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던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던 과정을 말해주는 아들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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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이었다

군대 전역하고 복학을 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버지가 몸살기운으로 3일정도 앓아누우신 적이 있었다

별거 아니겠지 했지만 나아지지않자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됐는데

폐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정밀검진을 받고나서 의사는

소세포폐암 3기를 선고했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별 거 아니라며

치료받으면 나을 거라고 일을 하겠다고 하셨지만

의사는 바로 치료받지 않는다면

당장 일주일 뒤에 사경을 헤멜 수도 있다는 말을 했고

결국 입원해서 치료받게 됐다

아버지는 강한분이셨다

경상도 출신의 무뚝뚝하고 엄하셨고

원리원칙을 중요시하시던 분이라

나는 아버지를 많이 무서워했다

건장하던 아버지의 체구는 치료에 치료를 거듭할수록 야위었고

머리털과 눈썹은 힘없이 빠져 왜소해지셨지만

아버지는 끝끝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하면 입맛도 없고 온몸에 힘도 없는데

어머니의 성화도 있었지만

끼니를 거르지않고 운동도 열심히 하셨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정말 완치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2년여가 흘렀고

아버지는 여전히 강해보였다

언제까지고 그럴 줄 알았다

어느날 부모님께서 같이

동네 산책 겸 걷기 운동을 나가셨다고 한다

한 20여분을 걸었을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은행에 볼일이 있으니

잠깐 혼자 걷고 있으라고 하셨고

은행으로 들어가셨다

그런 줄만 알았던 어머니는

조금 걷다가 다시 은행 안을 슥 들여다보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은행 의자에 축쳐져 앉아

괴로운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고 계셨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어느정도 감출 수 있을 때가 돼서야

아버지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더 이상 치료를 위한 약이 없습니다’

항암치료는 내성이 생긴다

내성이 생기면 또 다른 약으로,

또 내성이 생기면

다시 다른 약으로 바꿔가며 치료한다

그렇게 모든 종류의 항암치료를 끝났음에도

종양은 여전히 아버지의 몸속에 남아있었다

그와 동시에 의사는 3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어머니에게 그 말을 들어도 난 실감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내 눈에 아버지는

평소와 같아 보여서인가

그냥 겁주는 거겠지 하고 넘어갔다

항암치료를 못 받게 되자

아버지는 급속도로 몸이 안 좋아지셨다

음식도 거의 입에 못넣고

침대에서 누워 화장실을 가는 것 외엔

거의 움직이지 않으셨다

계절이 겨울로 바뀌어가고 날이 추워갈 무렵

아버지는 나를 불러 목욕탕을 가자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기력이 다시 생긴건가 싶어서 같이 목욕탕으로 갔다

80kg의 건장한 중년은

이제 50kg의 왜소한 노인같은 모습이 되었다

목욕을 다 마치고서 아버지는

목욕탕 안에 있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밀으셨다

얼마 자라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왜 굳이 밀지? 하고선

의자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게 내가 아버지랑 같이 간 마지막 목욕탕이었다

며칠 뒤 아버지의 상태는 더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맞기 시작했다

처음엔 진통제 효과가 좋았는지

아버지는 괜찮아진 것 같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입원하고서

집으로 돌아가시지 못했다

날로 전이되는 암과 늘어나는 진통제의 양 때문에

어느순간부턴 아버지는

약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일 때가 많았다

마치 치매에 걸린 것처럼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 상태에서도 일을 하셨다

본인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셨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인지

아버지는 투병중에도 계속 일을 하셨다

서류작성같은 일은 나한테 자주 맡기셨는데

아버지가 입원중에는 불러주시는 내용을 적어

서류작업을해서 거래처에 보내는 일을 했다

아버지가 입원한지 2주일쯤 지났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서류작업을 위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고 있는데

방금전에 말한 것과 다시 말하는 내용이 계속 달랐다

내가 계속 아버지에게 어떤게 맞는건지 되묻자

아버지는 나에게 대학도 간새끼가

왜 이렇게 멍청하냐며 윽박을 지르셨다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에게 욕을 먹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군대 전역한 이후로

한번도 이렇게 화내신 적이 없었다

약에 취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의 아버지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걸 견딜 수가 없어 펑펑 울었다

어느날은 아버지의 친구들이 병문안을 오셨다

친구분들은 아버지에게 밝은 모습으로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빨리 쾌차하고 일어나서 골프 또 치러가야지’ 하시며

모든 상황을 아시지만

아버지에게 힘을 주고자 이렇게 말하셨다

아버지는 조용하고 나긋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자네들과 함께 갈 수 없어,

지금까지 나와 함께해줘서 고마웠네’

그 말을 들은 아버지의 친구들은

아무말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대화한날

평소같이 힘없이 누워있던 아버지를

어머니가 상시 붙어서 간호중이셨고

밤이 되면 나는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집으로 가려고 일어난 순간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셨다

여전히 힘들어하시긴 했지만

병원에 처음 입원할 때 빼곤

볼 수 없었던 온전한 정신의 아버지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간호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나에게는 아빠가 떠나도 절대 울지말라는 말을 남기시고

가족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한 후에

다시 기운이 빠져 누우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되어

나는 평소처럼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학교에 가지말고 바로 병원으로 와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고

병실에 가니 비어있는 아버지의 침상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자 지금 회복실에 있다고 해서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그건 아니었구나 하고 회복실로 갔다

이상했다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동공이 확장된 상태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숨만 쉬고계셨다

간신히 나를 바라보기만 할뿐 아무런 거동도 못하셨다

어머니가 말은 안하셨지만

직감적으로 이제 아버지가 가실 때라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아버지는 버텼다

거의 한시간이 지나고

누나가 회사에서 헐레벌떡 병원에 도착하고

아버지를 보고난 뒤가 되어서야

내가 알고있는

가장 강한 남자의 힘찬 심장은 멈췄다

아버지는 분명 누나를 기다리느라 버티셨을거다

곁에 있던 간호사는 의사를 데려와

사망선고를 하고서

인간은 심장이 멈춰도 청각은 잠시 살아있다며

마지막으로 하실 말들을 하라고 하시고선

자리를 비켜주셨다

그렇게 아버지를 부여잡고서

펑펑 울고 살아생전 별로 하지도 못했던

아빠 사랑해라는 말을 수없이 외쳤다

장례가 시작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셨다

아버지의 주변 지인분들, 고향친구,

거래처분들, 친인척들까지

자리가 모자라 기다렸다 들어와야 할 정도로

장례식장은 북적거렸다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흘려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아버지가 정말 좋은 사람이셨구나 라는 걸 느꼈다

나는 장례식동안 상주로 있으면서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어머니와 누나가 울어도

나만은 강한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발인 전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러갔다

좁은 상자에 누워

노란 삼베옷을 정갈하게 입고 누워있는 아버지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것처럼

여느 때와 같이 잠든 모습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있는데 눈물이 났다

장례식동안 참았던 눈물을 모두 흘리며

아버지가 울지말라 했는데

울어서 죄송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서

내 사진 하나를 아버지 품에 넣어드렸다

그렇게 발인을 하고

화장터에서 화장을 마친 아버지를 묻어드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건 다 원래 그자리에 있는데

아버지만 없다는게 너무 적응이 안되고 힘들었다

또 하나 슬픈건

꿈속에서 아버지가 나오면 건강하실 때의 모습이 아닌

투병 중이셨던 때의 모습으로 나온다는 게 슬프다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났기에

이젠 아버지가 없는 삶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아버지를 추억하면 너무 너무 그립다

아빠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