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에 자녀 두명있는 사람입니다.
그냥 쓰레기처럼 살았던 제가
정신잡고 착하게 살고있는 이야기나 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쓰는 목적은 칭찬을 바라는것도 아니며,
욕을 하실분들은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언제나 아내에게 마음이 조금이라도 소흘해질때
글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싶어서 쓰는 글이니 자유로운 의견을 하셔도 무관합니다.
욕이든 뭐든 상관없으니 자유롭게 의견을 달을 셔도 상관없음을 미리 밝히겠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아내랑 결혼을 할때 정말 좋아서 한 결혼도 아니였으며,
애 때문에 어쩔수 없이 한 케이스 입니다.
아내를 처음 만난게 29살때입니다.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을때
아내는 회사 경리로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만나고 있던 애인이 있을때였습니다.
정말 서로 좋아했고, 없으면 죽을만큼 좋아했지만
종교적 차이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졌을 때였습니다.
매일 일마치고 술을 마셨고, 많이 힘들어했을 때이구요..
사실 아내가 이전부터 저를 좋아하고 있단 사실은
저뿐만 아니라 회사 동료들까지 다들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아내는 가정환경도 좋지 못했으며,
돈을 벌어서 혼자 계시는 어머님과 남동생 (그때당시 초등학교6년)까지 뒷바라지를 하는
소위 가장이였습니다.
외모도 평범했으며 항상 무표정하게 일만 했던 사람이였습니다.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너무 힘들었을때라
그때당시 아내와 단둘이 술을 먹었던 일이 있었는데
순진한 아내를 꾀어서 욕정을 풀생각으로 잠자리를 가졌었습니다.
몇번 그렇게 나쁜 마음을 먹고 잠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여자친구와 화해를 하고 만나기로 했었구요..
물론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면서
아내에게는 이제 신경끄고 살자라는 말까지 내뱉고 그렇게 생활했습니다..
잘만나고 있을때 지금의 아내가 저에게 연락이 왔었습니다.
임신을 한 것 같다구요..
그때당시는 참 별에 별 생각이 다들더군요.
이 여자가 정말 임신을 한건가?
아니면 나를 잡으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건가?
별생각이 다들었고, 테스트기로 확인해봤냐고 했더니 맞다고 하더군요.
아내에게는 그때당시 정말 못쓸집을 했었습니다.
난 모르는 일이니 당장 지우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고
전화번호까지 차단해 버렸습니다.
즉 완전 쓰레기 였습니다.
울며 불며 회사에서 저 붙잡고 이야기 할때도 욕까지 하면서
난 모르는 일이니 알아서 하라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했었습니다.
눈물만 뚝뚝 흘리며 떨던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한적도 없었습니다.
다시 만났던 여자친구와도 자주 싸우던 일이 많아졌고,
결국 또 완전히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헤어지고 또 매일 술을 마시다가 누나와 술을 먹게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누나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하게되었습니다.
당연히 누나는 노발대발 난리가 났고,
부모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남의 자식 망쳐놓고
뭐 좋은 일 했냐고 매일 술이냐고 난리가 나셨고,
어머니,누나까지 저에게 엄청난 비난을 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집에 한번 데리고 오라고 하셨고,
저는 또 모르쇠로 일관했었구요..
그런일이 있고나서 그때당시 아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안도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제는 가시방석에 있을 필요도 없고
마주칠 일도 없겠구나 하면서 말이죠…
정말 지금 생각해도 천하의 나쁜놈이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결국
동기였던 xx에게 연락을 하셔서 아내의 연락처를 받아내시고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집에 데리고 오셨더라구요..
일마치고 친구 잠깐 만나고 집에 갔더니 아내가 있더군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노려보고 계시고, 아내는 고개도 못들고 있더라구요.
부모님 앞에서 이제 어쩔꺼냐고
부모님께서 꾸짖으셨을때 홧김에 말했습니다.
아 그냥 결혼할테니까 더 이상 그만 하라구요.
그냥 결혼할테니 더이상 왈갈불가 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그때 당시는
제가 이말을 한다고해서 정말 결혼할 생각도 없었으며,
부모님 역시 당연히 그러라고 말씀하실 일은 절대 없다는 확신에서 한 말이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때 그자리에서 또박또박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러면 지금 처자분 부모님이랑은 조만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부모님 시간 되실 때 한번 자리를 마련하겠다구요…
이때 당시도 설마..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집에가고 나서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막말까지 엄청 쏟아냈었습니다.
