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고 집 나갔다던 엄마, 성인되고 찾으러 다녀왔다 +후기

부모님은 양가의 반대가 심했는데도 서로 좋아해서 결혼함

우리집은 할아버지대에서 일구어놓은게 많아서 꽤 사는 집안이었음.

결혼 후 나와 남동생을 낳았고 엄마가 수도 없이 바람을 피우고 다녔다.

그러면서 우리 아빠가 장남이라 대부분의 재산이 상속 되어있는데 그것도 하나하나 갖다 쓰기 시작.

물론 대부분 남자 만나는데 썼음.

우리를 낳고도 그런거지.

한두번이 아니니 아빠는 갈 수록 멘탈이 나가고 가장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게됨.

이과정에서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폭력도 적잖게 시전되었다고 해.

서울에서 살다가 지방으로 이사왔고

그 와중에도 집을 몇 번이나 나가서 찾으러 다녔다.

아빠 없을 때 어디 갔다온다고 하면 100% 집 나간 거야.

근데 우린 너무 어렸기 때문에 집 나간 거라고 생각을 못했지.

거처를 옮긴 것도 몇번이나 되는지 셀 수 가 없다.

중간에 엄마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새엄마가 생겼어.

왜 그런지 영문도 몰랐고 자식 딸린 그 여자와 살게되었다.

굉장이 성격이 드러운 여자였던걸로 기억함.

반년정도? 같이 살다가 다시 엄마와 재회했어.

그러다가 8살이 되었고

난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

내 생일이 봄인데 생일 케이크 사러갔다가 포도 데코되어있는 케이크 골랐다고 징징대다가 많이 혼난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있는걸 보면 8살 여름이 오기전이었을 거야.

아빠는 일하러 나간 상태이고 난 동생과 집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고

게임 한다고 정신없을 때라 “어 갔다와~”하고 넘어감.

그뒤로 난 엄마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빠는 집에 돌아와 상황파악 하시고 여기저기서 엄마를 찾을 방법을 캐고있었다.

그렇게하여

난 8살때 아빠와 서해안부터 남해,동해에 이르기까지 해안선 따라 전국일주를 하게되었다.

끝내는 못 찾았다.

그해 여름에 난 수두에 걸렸어.

아빠는 일다니랴,

집돌아오면 우리 밥 차려주랴,

아들 병간호하랴, 너무 바빴지.

수두 때문에 학교도 잠시 못다녔어

아빠는 퇴근 후 집에오면

온몬에 물집이 잡힌 나에게 소독약을 발라줬다.

그게 얼마나 아팠던지

아픔에 울면서도 엄마 생각에 더 울었던 거 같다.

아빠 혼자서 감당하기가 힘들었나봐.

수두걸렸는데 아빠가 내 손잡고 집 뒷동산을 산책 시켜줬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않아.

때때로 갑작스레 옛기억이 되살아나곤한다

언젠간 기억날거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도 하나 있으니까

그뒤로 난 시골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어

그곳으로 전학을 가게되었고 아빠와 떨어져 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가 할머니집에 날 놓고 갈때 내가 울며불며 난리가 아니었다.

어린데다 말썽쟁이라

할머니가 가끔 놀러올때랑 다르게 데리고 살다보니 매를 많이 들었음.

엄마랑 살 때도 말 안 들으면 맞긴 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음.

할머니한테 맞을때마다 맨날 엄마 보고싶다고 울었다.

그럼 할머니는 엄마 찾는다고 더 혼냈음.

그렇게 시골생활에 적응하면서 성장했어.

초등학교 2~4학년 즈음 엄마는 종종 우리 시골집에 전화를 했다.

할머니가 받으면 그냥 끊었고

내가 받으면 조용히 할머니 있냐고 물어보고

없다고 하면 전화통화를 했다.

절대 엄마한테서 전화왔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

할머니는 어찌된 영문인지 자기 목소리 듣고 끊는 전화가 오면

“급살 맞을 년 여기가 어디라고 전화질해”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어떻게 알았지.

어느날은 갖고 싶은거 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엄마가 뭐라도 해주려고 하는게 보였어.

엄마한테 전화오면 늘 똑같았다

보고싶다고 전화 붙잡고 울고

나도 엄마랑 살고싶다고 했다.

엄마도 전화하다가 우는게 태반이었어.

그러다가 할머니오면 냉큼 끊고 이불속에 숨어있었다.

어느날은 엄마가 전화왔는데 평소와 다르게 몇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엄청 우는거야.

영문도 모르는데 엄마가 우니까 나도 그냥 울었음.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 소문이 퍼졌다

ㅇㅇ년이 어디서 살고있는데 건달한테 잡혀서 쳐맞고 산다고..

그얘기 들으니까 얼마전 엄마가 울면서 걸어왔던 전화가 떠오르는거야

진짜 나쁜새끼들한테 잡혀서 인질처럼 당하는거 아닌가

초등학생인 내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이불뒤집어 쓰고 존나 울기만했다.

엄마 아프지마, 엄마 보고싶어 같은 혼잣말만 하고다녔음.

아빠는 종종 시골에 와서 예전에 같이 살 때도 그랬던것처럼 머리도 잘라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하루정도 같이 있다가 돌아갔다.

아빠가 항상 하루정도 지내고 가는건 아니었어

대부분이 점심때 와서 저녁때 갔지.

종종 시간이 나는날이면 우리 데리고 낚시를 자주 다녔어.

이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같이 다녔던건데

아빠가 낚시 간다고하면 너무 좋았지.

텐트 치고 밖에서 모두 낚시를 즐기다가 시간이 되면 엄마는 코펠에 밥하고 있고

나랑 동생은 낚시 찌만 눈 빠지도록 쳐다보고 있고

우리 쓰라고 준 낚시대는 맨날 잘못던져서 미끼만 날림

밤되면 텐트안에서 랜턴불이 꺼지며 스르르 잠이 들었지.

비록 이제 아빠가 혼자였지만 여전히 아빠의 취미는 낚시라서 우리를 데리고 종종 캠핑을 갔어.

낚시 따라가는건 우리에게 너무 즐거운 일이었거든

그땐 아빠가 밥도 해주셨지.

이렇게 아빠가 한번 오면 너무 반가워서 하루종일 입을 놀리면서

학교생활 이야기랑 사는 이야기를 아빠한테 했다.

그러다가 담에 또온다며 돌아가실 때는 아빠 안고서 가지말라고 통곡을 했다.

거의 동네 떠나갈정도로.

아빠 안가면 안되냐고

“아빠 가지마, 아빠랑 살고싶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고싶어”

“아빠 가면 내일은 안오잖아”

초딩때라 저녁 9~10시면 잠이 들었음.

어느날은 아빠가 12시쯤에 잠깐 왔다가 가셨는데

아빠가 내 볼 한번 만지고 가려다가 내가 잠이 깼다.

