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잘 알아보지도 않고 애가 생겨 덜컥 결혼한 두 사람의 뻔했던 결말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난 사고쳐서 결혼한 케이스임.

나도 지금와서는 내가 참

사람 보는 눈이 없었구나 라고 생각함.

그때만해도 나보다 몇살 어린 그 사람이

나보다 어른스럽고,

나보다 더 생각이 깊다고 생각했음.

그리고 사고치긴 했지만 얻어쳐맞을 각오하고

처음으로 정장이라는걸 맞춰 입고

그 사람 집에 찾아갔음.

다행히 그 사람 새아버지 되시는 분이

인격적으로 나쁘신 분이 아니셔서 대화로 끝남.

아무튼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분명히 얘기한건

맞벌이하면 서로 월급이 얼마가 됐든,

노동강도가 얼마나 됐든, 집안일은 반반 할거고

내가 혼자 돈버는 중에는 집안일,

육아는 그 사람이 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물론 임신중인 그 사람이 당연히 힘들거 알았고,

그래서 밥은 그사람이 하면 설거지는 내가.

빨래는 내가.

청소는 힘쓰는건 내가,

힘이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는건 그 사람이 했다.

근데 그것도 불만이었나봐.

그 당시만해도 이십대 중반 하사였어.

장기도 안된 상태에서 덜컥 아이 아빠가 된거라

무서운 것도 많았고,

전역을 생각하고 있던 내가

이제는 장기복무를 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뒤늦게 달리기 시작해야한다는 것도

그냥 앞날이 캄캄했지.

그래도 열심히 달렸어.

그러다가 아기가 태어났고.

진급을 했고.

내가 직업군인이라서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다 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설거지 청소는 거의 내가 도맡아했다.

빨래는 세탁기가 있으니까

빨래 정도는 해달라고 했지만

사흘~나흘정도는 기본으로

빨래가 안 돼있는 날이 빈번했고,

그냥 답답해서 내가 빨래를 하고는 했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고

1년여를 좁아터진 18평 군관사에서 살다가

30평 초반대의 군인아파트를 신청했던게

순번이 돌아와서 이사를 했다.

처음엔 되게 좋았지.

장기가 된날은 그 사람을 부둥켜 안고 울었음.

일주일간 부대에서 오대기 임무하고 퇴근했는데

오자마자 설거지 안해준다고 짜증내는거?

그 정도 참을 수 있지.

주거비용지원 80여만원 나온거

카페가는데, 친구 놀러와서 만나는데 쓴거?

그정도 참을 수 있지.

나도 학자금 대출이 있어서

그거 갚을 때까지만이라도

경제권은 내가 들고있겠다고 했지만.

그게 마냥 불만이었나보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건,

항상 시비를 걸고 욕을 해도 참았다는거임.

먼저 욕한적도 없고,

항상 대화로 풀어보려고 했지만.

비꼬고 욕하고 인격적으로 모독 당하는데

화가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결코 그 사람을 향해서 던진건 아니야.

물건 던진거 잘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그렇게 싸움의 골이 깊어질 때마다

내가 먼저 사과하고,

내가 잘못한게 없어도 미안하다. 잘못했다.

하면서 지냈다.

매번 내가 사과하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때로는 무릎도 꿇는게 마음에 안 들었던건가.

어느날 새벽에는 갑자기

집을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온다고 하더라.

나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동네에서 나보다 한두살 더 많은 여학생이

웬 미친놈한테 칼맞아 죽은적이 있어서

나도 밤이나 새벽에는 잘 안 나가는데

위험하다고 나가지 말라고.

이 새벽에 어딜 나가냐고 손목을 붙잡았는데,

기어코 나가겠다고 내 손을 뿌리치더라.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갑자기 한밤에 짐을 싸더라.

이 밤에 어딜 나가냐고 하니까

애기를 안고 가려고 하길래

애기 어딜 데려가냐고 물어보니 집을 나갈거라더라.

이 밤에 애기를 데리고 집을 나간다니.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애기를 빼앗아 안았는데

내 팔을 쥐어 뜯으면서 애기를 달라고 소리치더라.