미친x 부터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까지 하면서 말이죠..
아내는 울기만 했었구요..
부모님에게는 이때부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절 없는 사람 취급하시더군요…
시간이 조금 흘러 누나가 호출을 했습니다.
이야기 좀 하자구요..
누나와 이야기를 했는데
누나가 부모님께서 아내분 부모님 만나고 온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데 상황이 아내가 지금까지 모은돈도 없고
(물론 아내의 월급은 그때당시 장모님과 처남의 생활비로 다 들어갔던 때입니다.)
혼수를 친정쪽에서 부담하기도 힘든 상황이더라.
너 어떡할려고 이런 일을 만들었냐???
저야 속으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제 부모님께서도 포기하시겠구나…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당연히 저도 모아둔돈이 2천가량 밖에 없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독불장군 같으셨던 아버지께서는
집에 빈방있으니 들어와서 살면 된다고 끝까지 결혼을 추진하셨습니다.
반면에 저는 속이 썩어나갔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던 여자랑 결혼해서 나중에 불행해지면 아버지께서 책임지실수 있냐고
아버지와도 크게 싸우고, 집안 분위기도 정말 안좋았을 때였습니다.
아내에게도 결혼을 해도 너도 나도 돈도 없고, 너 시집살이 해야한다.
그리고 난 정말 너한테 잘해줄 자신없다.
그냥 서로 갈길을 가자.
그런말을 할때마다 애지우기 싫다고 눈물만 흘리던 아내에게
짜증과 신경질만 내고 집으로 혼자 돌아가고 했었습니다.
친한 친구놈들 몇몇과도 술먹다가 이야기를 했을때
개xx, 소xx 소리 들어가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애지우고 자유로워 지고 싶단 생각뿐이였구요…
결국은 부모님의 성화와 아버지와 여러번 이야기 끝에 그냥 결혼하기로 하였습니다.
부모님께도 난 잘 살 자신도 없으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거란 기대는 하시지 말라며 못쓸말도 많이 했었구요..
그리고 결국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아서 한 결혼도 아니였으니 신혼 생활은 말할것도 없었습니다.
우선 저같은 경우는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습니다.
둘다 돈도 없었으며,
신혼여행 가서도 혼자 이곳저곳 보면서 아내와는 거의 말도 안했습니다.
집에오면 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보면서 아내와는 거의 대화도 없었구요..
남들은 애기 가졌을때 여왕처럼 대접받는다고 하지만,
아내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뭐 먹고싶다고 이야기도 한적도 없었으며,
주말이나 노는날엔 전 항상 밖에서 친구들 만나서 술을 먹다가 들어오곤 했기 때문에요…
명절때 결혼하고 첫해만 처가에 갔지,
다음부터는 아내혼자 다녀오라고 말하고 저는 술마시느라 바빴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불평이나 불만하나 말하지 않더군요.
그냥 묵묵히 혼자서 어머니와 집안일을 했었구요..
저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안좋을때도 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습니다.
아내가 출산을 할때
진통이 일찍와서 산부인과에 입원을 하고 분만실에서 분만중이였는데
하루가 넘도록 출산을 못했습니다.
하루를 넘게 고생고생하며 결국 출산을 했습니다.
출산후 아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힘없이 늘어져서 있는데 그눈물조차 보이기 싫어서 그냥 나가버렸습니다.
장모님과 처남이 와서 아내 손잡고 울고 있을때도
그 손을 잡기조차 겁이나더라구요.. 그때는요..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있나 싶어서…
그냥 수고했다.. 란 말 한마디 남기고 그렇게 나왔었습니다.
이때부터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많이 생겼을 때였습니다.
출산후에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내색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언제나 처럼 무뚝뚝하게 아내를 대했습니다..
그동안 미안했단 말 한마디를 하고 싶긴 했는데
왠지 모를 쓸데 없는 자존심이 생긴건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전립선이 안좋으셔서
계속 검사를 받고 하셨는데
제가 30이 되던 해에 암판정을 받으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셨을때
누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가 번갈아가면서 병실을 지켰습니다.
전 휴일에만 병실을 지켰구요..
자녀를 낳아서 키우고 계신 분들은 아마 아실겁니다.
