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건강검진’을 절대 미뤄서는 안되는 제일 큰 이유

때는 2017년도로 돌아감

우리 가족들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평소와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음

아버지는 퇴직하시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돈은 얼마 안되지만 구청에서 공공근로 하는 일을 하셨다

뭐 하는 일은 공원 같은데 보면 뭐 공원 관리하는 업무?

기간은 뭐 길지 않아서 3개월 정도 하셨음

어느 때와 다름없이 화기애애 하던 우리가족에게

슬픈 소식이 전해진건 9월부터였음

아버지가 공공근로 하시다가 6월에 종료되고

7월부터 집에 있는일이 많아져 누워있는 날이 훨씬 많아졌다

그래서 걱정되어서 어디 아픈지 물어보면

‘피곤해서 그래’ 라고 대답을 하셨음

그러면 우리 가족들은 ‘아 그런거야?’ 하고 말았음

이때 병원에 데리고 갔어야 했었음.

10월 추석에 친척들이랑 다 같이 모여서 밥먹는데

삼촌이 아빠한테 요즘 운동하는지 물어보고

간단한 조깅 정도만 한다하니까 대구 작은 삼촌이

자전거 한대 보내드릴테니

자전거 타고다니면서 운동 하시라고 이야기 하심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건강검진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건강검진 받았냐 묻기에 시간이 없어 못 받았다 하니

대구에 계시는 삼촌이 너 시간되는 날

아빠 모시고 건강검진 받으러 같이 다녀오라고 나에게 전달했음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추석을 지내고 3일 뒤였나

나랑 동생은 출근 전 엄마한테

아빠 데리고 병원가서 건강검진 받을겸

기운이 없어보이니까 링겔 좀 맞춰드려라고 했던 말도 떠오름.

그래서 엄마는 알겠다고 하고 우린 출근.

점심쯤 다 되어서 엄마한테 문자가 왔음

‘OO병원 몇호실 아빠 며칠간 입원 좀 시켜서

다른데 뭐 검사 해야된대’ 하길래

아무렇지 않게 ‘아? 그래’ 하고 넘어갔었음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집에서 엄마가 이야기 하는데

10분 가는 병원을 몇시간이 걸려 도착했다고 하더라

걷지도 못할 정도로. 그땐 뭔 일이 있던건지 의아해했음

나랑 동생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단순 검사만 하고 금방이라도 퇴원할 거라 생각했음

그렇게 한 2주인가 있다가 엄마가 아빠 건강 검사한거 결과 때문에

의사선생님 만나러 간다고 전화가 왔음

그러고 퇴근 후 집에오니 엄마는 울고 있었고

뭔일인지 싶어 동생한테 되물었봄

동생도 엄마가 말해준걸 들었나보더라

엄마가 울음을 멈추고 ‘oo아 아빠가 담관암 말기래’ 라고 함.

난 되물었음 ‘뭐? 담관암 그게 뭔데?’ 묻는데

엄마가 아빠 어떡하냐.. 하면서

몇개월 밖에 못 산대 이야기 하는데

뒤통수 씨게 얻어맞은거 같았음.

그래서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랬더니

엄마는 치료 방법도 없고 아빠는 모르고 있다고

입원만 하는거로만 알고 있다고 함

그래서 그날부터 퇴근하면 매일 병원가고

늦으면 아빠 얼굴이라도 보고 옴

며칠뒤 간호사가 우리 가족들을 따로 부르더라

그 아빠한테 이야기는 했냐고 묻기에

아직 안했다고 하니 ‘아.. 네..’ 그러다가

‘나중에 상태 안 좋아지면 심폐소생술 하실거죠?’ 라고 함

갈비뼈 부러질 수도 있다는 등 동의를 하고

다가오는 주말에 아빠한테 말하기로 결정함..

