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과외 해주러 갔더니 미친 천재를 만난 카이스트 학생 ㄷㄷ

긴 이야기이다.

주변에 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은 아직 없고,

그냥 내 스스로 인생의 좋은 경험 중 하나로 간직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고.

과외돌이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수학이 진짜 좋아요!” 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여태까지 과외를 많이 해본건 아니지만,

자기 입으로 수학을 좋아한다고 그러는 애는 처음이었다.

사실 정상적인 학생 중에 수학을 잘하는 애는 있을지 몰라도,

좋아하는 애는 얼마나 있을지 참 의문이다.

근데 문제는,

얘가 보통 어린게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당시 9살이었고,

3년째 되는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난 분명히 저 나이때 머릿속에 공차기랑 포켓몬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어린 나이에 저렇게 학구열이 높은지 놀라울 정도였다.

막상 수업을 시작하니 입으로만 그러는게 아니었다.

어디까지 읽어보라 그러면

지가 심화개념 찾아가지고 공부해놓고,

내가 숙제를 내주면 초과달성이 기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과외 시간이 남을 수 밖에.

애가 똑똑하다고 과외를 덜할 수는 없으니,

남는 시간에는 그냥 이것저것 얘기해주기로 했다.

과목 구분 같은 것도 따로 없이

수학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되는 대로였다.

난 이 과외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한테

항소 다음이 상고라는 걸 알려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사실 나는 초3한테 과외를 시키는 것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배우는 과목이라 해봐야

말 그대로 진짜 그 나이 때 알아야 되는 수준이고,

굳이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이 아이는 좀 달랐다.

소위 말하는 영재, 어쩌면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이에게는 진짜로 특수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긴 것이,

과연 내가 이 아이의 교육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다른 과외돌이를 가르칠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단순한 쌍무적 계약 관계.

과외돌이와 나의 관계를 표현하는 완벽한 단어였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마치 번쩍이는 원석을 눈앞에 둔 대장장이.

어설프게 손을 대서 원석을 망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교통비 + 시간당 6.0이라는 특급 대우를 포기할 것인가.

이거 짤리면 내 한 달 생활비는 30만원인데.

그렇다고 잘 가르쳐줄 자신은 없고.

내가 아무리 고민해봤자 답은 안나왔다.

그래서 지지난해 겨울,

그냥 솔직하게 아이 어머님께 상담을 했다.

“전 이 아이를 가르칠 그릇이 못 됩니다.

저 같은 일개 학생이 아니라,

영재교육원 같은 전문 시설에 데려가셔야 됩니다.”

대답이 놀라웠다.

“네? 우리 애가요?”

“네 영재에요 아니 천재인 것 같습니다.

저 이래뵈도 카이스트 학생인데 저보다 머리가 몇배는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이런 식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해드렸다.

얘가 지금 어느 정도의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

뭘 배우고 싶어하고, 이렇게 배워나가면 결국 어떤 길을 가게 되는지.

그리고 그 길을 남들보다 월등히 앞서나갈 정도로 뛰어나다는 사실까지.

하루를 기다려 얻은 답은 간단했다.

“그냥 학생이 가르쳐주세요. 아이가 학생을 많이 좋아하고,

카이스트 학생인만큼 잘 가르쳐주리라 믿어요.”

“저 솔직하게 정말로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데..”

“괜찮아요.”

그러했다.

가장 큰 변화는, 일단 시급이 10,0으로 올랐다.

올려달라는 말도 안했는데 계좌에 평소의 두 배 가까운 돈이 들어왔다.

과외를 가니 간식을 주기 시작하셨다.

하나 같이 정성들인 음식들.

자취한다는 걸 알게 되신 이후로는

가끔씩 반찬을 싸서 주시기도 하셨다.

지갑과 뱃속은 묵직해졌지만, 내 머리도 한층 더 무거워졌다.

내 공부도 힘들어서 겨우겨우 B+에서 A- 사이를 전전하는데,

이런 내가 뭘 가르쳐야 이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

막막했다.

사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선행이었다.

피타고라스 정리나, 이차방정식 같은 걸 쉽게 이해하는 걸 보면,

이미 중학교 수준의 수학 능력은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과연 이 아이에게 내가 정석을 들이대야만 하는가.

내가 그렇게 싫어했고, 하루에도 몇번씩 찢어버리고 싶었던 그 책을.

물론 정석은 좋은 교재다.

갓성대님의 수준급 카피 실력으로

일본 책을 베낀 결과물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십년 동안 제 2의 교과서로 사용될 정도로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을 이해함에 있어 크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재미가 더럽게 없고,

문제들이 하나 같이 변태 같으며

글씨체 조차 마음에 안든다.

