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의 바람, 이혼

절대로, 만에 하나라도 나 같은 일은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혹시라도 비슷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닥쳐온 위기에 나처럼 세상천지 개ㅂㅅ같이 굴지 말고

정신없겠지만,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지옥 불에 몸을 반쯤 담근 거 같이 힘들지도,

어쩌면 분노로 다 지옥으로 끌고 가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아 그때 그 ㅂㅅ 새끼가 그랬었지. 그 새끼처럼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

제대로 정신차리고 똑바로 굴라는 글이다.

와이프 바람은 오년 전에 알게 되었다.

와이프 화장대에 왠 메모리가 굴러다니더라.

핸드폰이나 디카에 넣는 조그만 마이크로 메모리.

이게 뭐지? 하고 아무 생각없이 주워 가방에 넣고는

잊어버리고 그렇게 1년을 살았다.

와이프는 댄스동호회 활동을 오래 해왔던 사람이었다.

살사같은 몸을 밀착시켜서 하는 그런 건 아니고

가수의 백댄서처럼 군무를 주로 하는 동호회.

그래서 조금 마음을 놓았던 것도 있다.

여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남자도 적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이라 마음은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와이프는 거의 고등학교부터 이 생활을 해왔고

그게 하나의 삶이 되어버린 케이스였다.

그래서 믿었다.

동호회 활동은 퇴근 후 밤 늦게.

새벽 늦게까지 춤을 추다

대부분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경우가 잦았다.

동호회 성격이 그랬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날 욕했다.

특히 나이 많은 상사들이.

바보 아니냐고.

난 되려 그들을 마음 속으로 욕했다.

어떻게 자기의 반려를 믿지 못하냐면서.

댄스동호회 사람들도 좋았다.

같이 만나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놀러도 가고,

결혼식에도 오고, 집들이에도 오고,

시간이 흘러 애기 돌잔치에도 와주고.

좋은 인연이 자꾸 생겨서

나도 그들 경조사에 참석하고 그랬다.

근데 그 새끼도 거기에 있었다.

내 결혼식에, 내 새끼 돌잔치에,

여행 갈 때, 동호회에 놀러 갈 때,

집들이에서도 옆에 붙어 형님 형님 하면서.

1년 동안 잊고 살던 메모리가 갑자기 가방에서 굴러 나왔고,

메모리 파일을 클릭하자마자 떠오른 미리보기에

그 새끼 얼굴이 나왔다.

와이프랑 둘이서 찍은 사진이 미리보기에 한 가득이었다.

아는 얼굴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

한 치도 그런 의심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 마누라는 그럴리가 없다, 가 아니라

우습게도 아예 그런 의심 자체를

결혼 생활 내내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건 남일이었고,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었다.

그만큼 충실했다.

서로 잘 맞았고, 그만큼 웃는 날이 많았고,

사소한 다툼은 있었어도 커다란 갈등은 없었고

여유롭지 않아도 다음 번 이루고 싶은 계획으로

같이 설레였었고,

좋은 거, 맛있는 거 먹으면

나보다 상대방이 먼저 생각나는 그런 결혼 생활이었다.

아기가 커가는 모습처럼

가족의 행복도 그만큼 자라는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어쩌면, 나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회사 잘 다녀오라고

주차장에서 서로 웃으면서 눈 마주치고

손 흔들어 인사하고 그랬었다.

그랬기에 나랑 결혼하기 전에 사귀었던 사이였겠거니 하고

정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사진을 지우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손이 멈추더라.

신기하게도 뭔가 이상한 촉에, 홀린 듯이

클릭한 사진 속 와이프 모습에 머리가 띵해졌다.

와이프는 내가 사준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며칠을 고르고 골라 이벤트를 하며

생일 선물로 걸어줬던 그 목걸이를.

이 새끼가 디카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를 좋아하고,

평소 와이프도 셀카나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둘이서 사진을 찍고 다녔던 거다.

내가 먼저 사랑했니, 네가 먼저 시작했니 하는 카톡에서부터,

속옷만 입고 있는 사진을 찍어 보낸 카톡,

내가 사준 목걸이를 하고

벌건 대낮에 공원에서 피크닉 분위기를 내며

서로 키스를 하고 있는 사진들.

전국 방방곡곡을 놀러 다니며 맛집이며 공원이며

그 곳 펜션에서 찍은 사진들.

연극을 보러 간 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찍은 사진들.

와이프 생일날 모텔에서 이벤트를 벌이며

개 같은 짓거리를 찍어 놓은 사진들.