눈뜨자마자 아빠는 가야한대서 그밤에 또 난리가 났었지.

왜 난 부모님들이랑 떨어져 살아야하는지 너무 싫었음.

이해할 수 없었고.

여전히 엄마화 통화를 종종하며 지냈다

내가 시골집에 자라며 변한건지, 나이를 한살 먹을 때마다

엄마와 통화할 때의 내 말투는 점점

그나이에 엄마를 대해야할 태도가 아니라

딱딱하게 감정이 없는 말투로 바뀌었다.

한 3~4학년 쯤 되던 어느날은 학교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엄마가 학교 후문에 있다고 나오라고 했대.

학교 교무실에 전화해서 부른 거 같더라.

근데 난 시골집에 와서 할머니한테 반은 세뇌당하듯 자랐다.

엄마 찾아오면 아는척도 하지말라고 나쁜년이라고….

난 항상 엄마가 보고 싶었거든?

학교에서 후문까지 200m밖에 안될거야

그렇게 보고싶던 엄마가 눈앞에 있는건데

왜 그랬는지 난 나가지 않았음.

한 시간정도 지나니까 다시 교무실에 전화가 왔나봐

“ㅇㅇ아 너 엄마 기다린다는데 안갔었어? 엄마가 아직 기다리고 있대 얼른 나가봐”

끝내 난 나가지 않았다.

그 뒤로도 엄마는 한 두 번정도 더 찾아왔었는데

난 엄마를 만나러 나가지 않았어

시.발 코앞에 있는데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가지 않은 내가 너무 원망스러워 미칠 것 같음

그뒤로는 엄마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어.

나도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고

매일 동네 사람들과, 할머니가 엄마 안 좋은 얘기만해서

어렸을때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은 완전히 잊게 됐고

‘우리집 말아먹은 사람, 내 인생 말아 먹은사람’ 으로 기억하게 된다.

성장할수록 더 심해져서 나중엔 밖에서 셀프 패드립치고 다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어.

중고등학교때 야영이나 캠프가면 엄마 생각나는 애들많고 눈물질질 짜는 애들도 많은데

난 전혀 슬프지 않았고 부럽지도 않았다.

도대체 왜 우는건가 싶었지.

교과서나 언론,잡지,여러가지 책에 들어가있는 다양한 엄마에 대한 감성팔이 이야기들은 내게 통하지 않았어.

전혀 이해가 안갔으니까.

난 시골집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친척들에게 약간은 얹혀 산다는 느낌으로 살게 되었다.

자기들(삼촌고모들) 엄마(할머니) 힘들게 밥 얻어먹고 집에 얹혀사는 그런…

그렇다보니 고모들은 이해를 그나마 해줬지만

삼촌이라는 작자가 다른 사촌 형누나 동생들한텐 엄청잘해줬다.

난 단 한번도 그런 분위기로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들에겐 보통 생각하는 친척들 관계처럼 화목하게 대해줌.

난 초딩때 학교에서 늘 1등 놓친 적이 없는데도 싸늘하게 대하고

잘하고 있는데도 꾸지람 늘어놓음.

여기서 어른들이 늘 말하지 “너 잘되라고 하는소리다”

잘되라고 다른 친척이랑은 장난치며 놀고

난 구석에 짱박혀서 죄인처럼 지내게 하냐

밥상머리 앞에서도 다들 TV보면서 밥먹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말한마디하면 밥상머리 앞에서 말한다고,

TV보고 자빠졌다고 존나 뭐라고 할정도.

내가 지금와서도 그사람 태도는 이해가 안 갈 정도.

그렇게 친척들 눈치보면서 살았다.

덕분에 예전부터 그랬지만 지금도 친척들 모이면 어색함.

할말이 하나도 없다. 뭔말 해야할지 생각도 안남.

그 사이에 다른 사촌들 끼면 그때서야 말이 많아지고 화목한 느낌남.

나와 내 동생은 항상 거기에 빠져있지.

이렇다보니 중고등학교땐 “시.발 그년만 아니었어도 멀쩡한 집에서 자라고 이따위로 안 사는건데”

“그년만 아니었어도 ..그년만 아니었어도..”

엄마 덕분에 기울어진 집안에서 사는것도 불만이었고

차별받으며 사는것도 불만.

그냥 모든게 다 엄마탓으로 돌리고 살았다.

고등학교땐 아예 엄마란 사람 혹여나 마주치면 개같이 짓밟고 싶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닐정도였다.

만약에 만난다면 밟기전에 이말부터 하고 싶었지

“왜 그랬어요. 그때 왜 그랬어요”

성장하다보니 소문이 또 있더라

어느지역에서 애낳고 살고 있다고

애가 둘이니 하나니 말많음.

이 소문 들었을땐 ‘좃같았다’는 표현말고는 묘사 불가.

이는 대학생활까지 이어졌음.

지금도 나에겐 너무 소중한 대학친구들이있다.

OT때부터 연이 시작되어서…

친해지다보니 이런저런 얘기도 하게되었고

그러다가 또 난 패드립을 존나 치기 시작했어.

친구들은 “그래도 낳아준 엄만데 니가 너무 심한거 아니냐”

“그러지말고 잘 생각해봐”

난 니들이 잘 모르니까 그런 소리한다고 당해보면 얘기가 다를 거라고 하고 넘겼다.

대학도, 집에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말라고했다.

덕분에 인서울 4년제는 그냥 꿈이었음.

국립 4년으로 가려면 밑으로 가야하는데 그건 내가 싫었다.

왜 시1발 그런델 가야하는지

난 시골에 계속 있으면 도태되고 영원히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반드시 내가 살던 서울로 다시 갈거라고 생각했음.

그 과정의 첫번째가 대학이었는데

지방으로 가면 못 나온다고 생각했음

시골에서 보는건 언제나 한정되어있다고 생각했지

이또한 돌이켜보면 그냥 어린 나의 생각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당시는 내 최선의 선택이었음

애초에 집에선 대학교 자체를 가지말라고 하는 분위기였어

어차피 돈을 아빠가 대줄 것도 아니었거든.

돈도 없는게 무슨 대학을 가려고 깝치냐고

취업이나 가라더라.

여기서 또 혼자 엄마탓 존나했음.

그러다가 최후에 선택한게 인서울 전문대였다

내가 가고싶던 과 찾아서 최대한 타협안을 제시한거지

집에서는 2년제고 지랄이고 대학 간다는거 자체에 혀를 끌끌찼다.

결국엔 들어감.

거기서 존나 열심히해서 나름 우수하게 다니고 있었다.

힘들게 들어온만큼 열심히 다니려고 했지.

학교에서 교환학생 선발 시험을 보는데 합격했고.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 탓에 합격했지.

집에 전화를 했다.