그러다 주말이 됐고 병원에 엄마랑 동생이랑 나 그리고

외갓댁에 모인 친척들이 왔고 아빠는 참 행복해 하셨음

친척들이 다 가고 울 가족만 남았을 때 알려아 할 거 같아서

아빠한테 ‘아빠 나 할말..’ 까지 이야기 했는데

‘나 많이 건강 안좋다 그러디? 얼마나 더 있어야 한다니’

‘병원에 있으니 지루하다 어디 놀러 가고싶네’

라고 이야기 하는데

눈물 나오려는거 꾹 참고 이야기 하지도 못하고

병원 화장실에서 변기 보는데서 문 걸어잠구고

소리없이 꺼이꺼이 울어야만 했음

그래서 그러고 10월 중순 주말에 아빠가

병원에만 있는게 많이 지루할까봐

병원에 이야기 하고 아침 일찍부터 외출했음

바깥구경 쐬고싶다는 말에

기장 쪽에 경치 좋은 곳으로 갔음..

바다 쪽이라 엄청난 바람이 불었는데

외출 완전 실패했는데도 아빠는 엄청 좋아했음

‘아들 좋다 oo엄마 oo아 이리와 여기 뷰 좋아’

하면서 말이지

그게 우리가족의 마지막 여행이였음

그리고 그 근처에서 식사도 했는데

그 음식이 같이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몰랐거든.

외출을 마치고 엄마랑 동생을 집으로 보낸 후

단 둘이 남은 차 안 아빠가 한마디 했다

‘아들 오늘 아빠한테 좋은 구경 시켜줘서 고마워’ 하는데

눈물이 핑 돌기에 애써 울음을 참고

‘아빠 담에 또 가요’ 하니까

‘그래 아들 또 가자 약속했어 하하’ 호탕하게 웃었던

마지막 아빠의 음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 또 1주일 후 점심시간이 끝나고

어느 때와 같이 일을 하기 위해 출근했고

오후 근무위해 휴식 취하고 들어가는 찰나

동생한테 전화가 왔음

‘여보세요’ 하는 순간 사이렌 소리가 들림

동생이 ‘오빠 내가 문자 찍어줄거니까

oo병원으로 빨리와’ 하고 전화를 끊고

몇분 뒤 문자가 왔음

전화를 끊자마자 회사에 보고하고

문자로 찍어둔 곳으로 갔음

근데 회사가 거리가 있어서 시외버스 배차가 조금 길었음

한시가 급한데 마침 조퇴하는 직원이 있어서

그 직원이 태워준 차량 타고 무사히 터미널까지 올 수 있었다

거기서 또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병원에 도착을 했음

아빠는 응급실에 계셨고 막 몸부림 치고 있었다

저번에 봤던 아빠가 아니더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음

아빠가 응급실 온지 3시간이 지났을까

정신 없는 응급실에서 우리 아빠도 보고 여러 환자도 보기에

정신없는 인파속에 의사가 오더니

아빠 피가 마니 모자르다

오늘 내일 할수도 있다고 이야기 하셨음

그렇게 아빠는 응급실에서 하루를 버팀

어느정도 안정이 될 즈음에

저녁으로 병원 근처 분식집 가서 저녁을 먹는데

밥이 넘어가질 않더라

그러고 몇시간 뒤 아빠를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겼다

일반병실에 지금 자리가 없어 임시로 옮겨드린다고

일반 병실 나오면 그때 옮겨 주겠다 하고

중환자실로 갔음 그게 한 밤10시쯤이였음.

