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에 결혼했다.
남중 남고 출신에 여자 근처도 못 가보다가
어찌어찌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운좋게 합격했어.
전처는 동아리에서 만났어.
동아리 1년 후배였고 재수해서 나이는 동갑이었지.
첫연애였다.
연애 때에는 뭔가 불같은 사랑을 했던 것 같아.
나는 조용한 타입인데 전처는 화끈한 인싸였어.
내가 끌려다니는 느낌이었지.
그렇게 연애하다가 군대도 잘 기다려줬고
졸업하고 취직해서 2002년에 결혼했어.
집안에 IMF 후유증이 많이 남아있던
시기라서 무리한 결혼이었지.
내 가정형편이 IMF 이후로 그다지 좋지 못해서
결혼은 전처의 친정에서 많이 도와줬어.
전처 부모님이 정말 좋은 분들이셨거든.
그렇게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신혼 때는 정말 좋았던 것 같아.
전처는 아이 갖기를 그다지 원치 않았어.
나도 와이프가 원하지 않는다는데
굳이 아이를 가져야 하나 해서 그러려니 했지.
전처는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어.
회사 생활도 굉장히 열심히 하고
각종 행사나 회식 등 빠지지 않고 다녔지.
나는 집에서 쉬는게 제일 좋은 사람이고
집과 회사를 시계추 처럼 오가는 스타일이라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지만
각자의 생활이 있는거라 생각했어.
일주일에 3일은 회식이네
사내동아리 모임이네 등등의 행사로
밤늦게 귀가했고
주말에는 동호회니
친구들 모임이니 항상 바빴지.
나는 집에 와서 혼자 밥차려 먹고
책이나 TV를 보다 잠드는게 일상이었고
어쩌다 전처가 일찍 와도
각자 할일 하다가 잠들고 그랬어.
각자의 생활은 터치하지 않는다 라는 쿨함?
같은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게 무뎌지고 무관심해졌지.
나중에는 결혼생활이라는 느낌보다
쉐어하우스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원래 서로 잘 싸우지 않았는데
명절에 양가 선물과 방문 문제로
한번 크게 다투게 됐어.
전처가 이혼하자고 하더라고
나에게 뭔가 쌓인게 많았는지
엄청나게 쏴붙이더라고.
그리고 나도 우리가
거의 하우스메이트 정도로 대하던 때고
결혼생활에 큰 미련이 없던지라
쉽게 그러자고 대답했지.
내가 양가에는 말씀드려야하지 않겠냐고 말했더니
굳이 그럴 필요 있냐더라.
전처 입장에서 시댁인 우리 부모님은
IMF때 사정이 좋지 않게 돼서
결혼할 때 금전적으로 도움을 못 주셨어.
나야 길러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전처 입장에서는 섭섭함도 있었겠지.
그래서 우리 부모님 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하지만 반대로 전처의 부모님은
나에게 정말 잘해주셨거든.
그래서 전처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찾아뵙고 이혼하게 됐다고 말씀드렸어.
서로 외도 같은 유책 사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렇게 사는게 맞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씀드렸지.
전 장인어른께서는
굉장히 너그럽고 점잖은 분이셨는데
나한테 딱 하나 물으시더라.
“자네 불행한가?” 라고
나는 “행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냥 쓴웃음 지으시면서..
“그런가? 허허 그렇군. 그래. 잘 가게.”
하시더라고.
얼굴 뵌건 그게 마지막이었지.
나중에 전처가 알고서 한바탕 싸우긴 했지만
네 아버지가 아니라
나를 아껴주셨던 어른께 도리를 한거다
라고 말했더니 더는 아무 말 못하더라.
그렇게 합의이혼 서류 작성해서 제출하고
한달동안 숙려기간을 가졌는데
웃긴게 그 한달동안
그냥 같은 집에서 지냈다는거지.
그냥 평소대로 소 닭보듯 말이야.
재산분할은 결혼하면서
집은 전처의 처가에서 해준 집이었고
차도 전처 아버지가 결혼선물로 해주신 거라
애초에 별 미련이 없었다.
통장도 각자 관리했고
생활비만 서로 얼마씩 각출했었으니..
다만 차는 내 명의로 돼있었고
전처는 명의 이전하고 어쩌고 번거로우니
그냥 가져가라고 해서 그냥 내가 끌고 왔지.
숙려기간 마치고 법원에 다시 출석해서
협의이혼 의사 확인절차 하는데
굉장히 기계적이더라.