그래서 나는 정석을 포기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내린 이 판단이 옳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고민 끝에 나는 내가 배우고 싶었던 방식의 교육을 선택했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

공리와 정의로부터 시작해 나아가는 수학이었다.

일단 집합을 가르쳤다.

놀랍게도 집합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집합 간의 연산도 빠르게 받아들여서,

벤다이어그램 없이도 능숙하게 해냈다.

다만 공집합 개념을 ‘싫어’했다.

이해를 못한 게 아니라 그냥 그 개념 자체를 싫어했다.

원소를 포함하지 않는 집합이라는 것이 마음에 안든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이해가 안가는 건 가르쳐주면 되지만,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뭔가 해보고 싶었다.

0도 싫냐고 했더니 또 0은 완전 좋은 숫자란다.

그래서 공집합이랑 0이랑 비슷한 거라고 했더니,

0은 쓸데가 있는데 공집합은 쓸데가 없단다.

‘공집합도 쓸모가 있어!’ 라고 하려 했지만,

적당한 예시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생각난 것이

바로 페아노 공리계였다.

(집합 이론을 통해 자연수를 정의하는 계)

어차피 한번쯤은 자연수부터 시작해서

복소수까지 한 번 쭈욱 소개하려 했으니,

마침 잘됐다 싶어서 그냥 바로 설명했다.

다행이 생각보다 잘 받아들여서,

결과적으로 공집합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걸 알려줄 수 있었다.

그랬더니 ‘아 그러면 얘도 0처럼 완전 좋은 거네요’ 하더라.

삼천포이기는 한데,

‘좋다’라는게 과외돌이를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 적고자 한다.

이 아이는 어떤 수학적 개념을 처음 받아들일 때

‘좋다’ 혹은 ‘싫다’고 판단하는데

난 솔직히 아직도 이 가치 판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삼각함수 표기법을 굉장히 싫어하며

sinθ가 sxixnxθ로 헷갈릴 수 있어서 ‘더럽다고’ 한다.

또 루트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데, x^(1/2)로 쓰면 될거를

왜 굳이 새로 기호를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단다.

반면 ‘한번에 다 표현하는 게 편해서’ 벡터는 좋아한다.

또 행렬은 거의 사랑하는 수준인데,

처음 알려주었을 때 한달 내내 행렬만 하자고 해서

선형대수학을 가르쳐야 했다.

자세한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냥 생긴 게 마음에 든다고 한다.

문제는 이게 과외돌이의 학업 관심도와 직결된다.

수학을 원래 좋아해서, 수치로 따지면

컨디션에 관계 없이 패시브로 10에 7정도의 관심은 유지하며,

‘좋다’고 판단하면 그날 나는 제 때 집에 못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번 과외시간을 4시간 연장한 적이 있는데,

자고 가라고 하시는 걸 말리고 막차타고 겨우 돌아왔다.)

다만, 자기가 한 번 ‘싫다’고 생각해버리면

다른 걸 하기 전까지는 관심도 제로가 된다.

이걸 깨닫기 전까지는 괜히 하기 싫다는 애 부여잡고

가르치는 식이었는데,

덕분에 삼각함수를 가르치는데 대략 두 달 정도가 걸렸다.

요즘은 ‘싫다’고 하면 바로 접고 다른 거 한다.

그러면 다시 관심도가 회복된다.

아, 그리고 놀랍게도 아직도 루트는 사용하지 않는다.

꿋꿋하게 지수 표기를 고수하는 중이다.

아무튼 참 신기한 놈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기본 사항을 너무 안 적은 것 같아서 적기로 했다.

과외돌이는 남자. 키스 안한다.

주 2회 3시간에 교통비 포함 시급 10만원이고,

주말에는 시간이 나면 가끔씩 추가로 가르쳐준다.

주말은 내가 심심해서.. 하는거라 돈은 안 주셔도 된다고 말해놓았지만,

언제나 말없이 시급 5만원에 교통비가 계좌로 입금된다.

그리고 명절에는 이런저런 좋은게 제공된다.

지난번에는 좋은 넥타이를 하나 받아서 애용중이다.

그렇게 우리의 과외돌이는

첫 수업에 집합론의 개략적인 내용을 모두 소화해냈다.

이해를 잘 해서 고맙긴 한데,

덕분에 컬리큘럼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집합론을 대강 두 주 정도는 가르치는 거였는데,

이 속도라면 다음 시간에 다 끝날 판이었다.

물론 더 가르치려면 가르칠 건 많았다.

데카르트 곱이라던가, 칸토어 정리라던가.

