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보니 친일파 후손이었던 남자가 ‘2021년’에서 살아가는 방법..

나의 조부는 친일파였다.

일제강점기 때 많은 재산을 모았고

해방 후 고급요정을 운영하며 방탕한 생활

(세 집 살림함)을 하다가 암으로 사망.

생전 무릎 아래에 8남매를 남겼고

그 후손들이, 나의 조부가,

남긴 재산을 상속 받았다.

그리고 현재 2021년. 그 집안의 사정을 알아본다.

첫째 : 6.25 참전 전사

둘째 : 6.25 참전 전사

-여기까지 본처 자식-

셋째 : 가장 많은 재산을 상속.

80~90년대 300석 규모의 갈비탕집을 운영하며 승승장구.

후에 건설업에 뛰어들었다가 imf 이후 파산.

남은 여생을 반지하 셋방을 전전하며

자신의 화려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다

2015년 심근경색으로 사망.

슬하에 두 남매가 있으며

딸은 이혼 후 재혼하여 그럭저럭 잘 살고 있고

아들 역시 이혼 후 아들을 혼자 키움.

현재 야가다 크루의 대장.

넷째 : 상속받은 재산으로 제지소 운영.

얼마전까지 집안 최고 부자였으나

아들의 연이은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재산을 거의 탕진.

현재 본인 소유의 집에서 연금만 가지고 생활 중.

슬하에 두 남매가 있으며

딸은 대기업 생산직과 결혼해 전형적 맘충의 삶을 살고 있고

아들은 더 이상 까먹을 돈이 없자

마지막 남은 돈으로 택배 트럭을 구입.

지난 설 친척들에겐 유통업 한다며 헛소리를 하다

뽀록나자 빠른 귀가.

다섯째 : 집안 최고의 개망나니.

평생 일이란걸 해본적이 없으며

명절 분위기 브레이커로 형들에게 의절당함.

하지만 재테크의 귀재와 결혼한 덕분에 아직 호의호식 중.

사망한 셋째의 장례비용을 홀로 부담하며

화려하게 컴백했으나

지난 설 넷째에게 한

‘저러니 이혼 당해서 알거지가 되지’ 발언으로

다시 퇴출 위기

(추석 때는 코로나로 차례 ×)

슬하에 두 남매가 있으며

딸은 워킹맘의 평범한 삶을

아들은 전기기술자인데

아직 결혼을 못 해 진지하게 매매혼 고려 중.

여섯째 : 고명딸.

21세에 중동을 오가는 건축사와 결혼하며

아주아주 무탈한 삶을 살았으나

자식 농사 대흉작으로 현재 가장 고민이 많음.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으며

첫째 딸은 고교 교사로 매우 안정적이나

둘째 딸은 18세에 첫 출산 및 결혼 후

현재까지 총 세번의 이혼과

두 명의 씨다른 자식을 출산하여

부부의 꼭지를 돌게 하였음.

막내 아들은 -백수-

-여기까지 후처 자식-

일곱째 : 집안의 또다른 개망나니.

조부가 사망한 해 아홉째가 상속 받아야할 재산을

아직 미성년자라는 명목으로 강탈한 뒤

모두 현금화해 도박에 꼬라박음.

이후 실종.

현재는 사망처리. 슬하에 자식 없음.

여덟째 : 본 글쓴이의 부친.

조부가 아직 17세일 때 사망하는 바람에

동복형에게 재산을 강탈 당함.

친모가 4세때 사망했고

이후 동복형이 실종되어 천애 고아나 다름없게 되었는데

나머지 이복형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고등학교는 졸업.

군복무 후 자동차 공장에 금형기술자로 취직해

평범한 삶을 살다가

40세가 되던 해에

갑자기 사업을 한다며 전재산을 과감히 베팅,

시~원하게 말아먹음.

이후 다시 금형기술자로 재취직해

몇해전 본인의 빚을 모두 탕감했고

연금수령을 하는 작년부터 반백수.

