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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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때문에 밤을 샐 일이 있어서

학교에서 밤을 새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과 동아리형한테

“소개팅할래? 아는 동생임.” 이라고 연락이 왔다.

(금요일에서 토요일 넘어가는 밤)

과제가 우선이긴 했지만

과제 때문에 소개팅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두세시간만 자고 나가기로 다짐하고 수락했다.

토요일날 홍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주 간단한 신상정보를 받으니

이대 서양화과 라고 들었다.

여대에 다니는 사람,

크게 다를게 있을까 싶어 아무 거리낌없이 오케이.

시간이 되었고, 약속장소에 상대방이 나왔다.

외모도 예쁘게 생겼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이 선택은 패착이었는데,

본인 튀김을 좋아했고,

튀김을 직접 튀겨서 먹는 튀김 오마카세에가서

오손도손(?) 튀김을 튀기다 보면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서

튀김집을 가야겠다고 사전에 체크.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아무아무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사람이 나왔다.

보통 소개팅을 하러 상대방을 만나면

둘다 어색하기 때문에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 토크를 하게 된다.

이를테면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같은.

근데 이 상대방은 내가 하는 모든 질문과

토크에 “아니오”로 대답했다.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아니오”

“그러면 제가 아는 튀김집이 있는데 그리로 가실래요?”

“..”

“괜찮으세요?”

“네..”

우선 자리를 잡고, 튀김이 나오기전까지

나는 한 열가지 정도의 질문을 던진 것 같다.

“좋아하는 음악 있으세요?”

“아뇨”

“아 서양화과라고 들었는데

보통 작업하시면서 음악 같은 거 안 들으세요?”

“안 들어요”

“평소에 쉴때는 뭐하세요?”

“그냥 아무것도 안해요”

“취미 같은거 있으세요?”

“아뇨”

“영화나 드라마 같은거 안보세요?”

“안봐요..”

아니.. 뭔가 피드백이 있어야 물꼬가 터지고

거기로 대화라는 흐름이 이어질텐데

정말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혀서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어색함을 타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순간 얼마나 내가 마음에 안들면 이러지?

내 얼굴에 좃같음이라도 묻어있나 싶어서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쳐다봤다.

나쁘지 않은데..

..

튀김이 나왔는데 별별 재료가 튀김옷에 묻혀져 있더라.

우리의 정적을 깨는건

튀김이 보글보글 튀겨지는 소리밖에 없었다.

짱구를 굴려서 새로운 화제를 꺼내봤지만

그녀는 역시나 “아니오” 혹은 “몰라요” 로 답했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그새 말문이 막혔고,

정적이 얼마나 이어지나

속으로 시간을 세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밥먹고 맥주한잔 할까요”

“술 못 마셔요.”

“커피는요?”

“커피도요”

밥이라도 있었으면 밥먹는 것에 집중을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겠지만,

야속하게도 튀김은 한입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우리가 시킨 코스 튀김은 아직 한참은 남아서

주방에서 채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밥도 없이, 먹지도 않은채

이어지는 침묵의 시간들.

정말 정적이 오분은 이어졌을까.

답답한 마음속에 억지로 꺼낸 나의 화두는

다시금 갈길을 잃은채 허공에 맴돌았다.

말주변이 없지 않은 나로서도

더이상 새로운 주제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정말 말그대로 얼굴을 처박은채 밥만 먹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도

우린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홍대 주차장 거리에서 홍대역까지

10분정도 되는 거리를 걸었다.

정말 10분동안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역 앞에 다다르자, 그녀가 묻더라.

“어디 가시는 거예요?”

정말 그사람이 말을 먼저 꺼낸건

그 소개팅을 통틀어 처음 이었던거 같다.

“집에 가야하지 않을까해서 역으로 왔어요.

보통 밥먹고 나서 술 한잔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할까 했는데

술도 안 드신다고 하고, 커피도 못마신다고 하고,

갈 수 있는곳이 없어서 역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맥주 한잔 해요.”

놀랍게도,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아까 안 마신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마실 수는 있단다.

더 놀랍게도, 맥주를 마시러 가서도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았는데..

시간은 훌쩍 지나가서 지하철이 끊겼기에

나는 예의상 택시비를 쥐어주고 그녀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너무 황당해서

의욕없이 집에가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왜 우리의 대화는 전혀 이어지지 않았는지

생각하다 잠에 들었는데

더 놀라운 연락이 와있었다.

주선자에게 온 카톡이었다.

“00아 어제 소개팅 잘했어?

00이가 너가 마음에 들었다던데, 애프터 신청하면 될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저히 내 생각으로는 알 수 없어서

주선자에게 전화를 해 어제일을 설명했다.

주선자는 의외라면서

자기랑 있을때는 그런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카톡이 왔다.

“걔 여중여고여대 나와서

남자 앞이 첨이라 긴장해서 말을 못했대.”

순간 여자 만나기 어려워하던

내 남중남고공대군대 친구들이 떠올랐다.

아니..사람이 이렇게 까지 ㅂ신 같아질 수가 있다고?

나는 아무래도 다음 소개팅 하긴 어려울거 같다고 말하고

모솔로 지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