원래라면 이 시간은 면회가 안되는데

오늘 올라왔으니 특별히 면회를 허락했음

그러고 병원 보호자 대기실에서 쪽잠을 자고

나랑 엄마는 제대로 된 잠을 못잤음

동생도 당연히 제대로 못잤음

의자에 누워서 다음날 일어나려니 온 몸이 뻐근했음

날이 밝고 동생은 직장을 나가고

본인은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 하고 당분간 좀 쉰다고 했더니

회사에서도 알겠다면서 괜찮아지거나

뭔일 생기면 연락하고 정리되면 출근 하라고 하셨음

참 고마웠던 회사임

저녁에는 면회가 안되고 오전 오후 딱 2번만 가능했는데

집에서 자고 날 밝으면 엄마랑 나는

병원에 가서 아빠 상태를 보곤했음

그리고 토요일 주말에 동생도 마침 쉬는날이라 병원에 같이 갔는데

대구에 계시는 삼촌도 아빠를 보러 부산에 내려오셨고

큰아버지 고모들을 다 모인 상태에서

교대방식으로 아빠를 보러 들어갔음

일반 병실 언제 내려올 수 있냐고 묻기에

다음주는 되어야 한다고 주치의와 간호사가 설명하더라

그렇게 달이 바뀌고 11월 중순쯤

아빠가 일반 병실로 내려오게 되었음

그러던 어느날 엄마랑 나랑 아빠를 번갈아가면서 간호를 하는데

아빠는 막 손을 떨고 아프다는 소리를 질렀음

그때마다 눈물이 났음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날 어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랑 난 병원에 있었고

오늘은 내가 아빠 지켜볼테니

엄마보고 집에 가서 쉬고 낼 아침에 오라면서 엄마를 보냈음

그렇게 아빠랑 단 둘이 남은 나는

아빠랑 이야기를 많이 했음

물론 아빠가 누워있는 상태라

내 이야기를 전달해도 아빠는 대답을 못했지만

계속적인 심전도에 의해 버티고 있던 찰나

밤 10시 한번 고비가 왔음

아빠의 심전도가 유지되다 갑자기 삐이이 하먼서

갑자기 수평선을 이어지고 있었음

너무 놀라서 아빠 몸을 막 주물렀음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한번 정상적으로 심장은 뛰었고

그제서야 아빠와의 이별이 다가왔다는걸 느낌

평소에 신 믿지도 않는데

제발 아무일 없이 넘어가게만 해달라고 처음 기도했음

그날 나는 잠도 못잔채 아빠를 지키고

아빠는 그날 밤 무사히 잘 넘어갔음

날이 밝고 오전 11시쯤 엄마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어제 이야기는 차마 못함