그 새끼 자취방에서 술에 취해

둘이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있던 사진들.

내 새끼를 데리고 나가 바람피던 그 놈이랑

마치 가족처럼 어울려 찍은 사진들까지.

그 모든 것을 사진으로 저장해 놓고 있었다.

무려 2년 동안이나.

애가 4살 때부터 와이프는 그 짓을 하고 다닌 거였다.

폴더 별로 분류를 하고

추억이라도 새기는 것 마냥 제목까지 달아가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한테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드라마에서,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그게 내 현실로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다.

목구멍 저 뒤편에서부터

쓰디 쓴 뭔가가, 피 냄새 같은 게 올라오더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계속해서 구역질이 나왔다.

봤다.

그 모든 걸 참으면서 보고 또 봤다.

그 새끼랑 뒹굴고 있는 모습부터

카톡 내용까지 모조리 보고 또 보고, 다시 봤다.

그 후로 어떻게 손님을 대하고

어떻게 퇴근해서 운전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는 길에 하나씩 생각나기 시작했다.

부부생활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이상 씩은 했는데,

어느 날인가 불안하다며 피임약을 시술하고 싶다고 해서 해준 적이 생각났다.

상박에 심는 작은 캡슐 같은 거였는데

중간에 그걸 연장해야 한다며

몇 번인가 다시 시술 받았던 것도 기억났다.

그리고 사소한 다툼에 권태기가 심하게 온 거 같다고,

나랑 살기 싫다고, 이혼하고 싶다고 해서

다독이느라 애를 먹었다던 장모의 말도 기억났다

두어 달 전쯤에 그 새끼 집에서 농사를 하는데

쌀이 남는다며 먹으라고 가져와

거의 다 먹어가던 쌀 포대도 생각났다.

가족 여행을 경주로 갈 일이 있었는데

안압지 야간 개장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와이프를 보고는 우스개소리로

“언 놈이야, 언 놈이랑 온 거야.” 했더니,

어정쩡하게 웃어 넘기던 얼굴도 생각나고,

그 날 묵었던 펜션이

그 새끼랑 있던 사진 속의 펜션과 똑같았던 것도 기억났다.

사고가 날 거 같아서 중간 쯤에 차를 세우고는

와이프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린시절부터 친구이자 같은 동호회를 다니던 사람이었다.

우습게도 와이프 친구도 이혼을 했다.

남편이 바람을 폈거든.

그때, 와이프 친구에게 등신같다고 화를 내며

앞장서서 그 남편을 욕하고

친구에게서 결국 남편을 떼어 내고 이혼 시켰던 사람이 와이프였다.

그리고 그때는 자기도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때였다.

자기가 한 짓은 사랑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따졌다.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왜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냐고.

누구보다 내 심정을 잘 알지 않냐고.

잡아 떼지도 않고 처음부터 미안하다고 하더라.

모든 걸 다 알고도 감추고 있었던 거였다.

그 친구 말고도 우리 애기랑 나이 비슷한 애기가 있어

자주 얼굴을 보던 다른 친구도 그랬다.

모두 그만두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었다고,

그런데 들어 먹질 않았단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를 해서 와이프보고 나오라고 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는지

와이프가 창백한 얼굴로 벌벌 떨면서 나오더라.

차분하게 가라앉혔던 마음이

차를 타고 가며 결국 터졌다.

결국 이혼밖에 없다는 결론에 세련되지는 않아도

마지막까지 진창을 구르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다잡았던 마음과 다짐이

“미안해.”

한 마디에 아무 소용 없어졌다.

뭐가 미안한데? 아니, 대체 미안하기는 한거냐?

울며불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미친 놈처럼 핸들을 꺾으며

집 근처 익숙해 보이는 한적한 곳을 찾았다.

거기서 모든 걸 토해냈다.

횡설수설하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흥분했었다.

나한테, 아니 애 얼굴 보면서 미안하지 않았냐고.

네가 과연 사람 맞냐고. 네가 엄마 맞냐고.

이혼하자고, 너 같은 더러운 인간이랑은 못 살겠다고

평생 살면서 모진 말 한 번,

나쁜 소리 한 번 못 해본 내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와이프 마음을 향해 정말 녹슨 못처럼

뾰족한 소리를 원 없이 박아 댔다.

빌더라.