아무도 내가 시험 합격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칭찬 한마디 안 해줬고

돈 얘기 나오자 ‘돈’ 없는데 어쩔거냐는 식으로 말을 함

여기서 내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음

나한테 그래도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는 식으로 얘기해줬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름

그놈의 좃같은 돈.돈.돈.

지겨워서 학교 반은 때려치우다시피 나온 장학금 가지고 노는데 다 씀

대학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걔들은 항상 나에게 올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해줬다.

나같아도 나같이 좃대로 하는 새끼한테 잘해줄 필요가없는데

걔들은 아쉬울 것도 없는 녀석들이 날 챙겨주더라고

그런데도 난 걔들 말을 안들었어

나중에도 난 여러가지 유혹에 빠져서 (특히 여자) 친구들과 연락을 끊다시피했다.

모임같은거 다 조까고 여자랑만 놀아났음.

아니면 게임에 미쳐서 연락끊고 난 아쉬운일 있으면 전화했어

그런데도 친구들이 먼저 연락주고 날 챙겼다

원룸이사하는데도 깜짝 놀라게 자기들끼리 와서 도와주고

여자한테 홀리면 항상

애들이 내 얘기 대충 들어보고 걔는 뭐가 어떻고 저째서 아닌 애다. 정신차려라. 라고해줬어

난 홀려서 눈에 보이는 거 없지.

그러면 100% 통수맞음.

서울생활에서 그 친구들이 내게 해준 말은 다 옳았다. 하지만 뒤늦게 깨닳았지.

그 친구들이 내가 엄마 생각하는 것도 지적을 했는데

단 한번도 난 친구들 말을 들은 적이 없어서 이번만큼은 들어보려고

분노로 가득했던 내마음 돌려서 엄마를 다시 생각해보기로했어.

솔직히 마음 돌리는건 쉽지가 않았다.

엄마는 김치년중에서도 1등 김치년이었고

자기 혼자만 그렇게 살은게 아니라 우리 집안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김치짓 한거니까

그사람만 아니었으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던 내 운명을 다 말아먹은거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

그래서 거의 1년?정도 고민을 했다.

남자 좋다고 이놈저놈 만나다가 지금은 애까지 딸렸다는데

도대체 그걸 왜 용서해줘야하는지 나를 설득시키는데 힘들었다.

어렸을때 아빠가 사진찍는걸 좋아해서 우리 가족들 찍은 사진이 꽤 많아

가정 파탄날때 절반은 증발한거 같지만 앨범에 아직 백여장 남아있지.

종종 옛생각나면 그 앨범을 본다.

엄마생각이 아니라 우리 어렸을때 모습이 그리워서.

근데 어느날은 엄마생각이 나서 앨범을 펼쳐봤어.

그치만 앨범엔 엄마 사진은 단 한장도 없어.

어렸을 때도 없었어.

아빠가 버린건지 누가 버린건지..

놀이동산에서 나와 엄마가 손잡고 걷던 뒷모습 딱 하나 있더라.

분명히 전에 아빠가 인화 해온거보면 엄마사진 많았었음.

엄마손으로 우릴 찍은 사진은 꽤 되지 (사진속에 아빠가 있으니까)

엄마 사진이 없으니까 엄마 얼굴을 떠올리려니 생각이 안나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

다만 머리가 길었고, 우리를 볼때 자주 울던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아

얼굴은 아니고 울려고 할 때

입술과 아래턱 사이 살에 힘이 들어가면서 호두처럼 쭈글해지는 모양.

그것만 기억나.

어렸을때 그게 너무 신기했던 거 같아.

쭈글해 진다는거 그 걸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어서 저렇게 썼다

엄마의 모습은 그 기억밖에 안나.

이 생각하니까 존나 눈물샘 터지려고 하더라.

엄마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어.

더 늦기전에.

여기까진 내가 어제 엄마를 만나기전까지 내가 알고있던 것들이다

이후 이야기들은 다 엄마를 통해 새롭게 알게된 이야기들이야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엄마를 찾을 방법을 알아야 하겠지.

단순했다 이혼한 엄마를 찾는방법 검색하니까 나옴

초본으로 찾을 수 있대.

며칠뒤 주민센터에 찾아가서 “이혼한 엄마 초본을 떼러왔다’고 했다

주민번호 아시나요 – 모름

이름 아시나요 – 네

대충 어디 사시는지 아시나요- 모름.

다만 수년전에 ㅇㅇ지역에 살았다는 얘긴 들은 적이 있다

결국엔 저런 거 다 필요없고

그냥 가족관계증명서 떼어서 주민번호 확인하고 초본떼더라

왜 물어본건지..

보니까 예전에 살던 곳이 아니라 그 옆동네더라 ‘A씨의 처’ 라고 써있어

가족증명서는 내 이름으로 뗀거라 거기엔 나의 부모님으로 써있고

초본엔 다른남자의 처라고 써있고..

현주소지를 확인하고 돌아오는길에 모바일로 위치를 확인했다.

이걸 언제 찾아가야 하나 그것도 문제더라.

이제 엄마를 찾을 수 있단 생각에 예전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어

언제 엄마를 찾아가야할지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 집에 갔을때 누가 있을지도 모르는거고

누구말따라 편지를 쓴다?

편지를 누가 볼 줄 알고..

집에 찾아갔을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어.

대부분 위험도가 있는 상황들이 예측되었고…

지금 재혼남이 내 존재를 아는지 모르니까

그리고 왔다고 반길 이유 전혀 없고

나 하나 때문에 잘 살고있는 가정 파탄 날 수도 있다.

아니면 많은 이들이 말했던 것처럼 엄마가 나를 매몰차게 거절하는 상황이 나오거나

모르는척 하는 등 나에게 상처 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근데 엄마 나이를 보니까 올해 50이야

더 늦기전에 보고싶어졌다.

애초에 일찍 찾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해갔어.

20살 같은 파릇파릇할때 찾아갔다면….하는거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나이때는 반항심 같은게 자리잡고있을 때라 엄마 입장을 다 이해 못하는 나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런 부분에선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함.

어쨌든 바로 다음날 찾아가기로 했고

밤을 지새우고 잠 안자고 그냥 바로 출발했다.

많은 애들이 걱정을 해줬다.

나도 후 상황이 조금 두려웠다. 부정적인 쪽으로 갈까봐.

그런 것 때문에 동생을 부르진 않았어.

꼭 좋은쪽으로 된다는 보장이 없어서

나보다도 엄마에 대한 기억이 더 없을 동생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내가 부딪혀 본다는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을 많이했는데

목적지와 가까워질수록 머리속은 하얘지고

가는내내 3~4시간동안 500밀리생수 4명을 먹었다.

걸어가고있는데 100m 전력질주 한것처럼 심장이 뛰는거야

몸이 떨리고..

이윽고 엄마가 살고있는 아파트 앞에 도착했어.

좋은 아파트는 아닌지 아파트 입구 인터폰은 없어서 다행.

