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인생은 35살에 결정 납니다’
이전에 모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된 글이다.
생각보다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내용 대부분은 미뤄 짐작할 수 있듯이 분노로 점철된 반박이었다.
그 중 내 눈에 띈 것은
‘그럼 커넬 샌더스는?’ 이라고 적힌 물음이었다.
나이 35살에 인생이 결정되면
65살 노년의 나이에 KFC를 설립해
세계에 치킨 제국을 퍼뜨린 전설적인 인물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뉘앙스였다.
그래서 글 쓰기에 앞서 샌더스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짤막하게 끄적여보고자 한다.
본명 할랜드 샌더스.
6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재혼한 새 가족과의 불화와 의붓아버지의 폭력으로
고작 14살 나이에 독립한,
그야말로 뭐 하나 잘날 것 없는 흙수저의 전형이다.
실제로 인생 대부분을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일자무식의 샌더스는
도전하려는 의식만큼은 누구보다 강렬했는데
일반인 같으면 부랑자가 되고도 남을 환경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돈을 벌었고
심지어 출생일을 조작해서
군에 입대하기까지 하는 악착같은 면모가 있었다.
19살에 결혼해 애를 3명이나 낳았으니
남들 같으면 ‘내 인생은 이제 끝났어.’ 할 법도 하지만
그는 남들 같은 안정적인 삶을 거부하는 인간이었다.
그렇게 막노동과 온갖 잡일로 번 돈을 모두 끌어모아
샌더스는 나이 30에 첫 사업을 시도한다.
오하이오 강을 건너는 정기 운반선 사업이 그것이었다.
참고로 샌더스가 벌인 사업임에도
투자자로서의 그의 지분은 얼마 없었기 때문에
명목상의 사업주일 뿐이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현장 인부로 일했던 기록이 있을 정도니
그의 성공을 위한 노오오력은
가히 범인의 수준을 넘었다고 봐야겠다.
하지만 샌더스의 이 첫 사업은 자동차의 보급과
오하이오 강을 잇는 다리가 건설되면서 망하게 된다.
샌더스는 노오오력과 무관하게 시작부터 실패자였다.
하지만 샌더스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10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하며 재기를 노린다.
나이 40살에 시작한 주유소 사업.
그러나 샌더스 인생 2막의 희망이었던
주유소 역시 운이 안 좋았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경제 대공황이 터진 것이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는 인생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낙담하지 않고
빠른 재정리 후 두 번째 주유소를 열었는데
레스토랑을 겸해 운영하는,
당시에 꽤 별난 콘셉트의 사업이었다.
사실 레스토랑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규모의 쪽방에서
샌드위치와 닭을 사용하는 간이 요리나 내놓는 수준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취생활을 해온
샌더스의 기가 막힌 손맛 덕분인지
입소문을 타 결국 이번에는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물론 그 길 역시 순탄한 편은 아니었다.
건너편의 경쟁사 주유소에서 샌더스의 가게 간판에
페인트칠을 하는 등의 사보타주를 빈번하게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에 격분한 샌더스가 한차례 경고 후
직접 총을 들고 간 일화를 보면
그의 불같은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실제 총격전까지 이어진 이 사건에서
샌더스의 직원 한 명이 사망했고
대응 사격한 샌더스는 구속됐으나 곧 정당방위로 풀려난다.
최초 사격한 경쟁사 사장은 살인죄로 18년 형을 받았다.
경쟁사가 주춤하는 틈을 타 샌더스는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고
추후에는 자신의 닭튀김 요리에 확신을 얻어
아예 레스토랑 사업으로 전향하게 된다.
레스토랑 옆에는 모텔을 지었다.
이때가 샌더스의 나이 50살, 네 번째 도전이었다.
곧 샌더스의 레스토랑은 지역의 명물이 됐고
얼마나 그 명성이 대단했는지
샌더스는 켄터키주 주지사로부터
‘커넬’이라는 명예 호칭을 받기에 이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커넬 센더스’의 이름은 여기에 기인한다.
참고로 샌더스는 상원의원에도 도전한 적이 있다.
몇십 표의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지만..