펑펑 울면서 잘못했다고,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아마 정신이 어찌 되었던 것 같다고 그러더라

어떻게 이건 바람피운 인간들의 한결같은 대사인지 ㅋㅋㅋ

이제 정리하겠다고,

솔직히 매주 보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그런 관계는 아니라고 했다.

난 그 말을 듣고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2년을 그렇게 뒹굴어 놓고는 정리를 했다는 것도 아니고,

이제야 정리를 하겠다고?

내가 그 사진들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백 년 해로 했겠네?

거기에 더 빡쳐서 미친 듯이 지랄을 했다.

그랬더니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이라는 말이 나왔다.

위로 받기 위해서 그랬다고 했다.

내 모습에 실망해서 그랬다고 했다.

와이프가 바람을 피울 당시

난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개인사업을 해볼까 알아보다가, 결국은 돈 문제로 구직을 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다녔던 ㅈ소기업에 신물이 났던 내게

내 입맛과 조건에 맞는 회사는 그렇게 쉽게 구해지는 게 아니었고

보잘 것 없던 내 스펙으로는

더더욱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보다 좋은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잦은 이직이 시작되었다.

그 기간이 1년 하고도 6개월 정도였다.

그래, 십분 이해해서

가장의 무게를 되찾지 못해 빌빌대는 내 모습에 실망했다고 하자.

두 연놈이 사랑의 카톡을 주고 받던 시기가 2년 전 4월이었고,

난 그 해 1월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그리고 그 1월에 4박 5일동안 제주도 여행을 둘이서 다녀왔고.

둘이서 잘 살자고 다짐하며 현실로 복귀했었다.

그렇다면 불과 2개월, 3개월만에

나에게 그 실망을 했다는 소리인가?

내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고 있지 않았나?

십 년을 개처럼,

심지어는 일요일에도 쉬는 날 몇 번 없이 일한 나에게

고작 3개월을 놀았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개고생을 하며 회사를 다녔다며 고생했다고,

좀 쉬라던 말은 다 구라였나?

그리고 무엇보다 4월에 그런 내밀한 카톡을 주고 받았는데

그런 기류가 4월부터 시작! 하고 생겼단 말인가?

개소리였다.

ㅋㅋㅋㅋ 그저 신박한 개소리였다.

와이프는 그게 바로 사실이라는 듯

열심히 자신의 변명거리를 계속해서 얘기했다.

문득 불안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이없게도

한적한 곳이라고 찾아온 이 익숙한 곳은

와이프와 연애를 하며 첫키스를 나눴던 곳이었다.

이혼하니, 용서를 하지 않겠다니,

평생을 저주하겠다니 폭언을 퍼부었어도 결국은.

그래, 이미 난 준비가 되었던 거였다.

내 태도와 마음 상태는 이미 와이프를 용서할 모든 준비를 끝낸 채였다.

무서웠다.

이혼을 생각하며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내 새끼의 얼굴이더라.

엄마, 아빠와 따로 떨어져 살게 될

저 어린 것의 평탄치 않은 삶이 이 시간부로 정해져 시작될 거라는 게 무서웠다.

부모를 잘못 만난 죄로

지금부터 겪게 될 내 새끼의 불행한 앞날이 생각날 수록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에도 학부모 참관 같은 걸로

많은 가족들 사이에서 웃고 있지 않던가.

저 밝은 얼굴로 아빠, 하며 나를 반기던 그 얼굴을,

나는 대체 그 얼굴을 이제부터 어떤 심정으로 보게 될까.

그리고 내 인생은?

사실 난 와이프를 만나기 전까지 변변찮은 연애도 못 해본 찐따였다.

결혼도 늦은 나이였다.

와이프랑은 나이 차이도 많았고.

사귀고 있었어도 반쯤은 포기한 결혼이었다.

와이프는 키도 나보다 크고 예뻤다. 스타일도 좋았고.

동호회에서도 춤을 제일 잘 추는 사람으로 꼽을 정도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주목을 끄는 사람이었다.

처음 사겼을 때

왜 이런 사람이 나랑 사귀자고 할까 생각할 정도였어서,

사귀는 내내 불안하긴 했었다.

그런 사람이라 이런 보잘 것 없는 나와의 결혼에

나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진 채

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심정이었다.

보석같은 사람이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곱게 늙어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저 언젠가,

꽃 구경하면서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던 노부부의 뒷모습은

내 평생의 꿈이었다.

사실 나는 이 꼴을 당하고도

와이프랑 헤어질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던 게 맞다.

말로만 그랬던 거다.

나만 참으면 된다.