내 팔에 상처가 나는줄도 모르고 애기를 안고 있다가,

그 사람이 애기 팔을 손톱으로 긁는 순간

나도 정신이 나가서

뭐하는 짓이냐며 그 사람을 밀쳤다.

그리고는 친정으로 짐싸서 갔고.

그 사람 집에 찾아가서 이만하면 됐지 않느냐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더니

이혼하자더라.

여자 패는 사람이랑은 못 살겠다더라

ㅋㅋ..

폭행? 결단코 저 위에 설명한 저 두번.

처음엔 벙쪄서 변호사를 찾아가봤다.

내가 새벽에 나가지 말라고

손목을 세게 붙잡아서 팔에 멍이 든 적이있고,

밤에 애기를 안고 나가려고 하길래

방어하다가 밀친게 폭행이 되냐고.

변호사도 웃더라.

이혼소송으로 가면 내가 귀책사유가 없어서

이혼 원하지 않으면 안될거라고 하더라.

다만 그 사람이 너무 강경하게 나오면

판사도 이혼하는게 어떻겠냐고 권할거라고는 하더라.

처음에는 온갖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싫단다.

자기는 자기 삶을 살거란다.

애기는 어쩔거냐고 했는데

자기 인생이 있어야 애도 볼 수 있는거란다.

맞는말이긴 한데.

그래도 애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이혼 조정을 했다.

나 싫다는사람. 붙잡고 있어서 뭐할까.

하는 마음으로.

애기는 내가 키운다고 하니

흔쾌히 양육권 친권 넘겨주더라.

처음엔 양육비는 안 받겠다고 했다.

대신 애기랑 면접교섭 한달에 두번만 일정하게 해달라.

한번은 니가 오고 한번은 내가 간다고.

알겠다더라.

그렇게 약속한 바로 다음달

면접교섭 언제언제 올거냐고 물어보니까

제주도 한달살기 예정이라 애기 못본댄다.

ㅋㅋ

아니 ㅆ1발 이게 말인가 싶어서

그럼 애기보러 안 올 때는 양육비로 달라고 했다.

1회 10만원.

직장이 잡히면 준다길래,

무리해서 안줘도 되니 직장 잡히면 그때부턴 주고,

그 전에는 면접교섭 성실히 해달라고 했다.

그사람이 제시한 면접교섭 1일, 31일

2주마다는 아니지만 월 2회니까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안 오더라.

제주도에서 신나게 사진 찍어서 프사 바뀌고

그냥 난리도 아니더라.

그 다음달, 이혼판결이 났다.

면접교섭? 안 오더라.

그래서 물어봤다.

물어보니까 그제서야 온다더라.

근데 그때 코로나 대규모로 딱 터졌을땐데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온댄다 ㅋㅋ

장모님차 타고 오랬더니 장모님 시간 안된댄다.

그래서 코로나 괜찮아지면 오든가

장모님 차타고 오랬더니

의사가 괜찮다는데 니가 뭔데 애를 못보게 하냐

그러더라.

그냥 이제 미친년인가? 싶은 마음 밖에 없어서

나도 화딱지가 나서

그럼 내 애 말고 의사 애 보러가라고 했다.

그러더니 온갖 욕을 다 하고나서 차단하더라.

그리고 잊고 살려고 하는데

애기가 물어보더라.

엄마는?

할말이 없어서 애기 안고 울었다.

펑펑 울었다.

내가 죄인이고 내가 잘못해서

우리 애기가 괴로운 인생을 사는구나.

애기 권리라도 찾아주려고,

양육 환경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양육비 요구를 위해서 문자를 넣었다.

답변이 없다.

치졸하지만 카톡 부계정을 파서 그 사람을 친추했다.

이혼한지 한달.

프사에 남자친구랑 찍은 사진 올려져있더라.

멘탈이 마구마구 흔들렸다.

제정신을 찾기가 힘들었다.

부대에서도 항상 힘들어도 웃던놈이

표정이 우울한게 티가 난건지

대대장이 면담을 좀 하자고 하더라.

곧 죽을놈 같은 얼굴이어서 걱정된다고 하더라.

애기 생각해서 정신 차렸다.

양육비 소송을 시작했다.

근데 육군 중사가 무슨 돈이 있냐.

그래서 양육비 이행관리원에 신청했다.

여성가족부가 내 인생에 딱 한번.

