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평소에 사소한 일로 교무실에 자주 가서
말썽쟁이 이미지였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 앞 문구점에서 산
500원짜리 작은 하마 모양 물총을 들고
친구 새 끼 얼굴에 아낌없이 물을 퍼주다
존나 운 없게도
그 당시 교무실을 주름잡던 성격 더러운
여자 음악선생님의 눈에 걸리고 말았다.
50m쯤 되는 복도를
종횡무진 신나게 달려야 할 쉬는시간에
담배 피우다 걸린 새1끼들 옆에 서서
쪽팔리게 입에 물총 물고 손들고 서있다 보니
웬 수염이 입에 문 물총보다 긴
인상 더럽게 생긴 아저씨가 와서 도장 사셔요 도장
이 지1랄을 해대면서 도장을 팔고 있던 것이었다.
꽤 넓은 교무실에
평소보다 반 정도 사람이 빠진 선생들에게
한 명 한 명 질문을 해대다가
전부다 빠꾸를 먹었는지
뒤돌아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에이 싸가지 없는 새1끼들” 쯧쯧
이렇게 말하면서 나가는 것이었다.
정의감에 불탄 나는
그대로 물총을 입에서 내뱉고
그 아저씨 멱살을 잡고
안면에 강하게 플라잉 니킥을 날리긴 개뿔
그냥 손들고 서있었다.
근데 팔릴리가 없던 게
척 봐도 싸구려 도장인데 가격은 10만원이 좀 넘었던 거 같다.
이것이 그와의 첫 만남.
이 이후로도 이 아저씨 인간은
내가 혼날 때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퇴짜를 먹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일주일에 한 번쯤은 꼭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수업시간에 존나게 똥이 마려웠는데
학교가 남녀공학이라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려고 존나게 참고 있었는데
정말 이똥은 평범한 똥이 아닌 것 같았다.
한쪽 발을 의자 위에 올리고
최대한 태연한척하면서 디펜스를 하고 있었는데
똥이 2~3분에 한 번꼴로 절정에 다다를 정도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가를 반복하는
게릴라 작전을 펼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고
“선생님 저 화장실 좀..”이라고 말하자마자
나는 복도를 가로지르는 광란의 스피드 레이서가 된 나는
그 일 때문에 다시 교무실에서
푸시업 자세로 한쪽 무릎을 내리고 벌을 받았다.
헉헉대길 10분째 되었을 때였나..
다시 그 아저씨가 와서 퇴짜를 먹고 가는데
이 아저씨 놈이 내 손을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는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비명소리를 외친 나는
아저씨를 뚫어버릴 듯한 기세로
머리를 치켜들며 올려다 보려는데
이 아저씨가 내가 외친 소리를 듣자마자
“ㅅㅂ..뭐야 이 븅쉰 새낀..” 이러면서 그냥 가는 거였다.
화난 나는 그 아저씨한테
“아저씨! 사과 안 해요?” 라고 말했는데
“돌아오는 건 염병 떨고 있네..”라는 작은 말소리뿐이었다.
그 이후로
그 아저씨 새1끼를 어떻게 골려 줄까 고민하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갔는데
그 아저씨 인간이 또 도장을 처 팔아재끼고 있던 걸 보았다.
내 담임선생님한테 가서 도장을 팔려고 하는데
전날밤 소개팅에 성공하여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이던 선생님은
그 아저씨를 보자마자 “또 오셨네요 호호홍”이라면서
자기 이름을 종이에 써주면서 도장을 주문하려는 걸 본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달려가서
담임선생한테 친한 척을 했다.
내가 말하는데 자꾸 중간에 끼어들어서
말하는 아저씨가 얄미웠던 나는
도장 팔기 직전인 그 아저씨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나: 선생님 웬 도장임?
선생: 마침 도장이 필요함.
나: 어따 쓸려고?
선생: OMR 카드에 찌고 주려궁
나: 그냥 사인하면 되는데 도장은 왜 삼
대충 이런 식으로 말하는 도중에
이 아저씨가 엄청 불쾌한 표정으로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어드는 거 아니야 저리가” 이러는 것이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맨날 혼나서 악감정만 가득한 담임선생에게 친한 척을 해댔다.
