
여기 사람들은 우리가 밥한끼해요 하듯이
산책하자는 식으로 약속을 많이 잡음.
우리가 생각하는 산책이 아님
거의 5~6시간 함 ㅋㅋㅋㅋㅋㅋ
공원가고 밥먹고 차마시고 이런거 다 포함임.
여튼 당시 친구였던 울 와이프가
자기 면접 끝나고 산책하지 않겠냐고 함
자기 친구 포함 셋이서.
그래서 공원에서 만나서 놀았음.
우리나라에서는 사람 만나는 것도
다 돈이라 부담될 때가 있잖아.
특히 남자들 같은 경우라면 술 마시는게 아니라면
뭘해야할지 모르겠을 때도 많이 있고.
그런점에서 사람들이 순박하고
인간관계가 머리 아프지 않고
단순해서 좋은 점도 있는거 같음.
물론 내가 외국인이라 잘 몰라서 그런것도 있지만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여기서 만난 친구들을 보면
우리보다 순박한 부분이 있음.
암튼 셋이서 만난 그 이후로도 3~4번 더 만났음.
그러다 점점 단 둘이서 만남ㅋㅋ
처음 봤을 때부터 잘 웃어서 참 예쁘다 생각했는데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느낌이었음
근데 그냥 뭔 근자감인지는 모르겠는데
잘 될거 같은 느낌이 있었음.
3번째? 4번째 만나고 전철역에서 헤어질 때는
포옹 (어느정도 친하면 그냥 인사처럼 많이함)했는데
그날은 꽉 붙들고 안놔주더라고.
여기서 뭔가 친구 이상의 감정이 있구나 느꼈음.
그 다음주에 고리키공원이라고
우리로 치면 한강 공원 같은 곳이 있는데
돗자리 펴고 딸기 먹으면서 피크닉함 ㅎㅎ
딱 5월 요즘 같은 날씨였는데
지금은 춥다는데 그때는 날이 참 좋았었음.
여튼 그날부터 사귀게 되었고
사정상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거의 매주 잠깐이라도 짬내서 산책했음.
와이프가 가이드 역할을 다 해줬고
와이프 포함 친구들이 한국말을 다했으니
결국 난 한 문장도 제대로 못써봤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비자도 다 되어가고
귀국할 시점이 되었음.
일단은 앞날은 나중에 생각하고
터키를 다녀오기로 함.
이스탄불에서 와이프 터키친구도 만나고
배타고 섬들어가서 자전거도 타보고
짧았지만 즐겁게 여행했음.
그리고 진짜 한국으로 돌아가야할 때가 되었음.
공항 출입국 심사대
제지 당할 때까지 와서 배웅해주었음.
혼자 돌아갔을 와이프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눈물남.
돌아온 이후는 사실 심신이 너무 지쳐서 쉬고싶었음.
근데 내가 다시 목표없이 취준생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또 예전의 게으르고
의미없이 방탕한 생활을 반복할 것 같았음.
그냥 어떻게든 독립하고
빨리 자리잡고 싶어서
일부러 먼곳에 지원해서 막일을 시작함.
시골이라 차도 한대 사고 자취방 얻음.
그 1년동안은 시차나 이런거 고려해서
매일 8시쯤 영상통화로 얼굴보고 그랬음.
계속하면 좋기도 하지만 사실 좀.. 피곤도 함.
그러다 코로나가 터져버리고
중간에 가보지도 못하는 상황이 됨.
점점 헤어질게 아니라면
결혼하는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듦.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그냥 말은 안 꺼내다가
한 1년 뒤에 영상통화로 결혼하자고 말꺼냄..
원래는 직장에서 와이프를
한국으로 발령낼 계획이 있어서
그렇게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청혼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 계획이 취소되어서
그냥 직장 관두고 한국으로 와서 살아보자고 말함.
그리고 영통으로 청혼해서 미안하다고 함..
다행히 웃으면서 청혼을 받아들였고
사실 자기는 청혼할 줄 몰랐다고 고맙다고 했음.
그때부터는 각자의 위치에서 결혼준비를 했음.
와이프는 회사를 사직하고 비자 받을 준비를 했고,
나도 비자발급이나
같이 살집 마련하는 것 때문에 바빴음.
공부도 많이 했고.
그렇게 비자 받아서 와이프가 오고
14일 자가격리 끝나고
1년 반만에 다시 만나게 됨.
혼인신고 마치고 정식 부부가 되었고
이젠 떨어질 걱정 안 해도 되니까 행복함.
쓰다보니까 노잼이네
암튼 인연은 있다는 말에 별 생각 없었는데
진짜 있는 것 같음
참고로 나 93년생 와이프 94년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