아파트 단지에서 해당 동을 찾고 그앞에 오니까 현기증나서 쓰러질뻔함.

눈대중으로 보니까 몇층 몇호 위치가 딱보임

심호흡 존나하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거울 있길래 내 얼굴을 보니까 눈이 새빨개.

눈물을 줄줄 흘린건 없는데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있더라.

엘리베이터는 왜 시.발 그렇게 빠른건지

존나 빨리 올라감.

문앞에 섰는데

하필 인터폰이 그집만 고장이라고 붙어있더라.

집에 누가있는지 모르니까 숨죽이고 조용히 인기척을 들어봤어

켁켁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

아픈사람이 있는건가 했다.

한 1분정도 조용히 있었는데 별다른 소리가 안났어

혹시 저게 어린 아기 켘켘 거리는건가 싶기도하고…

에라 모르겠다하고 문에 노크를 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생각이 안나

그냥 내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해보자고 하고 입열음

나 “계십니까”

“누구시죠?”

나”ㅇㅇㅇ씨 되시나요?”

“그런데 누구신데요”

엄마인거 확인하니까 힘풀려서 주저 앉을뻔함

나”아는 사람입니다. 아실거에요”

엄마”아는 사람 누군데요”

나”보면 분명히 아실텐데….”

한동안 말이없더라.

수상한 사람이 찾아왔나 싶었겠지

한1분 기다려도 말이 없길래 다시 이야기를 했어

나 “안 좋은 일로 찾아온거 아닙니다. 멀리서 찾아왔어요. 나오기 어려우신건가요?”

말을 안 하다가 한참뒤에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 “글쎄 아는 사람 누구신데요”

내가 계속 말을 돌려서 한 이유는 집에 누가있는지 몰라서다.

느낌상으론 엄마 혼자있는건데 그렇지 않다면 큰일이 벌어진단말야
나”제가 여기 오래 서있을 순 없을 것 같아요.”

(가족이라던지.. 누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 “누구신데요 그러니까”

나 “가까운 사람이에요”

엄마 “가깝다고요?”

나 “네 가까워요. 많이 가까워요”

엄마 “이름이 뭔데요”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 꺼낼 때부터 막 눈물고이고 지랄나더라

이름을 말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가

나 “ㅇㅇ에요” (만일을 대비해서 성은 뺐다)

엄마 “네 ? 누구요?”

나 “저 ㅇㅇ이에요. 이름도 잊으신 거에요?”

문 사이에 두고 이렇게 말해야하는게 비통하더라.

그리고 엄마를 찾았다는 사실에 목이 메여와서 말도 제대로 안나옴.

잠깐 정적이 흐르고

엄마 “아래에 내려가 있을래? 금방 나갈테니까”

나 “네..”

엄마가 저 말했을 때 매우 차가운 느낌이었다.

내가 받아들인건 부정적인 느낌이었어

밖에서 기다리면 나와서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냐”

“왜찾아왔냐”

같은 말을 할 듯한 느낌이었거든.

일단은 아파트 입구쪽으로 나가서 기다리고있었다.

엄마의 목소리 기억이 안났어

때문에 들어도 모르지

그런데 어렸을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동네사람을 포함한 엄마를 아는 사람들은 말했다

“ㅇㅇ이 엄마…참 예뻤지.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어.”

외모는 어딜가도 빠지지않는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나도 분명히 8살까지 같이 살았는데 왜 기억이 안나는걸까

목소리만 들어도 50나이가 무색할정도의 느낌이었다.

TV에서 4~50대 여배우들중 목소리 좋은 연예인들 같았음.

아무튼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너무 초초했다.

날 반기지 않으면 어쩌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 아저씨들, 그 입구로 들어가는 아저씨들 보면 다 그 재혼남인 것 같았어

반대로 나오는 아줌마들 보면 엄마는 아닌가싶었어.

서로 모르고 지나친 걸까봐.

한 10여분 지났을 때인가

발소리가 들려서 돌아봤는데 눈마주치고 나니 엄마야

내가 분명히 얼굴은 기억 안 난다고 했는데 이사람은 그냥 내 엄마인거야

그냥 막 눈물이 터지려고해서 고개숙이고 인사부터 했다.

엄마는 어렸을때 까불까불하던 모습밖에 모를텐데

벌써 십수년이 지나서 초딩이 어른되어서 나타났지…

난 목메여서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내 팔 붙잡고 나가면서 안부를 물었다.

말은 못하고 묻는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좀 말랐는데 왜 이렇게 말랐냐길래

“엄마 없었으니까” 라고 해버렸다.

어렸을땐 다 땡글땡글 했거든.

그리곤 대뜸 “보고싶었단 말이에요” 라고하고 걍 길에서 쳐울어버림

이 나이먹고 애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는 내 입장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건지 말을 최대한 태연하게 해줬다.

내가 나쁜마음 가졌으면 오히려 오해할만큼 태연했지.

밥 먹자고하길래 택시잡아서 엄마가 고깃집으로 데려갔다.

머리가 복잡해져서 무슨말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한숨만 나오고 하늘만 쳐다봤다.

엄마 얼굴보면 자꾸 눈물나서 쳐다보질 못했어.

엄마는 예전에 우리랑 살때 무리하게 일하던 것을 시작으로 다쳐서 몸이 말이 아니라더라.

집에 있을 때도 누워서 찜질중이었대.

재활치료도 받고 다니고..

엄마한테 하고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다 잃어버려서 생각이 안나.

그래서 계속 나 살아온 이야기들만 했어. 동생이야기랑.

엄마 사는 얘기도 물어보니까

온몸의 관절이 안좋아서 병원에 누워 살다가

재활치료 받으며 요즘 겨우 움직인대

가족사항은 직접적으론 물어보기가 좀 그랬어.

때마침 자식이 전화했더라 학교관련 일로.

그걸 계기로 물어봤더니

지금 가정이 있고 동생 하나 있대.

같이 사는 아저씨도 있고.

여기서 더 무슨말을 할 수가 없더라..

그렇구나 하고 말았음

엄마는 나 8살때까지 모습만 기억하니까

꿈에도 우리 어릴때 모습이 가끔 나온대

그러면 무슨일 생긴건 아닌가 싶어서 절에 간대.

(예전부터 절다녔음)

지금 자식 때문에 절에 가게 되더라도 꼭 우리 둘에 대해서도 빈다고 하더라.

재밌는게

우리보단 엄마가 우리모습을 더 잘 기억하는데

그때 나와 동생의 성격이 초딩때부터 지금까지랑 거의비슷해 너무 신기했다.

어렸을때 얘기들 해주는데 그때 기억들 되살아나면서 존나 눈물샘 터졌음

난 말을 최대한 조심하게 했어.