나만 입을 닫고, 감정을 정리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옛날로,

아마도 어제처럼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 거다.

조금만 지나면, 조금만 추스리면.

참아보자.

힘들겠지만, 참아보자.

남자잖아.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나는 미련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며 한없이 나를 다독였다.

내 새끼의 불행도.

내 가족, 내 인생, 밉지만 내 와이프의 인생마저도.

나만 참는다면.

그 모든 짐은 내가 지고야 말겠다 라는

어쩌면 숭고하기 까지 한 이 감정에 한껏 고취된 기분으로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개 ㅂ ㅅ 같은 생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래, 이걸로 됐다.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잘못 했다고, 한 번만 봐주면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말과 함께

애기의 미래를 슬쩍 끼워넣는 말에

나 또한 어물쩍 용서 아닌 용서를 해 버렸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며 엉엉 울었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풀 길이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그 새끼한테 전화하라고.

왜 전화를 할려냐고 묻더라.

내가 화를 냈더니, 그 말에 와이프는 마지못해

그 놈과 통화를 시켜줬다.

여보세요 라고 들리는 목소리에

내가 이 전화로 ‘너 새끼에게 전화한 이유 알지?’ 하고

첫 운을 띄웠다.

가만히 수화기만 붙들고 있던 나에게 숨이 막혔는지

놈이 갖은 변명을 대기 시작했다.

그 말을 끊고 가만히 물었다.

왜 그랬냐고.

너무 힘들어 해서 위로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 때문에 힘든 상황을 어디에도 풀 길이 없었단다.

그래서 자신이 항상 옆에서 도움이 되어 주었다고 얘기했다.

저런 개소리를 남편에게 하고 있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새끼가 미친 건가.

눈앞에 있었다면 달려들어 죽여버렸을 거다.

목을 조르고 졸라, 정말로 산 채로 토막 내어

그 고통을 즐기다 갈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와이프가 전화기를 뺏어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짜증을 냈었다.

그때는 분노로, 당황한 심정으로 미처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분명 내게 짜증을 내던 얼굴이었다.

그 짜증내던 눈초리로

자신이 모든 걸 정리할 테니까, 알아서 할테니까

이런 전화는 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내게 되려 화를 냈다.

난 그런 눈초리를 받고도 겨우 단 한 마디만 했던 것이 기억난다.

분노에, 철천지 원수 같던 놈이 뱉은 생각지도 못한 개소리에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어 대는 거기에 대고

내가 한 말이라곤,

“이 정도만 한 거야. 이렇게 끝낸 거라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를 개병1신같은 소리를 저렇게 지껄였었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놈을 찾아가

멱살을 잡거나 악다구니를 할 정도도 못되는 겁쟁이였다.

새벽까지 잠이 들지 못하다가 회사를 향했다.

도중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우두커니 몇 시간을 있었다.

출근하고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와 카톡이 쌓여 있었다.

내가 나쁜 맘을 먹었는 줄 알았단다.

솔직히, 그런 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새벽에 보던 어두운 바다는

도중에 핸들을 꺾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까만 색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용기가 없었다.

나는 죽을 용기조차 없었다.

그저 내가 죽으면 내 새끼는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리고는 한 겨울, 영하로 내려가 입김으로도

언 손을 녹이지 못하던 추운 회사 창고 구석탱이에서

나는 볼쌍 사납게 쪼그리고 앉아

누가 볼까봐 한참을 소리죽여 울었다.

나를 걱정했다는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생각나고

곧이어 괜찮냐는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괜찮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오후 쯤 문자로 얘기를 전했다.

이건 아닌 거 같다.

지금도 이렇게 죽을 거 같은데,

이런 감정이 집에서,

그것도 애 앞에서 갑자기 터지게 되면

도저히 나를 용서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을 거 같다고 얘기했다.

그런 행동을 너에게 하는 나 자신도 용서가 안되고,

내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을 네 모습에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고 얘기했다.

지금이야 용서한다는 말을 이렇게 쉬이 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또 어찌 될까.

당장 오늘 저녁에 너를 보면 무슨 짓을 할지,

어떤 소리가 나올 지도 모르겠다.

미안한 마음에 너도 지금은 무슨 말이라도 참겠지만,

내 그런 행동이 계속된다면 과연 그때 가서도

이런 나를 참아낼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이 모든 것이 흐려진다 해도

이 죽을 거 같은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또 어찌할지 나는 물었다.

그 말미에, 이혼하자.

라고 나는 문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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