새벽이고, 낮이건
애가 잠도 안들고 울고 할 때마다 아내는 잠들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애를 봐주고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잠도 제대로 못자고 어머니가 애를 잠깐 봐줄때 아버지 병실에서 간호를 했으니…
그 피곤함은 말로 표현할수 없을거란거…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조차도 따뜻한 말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병실에 있던 다른 분들조차
며느리가 진짜 효녀라며 저한테 장가 잘갔다고 칭찬할때도
아무런 말도 못했었습니다..
입이 두개라도 할말이 없는건 당연한거지요..
수술후 다행히 수술이 잘되었고,
아버지께서 퇴원하시기 전까지 아내는 그렇게 육아와 병간호를 했습니다..
아버지과 몸이 괜찮아지시고 집에 오셨을때
부모님께서 1억2천을 주셨었습니다.
근처 전세라도 얻어서 이제 분가하라고 하시더라구요.
아내는 한사코 괜찮다고 말하는데 전 그러자고 했습니다.
사실 이때 그러자고 말을 한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였습니다.
아무래도 시부모님이랑 같이 사는것 보다는 그래도 무뚝뚝뚝한 남편이지만
아들과 세명이 사는게 나을테니까요..
부모님도 당연히 그렇게 하라고 하셨고
대구에 아파트로 전세를 하나 구해서 그렇게 분가를 했습니다.
거의 말도 안하고 했지만 간간히 애도 같이 봐주고,
이사하고 처음으로 외식을 갔는데
맛있다고 맛있다고 말하는 아내를 보면서
이때부터 정말 변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연애도 저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애 가졌을 때 대접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했으며…
시집살이와 시부모 병간호까지 해왔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 흔한 외식 한번 같이 와보지 못했더라구요…
미안하고도 너무 미안했습니다…
비록 무뚝뚝하게 말하곤 했지만
이때부터는 그래도 나름 다정하게 대했습니다.
그러다가 장모님께서도 많이 아프셔서 (류마티스관절염)
그리고 처남도 중학생이라서
아내가 간간히 처가에 들려서 반찬이며,
집안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류마티스 관절염을 손가락 마디마디에 걸리셨었습니다.
이게 집안일을 하거나 할때 끔찍할 정도로 아프다고 하더라구요..
하루는 그런 아내가 너무 안쓰럽고, 장모님, 처남까지도 많이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장모님이랑 처남 들어와서 같이 살자고 그래라.
진심으로 한 말이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이러더군요…
미안해요..앞으로는 자주는 안갈께요.. 미안해요…
저렇게 말을 하더군요..
저 말뜻이 어떤 말인지 아마 다들 아실거에요..
아내는 제가 처가집에 자주 가는걸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저렇게 말을 한걸로 이해를 한거였습니다.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미안하단 말과,
참았던 눈물이 이때 넘처 흘렀습니다.
아내 손 붙잡고 너무 너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말하면서 애처럼 무릎 꿇고 서럽게 울었습니다.
당황해하는 아내에게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면서…
내가 미 친놈 인간 쓰레기라면서 너무 후회한다고..
앞으로 천천히 갚을테니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면서 정말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내와 오랫동안 마음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동안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단 말과 함께요..
아내역시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처음으로 서로 꼭 안고 같이 울었네요..
그일이 있고나서
아내가 장모님께 같이 살자고 이야기를 했을때
장모님께서는 완강히 거부하셨습니다.
사실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위라고 하나있는데 명절때 꼴랑 한번 왔고
딸 그렇게 서럽게 만드는데
자기 들어가면 얼마나 눈치보실까?? 란 생각 당연히 하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본가에 계시는 부모님께서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하셨고,
결국은 제가 처가에가서 장모님께 무릎꿇고 그동안 죄송했다고 사죄드리고
한달정도 걸려서 겨우 장모님을 설득해서 같이 살게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처남 용돈도 한번도 준적이 없었네요…..
지금은 그누구보다도 아내만 사랑하고 애교도 떨고
아내 말이 곧 법인 것 처럼, 그렇게 살고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내가 가장 이뻐보이고, 가장 사랑스럽습니다.
집안일도 나름 열심히하고, 육아도 열심히 도우고 있습니다.
화해한 후에 애도 한명 늘었거든요..
불과 이게 4년전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장모님,저,아내,처남,자식둘
이렇게 여섯식구가 살고있습니다.