무슨 말하고 싶어도 하면 안될 말인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엄마가 나 어렸을때 모습 하나도 없어서

그냥 지나쳤어도 모를뻔 했다고 하길래

앨범에서 사진 몇장 스캔해서 미니홈피에 올려뒀던거 엄마한테 보여줬음.

난 어디서 왜 찍은지도 모르는 사진들인데 엄마는 하나하나 다 기억하더라.

그러다가 우리 가족관계에 대한 얘기를 들게 되었고 큰 반전이 시작됐다.

신기한게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삼촌고모는 물론이고 사촌이름들까지 다 기억해. 당시 살던 것 까지도 다 기억하고..

앞서 말한것도 있지만

우리엄마는 거의 친가 외가 쪽에서 공공의 적인데다가

특히 우리집에선 더 심해서 동네에 얼씬도 못할정도의 신분이 되었었어.

난 친가에서 자랐지

아빠/할머니 그리고 친척들에게 항상 엄마의 안좋은 이야기만 들어왔다.

부모없이 얹혀사는 것처럼 살던 나를

가장 신경써주던 고모중 한분만이 가끔

“그래도 너네 엄마 예전에 있을 땐 뭐가 괜찮았었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주곤 했었다.

난 전혀 모르는 얘기었지만..

어쨌든 난 어려서부터 친가쪽얘기만 듣고 자랐어.

모든 원흉은 다 엄마라고 얘기 했으니까..

덕분에 엄마를 증오하게 되었던거야.

우리 할아버지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성품이 좋은 분이었다고해.

내가 태어나기전에 돌아가셨지만..

엄마도 할아버지를 굉장히 높혀 말함.

결혼을 할때 외가쪽에서 반대를 하려다가

외할아버지가 “ㅇㅇㅇ씨 집안 아들인데 성품이 반이라도 닮길바란다”며 믿고 결혼시켰대.

근데 엄마만 외모가 예쁜게 아니라 아빠도 그랬어

게다가 공부도 존나 잘했었지.

집안도 좋았고, 그런 집안의 장남이다보니

집안에서도 그렇고 다 마음대로였대.

자기가 싫은건 절대 안하고..

서울에서 결혼생활 하는데 오히려 아빠가 바람을 피우고 다녔대

여자하나 데리고와서 우리한테 이모라고 해주고 끼고 살았다는 거야

그런게 한두번이 아니었대

게다가 직장 다니다가 트러블 생기면 그날로 거기 안다녔대

엄마는 말했어

“솔직히 너네 아빠랑 헤어진건 잘했다고 생각해. 너네 아빠도 본성은 나쁘지않아 정말좋은사람이야. 그런데 …”

말했다시피 아빠는 집안에서 최고였고 밖에서도 잘나갔어

그렇다보니 누가 옆에서 아빠에 대해 조언같은거 하면 싫어했나봐

실제로 집안에서도 아무도 아빠를 건드리지 못했대.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작은 삼촌만이 아빠를 무시하고 대들었다고 한다.

(이때문에 엄마가 자존심이 매우 상했다고함.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집안 돌아가는게 개판이니까)

할머니도 아빠한테 말한마디 못하고

그상태를 그냥 두자니 엄마가 답답할 노릇.

그래서 나 낳기도 했는데 아빠가 가장노릇을 할 의지가 별로 없어보이자 하나하나 얘기를 시작했겠지.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는데 엄마가 그러니까 아빠는 화나서 엄마를 패기 시작함.

말그대로 삼일에 한번씩 패는 수준이었나봐.

엄마는 올바른 가정이 되길 바랬었다고함.

그러다가 서울에선 도저히 답이 안나와서 시골로 내려오게 된거야.

그런데 시골와서도 아빠는 바람을 종종 피우고

여전히 먹고살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대.

엄마는 걸핏하면 맞고..

아빠는 걸핏하면 엄마한테 나가라고 했단다.

지금 나한테 할머니는 좋은사람이지만

당시 우리 엄마를 대하는 할머니는 다른사람이었다고해

할머니가 어땠냐면 아빠가 바람피우면

“남자가 그럴수도있지”

때리면

“더 맞아야한다”고 했었대.

나도 엄마가 맞은건 어렸을 때 들었다

다만 맞은부분에 대해서 다르게 알고 있었지

아래는 할머니가 대부분 얘기 해준건데

바람 피우다가 걸려서

집 나가다가 걸려서

다른데로 뭐 빼돌리다가 걸려서 아빠한테 맞았다. 고로

맞을만 하니까 맞았다.

난 엄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이야기들이었던 거야.

그리고 인근에 새로 우리가 살집을 짓고 거기서 살았어.

엄마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새엄마와 살게 되었다는 얘길 처음에 했었지?

바로 지금 얘기하는 이야기가 벌어지는 때야.

그때 엄마는 바람나서 집나간게 아니라

아빠의 폭력과 외도, 가장역할을 하지 않으려는 무능력함에 지쳐서 외가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아빠는 그때 새엄마를 얻어온거야.

난 분명히 엄마가 바람나서 집나갔고

그래서 우리 키우려고 새엄마를 데려온거라고 알고있었다

근데 이 새엄마라는 사람이 성격이 매우 고약했던 걸로 기억해.

엄마도 그 얘길하더라.

엄마는 아빠가 때리면 때리는대로 맞기만하고

돈 1000원도 맘대로 못쓰고 살았대.

근데 새로 온 새엄마는 아빠가 돈 벌어오면 그돈을 다 자기가 관리하고

아빠가 한마디하면 10마리를 던지고 싸우는 사람이었대.

할머니한테도 존나 대들고 싸웠댄다.

그래서 새엄마랑 살다가 아빠가 울면서 외갓집으로 엄마를 찾아갔대

이러저러하게 살고있고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고..

엄마가 좋은사람인거 깨닳았다고

다시는 예전처럼 안할테니 돌아와달라고 했대.

그때 아빠 상태가 얼굴,목 할 것없이 할퀸 자국들 투성이었대.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했대. 그런 사람들 더 만나라고.

대신 나랑 동생은 그 여자와 그여자 아들이랑은 절대 섞어놓지 말라고 했었대.

애들 버린다고.

그러다가 실제로 아빠랑 새엄마는 실제로 존나 싸웠고

얼마 못가서 헤어짐.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다시 엄마와 아빠가 재회해서 다른 집에서 우린 같이 살았던거임..

아빠가 하두 사정해서 결국엔 수락했대

다신 안 그런다고 해서

그런데 돌아갔더니 또 똑같았대.

아빠가 초반에 바람 피웠을 땐 외할아버지가 그랬대

“사내로 태어났으면 한두번은 그럴 수도 있다. 지켜보자”

어느날은 그냥 머리채 바닥에 내던쳐서 얼굴정면으로 박아서 코뼈 작살날뻔한걸

옆으로 살짝 틀어서 광대뼈쪽 함몰당하고 워낙 심하게 맞아서

눈이 안 떠질 정도였대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외갓집에서 보더니 통곡을 했대.

