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0년대 후반 호주..
시드니 위치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위치한
퀸즈랜드주 한 딸기 농장..
내 기억이 맞다면,
딸기는 이른 봄 쯤에 줄기 치기를 시작하는데
이때가 외부 일손이 필요해서 잡이 열리는 시기임
혹시 모를수도 있는데
딸기는 바닥에서 자라는 장물임
그러니 모든 작업이 허리를 와전 굽히거나
쭈구리고 앉아서 해야 되는 작업임..
어떤 곳들은 각 라인들 사이사이로
바퀴달린 작업대를 넣는 곳도 있지만
이 농장은 외노자들 피 빨아먹는
시스템으로 굴려가는 농장이니 그딴건 없음.
처음 출근하니
한국사람 일본사람들이 많이 보임
한국사람들하고 인사를 좀 나눴는데
뭔가 낌새가 좀 이상함
(나중에 알았는데
“어이구 넌 또 여길 어케 왔냐.. 쯧쯧” 이거였음)
그러자 이번썰의 주인공인 톰 등장
키가 멀대같이 크고 마른
50대 쯤 되어 보이는 백인 아재였는데
“우리는 능력제가 아니라 시간제로 운영한다.
그러니까 일 시작하면
니들 엉덩이는 내 소유란 뜻이지.”
“놀지 말고 일해, 특히 쭈구려 앉지 말고 서서
허리를 굽혀서 일해야 일이 빠르다. 알았냐?”
뭐 그러려니 했음
그런데 30분도 안되서
당연히 쭈구려 앉는 사람들이 발생함.
특히나 이런 자세에 더 익숙하지 않은
유럽 애들이 훨씬 심했음.
근데 톰 이새1끼는
백인 애들이 그러면 나몰라라 하면서
아시안들이 쭈구려 앉기를 하면 계속 ㅈ랄을 하는거임
당연히 내 차례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
“헤이! 너! 새로온놈, 서서 하라고 서서. 엉덩이 들어!”
맘 같아선
“아니 왜 쟤네들한텐 안 그러냐?”
그러고 싶지만 물귀신 같아서 그냥 참았음
그리고 점심시간
여기저기서 동양인들은 톰 욕하기 바쁨.
오늘 하루만 유독 그러는게 아니구나 싶었음..
첫날이라 일 끝나고 서류같은게 잘 전달되었나
확인차 톰과 농장주와 가서 얘기를 하니
갑자기 주위 한국인들에게 주목 받음
“야야 이오빠 영어 겁나 잘해”
“이 사람한테 부탁해보자”
그러더니 그동안 온갖 하고싶은 말들을
내가 통역하는 처지가 됨
그리고 일본인 커플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아..코리안이네..”
이러면서 아쉬워 돌아가려 하길래
“당신들은 왜 그래요? 말해봐” 라고 일본말로 말하니
또 일본애들이 우루루 몰려 옴.
이걸 보고 농장주 할머니는
“젊은이 같은 사람이 여기 있어서 다행이구만!”
이러면서 날 엄청 좋게 봐주는 눈치였음
물론 톰 그 새1낀 못마땅~한 눈빛으로 노려봤고..
사실 호주에 있을 때 이런일이 허다해서
나서서 사람들 도와주는게 일상이긴 했음.
내 성향은 쌉내향-내성인데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이 나를 무슨
미친 외향인으로 착각을 함;;
반 강제로 한건데..
아무튼,
도와준거 고맙다며 먹을거 사다주는 사람도 생기고
자연스레 말도 많이 걸고
그러니 톰 눈에는 내가 안 들어올 수가 없었음
그때부터 내 엉덩이가 내려가면
무슨 자동 알람처럼 와서
“헤이헤이헤이~” 따라다니면서 ㅈ랄을 함
(ㅆ발 자우림인줄)
그래도 이건 내가 수긍한 룰이니 힘들어도 따라줬음
문제는 이제 대화를 할 때인데
어느날부터 갑자기
“자, 잘들어. 앞으로 일할땐 물론이고
쉬는 시간에도 영어로만 대화한다.”
이러는거임
어이없었지만 이미 좀 찍혀있으니
일단 가만히 두고 보기로 함
아니나 다를까 동양 애들이
서로 말 한마디만 하면 바로 와서
“헤이헤이! 난 칭챙 이런거 몰라! 영어로 하라고”
이ㅈ랄을 하는거임
그리고 유럽 애들이 자기들 말로 말하는건
절대 한 마디도 안 함.