슬하에 두 남매를 두었고

첫째는 집안 최고의 엘리트로 서울대-삼성.

둘째는 현재 인터넷에

제사상 지방에 네명을 적는 개막장 집안에 대해 쓰는 중.

부끄러워하지 말고 더 쓰래서 더 써봄

지난번에 밝혔듯

나의 조부는 친일파이고 난 그 후손이다.

저번 편이 반응이 조금 좋아서

뇌절편으로 나와 아버지의 삶을 수박 겉핥기로 써본다.

1.별명

내가 친일파의 후손이라는건

내 주위 아무도 모르지만

아버지의 친구들은 조부가 친일파인걸 다 알기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의 별명은 이완용으로 고정.

현재도 그렇게 불리고

이름으로 불리는걸 한 번도 본적 없음.

하필 우리 성씨가 이씨임.

한 번은 아버지 친구 중 한 분이

아버지한테 급쩐을 꿨었는데

그걸 갚으면서 답례로 리조트를 예약해준적이 있음.

그런데 막상 가보니 예약되어 있는게 없다는 거임.

황당해서 친구에게 전화하려던 차,

직원이 전화번호를 불러달라기에 불러주니

친구가 이완용으로 예약해놨음.

실화임.

2.취급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우리집에서 같이 살았었음.

외할아버지는 강제징용 피해자이신데

그 때의 PTSD로 평생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고 함.

그래서 일본이라면 치를 떠셨고

결혼 할 때도 반대가 심했다고 함.

쨌든 어찌저찌 결혼해서 모시고 사는데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외할머니께선 항상

‘아이고 우리 백작 나리 오셨습니까?’

라며 반겨줬었음.

여기서 백작은 이완용을 뜻함.

엄마랑 싸울 때도

일본 앞잡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일본 제품은 꿈에도 못 꾸고

TV에서 한일전이라도 하는 날엔

아버지는 집에 안 들어옴.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기에

몇 해 전 내가 정신 못차리고

일본 브랜드 차 구매를 알아볼 때

와이프가

‘역시 여보는 애국자야 국산제품 엄청 좋아하네?’

라고 해서 싸움났음.

3.민영환의 저주

나와 아버지는 장트러블이 굉장히 심해서

진짜 몇 번 좃 될뻔 한 적이 있는데

난 이걸 민영환의 저주라고 부름.

공교롭게 민영환 열사께서 자결하신 해에

나의 조부가 태어났기 때문임.

아버지의 경우 군대에서 운전병이었음.

하루는 초소근무 돌리고 복귀하는데

급똥이 와서 소대 도착하자마자

주차해놓고 화장실로 뛰었다고 함.

겨우 안 지리고 해결 후 나왔는데

급한 나머지 기어 중립상태로 그냥 내려서

트럭이 소대건물 저 멀리 펜스에 쳐박혀 있었다고 함.

바로 군기교육대 행.

내 경우 와이프랑 처음 데이트 한날

집에 데려다 줄 때 급똥이 왔는데

당시 위치가 대치동. 처가는 반포.

토요일 오후. 내비에 남은 시간 20분.

평생 민영환의 저주에 시달렸던 나는

이건 안 된다는 걸 직감했고

아.. 얘랑은 여기서 끝이구나 하며

그냥 높은 빌딩 앞 아무데나 세우고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 ㅈㅅ요!’ 이지랄 하고

냅다 그 건물로 뜀.

그리고 돌아왔을 때

와이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날 대해줬는데

그날 바로 결혼결심 함.

그냥 그때 시트에 지렸어야 했음.

그 외에 바둑학원에서

대국 중 똥싸서 엄마부르고 바둑 관둔 썰

졸음쉼터에서 똥싸다 문 잠겨서

가스에 질식할 뻔한 썰이 있는데

이건 진짜 내가 너무 수치스러워서 안 씀.

그리고 늘 죄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살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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