눈을 못 뜨니까 외할머니도 못 알아봤다고 함.

이건

거의 죽을정도로 맞아서 이번엔 도저히 안되겠다고 외가에서도 헤어지라고 했대.

그래서 여기서 진짜 갈라서기로 함

법적이혼은 아직 아니었지만 사실상 우리 가족은 여기서 끝났다고 봐도 될 정도였음

얘기를 쓰다보니 빠진내용이 있다

일단 엄마는 결혼후에 시집살이할때 굉장히 힘들었다고 해

당시는 유일하게 며느리 하나있지

증조할머니가 집에 계셨어

사랑방을 쓰고 식사는 매일 방에 갖다 드렸지.

우리할머니가 말하는데 증조할머니때 시집살이 한거 생각하면 치가 떨린단다

그걸 그대로 내려줬겠지? 우리 엄마한테

집에서 사실상 엄마의 신분은 최하위였어.

우리삼촌이 둘인데 한명이 엄마보다 한살 어렸나? 동갑인가 그럴거야

이걸 자세히 안 물어봄

근데 형수인데도 맨날 엄마한테 “야!야!” 하면서 무시하고 명령조로 말했어.

할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집안이 좀 콩가루 됐지.

그러면서 삼촌이라는게 우리아빠까지 존나 무시했대.

지금 사는 것도 아빠가 가족들이랑 연을 끊고 빚이 있어서 따로 살다보니

삼촌이 존나 무시하는게 있어 나 어렸을때도 좀 있었고.

아빠랑 삼촌은 한 5~6살 차이난다.

아빠는 장남이고 엄마는 큰며느리인데 남편 무시당하는게 존나 싫었대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삼촌을 존나 챙겨줬다는거야

우리아빠는 반찬투정도 거의 없이 그냥 먹었는데

삼촌은 무조건 따뜻한 밥아니면 안 먹을정도였다니까..

할머니도 아빠한텐 존나 뭐라고 하면서도 삼촌한텐 꼼짝도 못했대.

이런 모든게 다 엄마는 싫었던거야.

그와중에 한 고모네 집이 말썽이었다

고모부가 고모를 때리기 시작한거야.

그걸 알고 우리할머니가 맞을 때마다 찾아가서 고모부 꾸짖었대.

대충 얘기하면

엄마는 아빠하는게 너무 맘에 안들어서 지적하고

아빠는 그게 열받아서 안방에서 엄마를 때리고

그걸 안방, 자기 눈앞에서 때리는데도 할머니는 더 때려야한다고 부채질

응급실 실려갈 정도로 만신창이되어도 아빠가 잘했다고 편들어줌

고모가 고모부한테 맞자 어디 내딸 건드리냐고 가서 난리남.

온가족이 다 엄마 따돌리다시피 한거야

엄마가 그거보고 나중에 못 살겠다고 결심할쯤 그랬다더라

“며느리 걸핏하면 머리채 잡고 머리 다 빠지도록 때리고

애아빠가 때릴 때도 더 맞아야 정신 차린다고

옆에서 지켜보며 맞장구 치던분이 딸 맞았다고 하니까 난리가 아니시네요.

딸 생각하는 것의 조금만큼이라도 며느리 생각 좀 해보세요”

엄마는 큰집에서 살다보니 아침밥만 해도 세번을 했대

그 자기 무시하는 삼촌 일 다니느라고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 싸주고

아침되면 고등학교 다니는 고모들 도시락 싸주고

조금 있다가 남은 가족들 밥상 크게 차리고…

이때가 아궁이에 불때던 시절이라더라.

밥만 해도 이정도인데 사는게 어느정도였을지 상상이 가지?

낮엔 아빠가 안한 농사일 대신하고

(출산하고 1주일도 안 돼서 농사일 했을 때도 있었대)

그런데도 맨날 며느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할머니랑

무시하는 삼촌,고모들

그리고 틈만 나면 때리는 우리아빠

증조할머니가 늙으니까 우리할머니가 증조할머니를 무시하기 시작했대

복수인건가

그렇다보니 힘없는 증조모가 우리엄마한테 의지를 많이 했대.

몰래 불러서 안고 울면서 내가 빨리죽어야 한다고..

엄마 불러놓고 얘기 많이 했다더라.

엄마가 그렇게 맞으면 외가쪽에서도 찾아왔어야 했는데

“똑같은 사람 되기싫어서” 안왔다고 하더라

이 말은 약간 애매한 것 같다

수차례 엄마는 피신하고 아빠는 와서 빌고 다시는 안한다고 하고

수도 없이 재결합을 했어.

그런데도 아빠는 여전히 열심히 살지 않았고 폭력이 계속되었대.

어느날은 엄마가 많이 맞아서 외가에서 한번 얘기가 나왔나봐

그때 우리 할머니가 그랬다더라

“땅을 팔아달라고 하면 팔아줄테니까 이혼각서 써라. 누가 아쉽나

남자가 바람필 수도 있고 여자가 맞을 수도 있지. 싫으면 이혼각서 써라 당장 해준다”

나도 이말 어렸을때 할머니한테 들었다

당연히 입장은 또 다르지

엄마는 아빠가 다시 살자고해서 들어와서 다시 사는거였고

할머니말은 집 나갔다가 다시 제발로 기어들어와서 산다고 한거라고

나가라고해도 안나가고 버텼다고

그래서 할머니도 내게 외가에게 이혼 해준다고 했다는 말을 했었다.

아빠의 외도는 빼놓고 폭력은 합리화 시켜서

“해달라는거 해줄테니 이혼도장 찍어라, 우리야 말로 새끼들 버리고 집나가는년 필요없다.

그러니까 쳐맞지. 그걸 그냥 놔둬?”

는식으로 할머니가 말해줬었음.

입장 다른얘기 들으니까 소름돋더라

어느날은 삼촌이란 사람이 존나 아팠대. 기침하면 피토할정도로 거의 죽게 생길 수준이었다고해.

나도 아팠다는건 하두 집에서 들어서 알고있다.

그래서 서울에 큰병원가서 입원시켜놨대

그때가 나 임신한지 9개월, 만삭일때였대.

엄마는 시골에서 집안일을 하고있었음

예전엔 불때던 시절이라 어른들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니까

근처에 있던 작은 할아버지댁까지 가서 항상 불을 피웠대.

아무튼 삼촌이 너무 아파서

작은할머니와 엄마가 수소문하다가 굿을 크게하면 사람 살린대서

그 무당찾아서 우리 큰집에서 굿을 했대.

보통 굿이 저녁때해서 존나 오래하잖아.

또 무슨 신마다 다 해야한다고 했다나.

그래서 만삭인 몸으로 그거 굿 제대로 마칠 수 있도록 밤새 보조해줬대.