옳타구나 시팔 물귀신이고 나발이고
바로 옆사람한테 한국말로 말 검
“헤이헤이! 잉글리쉬!”
“저기 쟤네들은 영어 아닌 말로 하는데?”
“괜찮아 대충 알아 들어”
그러길래 평소 대화 좀 터 놓은 프랑스인에게
몇마디 아는 프랑스어를 씀
그 친구도 내 의도를 알기에 받아줌
“내가 방금 뭐라고 했어?”
“……”
“ㅆ발 모르잖아 왜 아시안들한테만 그래?”
그러자 빡친 표정으로 내 앞에 와서
“너 말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한번 더 내 앞에서 그따구로 입 놀려봐”
“왜 자르게? 농장주 할머니가 그건 싫어하실탠데?”
(사실 싫어할지 어쩔지 난 모름 걍 질러본거)
“..가서 일이나 해”
아마도 그게 먹힌듯 이 개김은 무사히 넘어갔는데
그 뒤로 며칠 날 죄책감 느끼게 하려는지
한동안 유럽애들도 좀 갈굼
그러다 폭팔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날은 날도 너무 더워서
잠깐 쭈그리고 앉아서 일을 하는데
톰 그새끼가 새로온 신참한테 가서
“저기 저 앉아있는 놈 보이지,
저놈이 코리안 아재라는 놈인데
저새1끼 한번 더 앉으면 가서 졸라 패버려”
이러는거임.
그 새낀 그 말을 듣고 좋다고 처 웃고 있고
순간 나도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죽은 동태눈깔로 처다보면서
가위 구멍을 손가락에 껴고 빙빙 돌리면
휘파람을 붐
톰은 그대로 얼음인 상태로 처다보고
주위에 일하던 애들 다 멈추고
우리 둘을 처다만 보고 있었음
뭐 진짜 어쩔생각은 없었는데
그걸 보면 누구라도
‘한마디만 더 씨부려 배떼지에 가위 꼽아 버릴라니까’
뭐 이런 묵언의 분위기가 전해진거 같음
톰도 느꼈는지 진짜 한동안 그대로 서 있다가
보통은 “뭐해 일 안해?”
이럴텐데 걍 헛기침 하며 사라져 버림
이 얘기를 전해들은 숙소의 뉴질랜드 매니저,
우리들이 “마더”라고 하면서 따르는
정말 좋으신 분이 계셨는데.
“그런 래드낵들은 친해지면 못 그런다” 며
바베큐 파티를해서 부르자는거임
난 “무슨소리냐 나보고 그새1끼 음식에
농약이라도 타주란 얘기냐?”
그랬더니
“그러지 말고 한번만 이 마마 말 믿어봐.
오면 진짜 함 잘해줘봐.”
그래서 그러자 했음
톰은 딸셋을 다 대리고 놀러왔는데
날 보더니
“아, 너도 있지 여기에?”
이ㅈ랄 ㅋㅋㅋㅋ
난 딸들 보자마자
“아이고~어린 아가씨들 정말 이쁘네,
어머니가 완전 미인이신가봐
아빠 안 닮아서 다행이네?” 이랬더니
다들 깔깔대고 웃고 난리남
톰은 짜증난 눈치인데
딸들이 웃으니 어쩌지 못함
그리고 실제로 아이들은 너무 착하고 이뻐서 잘해줬음
특히 막내는 달고나도 해줌
만약 이제 다 커서 오징어 게임 봤으면
“나 ㅆ!발 저거 먹어봤는데?!!!”
이랬을거 상상하면 흐믓함
그러니까 막내 딸이 날 졸졸 따라다님.
그리고 갈 때
“오늘 딸들한테 잘해줘서 정말 고맙다. 진심이야.”
이러는데 진짜 진심인게 좀 보였음
“그리고, 갈지? 갈릭? 갈뤼?”
“갈비”
“어 갈비 졸라 맛있었어 완전 고마워”
이러고 감
다음 출근때 부터 아시아인들 건들질 않음
잔소리는 여전한데
그걸 아시안인들한테만 하는 잔소리는 없어졌고
공통적으로 하는 잔소리만 남음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난 두번 다시 올 생각은 없었지만 한번 물어봄
“톰, 나 내년에 다시 와도 되나?”
그랬더니
“그건 그때가서 보자고”
이래놓고
“뭐 온다면 그게 가장 나쁜일은 아니겠지”
이렇게 츤츤거림 ㅋㅋㅋ
다시 한번 차별은 무지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그들은 마치 나와 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 에서 시작된다는 걸 확인한 계기였음.
그래도 다시 가라면 절대 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