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때 삼촌 삼촌 하고 부르던 아빠 친구가 있었음
아빠가 어울리는 친구분들이 좀 많으신데
그 중에서도
내가 어릴 때 삼촌이라고 부르며
우리 집에서 자주 봤던 기억이 있는 분은
그 삼촌이 유일했음
그 정도로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는 얘기겠지
거의 매일 왔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거임
삼촌은 우리 집을 제 집 드나들 듯
마음대로 오간 건 아니었지만
아빠한테 항상 허락을 맡고 집에 놀러오면
냉장고에 있는 과일이나 과자
또 때로는 밥이나 술상도 얻어먹고 가곤 하셨음
먹기 전에 일일이 허락을 맡긴 했는데
그 시절에 음식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누가 딱 잘라서 거절을 하겠음..
그냥 예의상 물어보기만 하고
거의 가리는거 없이 다 먹었다고 보면 됨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어린 시절이었는데도
집에 올 때 먹을 건 안 사오고
늘 우리 집에 있는 먹을 거리만 먹고 가는 삼촌이라서
별로 반갑지 않았던 기억이 있음
그래서 삼촌이 간 다음에
아빠랑 엄마랑 자주 싸웠던 것 기억도 나고
아빠가 ㅇㅇ(삼촌이름)이가
사업이 망해서 많이 힘들잖아 조금만 이해해주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도 들었던 것 같음
근데 어느 날부턴가
그 삼촌이 안보이기 시작했음
가끔은 매일 오다가도
어느순간 못해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오던 삼촌인데
거의 한달 되가는데 집에 왕래가 없자
나도 어렸지만 궁금했는지
아빠는 아니고 엄마한테 그 삼촌 안오냐고 물어봤었음
엄마 말을 들어보니
대략 그 삼촌이 아빠 친구들 무리에서 하도 얻어먹고 다녀서
친구들 사이에서 염치없다고 사이가 틀어져서
아예 무리에서 낙오 된? 그런 상황 같았음
그래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몇달이 지났는데
아빠가 밤중에 전화받더니
지금 바로 간다고 하고 서둘러 옷걸치고 나가심
알고보니 그 삼촌께서 돌아가신 거임
친구들이랑 같이 장례를 치루고 오시고
일주일 정도 있다가
아빠가 그 삼촌 어머니한테 연락을 받으셨는데
그게 대박이었음..
삼촌이 돌아가시기 전에
친구들에게 쓴 편지 하나랑
자기 어머니한테 쓴 편지 하나로
유서처럼 남긴 글이 있는데
어머니에게 쓴 편지 내용에
자기 사망보험금이 얼마 얼마 정도 되니까
누구에게 얼마
누구에게 얼마
이런 식으로 갚아달라고 부탁하고 돌아가신 거임..
알고보니 그 분이 사업 망하시고
본격적으로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기 시작했던 3-4년 전부터
두꺼운 장부같은 노트에
친구들에게 신세진 것들을
남들 몰래 하나하나 적고 계셨던 거임
그 내용에는 심지어 이를테면
영수네집에서 물 한컵,
철수네 집에서 포도 두송이
민수네 집에서 소세지 반찬
이런 식으로 엄청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적어두고 계셨음
우리 집에서 얻어먹은 것도
아빠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적혀있었다고 했음
그분이 사업을 망하고 원래 죽으려고 하셨다가
재기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그동안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생활이 너무 어려우니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고
나중에 생활이 나아지면 갚으려고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다 적어두고 계셨는데
결과적으로
사정을 몰랐던 친구들에게 염치없다고 외면받고
결국 경제력이 회복이 안되니 갚을 길도 보이질 않아서
사망보험금으로 빚을 갚으신 것.
당시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사망보험금이 나오던 보험사들이 있었어서
본인 죽음으로 신세를 다 갚고 가심
친구들에게 외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쓴 편지에는
일 좀 잘 풀려서 몇배로 갚아주고 싶었는데
이거밖에 못 해줘서 많이 미안하다
너네랑 친구해서 너무 너무 행복했다! 라고 적혀있다고 들음
어릴 때는 크게 생각 없었는데
커가면서 나도 생활이 쉽지만은 않고
가끔 주위에 손 벌릴 일이 생길 때
꼭 어릴 적 그 삼촌이 우리집에서 라면 얻어먹는데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냄비 바닥 긁을 정도로 허겁지겁 먹으면서
해맑게 웃던 얼굴이 떠올라서 울컥할 때가 있음
그 때는 그렇게 보기 싫었던 삼촌이었는데
자신의 속은 얼마나 곪아가고 있었을 지를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되니까
이제서야 삼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삼촌이 죽고 난 뒤에
모든 사실을 알고 난 아빠가 왜 그렇게 우셨는지.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이해 되는 거 같아서
괜시리 먹먹해지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