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동생 챙기기 위해서 인생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형 썰

나는 어린 남동생이 하나 있다.

2남중 장남이고 지금은 직장생활 하며 평범하게 살고있다.

남들 부러워하는 회사 다니고

자차도 끌고 다니며 집은 전세지만

어쨋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치만 난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게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내 동생을 내가 평생 데리고 살 생각이기 때문이다.

내 동생은 지체장애 2급이다.

어느정도 수준이냐고 하면 진짜 어린 애 수준이다.

가령 혼자 어딘가에서 길을 잃으면

경찰이나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도 못하고

그냥 누군가 자신을 찾으러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그러다 진짜 못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친근하게 거짓말하며 접근하면

곧이곧대로 믿고 따라갈 정도의 그런 수준이다.

그런 동생을 옛날부터 난 지켜왔다.

어린이집, 유치원 다닐 때에는

그래도 크게 신경쓸 일은 없었다.

애들이 다들 아이같고 순수했기 때문에.

그치만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걱정은 많아져갔다.

점점 머리에 사회성이 자리잡는 애들.

그리고 약자가 보이면 괴롭히려고 하는 애들.

바보라고 싫어하는 애들이 생겼다.

물론 착하다고, 불쌍하다고 도와주는 애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학교는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나서서 지켜주는 그런 곳은 아니다.

그래서 난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애들을 타일러가며,

때로는 주먹을 써 가며 동생을 지켜냈다.

나도 물론 항상 착한 마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보이는 동생을

어떻게든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해도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 때는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나서

홧김에 나쁜소리를 하거나 때리거나 한 적이 있다.

그치만 그 소리를 듣고도

내가 왜 그러는지조차 모르는 동생의 눈을 보면

바로 너무 미안해져서 끌어안고는 했다.

내가 때리면 반항할 생각도 않고

그냥 맞고 웃는다.

아프게 때리면 그냥 울었다.

그렇게 순수한 동생을 때린 나는

진짜 쓰레기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내 동생은 나 때문에 그런 장애가 생겼다고 본다.

어머니가 동생을 임신하고 있던 시절

나는 누군가의 초인종에 그냥 문을 열어주고 말았고

문이 열리자 집으로 들어온 사람은 강도였다.

다행히도 사람을 해하진 않았으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으셨고

그로 인해 뱃속의 내 동생이 안좋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산다.

중학생이 되자 문제는 더 심해졌다.

나랑 동생이 다른 학교로 배정받았으며,

중학교부터는 특수학급 이라는

장애아들만 모아놓는 학급이 있었다.

물론 학교 수업은 각 반에서 듣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쯤 되면 남자건 여자건

2차성징이 오고 사춘기가 온다.

어른의 모양을 갖춰가는 아이들은

내 동생을 더욱 가혹하게 괴롭혔다.

매일 듣는 소리가 동생의 학교 가기 싫다는 소리였으니..

그치만 나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집에 돌아오면

동생과 좀 놀아주는 정도 뿐..

앞에 쓴 대로 내 동생은 살살 때리면 그냥 맞고 웃는다.

그치만 세게 때리면 아파서 운다.

애들이 괴롭히면서 때려도 반항도 못하고

그냥 맞고 우는 거다..

내가 전부 대신 맞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화난다.

아마 중학교 시절이 제일 힘든 시기였을거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는 어느 정보고로 갔는데,

거기서는 중학교보다 덜 힘들게 지냈고 졸업했다.

물론 나와 다른 학교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쯤에는 나도 거의 마음을 놓고 지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또 후회가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난 대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그 동안 동생은 특별히 한 것이 없다.

집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며

듣고싶은 노래를 듣고

답장이 잘 오지 않는 지인들

(학교 같이 다녔던 사람들) 에게 카톡을 보낸다.

가끔 동생을 지켜보면

자기도 자기가 무언가를 느끼고 바라는데

그게 어떤건지도 모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라서 답답해 하는 것이 보인다.

깊은 대화가 안되니

지인들에게 문자나 카톡을 보내도

답장이 잘 오지 않으면 거기에 또 상처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나한텐 매일 뭐하냐/자냐/일하냐고

단문의 카톡을 보낸다.

내가 몇 달에 한번 꼴로 고향에 내려가는데

그걸 엄청 기다린다.

맨날 부모님한테 형 언제 내려오냐고 물어본단다.

내가 해준게 뭐가 있다고

날 그렇게 보고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쓰면서 눈물난다.

내가 요즘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래도 좀 늘었다.

내가 돈을 벌고 정신이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면서

동생을 좀 더 성심껏 챙기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들 선물도 사 주고..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데리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비행기도 처음 타보는 내 동생이다.

실수로 귀국하는 비행기 좌석을 떨어지게 배정받았는데,

이륙하는데도 불안해하고

세관신고서 같은 것도 쓸줄도 모르는 애라서

다 챙겨줘야하는데

이륙 하고나서 안전띠 풀어도 된다는 사인이 나올 때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안전띠 경고등 꺼지자마자

후다닥 가서 안심시켜주고

오줌마려우면 저기 화장실 가거나 형 불러라고 하고

세관신고서도 다 작성해서 손에 쥐어주고 왔다.

그렇게 내려서 집에 데려다주는데

하는 말이 너무 재밌었단다.

보통 그냥 재밌었다 좋다 맛있다

이런 정도밖에 표현을 할 줄 모르는 애가

너무 재밌었다 라고까지 말해서

난 또 기쁘면서도 슬퍼졌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잘한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집에 가는 고속버스를 태우고

(볼일 컨트롤도 힘들어서

멀리 갈 때에는 꼭 화장실에 들렀다가 가야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렸다가

버스를 다시 못 탈 수도 있기 때문에..)

부모님한테 보냈고

몇 시에 도착할 거라고 연락을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문자 한 통씩이 와있었다.

어머니는 종종 문자를 보내고 연락을 하기 때문에 잘 넘겼지만

아버지의 문자를 받고는

눈물이 나오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ㅇㅇ이 데려 다니느라 제대로 놀긴 했는지 모르겠다.

고생 많았고 고맙다. 라고 하시더라.

어머니랑 아버지 두분 다 나한테 고맙다고 하셨다.

ㅅ발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나만 챙기고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일년에 한번은 꼭 가는 해외여행을,

평생에 한번 동생을 데려갔다고,

그게 부모님한테 고맙다는 말까지 들을 일이라니..

여튼 나는 이런 내 동생을 평생 데리고 살아야

내가 마음편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결혼도 다 포기하고 살고있다.

일부러 소개도 받지 않는다.

항상 둘이 외출할 때면

동생 얼굴에 뭐 묻은건 없는지,

양치는 제대로 했는지,

옷은 이상하게 입지 않았는지 꼼꼼히 다 챙겨준다.

나는 추레하게 나가더라도 동생은 잘 챙겨 입힌다.

그렇게 입히고 신나서 먼저 걸어가는 동생 뒷모습을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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