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들인데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조선시대 이야기라기보단
6.25 때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지.
6.25때 전국에서 피난민이 부산으로 몰려오니
식량이 부족하여 먹을게 없었거든.
그나마 콩비지나 건빵 같은 거라도 배급이 이루어졌는데
그런 배식조차 못 받는 사람은
산에 올라서 송진을 갖고 빚어서 쪄서 떡을 먹었대.
지금 사람은 쳐다도 못 볼 음식도 아닌 음식이지만
당시엔 문자 그대로 먹을 게 없으니 그런 걸 먹었는데
단맛이 조금이나마 나니까 허기는 가셨대.
문제는 이게 들어가면 안 나온다는 거였는데
아무리 힘을 써도 안 나오고 안 나오다가
나오면 큰 덩어리가 나오는데
문자 그대로 항문이 찢어질 정도였다고 할머니가 그러더라.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단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하더라고.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둘다 경험한 할머니 말로는
전쟁 때가 제일 힘들었고 평시에는
고기구경, 과자구경 하기도 힘들어서 그렇지
딱히 굶지는 않았다고 하시더라.
담배 필거 다 피고 안경도 쓰고 옷도 사입고
사탕이나 엿도 사먹고 잔칫날엔 고기도 얻어먹고..
그냥 살기 괜찮았다 하시더라
먹고 사는건 문제 없었는데
할머니가 시집갈 때쯤에 짝사랑하던 남자가 따로 있었다고 함
근데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한테 시집을 가야해서
그게 그렇게 평생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남아있었다고 하시더라고.
그래도 부모님이 점지해준 할아버지가 근면한 분이여서
가난했지만 밥은 굶기지 않았고
자식들 다 대학 보내셨다 하시더라.
전쟁통 때 외에는 밥 굶은 적 거의 없었다 하셨었음.
조선시대 때도 구한말이었겠지만
시장에서 귤 사먹고 생선 사다 구워먹고 하셨댔음..
그리고 할머니 개인적으론
일제시대 때도 할머니는 그냥 저냥 괜찮게 지내셨다고 하셨었음.
그냥 동네 여자로 사셨으니 정치에 어두우셔서
격동의 시기를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가신 것고 있지만
당시 일본인 선생이랑 순사들이 할머니 동네에 같이 살았는데
순사가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가
다른 할머니가 남편이 일 안 하고 또 노름판에 갔다며 꼰지르면
순사가 자전거 타고 쫓아가서
정신 차리라고 두들겨 패다가 데려오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또 애들 다 꼬질꼬질한데 동네 살던 일본 애 하나는
항상 입고 있는 옷이 새하얗고 구두도 반질반질 빛이 나서
할머니 친구가 면티 깨끗한 거 하나 보고
동경해서 그 애 짝사랑 했었다고 하더라.
일본이 패전한 후
어찌저찌 일본 사람들 일본으로 다 쫓겨나는통에
그 할머니가 일본인인 다른 할머니랑 짠 뒤 (당시엔 젊은 아가씨)
일본 할매는 한국에 남았고
일본 동경하던 할매는 귀국선에 타는 일본인들에 섞여 일본으로 갔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못 만났다고 하심.
남은 일본인 할매는 좋아하는 자식과 남편이랑 잘 살다가
6.25 때 쪽바리라고 북한 공비들한테 걸려서
맞아 죽을뻔하던걸 겨우 살아서 돌아왔는데
남편은 공비들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다시는 못 돌아왔다고 함.
평생 한국 살다가 90년대 초에 돌아가셨고..
할머니 말로는 일본 돌아가봤자 아무것도 없다고
한국에 남은 일본인들 몰래 숨은 일본인들 많았다더라.
그렇게 지내다가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
5년간 나라가 어수선하고
동네에서 병사로 남자들 징집해 전쟁터에 끌고 가고 했는데
돈 좀 있는 어르신들은 머슴들한테 큰돈 쥐여주고
종년들이랑 혼인시켜준다고 약속하고
아들 대신 머슴들을 군대로 보내고 했었다고 함.
일본이 전쟁에서 졌을 때는 라디오에서 소식 듣고
어른들은 만세를 불렀지만
일제치하에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은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에 우는 애들도 많았다고도 하고..
6.25 때가 가장 힘드셨는데
농사를 못 지으니 먹을 것도 없는데
산에서 밤마다 공비가 내려와서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는데 밥 좀 달라” 며 밥먹고 가고
낮에는 국군들이 와서
“나라 지키는데 밥좀 달라” 며 밥을 먹고 가는통에
일제 순사보다 국군이랑 공비가 더 싫었다더라.
할아버지는 돼지 장수셨는데
돼지 팔아 번 돈으로 노름판 갔다가 크게 따서
고기랑 과자 잔뜩 사서 밤에 집으로 돌아오시다가
산길 한복판에서 복면 강도 만나서 죽을 뻔한 거
전부 내놔서 겨우 살은 적도 있으셨고,
제사상이 엄청 크고 고풍스러운 거였는데
그것도 유명한 경주 양반 자손한테서
노름으로 따서 가져온 거라며 제사 때마다 자랑했었음.
옛날에는 소가 워낙 비싸서
장날 되면 소장사 하는 사람들이 소 팔고 나온 큰돈으로 노름했는데
노름판이 크고 동네마다 있어서 노름으로 집 날려먹은 사람이 많았다더라.
일제가 신사 짓는다고 돈 모아서는
신사 안 짓고 죄다 꿀꺽한 일도 있었고
계급 높은 일본순사 하나도 노름꾼이라서
맨날 월급날 되면 노름판으로 달려가는 양반이었는데
나중엔 월급으로 돈이 부족하니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사람들한테서 돈 뜯다가
노름판에 같이 지내던 아저씨들이 소식 듣고 와선
순사가 그러면 못 쓴다고 극대노 하며 뭐라해서
돈 다시 돌려받은 일도 있었다고 하고..
한번은 돈을 순사가 크게 잃었는데
갑자기 일본이랑 한국이랑 화투 룰이 달라서 진거라며
돈 안 주고 버티다가 그담부터 판에 안 끼워주고
그게 소문이 돌아서 그 순사고 쪽을 팔았단 이야기도 하시고..
어릴 때 들었는데 재미있었고 아직도 생각 많이 남.
너무 지금이랑 다른 시대 이야기라서
흔히 말하는 영화 같은 이야기 같음.
할아버지도 나중엔 돈을 많이 버셔서
아들 군대갈 때 남들처럼 빼주려고 돈주고 시계줬는데
군인들이 돈하고 시계는 다 받아가놓고
할아버지 오라고 부르더니
흠씬 두들겨 패서 이빨 빠졌다고 이야기 하신적 있고 ㅋㅋㅋ
괜히 세대차가 나는게 아니더라.
소말리아보다 못하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과
경제력 세계 10위권일 때 태어난 사람의 차이니까..
한명은 왕조시대에 태어났고
한명은 민주주의가 꽃피운 시대에 태어났으니 다를 수밖에.
비록 부모님 때문에 결혼한 상대였지만
9남매 낳고 잘 사시다가 가셨음.
내가 고딩일 때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많이 생각난다.
밤마다 썰푸시는거 재미있는거 많았는데 ㅋㅋ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