휴일이나 주말이면 가까운곳으로 바람쐬로도 가고요..
장모님과 제가 취미생활이 맞는게 하나 있습니다.
제가 특이하게도 식물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장모님의 유일한 낙이 꽃이랑 난초를 가꾸시는 겁니다.
시간날때마다 화훼단지가서
같이 장모님과 꽃을 사들고 와서 아내에게 욕을 먹기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음.. 지금은 정말 행복합니다.
하루하루에 고마워하고, 특히 아내에게 정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때 결혼하지 못했더라면 평생을 후회하고 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에게 잘해주지 못했던건 지금살면서 하나하나 갚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 평생이 걸리더라도 다 갚지는 못하겠지만
아내 역시 너무 행복하다고 하니 오히려 더 고마워지구요..
글이 좀 길어졌네요…
글재주가 없어서 두서없이 적었지만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내의 글+
오빠가 씩~ 웃더니 한번 읽어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너무 자신을 천하의 나쁜놈으로 만든것 같아서 변호(?)라고 해야하나요?
약간의 의견을 쓰고 싶어서 끄적끄적 해볼려구요.
우선 오빠가 쓴글을 읽어봤는데
너무 오빠를 완전 나쁘게 적었네요.
저 이야기가 사실 맞긴 하지만 속내막을 보면 저 그렇게까지 고생 안했거든요 ㅎㅎㅎㅎ
오빠가 쓴글처럼 저 임신했을때 오빠가 저 막 대한건 사실이에요.
그 일로 후회도 많이 하고
혼자서 엄마 몰래 많이 울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애기 지울까 생각도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오빠한테 사실대로 이야기 했을 때
사실 욕도 조금..^^;; 먹긴 했어요.
너무 냉정하게 돌아서고 했을 때는 눈물이 그냥… ㅠㅠ
앞에 이야기는 거의 사실이에요.
어머님 아버님께서 저한테 전화와서 만나자고 이야기 하셨을때
너무 긴장되고 별에 별 생각이 다드는거에요.
애기 지우라고 하실 줄 알고 안 나갈려다가 그래도 어른이 먼저 연락하셔서
보자고 하시는데 안나가는건 예의가 아닐거 같아서
애기 지우라고 하시면 절대 안된다고
그렇게 말할 생각하고 독하게 마음먹고 나갔어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저 보자마자 밥먹었냐고 물으시더니
밥 먹었다고 (사실 안 먹었었지만요)완강히 괜찮다고 거부를 했으나
고기집으로 딱~!!!
그러시더니 비싼 소고기를 시켜주시고는
자식놈 잘못 키워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구요.
아가씨는 어쩔 생각이냐고 물으셔서
애기 낳고 싶다고 이야기 했을때 아버님께서
그러면 이놈새끼 들어오면 같이 이야기 하자고 하시면서
많이 먹으라고 고기도 꾸워주시고 하셨어요.
첫인상은 진짜 무서우셨는데 좋으신 분이셨어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아………전형적인 경상도 분이시구나……………..이런 느낌?
그렇게 오빠집에서 아버님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빠와서 난리치고
그렇게 되고 나서 며칠을 울고 했는데
결국은 오빠 이야기대로 결혼을 하게 됐어요.
시집살이라고 하지만 어머님께서 대부분 하시고
전 잔일만 사삭~
배 좀 불러오고는 어머님께서 저 일 좀 하려고 해도
난리나셔서 대부분은 어머님께서.
오빠 글에보면 임신했을때 뭐먹고 싶은거 말도 안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먹고 싶은거 어머님께서 거의 대부분 해주셨어요.
형님께서도 집에 들어올때 먹을걸 잔뜩 사오시고
오빠도 말도 거의 안하고 무뚝뚝하고 했지만
과일 같은거 사와서 그냥 방에 툭 던져놓고 나가곤했어요 ㅎㅎ
나름 잘먹는 임산부였답니다~^^
오빠 글에서처럼 일년은 처가에 가고
그후부터는 안갔다고 했는데
여기엔 속사정이 있어요.
엄마가 오빠가 오면 그래도 사위라 대접을 해줘야하는데
손이 많이 안좋으셔서 직접 이것저것 차리기가 힘드셨어요.
집에 반찬도 거의 없었고, 배달 시켜먹는 것도 한두번이죠.