그러고 엄마한테 뭐 필요한거 없는지 물어보고

낼 올때 사온다고 하고 난 집으로 가고

엄마는 아빠를 보살피기 시작했음

그렇게 집에와서 씻고 전날 못잔 잠을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저녁이였음

동생이랑 밥 먹고 쉬고 티비보던중 잘 시간이라

동생은 자기방에 가고 나도 잘려고 누울려는 찰나

엄마가 전화 왔더라 ‘여보세요’ 하는데

엄마가 울고 있더라

‘oo아 oo데리고 빨리 병원 와야겠다 아빠가..아빠가’ 하는데

더 묻지도 못하고 동생한테 달러가서

빨리 병원 가야겠다 하면서 옷도 제대로 못입고

택시 타고 재빨리 병원을 갔음

병원 도착했을땐 이미 아빠의 심전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음

우리가 도착하고 한 20분이 지났을까

심전도가 간간히 버티던게 결국 수평선을 삐이이 하면서

5분간 이어지더니

아빠는 결국 우리 가족 곁을 떠나게 되었음

주치의 의사는 사망선고를 우리 가족이 보는 앞에서 언급을 하고

마지막에 ooo님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야기 하는데

참았던 눈물이 다 터져버리고 말았음

몇시간 뒤 우리는 병원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아빠랑 이동됨

장례식장에서 이런저런 내용을 듣고

다음날 아침일찍 깔끔하게 씻고 장례식장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고

집으로 오는 내내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음

집에와서 엄마랑 동생은 엄청 울고

나도 마찬가지로 겨우 진정이 되어서

엄마는 친척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일단 날 밝고 장례식장 다 잡히고 나면

다시 전화를 준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큰 충격에 빠지셨음

겨우겨우 잠을 자고

새벽에 병원에 있는 장례식장에 아빠를 안치하고

부고 문자등을 돌렸다

전날 돌아가셔서 담날 아침에 둘째날이라 시간이 넘 촉박했음

다음날이 발인이라 정신이 없을 정도라

그날 오전에 사진이 다 준비되고

오후에 입관까지 타이트한 시간이였음

그렇게 안치가 다 되어갈쯤

아침은 간단하게 빵 우유로 떼우고 장레식장을 맞이했음

그러고 내가 상주가 되었고

장례식장이 준비되고 2시간이 지났을까 첫번째 손님이 옴

내가 아는 형님이 젤 먼저 오셔서 절 하고 하는데

그 형이 날 안아주면서 힘내라면서 말하는데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었음

그렇게 정신없이 손님들이 오시면 곡을 하고

시간이 촉박 했지만 늦은 저녁까지도 많이들 오셨던 기억이 남음

아빠 친구부터 나 같은 경우는 몸이 엄청 불편한데도

멀리서 와준 친구가 너무 고마웠음

다시 오후대로 넘어가서 어느정도 진정되고

입관 한다고 가족들을 부름

아빠를 보러갔는데 너무 편하게 있어 주무시는거처럼 계셨음

아빠는 삼베옷을 입고 얼굴을 내민채 대기하고 있더라

장례지도사가 아빠한테 한마디식 하라고 해서

우리 가족 친척들은 한마디씩 하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아빠를 덮게 되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큰 슬픔이 컸던 기억이 남

아버지 폼 안에 우리는 가족사진 등을 넣어둔채

둘째 날도 무사히 넘어갔다

그리고 발인을 하러 가는 날

그때까지도 난 이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음

그렇게 화장하고 유골을 받아들이고 추모공원에

안치되기 전까진 무덤덤 했거든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고모네가 차를 태워주셔서 집으로 오는데

그제서야 아빠가 없다라는 빈 자리가 엄청 크게 느껴지더라

아버지를 보내고 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으셨는지

이상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밤만되면 엄마가 이상하게 변해서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정신과 검사받을겸

입원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도 물론 쉽지 않았음

엄마는 그 병원에 도착해서 막 소리지르고

정상이 아닌 사람 같았다

하지만 집에 있으면 어떻게 돌변하기에

병원에 입원 시켰는데

담당의사는 엄마 상태는 조현병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병원에서 엄마는 집중적인 치료를 받기시작했음

그렇게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

난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엄마를 간호하기로했음

시간 나면 이야기도 해주고 하니

첨 병원갔을 때보다 헌저히 나아지는게 보였가도

다시 그러는게 보여 당분간은 입원을 시켰음

그렇게 어머니를 입원시키고 집에는 나랑 동생뿐이었지만

이 사실을 친척들에게도 알리니까

엄마가 많이 힘들거다 너희들이 엄마 잘 챙겨드려야 한다면서

이야기를 해주시고 반찬 같은 것도 보내주셨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빠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러 가야해서 동사무소 갔다

첨에 말 꺼내기가 너무 망설어졌다

가서 저.. 사망신고서 작성하러고 왔는데요 했더니

직원분이 종이 주면서 사망진단서 그대로 써주세요

하는데 도저히 못쓰겠더라

결국 쓰러다 눈물 터져서 죄송하다 하고

겨우 진정되어서 무사히 쓰고 아빠 신분증을 반납하게 되었음

그렇게 하나하나 다 처리하고

아빠 통장 잔액에 적지만

그때 공공근로한 3개월치 내역이 그대로 있었다

통장해지를 위해 그 잔액을 나의 다른 계좌로 옮기게 되었고

그 돈은 지금도 보관되어있다

그돈은 차마 못 쓸거 같더라

그렇게 다 정리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와서

아빠가 입었던 옷이며 보는데

아빠 향기가 남아있어서 옷들을 부둥켜안고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도 무덤덤 했었는데

집에와서 참았던 울음이 수도꼭지 튼거처럼

눈물바다가 되었던거 같음

결론은 울 아빠가 넘 보고싶어 글을 용기내서 여기에 써보게 됨

글이 너무 길어졌음 이해 부탁드림

내용도 뒤죽박죽일거임

물론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기일 다가오기 한달전만 되면

유독 기분이 다운된다.

울 가족이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아빠도 지켜봐줬으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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