그러나 그 행복은 10년이 가질 못했다.
1949년, 레스토랑은 화재로 전소되어버렸고
모텔 사업은 2차 세계대전을 대비해
정부에서 민간에 공급하는 가스를 중단한 이후로 망조를 탔는데
식당 근처에 고속도로가 생겨버려서
적자에 허덕이다 얼마 안 가 파산해버리고 만다.
이제 그에게는 남은 것은 낡은 포드 자동차 한 대와
노인연금 100달러가 전부였다.
그러나 샌더스는 남들과 다른 유형의 인간이었다.
보통이라면 이쯤해서 인생의 모든 도전을 접고
정부 보조금에 기댈 법도 한데
샌더스는 포기를 모르는 악착같은 인간이었다.
그는 전미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치킨 요리법을
인센티브형식으로 판매하려 했고
그 노력은 1009번째 방문에서
투자자 피트하먼을 만나며 열매를 맺는다.
1000번의 실패 끝에 유타주에 연 치킨 레스토랑
KFC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 ‘웬디스’의 창립자 데이브 토마스를 만나
치킨 한 조각당 0.04달러의 기술특허사용료를 받는 등
사업을 확장해 갔고
당시 레스토랑에서 수십 가지의 메뉴를 팔던 것과 달리
오로지 치킨과 샐러드만 팔던 KFC는 10년 만에
가맹점포 수 600여 개의 엄청난 프랜차이즈로 성장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자작하게 튀기던 기존의 남부식 치킨은
한 마리를 조리하는데 무려 30~40분이 걸렸지만,
샌더스가 시도한 압력솥 튀김은
조리에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 주효했다.
10년간 직접 연구 개발한 백후추 기반의
특이한 조리법도 (오리지날) 선풍적인 인기의 원인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커넬 샌더스를 나이 60에 도전해서
성공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커넬 샌더스의 삶은 평생이 투쟁이었고
완벽주의를 향한 도전이었다.
심지어 KFC 사업권을 매각한 이후에조차
KFC 가맹점들이 본인 기준에 만족스럽지 못하자
내 명예가 훼손됐다며 경영진을 신랄하게 비난했고
나이 70에 새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하며
본인이 세운 KFC와 고소전까지 벌였다.
나중엔 KFC의 새로운 소스를 보고
내 개도 안 먹겠다며 매년 연금을 주는 KFC와 대립했다.
샌더스는 그런 인간이었다.
90세에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끝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
일부 사람들은 샌더스의 성공신화를
나이 60살 먹은 노인의 뜬금없는 벼락 성공이라 여기는 듯하다.
샌더스도 나이 65세에 성공했으니
나도 늦지 않았다고,
뭐 그런 방어기제로 쓰는 것 같더라.
샌더스는 확실히 35살에 망한 인간이다.
40대에도 망했고 50대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역시 또 망했다.
하지만 망해도 계속 무언가를 도전하는 인간이었다.
샌더스가 14살에 독립할 때부터 그의 삶의 방식은 그랬다.
삶의 방향성이 달랐는데
흐리멍덩하게 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이
나이 60살의 샌더스를 본보기로 삼으며
‘나도 할 수 있다!’ 하는 건
평생을 투쟁하며 살아온 샌더스에게 모욕적인 말 아닐까?
안전한 길만 걷길 바라는 소시민적 삶이 나쁜 건 아니지만
소시민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이
왜 도전하는 자의 과실을 희망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건 방향성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35살 이전에 분야를 막론하고
일정 이상의 성과를 내거나
그에 준하는 노력을 하며 경험을 쌓는다.
반면 35살까지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흐리멍덩하게 살아온 사람은
45살이 되던, 55살이 되던
대체로 삶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
관성과도 같다.
흔히 말해 굴종의 삶, 눈치 보며 대충 하루를 때우는 삶.
글의 맥락은 ‘35살 이전에 정해진 진로로 삶이 결정된다.’가 아니라
35살까지 굳어진 삶의 방식이
대부분의 삶을 결정한다는 얘기일 뿐이다.
글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 못 하면서
실질적 문맹처럼 우쭐대며 반박하는 댓글들의 군상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