은행 같이 대기표 뽑고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가니까
그냥 면접 보는 곳 같은 분위기인데
자녀가 없으니 절차가 정말 간소했어.
“협의 이혼 하시겠습니까?”
“예.”
하고 끝이야.
이혼 확인 증명서인가 받아다
주소지 관할 구청에 신고하면 끝이지.
2006년 가을에 이혼했다.
이혼서류에 적힌 이혼사유는 성격차.
이혼하고 부모님께 엄청나게 죄스러웠어.
부모님은 굉장히 금슬이 좋고 서로를 아끼셨거든.
부모님과 함께 살 면목이 없어서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 하나 얻고
거기서 혼자 생활했지.
이혼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실감이 되면서 내 마음이 무너지더라.
연애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인생의 삼분의일을 함께 했던 사람과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라니..
한 일년정도 힘들었던 것 같다.
2년 정도 지났는데
같은 과 후배였던 놈한테 전화가 오더라.
그 후배놈이 전처랑 같은 회사를 다녔거든.
형수님 바람 피우시는 것 같다고.
“나 이혼한지 2년 됐어 임마.” 하니까
당시에는 “아 그러시구나” 하고 끊었는데
나중에 후배 만날 일 있어서 이야기 들어보니까
나랑 이혼하기 전에도 만나는 사람 있는 것 같았는데
확실치도 않은데
괜히 큰일 만드는 것 같아서 이야기 못했대
뒤늦게 말씀드려 죄송하다고 하더라.
뭐 이혼한지 2년이나 지난 시점이라
별 다른 감흥도 없더라.
전처 다니는 회사가 큰 회사라 선후배들 많은데
참 대담하네라는 생각은 들더라.
왠지 정떨어져서
이혼할 때 가져온 차 팔고 새차 샀지.
그 차에 추억이 있었거든..
지금의 와이프는 독서토론회라는
동호회에서 만났어.
책을 좋아해서 절판된 책을 찾아 검색하다가
독서토론회에 가입하게 됐는데
거기서 만났어.
놀라운게 동호회 가서 보니까
낯익은 얼굴이 있는거야.
내가 책을 좋아해서
집 근처 대형서점을 자주 갔거든.
이혼남이라 남는게 시간이더라고.
퇴근하고 서점 들렸다 집에 가는게 낙이었어.
이혼하고 혼자 사는 남자가
집에 일찍 가봐야 재미날게 없잖아.
그 서점에서 종종 보던 얼굴이었어.
물론 나는 찐따라
먼저 말을 걸거나 그러지는 않았지.
참하게 생겨서 몇번 스치듯 지나간게
기억에 남았던거야.
첫모임날 거기 대장이
처음 온 회원이라고 호구 조사하는데
“oo씨는 여친없어요? 결혼했어요?”
“어..저 이혼했어요.”
“어머?! 애는요?”
“없어요.”
“아 그러시구나 이혼남이구나. 돌싱이셨네.
오호호호호호”
얼결에 밝히긴 했는데 잘 됐다 싶었어.
어쩌겠어. 사실인데.
책을 좋아해서 독서동호회 활동을 나름 열심히 했어.
동호회 사람들도 이혼남이라도
딱히 불편하게 생각지도 않고말야.
물론 그 동호회라는게 만나서
막 떠들고 어디 놀러가고 그런게 아니라.
그날 읽을 책 들고 어디 북카페 같은데 가서
자리 잡고 읽고
서로 좋은 책 추천해주고 그러는데거든.
말 거는데까지 한달 넘게 걸렸어.
그냥 모임에서 만나서 인사하고 책 이야기하고
집이 서로 가까워서 그랬는지
대형서점에서 자주 마주쳤거든
내가 퇴근하면 무조건 서점에 들렸다 집에 갔으니까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어.
나는 이혼남이잖아.
뭔가 더 다가가고 싶은데
자격지심 때문인지 스스로 선을 긋게 되더라.
그렇게 동호회 생활 찐따스럽게 했었는데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이었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뒹굴거리며 책 보다가
창 밖을 보니 날씨도 좋고
방구석이 왠지 서글퍼서 책 냄새도 맡고
점심도 해결할 겸 서점에 가서 책 고르고
서점내 카페에 앉아서 샌드위치 대충 먹고 있는데
맞은 편에 누가 물어보지도 않고 털석 앉네.
마음속 동호회녀였어.