사위 오면 그래도 직접 음식을 만들어주셔야 된다고 생각하셔서
엄마나름 신경이 많이 쓰이셨나봐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오지말라고 하셨거든요.
오빠한테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그래서
형님한테 말씀드렸더니 형님이 오빠한테 이야기 하셨어요.
그이후부터 오빠도 명절에는 그냥 친구랑 술먹으러 나가더라구요.
오히려 이일은 제가 많이 미안했어요.
첫째 낳고나서 사실은 오빠가 저보고 잠깐 우는것도 봤었어요.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서운했어요.
그래도 수고했다고 손이라도 잡아주고 나가지…
그냥 나가버리더라고요..
애기낳고 나서는
오빠가 절 대하는 행동이 많이 달라진걸 저도 느꼈었어요.
청소할려고 하면 딱 이랬어요.
“야 애나 봐라” 완전 무뚝뚝함의 정점을 찍는…
혼자서 청소 다 끝내놓고는
“나도 안아보자” 이러고 또 애 봐주고..
표현이 서툴렀지 행동은 전혀 안그랬어요.
형님 집에 오시면 또 봐주시고..어머님 아버님도 봐주시고..
제 손에 있는 것보다 주로 어머님,형님께서 많이 봐주셨어요.
형님께서는 결혼은 안하실건데 애기는 가지고 싶다고 늘 말씀하시던 분이고
첫조카라서 그랬는지 끔찍하게 이뻐하셨어요.
지금도 첫째,둘째 옷이랑 이것저것 항상 사다주시고 있으세요.
아버님 입원해 계실때도 전 그냥 물떠다 드리고 별로 한 것도 없었어요.
어머님 혼자 계시고, 형님이랑 저랑 둘이 같이 있었거든요.
그때 어머님께서는 또 첫째 봐주시고 하셨으니
고생은 어머님께서 다 하셨지, 전 사실 별로 한게…….
첫째도 효자라 그런지 100일까지는 천사와 같이 얌전하고도 순한 아이였답니다^^
100일 이후에는 지옥을 경험하기도 했지만요.
오빠한테 오히려 제가 미안한게 더 많아요.
엄마랑 동생 들어오고 나서부터 오빠 벌이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허리띠 꽉 졸라매고 살아도 항상 쪼달렸어요.
물론 지금도 매달 쪼달리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요..
첨엔 오빠한테 미안하고 눈치도 보이고 될수 있으면 최대한 아껴쓰려고 해봐도
동생한테도 돈이 좀 들어갔지만
엄마 한의원에 손 침맞으로 일주일에 두번씩 갔는데
여기에 나가는 돈이 너무 컸어요.
오빠가 그런데는 돈 아끼지말라면서 한번 크게 혼내더라구요.
그래서 한의원에서 침맞고 첨으로 한약을 지었는데
자그마치 30만원이나……………..하지만 이게 깍은거란거…
일년전까지는 매주에 두번씩 한의원가고 했으니
거기에 들어간 돈만 해도 꽤 돼요.
저도 롯데슈퍼에서 케셔로 잠깐씩 일하고 해도
사실 엄마랑 동생 생활비도 안되던…
동생 실업계 간다고 했을 때도
오빠가 동생 혼내면서
(동생이 그래도 기특하게 공부는 열심히해서 성적이 좋아요)
돈걱정 하지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면서 인문계로 보냈을때도
너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어요.
힘들게 벌어서 사실 친정식구한테 돈 많이 들어가는데
좋아할 남편은 아마 없을거에요.
그래도 한번도 돈으로 뭐라한적이 없어요.
오히려 돈안쓰면 크게 혼내고 그러지 마라고 하면서요.
일하고 집에와서 씻지도 못하고 골아 떨어지는거 볼때면 눈물이 핑~~돌때도 있답니다.
오히려 복은 제가 더 많이 받았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잘생긴(?) 성실하고 착한 남편 만나서 천사같은 우리애기 둘에
엄마 동생이랑 이렇게 살고있다는게 고마울 때가 많아요^^
그리고 우리 시부모님,형님같은 분들도 정말 없을 거에요
시댁복은 친구들이나 주변사람 이야기들어봐도 저만큼 타고난사람은 없을 거에요^^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
봐주신분들 감사드리며, 오늘하루도 평온하고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