굿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암튼 삼촌은 나았다.

엄마가 그런 정성 쏟은건 고마운 줄 모르고 여전히 엄마 무시하고 못되게 대했대.

요즘 아빠는 뭐하고 사냐, 정신 좀 차렸냐고 하더라

빚이 좀 있어서 힘들다고 했다

이 빚들중 대부분이 엄마가 저질러놓은 빚이라고 할머니가 말했었다.

직접적으로 엄마가 빚진거 아니냐고 물어보진 않았다.

다만 아빠가 빚이 많아서 가족들과 연이 끊어지다시피했다고 했다.

엄마는 놀랐다

무슨 빚이 있냐고

엄마랑 갈라설 때만해도 빚 없었다고

집에서 뭐 일한다고 새로 시작한게 있는데 그거 할때도 빚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친가에게 들은건 엄마가 바람을 존나 피웠다고했는데

엄마는 그런얘기 언급 한번도 안함.

오히려 맞아서 외증조댁으로 피신한거나

친척 언니집에 피신한 얘기는 했음.

집 나올때 할머니한테 말했다더라

“나중에 작은며느리들 진짜 성질 드러운 사람 만나서 고생해보셔야 큰며느리가 어땠는지 아실겁니다.

애아빠도 그런사람 만나길 바랄게요”

실제로 아빠는 그런 사람을 만나서 고생했었고

성질 더럽다던 삼촌도 그런 성격의 여자를 만나서 가족들이 작은엄마 싫어함

웃긴게 그 삼촌은 작은엄마한테 꼼짝못함

이 얘기하니까 너무 통쾌해 하더라

더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것만 추렸다

친가쪽 이야기만 듣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반전이었어.

일단 아빠가 바람폈다는건 들은적도 없었거니와

폭력에 대해 양쪽의 전혀 다른입장.

그외 엄마의 시집살이 듣는 내내 한숨만 나왔다

솔직히 엄마 보니까..

지금의 상황같은거 다 무시하고

그냥 무작정 같이 살고 싶더라

아빠랑 다시 만나면 안되냐고..

근데 엄마 얘길 듣고나니 그런말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합리화 하는 부분이 있겠지

우리집도 마찬가지고…

친가쪽에선 아빠부터 시작해서 아빠의 외도이야기는 한번도 없었다.

아빠는 최대한 말을 아끼었고, 구체적으로 얘기하지않았어.

주로 할머니가 엄마 바람피웠다는 얘기를 했지

양쪽에서 똑같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

말은 같은데 상황은 다르고

아예 몰랐던 사실이 태반이고..

굉장히 혼란스러웠어…

고기집에서 고기 구워먹고 있는데

엄마가 술 먹냐며 맥주 시켜줬다

맥주 한두잔 먹고나니까 나도 말이 술술 잘 나오더라.

그날 밤새고 온지라 속이 안좋아서 밥을 맛있게 못먹겠는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왜이렇게 잘 안먹냐고 걱정하고

어디 아프냐고

동생은 어렸을때부터 자기거 다 먹고도 모자라서 내거 먹었대

“형 이거 먹을거야?”

“왜?”

“형 안 먹으면 내가 다먹게 ㅋㅋㅋ”

어려서부터 난 늘어놓는걸 좋아했고 동생은 내가 늘어놓는거 치우는걸 좋아했대

“에이 이게 뭐야 형 지저분하게”

“됐다 이러니까 깔끔하다”

시골에 잠깐 살때 엄마는 일손들+가족들 밥차려다가 나르느라 정신없고 가족들도 농사짓느라 바쁠때

동생이 사라졌대

외갓집,동네사람들까지 찾으려고 난리가 났었음.

엄마도 울며불며 찾는데 애가 작으니까 안보이지

걸어다닐 수는 있어도

비닐하우스 구석에 갇혔나 다 찾아봐도 없대

그러다가 보니까 볏짚 쌓아놓은데 들어가서 거기서 잠들었었대

어려서부터 난 뭐하나 만지는 것도 조심스럽고 세심했는데

동생은 그렇지 않았대 일단 해보는 스타일

진짜 실제로 지금까지의 우리 성격이 그래서 놀랐다

엄마가 우리 옛날얘기 해주면 너무 좋았어

지금 키우는 아이가 중딩인데

15년도 더지난 일들인데도 다 기억해주고 있더라고..

너무 고마웠다.

밥상머리 앞에서 얼마나 울었나

엄마가 물어보더라

너 엄마욕 많이했지? 그럴만도 하지..

엄마 살고 있을 때도 할머니가 엄마욕 얼마나 했는데

너랑 있을때 안했을까.

나도 솔직히 말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 욕 많이 했어요.

집 이렇게 된거 다 엄마탓이라고 들었고

그냥 엄마아빠랑 같이 살면 좋았을텐데 다 엄마 때문이니까

만나면 욕하고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요..

죄송해요

엄마도 내마음 다 이해한다고함.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엄마도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해줘서 너무 미안하대

진짜 어떻게든 우리 때매 살아보려고 했어도

우리집안은 절대 아닌곳이라 버틸수가 없었대

엄마가 거기 살다간 죽게 생겨서

우리들한테 너무 미안하대

우리가 무슨죄라고 이렇게 살게둬서..

그리고 이렇게 찾아와줘서 너무 고맙대

나도 엄마한테 말했어

엄마아빠없이 자란거 원망도 많이했지만

솔직히 제가 더 열심히 살았으면 됐을텐데

그러지 못한 제가 더 죄송하다고..

성공한 아들이 되어서 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엄마는 말했다

우리 아들들 크게 성공하는거 바라지않아

꼭 그렇게 되지 않아도 평범한 직장 다니면서 좋은 여자만나서 평범한 가정에서 살길 바래

엄마도 항상 그렇게 빌고있고

ㅇㅇ야 엄마 보니까 어때? 오길 잘한거 같아? 아니면 아직도 미워?

이말 듣고 딱 한마디밖에 생각이 안났다

“헤어지기 싫어요.엄마랑 살고 싶어요”

근데 그말이 안나와

계속 머뭇거리다가

“엄마 또 보고 싶어질 것 같아요. 보고싶으면 어떡해요”

이러면서 또 울어버렸다.

엄마는 계속 눈물 닦아주고 남자가 울면 안된다고

내가 친가쪽에서 살면서 기가 엄청 죽었나봐

엄마가 딱봐도 그런 느낌 아니까 얘길하더라

어디가서 기죽지말고 당당하게 다니라고

집에서도 니가 기죽을 이유가 없다며.

난 일부러 말 한참하다가 고기 한점 먹고 또 쉬다가 먹고 그랬어

엄마가 보기엔 깨작깨작 먹으니까 힘없어보여서 팍팍 먹으라고 하더라

난 이 식사 자리가 끝나면 엄마가 갈 것 같아서 일부러 천천히 먹었다.