도움이 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반년 기다렸다.

무료 법률공단으로 연결해주더라.

또 반년 기다렸다.

그렇게 대강 1년을 기다리고 재판에 들어갔다.

20분만에 끝났다.

판사가 물어보더라.

한달에 40만원 달라고 하셨는데

상대방이 직장이 없네요. 20만원은 안되겠어요?

나는 애기 키우는데 도움된다면

얼마가 됐든 마다하겠냐고 하니까.

그 사람이 그러더라.

지금 남자친구 집에서 지내고

남자친구 돈으로 생활해서 돈이 없다. 못준다.

ㅋㅋㅋㅋ ㅆ1발아.. 자랑이다.

법률공단 변호사도 얼탱이가 없는지

웃으면서 말하더라

판사님 편의점 알바만해도 180만원을 받는데

돈 없다고 20만원을 못 준다는게 이해가 안가네요.

남의 자식도 아니고요 허허.

판사도 어이없어 하는 눈으로 쳐다보더라.

그래서 20만원으로 하기로 했는데

뒤에 따라들어온 장모가 갑자기 발언권을 요청하더라.

그래서 무슨 소리 하나 했는데

20만원 주면 그걸로 딴짓할 지

우리가 어떻게 알고 돈으로 줍니까?

옷이나 신발 같은거로 사서 보내면 안됩니까?

판사 빵 터졌다.

아니 20만원이 얼마나 되는 돈이라고

그걸 딴짓을 합니까.

애 키우는데 20만원이 큰 돈이라고 생각하세요?

장모가 할말을 잃은듯 했다.

아니 애 양육비 20만원 주는거 딴데 쓸까봐

전전긍긍한 양반들이

애는 나한테 어떻게 맡겼대..

뭐 아무튼

판사님이 화해권고로 마무리 해주신다더라.

그래서 이달 말부터 입금하라고.

그렇게 내 인생의 20퍼센트 가량을 함께했던

사람과의 치열한 싸움이 끝났다.

아니 아직 안 끝났을 수 도 있다.

안주면 또 소송 해야지.

ㅅ1발..

긴 얘기 읽어준놈은 고맙고.

안 읽고 걍 스크롤 내린놈도 고맙고.

오늘은 당분간 끊었던 술한잔 하려고.

그전에 답답한 것 좀 풀어보려고 글쓴다.

+약 2년 후 후기

예전에 이혼 썰 적었던 사람이다.

당시에 위로도 많이 받았고

혹시나 근황 궁금한 애들한테 하는 얘기지만

지금은 딸내미 잘 키우고 있고.

다음달부터는 내년에 딸내미 초등학교 입학이라

좀 육아에 전념하고 싶어서 육아휴직 냈음.

뭐 아무튼

결혼생활에 사랑이란게

사실 별거 아닌거 같이 느껴져도

생각보다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함.

난 전처를 너무 사랑해서

이혼은 막아보려고 무릎꿇고 빌어도 보고 울어도 봤다.

내가 솔직히 잘못한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먼저 욕한적도 없고

항상 내가 인격모독 당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서 모든걸 다 이겨내고 넘겼는데

전처가 이혼 이야기를 꺼내고부터

어느순간부턴가 나만 사랑하고 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라는 느낌이 막 들더라.

그때부터는 뭐 일사천리였고

눈에 씌였던 콩깍지도 다 떨어져나감.

사랑하는 것도 중요한데

사랑 받는 것도 결혼생활에

되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함.

내가 사랑받고 있지 못한다. 라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고 봄.

후기 적고있긴 하지만 별 후기도 아닌게

그냥 전처는 그 이후로 애 본 적이 없다.

엄마 없이 크고있는 우리 딸 생각해서

한번 보러와라 연락도 했는데 답장도 없었다.

양육비 내는게 화가 나는건지

혼자 욜로 인생 즐기는게

지 딸도 생각 안날만큼 너무 좋은건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고

그냥 남자 만나고 여행다니고 재밌게 산다고 들었다.

나는 그냥 엄마 없이 커야하는 딸한테

너무 미안할 뿐이다.

지금 결혼생활 중인 사람이라면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

아직 결혼 안한 애들은 사랑해줄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 만나서 결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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