나와 선생님은 이 정도로 친한 관계다!
네 녀석이 껴들 자리는 없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웃사이더 뺨따귀를 후려칠 듯한 스피드로
말인지 랩인지 구분 안될 정도로
빠르게 라임과 플로를 토해내고 있는데
이 아저씨가 날 밀치더니
“제가 지금 바빠서 빨리합시다? 예?”
대충 이런 투로 말하는 거였다.
딱 봐도 아저씨 똥구멍에 힘이 빡 들어가 있는 게 느껴지는데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그 어느 누가 안 잡겠나.
좀 더 아저씨를 똥줄 타게 하기 위해
그 아저씨가 말을 다 끝내자마자
다시 담임선생한테 별의별 질문을 하고
수업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누가 혼났고
누가 숙제를 안 해왔는지까지 브리핑을 해주는데
이 아저씨가 똥 마려운 사람처럼
다시 나를 밀치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쐐기를 꽂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나는
“선생님! 이런 걸 누가 10만 원이나 주고 사요!” 라고
100마일의 돌직구를 날렸다.
그러자 선생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지
“아 좀 더 알아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승리에 심취한 난 속으로 엄청 좋아하면서
겉으론 착한 학생인 양
아까 받았던 다른 선생님의 심부름을 가려는데
갑자기 어디서 손바닥이 날아오더니
척! 소리가 났고
속으론 미친 듯이 처웃고 넌 ㅈ됐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뺨을 맞고 3초정도 정적이 흐른 뒤
어색하게 바닥에 넘어진 나는
교무실의 모든 선생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당당하게 누워있었다.
속으론 너무 통쾌해 미치겠는데
그 상황에 너무 빠져든 나는
나도 모르게 한쪽 눈에만 눈물을 흘렸다.
거의 모든 선생이 일어나서 무슨 일이냐고 묻고
몇몇 선생은 곧장 뛰어와서
학교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애를 왜 때리느냐고 하고
우리 담임은 너무 놀랐는지
그대로 의자에 앉아서 어머 어머 어머머만 연발하고 있었다.
솔직히 통쾌하기도 했었지만
학생들도 자주 왔다갔다거리는 교무실인데
누워서 울고 있었던 나는
모두의 이목을 끈 뒤에야
이 상황이 얼마나 쪽팔린 상황인지 생각나기 시작했다.
근데 이 상황에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는건 또 뭐 해서
그대로 바닥에 누워서 한쪽 뺨 위에 손을 얹은 뒤
선생들이 학생들 보고 나가라고 할 때까지 부동자세로 있었다.
그리고 종이 치자 선생은 나를 의자에 앉히고
그대로 우리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엄마는 10분도 안돼서 뛰어오고
그 아저씨는 로또 2등 당첨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우리 엄마가 오자마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연신 죄송하단 말만 하면서
집안 사정이 이렇네 나도 아들이 둘이나 있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며
지구 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 코스프레를 처해대고 있었다.
엄마가 엄청나게 화나서 경찰서로 가자라고 말했는데
너무 일이 커지면 너무 나쁜 놈 같아서
“아 아니에요 저 정말 괜찮아요 제 잘못도 있는데요 뭐..”
이렇게 착한 척을 하면서
끝까지 뺨이 따구에 손을 얹고
아픈 척을 하면서 교무실을 나왔다.
수업시간이었는데 바로 들어가기가 싫어서
오줌 싸고 세면대에서 세수하면서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소리 안 나게 웃어젖히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들어와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만원 쥐여주고 나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난 정말 철없는 새1끼인 것 같다.
3줄 요약
1.학교에 도장 파는 아저씨가 왔는데 정말 짜증 남
2.이 아저씨가 도장 팔 때 방해해서 못 팔게 함
3.그 아저씨한테 뺨 맞고 선생님들한테 불쌍한 척 하면서 아저씨 엿 맥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