하지만 아무리 똑똑해도 차마 이걸 가르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배워봤자

사실상 별로 쓸모도 없는 지식이니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제대로 가르쳤다면 이해는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기본부터 쌓아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연관된 여러 지식들을 가르쳐주면서,

차근차근 현대 수학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이 방식이 좋은 방식인지는 모른다.

사실 이 과외돌이가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초4는 집합론을, 아무리 기초라 하더라도 이해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것이 가능했고,

나 역시 이 교육법을 시도할 열정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가르친 페아노 공리계에 이어,

수의 개념을 확장하기로 했다.

아까 말했다시피, 과외될이는 이차 방정식을 풀 줄 알았다.

즉 분수의 사칙연산은 물론이거나와,

유리수로 표현되지 않는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피타고라스 정리나, 이차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다양한 무리수를 다뤄보았다.

즉,

실수 개념까지는 그 연산까지 포함해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무리수의 판정은 아직 몰랐는데,

왜 루트2가 무리수인지 증명하려다가

소숫점 열자리까지 계산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그래도 흔히들 사용하는 범위 좁히기 식의 계산이 아니라,

어디서 본 건지는 몰라도 나름 개평법을 사용해서 계산했더라.

그래서 a=q/p, gcd(p,q)=1, p,q,∈Q 로 놓는

귀류법 증명을 가르쳐주었더니

엄청 신기해하면서 이런 건 처음 본다며

그러면 파이는 왜 무리수냐고 묻더라.

미적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르쳐 줄 수 없었던 것이 정말 아쉬웠다.

(미적1 수준의 지식만 있어도 가능하지만, 발상이 좀 많이 어렵다.)

이어지는 질문이 또 걸작이었는데,

미적분을 쓰면 임의의 수가 유리수인지 무리수인지 판정할 수 있냐고 물었다.

많은 수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답하자 약간 실망하더라.

이후 실수를 넘어서서, 마침내 복소수에 대해 알려주었다.

사실 이차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허수를 이미 접하기는 했지만,

허수가 정확히 무엇이며

수학에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알지 못했다.

개략적으로 설명한 후 문제를 좀 풀렸는데,

복소수는 크기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걸 잘 받아들여서 신기했다.

나는 복소수를 처음 접한게 초6때였는데,

당시에는 대체 이게 무슨 쓸모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복소수는 마음에 드냐고 묻자,

이차 방정식의 해를 표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니까

좋은 숫자라고 답하더라.

그래서 다음 수업시간에는 내친김에

삼차 방정식의 해법을 보여주었는데, 𝜔가 등장해버렸다. (𝜔^3 = 1)

본의는 아니었지만

아이젠슈타인 정수를 가르쳐주었고,

당시에는 나도 약간 열이 올라서 사원수를 소개하기기에 이르렀다.

(i^2 = j^2 = k^2 = ijk = -1 을 만족하는 수체계)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랬나 후회도 되지만

엄청 재밌어 했으니 괜찮지 않았나 싶다.

실은 복소평면도 가르쳐줄까 고민했는데,

이 때는 내가 정신이 좀 들어서 자제했다.

너무 많이 나가는 것 같아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후에 알려주기로 했다.

(후일담이지만 몇달 전 복소평면에서의 적분을 가르쳤는데

나보다 잘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두 시간 정도 여기저기서 엄선한 문제를 좀 풀어보게 하고,

당연하게도 막힘없이 풀어내길래

본격적으로 함수를 가르치기로 했다.

아마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수학자와 교육학자들이 동의하리라 생각되는데,

나는 수학, 그리고 그 교육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함수라 믿는다.

고등학교 교육의 대부분은 함수를 해석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현대 수학의 많은 부분이 함수의 본질과 그 응용이니 말이다.

그래서 ‘함수가 뭔지 아니?’ 라고 물어봤다

‘자판기!’ 라 그러더라.

흔히들 사용되는 자판기의 비유를

수학 교양도서에서 본 적이 있는 듯 싶었다.

대강이나마 함수를 이해하고 있고,

집합에 대한 개념도 어느정도 생겼겠다.

바로 함수를 정의하기로 했다.

한 집합의 원소들과 다른 집합의 원소들의 상관관계.

사실 엄말하지는 않다.

아마 시험지에 이렇게 쓰면..으..

하지만 충분히 유용하고, 받아들이기 쉬우며 직관적이다.

그랬더니 잠깐 생각하더니

두 집합이 서로 같은 집합이어도 되느냐고 묻더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함수는 자판기라고 생각하던 아이가

정의를 들려주자마자 절대값이 함수라는 걸 깨닫는다는 것이

진짜 신기하지 않은가?

이럴 때마다 참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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