엄마 아프다는 것 때매 너무 슬펐다. 나이도 나이지만

고생을 많이해서 보기와는 다르게 몸에서 앓는게 많으니..

근데 시.발 내가 열심히 살아서 효도라는 걸 할 수도 없어

그건 지금 그 자식새끼 몫이잖아?

내가 하고 싶어도 못함.

걍 무조건 존나 엄마랑 살고싶어지더라

한편으론 성공한 모습으로 찾아가지 못해서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웠어

아참 빼먹을뻔한 아주 중요한게 있다

초등학교때 전화가 종종 왔댔잖아 엄마가 학교도 찾아오고

난 학교에서 엄마를 만나러 가지않은게 너무나도 후회스러웠어.

근데 난 잊고 있었는데

여느때와 같이 엄마가 전화를 했었대

초4때 였다고함

그때 엄마가 결심하고 말을 건넨거였나봐

“ㅇㅇ아 엄마한테 올래?”

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했대

그때부터 엄마도 마음 접기 시작했나봐

이거 기억남..

엄마는 우릴 버리고 간게 아니라

더 살다간 죽게 생겨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나온거래.

난 할머니한테 길러지면서 “애미 만나면 아는척도 하지말아라. 말걸어도 대꾸도 하지말고 잡어죽일년”

이런식으로 세뇌당하듯 자라서

엄마한테 가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이거 생각하면 존나 눈물만 나온다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을 때 만나러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엄마가 같이 살자고했을때 내가 그러자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너무나도 작은 나한텐 결정하기 힘든 문제였던 거 같다.

분명히 저기서 엄마를 만나고 엄마한테 갔으면

어쩌면 나로 인해 아빠까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고기 3인분에 육회에 밥까지 나혼자서 다 먹은듯하다

엄마는 그냥 구워주고 보기만함

어렸을때 엄마랑 아빠 사이에서 자던게 생각나서 엄마품이 그리워서

다 먹을 때즈음 얘기를 했다

“엄마 이제 돌아가셔야 하죠?”

“아 벌써 7시넘었네 가봐야지….밥도 차려줘야하고. 왜?”

“아니에요.”

“뭔데 그래”

그렇게 말 돌리다가 나중에 뜬금없이 얘길했다

“사실은 엄마품에서 잠들고 싶어요.”

또 존나 울었음

엄마가 웃으면서

“오늘은 갑자기 찾아와서 어쩔 수가없어. 엄마가 병원 자주다니고 해서 아무때나 오면 안되구

미리 얘기하고 오면 엄마가 핑계라도 대서 시간 비워둘게. 엄마 또 보러와”

이렇게 식사는 끝나고 택시 잡아서 기차 역지 배웅해주셨다.

기차표 끊는데 갑자기 엄마가 지갑 열어서 계산하고

나 열차 남은 시간 확인하러갔다 오는데 엄마가 ATM에 있더라

돈 뽑아오더니 이거밖에 못줘서 미안하다고 막 돈 쥐어주려고해

뒷걸음질만 몇번치다가 엄마가 막 집어넣어서 걍 받음.

이런건 안받기도 받기도 참…

기차 시간이 얼마 안남아서 얘기도 얼마 못하고 타는곳 올라가는 계단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엄마가 갑자기 날 끌어 안아주더라

나도 아까부터 그러고 싶었는데 도저히 용기가 안나더라

근데 엄마가 안아줌

짧은 포옹하면서도 또 존나 울었지.

엄마는 씩씩해지라고 웃으면서 격려해줌.

“힘내 ㅇㅇ야. 울지말고, 가족들 앞에서 기죽지말고, 이제 혼자 아니잖아”

엄마는 나 먼저 올라가라고하고

난 먼저 엄마부터 가라고하고 몇번을 그렇게하다가 엄마 먼저 보냈다

역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고개숙여 인사했어

가면서 엄마가 계속 돌아보길래 인사하다가 어렸을때 생각나서 빠이빠이~식으로 웃으면서 인사했다

어제의 일은 너무 행복했다

어른들의 과거사는 그들의 일이고 나와 엄마사이는 부정할 수 없으니까

다만 그사이에 또 누가 있다는게…

기차 타고서 문자 보낼 때도 엄마라는 단어 일부러 안썼어

혹시라도 남편이 문자보면 엄마라는 단어때매 난리가 날 수 있으니까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었다.

엄마는 저렇게 문자 보내주심..

솔직히 내 속마음 표현하자면 존나 오글거리는 말까지 다 써야하는데

그런거 표현하기가 어렵다

비록 같이 살 수는 없지만 날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큰 힘이 되었다.

위 문자를 포함해서 엄마를 만나는 동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없다

그말을 어제도 존나 할까말까 했는데 못하겠더라

십수년만에 만났고

그전에 욕 존나 했다고 했는데 뜬근없이 사랑한다고 하는 것 같고

이미 다른자식 존나 애정으로 키웠을텐데

거기다가 내가 사랑한다고하기도 그렇고

애매해

몇번더 만나다보면 할 수 있을지도

집도착하고 엄마한테 도착했다고 문자만 보내고 떡실신해서

후기 왜 안 올라오냐 하는 사람들 많더라

기차에서도 자느라 정신없었다

엄마랑 있는동안 긴장을 계속하고 있어서

돌아오는길에 풀어지니까 굉장히 피곤했었음

아무튼 이렇게 올린다

글쓰는데 거의 4시간 걸리고 대낮부터 눈물샘 터짐

이정도면 드라마같은 스토리 이뤄진거냐

만나서 안좋게 된 애들도 많고

나한테 기대 말라고 하던데

난 잘됐다

다른 애들도 힘내라

내 동생에겐 얘기를 당장 못하겠어

엄마에 대한 얘기 한번 꺼내면서 걔반응도 좀 보고 얘기해야지

왜냐면 난 엄마에 대해서 내가 직접 내눈으로 본 일들에 대한 기억이 있지만

걔는 나보다 훨씬 어렸어

내가 7살이면 걘 5살

6살이면 4살인데

내가 3~4살때 기억이 거의 없는데

진짜 기억이 거의없어

근데 내동생이 엄마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있겠냐

걔야 말로 우리집에서 가르친대로 엄마=쌍년이라고 생각할거야

난 내가 알고있던 모습이 있기때문에 가끔 의심도 해봤지만

동생은 그럴 여지조차 없었을걸

할머니도 욕할 수 없어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할머니가 다 키워주셨거든

할머니가 우리 둘 키우느라고 고생한거 썰 풀자면 그것또한 분량 이만큼은 써야할거다.

그래서 난 너무 혼란스럽다

요약

  1. 이혼한 엄마를 찾으러감
  2. 친가쪽에서 자란 나에겐 충격적인 반전이 있었다
  3. 다 떠나서 엄마 만나서 너무 좋다.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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