샌드위치 맛있냐며 자기도 사달래.
사줬어.
마음 속으로 흠모 비슷하게 하고 있는 사람이
내 앞에 있는데
어쩔 줄 몰라서 도망치고 싶었어.
날씨 너무 좋다고 요 앞 호수공원 가자고 그래서
끌려가듯 공원으로 갔어.
기분은 너무 좋은데
완전 뻘쭘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네.
그러다 저녁 즈음되서 배고프다고
꼴에 남자라고 뭔가 잘 먹이고 싶어서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어.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대.
나는 술이 약해.
정말 약해.
진짜 약해.
남자라고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서
같이 맥주 마셨지.
그러다가 동호회녀가 물었어.
“오빠 어떤 일이 가장 하고 싶어요?”
부모님 생각이 났지.
IMF에 형편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음에도
항상 서로를 지극히 아끼며
나와 내 동생에게 최선을 다하시던 모습.
괜찮은 직장 다니시다가 IMF로 정리해고 되시고
노가다부터 닥치는대로 이일 저일
마다하지 않으시고 애쓰던 아버지.
한푼이라도 보태신다고
식당일부터 여관청소까지 하시던 어머니.
그런 부모님 보고 엉엉 울면서 대학 그만두고
일해서 부모님 짐 덜어드리겠다던 착한 동생.
그리고 이혼해서 청승이나 떨고 있는 내 모습.
동호회녀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데
막혔던 무언가 터지면서 눈물도 터졌어.
으흐흐흑..해..행복한 가..가정..꾸미고..
으허어엉..부모님..께..죄..어헝..죄송..어허엉
술이 약해 얼굴은 시뻘게 져서
정말 추하게 울었던 것 같아.
와이프가 그때 엄청 놀랐대.
“어떤 책이 가장 읽고 싶어요?”
뭐 그런 식으로 물었다나봐.
나는 술 기운에 내 듣고 싶은데로 듣고
내 울고 싶은데로 울고
지금 생각하면 쪽팔려 죽을 것 같아.
차라리 필름이나 끊기지 그러지도 않았어.
와이프는 그 때 이야기하면서 아직도 막 웃는다.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그날 일산 호수공원 근처 패미리 레스토랑에서
막 울던 새끼가 나야.
치사량을 넘긴 쪽팔림에
동호회도 안나가고 서점도 못 갔어.
마주치면 쪽팔려 죽을 것 같았거든.
동호회도 탈퇴하는게 나을 것 같아서
간만에 다음 카페에 접속해보니
동호회녀에게 쪽지가 와있네.
네이트온 아이디 알려주면서 연락 좀 달래.
그냥 잠수탈까 하다가
네이트온 친추하니까 바로 챗이 오더라.
토요일 만나자고.
2009년 12월 5일 만났지.
스벅에서 만났는데 대뜸
“오빠 나 좋아하죠?”
진짜 오장육부 다 떨어지는 줄 알았어.
“에? 아니에요.”
“다 알아요. 나도 알고. 동호회원도 다 알아요.
오빠가 갑자기 동호회 활동 안해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찼냐고 그래서 난처했어요.”
“아.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해요.”
“왜요? 나도 좋은데”
“??? 저 이혼했는데요..?”
“그러면 저한테 더 잘해야겠네요.”
뭐 이런 대화가 오간 것 같아.
그날 또 스벅에서 울었어.
나 원래 잘 안 울어. 정말이야.
마음고생이 심했거든.
와이프는 내가 모임에 처음 갔을 때
이혼남이라고 해서 좀 마음에 벽같은게
알게 모르게 있었다나봐.
그런데 맹추같이 책 이야기 나오면 똘망똘망해지고
다른 이야기 나오면 관심없이 책이나 보다가
자기 흘끔흘끔 보고 그러는게
나쁘지 않았다나봐.
그런 내 행동이 자기 뿐만 아니고
다른 동호회원들도
아 저 책벌레 새끼가 쟤 좋아하는구나
하고 다 눈치 챌 정도였다나..
그렇게 연애하다가 2010년 결혼했어.
그리고
서로에게 무관심하지 말기
마지막으로 돌아올 곳이 집이기에
항상 따듯하게 맞아주기
이 두가지 약속으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할거야.
지금 나는 초등학생 아이의 아빠이고
진짜 결혼을 하게 된 기분이야.
열심히 생활하는 와이프 눈치보며 살고 있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긴 이야기,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