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냥하고 온 것 처럼 생생한 ‘멧돼지 사냥 썰’ ㄷㄷ

추석 연휴에 고향 집 창고에서 옛 추억이 묻은 물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돼지창인데요, 예전에 고향 마을에서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동네 아저씨들이 이런 창을 둘러메고 산에 들어가 멧돼지를 사냥하곤 했습니다.

물론 야생동물보호법을 위반하는 불법 밀렵이었지요.

이번 추석 연휴에도 목격을 했지만

강원도 산골마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멧돼지나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가 너무나 큽니다.

겨울철에 멧돼지를 사냥하던 풍습은 그러한 피해를 예방하려는 목적도 있는, 일종의 자구책이었다고나 할까요?

사진에 보이는 것은 아버지께서 직접 사용하시던 창입니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집에 2개의 창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쓰던 것이지요.

아버지께선 창 관리에 무척 세심하게 신경을 쓰셨습니다.

한 번 사용하고 나서는 반드시 숫돌에 창날을 갈아 시퍼렇게 날을 세워놓고, 기름칠을 하여 녹이 스는 것을 예방하셨지요.

그리고 광목을 꼬아서 창집을 손수 제작하고 창집에도 기름을 먹여 창을 꽂아 소중하게 보관하셨습니다.

20여 년 만에 꺼내 본 창은 사진에 보이듯이 거의 녹이 슬지 않았더군요.

아쉽게도 창고에서 하나밖에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었나 봅니다.

이 물건을 사용할 때는 물푸레나무 창대를 창에 꽂고,

사진 좌측에 보이는 구멍에 질긴 줄을 연결하여 창대에 홈을 파서 묶으면 사용할 때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아버지께서 사용하시던 창대의 길이는 약 2m 정도로 그렇게 길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실전에서 창대가 너무 길면 창질을 재빠르게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창대로 물푸레나무를 쓰는 이유는

목질이 단단하고 질기며 위로 곧게 자라는 특성이 있고 잔가지가 별로 없어 매끈하기 때문에

창대로 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리라 추측해 봅니다.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가느다란 놈이라 할지라도 마른 물푸레나무는 사람 힘으로 절대 부러뜨릴 수 없을만큼 단단합니다.

저는 멧돼지 사냥 경험이 딱 한 번 있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였으니까 20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이지요.

아마 3학년 겨울방학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해 겨울에 양양에는 눈이 무척 많이 내렸습니다.

한 번 왔다 하면 보통 어른 허리께까지 내렸으니까요.

그렇게 눈이 많이 오면 마을 아저씨들은 베낭을 꾸립니다.

베낭 속에는 며칠 동안 먹을 쌀과 간단한 밑반찬, 그리고 벼 못자리할 때 쓰는 비닐과 담요, 그리고 냄비와 숟가락, 낫이나 손도끼, 양말 몇 켤레 등이 들어있게 마련입니다.

멧돼지 사냥은 짧게는 하루,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사냥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되게 마련이니 양식을 여유있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거기에다 설피는 필수적인 물건입니다.

부러질 경우를 대비하여 여분으로 한 벌씩 따로 챙기기도 합니다.

평지에서는 허리까지 빠지는 눈이지만 길도 없는 산 속으로 들어가면 가슴께까지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였지요.

그러나 설피를 신게 되면 정강이 정도까지밖에 빠지지 않으므로 체력을 아낄 수 있고, 이동이 수월해지는 장점이 있었던 것이지요.

(참고로 설피는 다래덩굴을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가마솥에 소 여물을 끓일 때 함께 넣어 삶든가,

아니면 아궁이의 숯불에 달구어 타원형으로 구부려 틀을 잡은 다음 잘 말려 다듬고,

쇠가죽을 이용해 가로 세로로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단단히 엮어서 만들지요.

나이론과 같이 화학 재질로 된 끈을 사용할 때보다 쇠가죽을 이용하게 되면 효과가 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비닐을 준비하는 이유는 잠자리를 만들 때 요긴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텐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산 속에서 비박을 할 때,

눈 위에 나뭇가지로 대충 움막의 뼈대를 튼튼하면서도 낮게 세우고

그 위에 비닐을 여러 겹 덮은 다음 비닐 위에 부드러운 눈을 1m 정도 덮습니다.

그리고 눈 쌓인 바닥에다 마른 낙엽을 구해 충분한 양을 깐 다음 비닐을 여러 겹 깔고 다시 담요를 깔고 덮어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잠을 잤다고 합니다.

눈이 의외로 보온 효과가 있어 마치 이누이트족의 이글루처럼 눈을 깔고 덮고 잔 셈인데요,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날 아침 일찍 아버지께서 저를 깨우셨습니다.

멧돼지 사냥 가자고……

요즘처럼 등산화가 있던 시절도 아니라

양말을 여러 겹 신고 그 위에 비닐을 여러 겹 두르고 끈으로 동여맨 다음 운동화를 신고 설피를 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신 베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해에는 눈이 유달리 자주 내린 탓에 멧돼지들이 큰산 (태백산맥 쪽의 높은 산들을 마을에서는 ‘큰산’이라 했음)을 버리고

먹이를 찾아 야산으로 많이 내려온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날 사냥에 나선 일행은 모두 열 명이었습니다.

다들 아버지 또래의 40대 중 후반 이상의 연배들이셨고, 저만 혼자 2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었던 것이죠.

행선지는 ‘곤지골’로 정해졌습니다.

곤지골은 큰산 방향이 아니라 반대로 해안쪽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일행 중의 한 명이 며칠 전 큰산 쪽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곤지골로 향하는 멧돼지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행은 한 줄로 늘어서서 길을 가게 되는데, 맨 앞의 사람이 가장 체력 소모가 많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은 앞 사람 발자국만 밟으며 가면 되지만,

앞장을 선 사람은 생눈에 길을 내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젊은 혈기만 믿고 맨 앞에서 열심히 길을 뚫으며 곤지골로 진입하였습니다.

그러다 한 시간도 못 돼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습니다.

요즘말로 오버 페이스를 한 것이지요.

결국 숨을 헥헥거리다가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께선 잠시 쉬었다가 나중에 뒤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20분 정도 눈 위에 누워 쉬면서 잠시 체력을 보충한 뒤 일행의 발자국을 뒤따라갔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발자국만 따라 가는 것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시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한 명씩 교대로 선두를 맡으면서 사냥길을 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세 시간 가량 걸었을 무렵, 드디어 멧돼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발자국을 보니 금방 지나간듯 선명했고, 여러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였습니다.

눈이 깊게 쌓여 있어 멧돼지도 눈을 뚫고 다니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눈 위로 걸을 수가 없으니 멧돼지가 눈을 뚫고 지나간 자리는 마치 짚단을 끌고 간 듯 뻥 뚫려 있었습니다.

더구나 멧돼지는 후각이 특히 예민한데,

다가오는 인간들의 냄새를 이미 맡고 다급하게 도망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행은 힘을 내서 멧돼지 발자국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물이 가까이에 있어 언제 놈과 조우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들 베낭에서 창날을 꺼내 창대에 장착을 하고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또 세 시간 정도….. 도중에 베낭에서 식어버린 주먹밥을 꺼내 허기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목이 마르면 눈을 씹어 먹으면서 말이지요.

오후의 햇살이 하얀 눈에 반사되고 있었습니다.

사냥 경험이 제일 많은 고수(高手) 아저씨가 일행을 멈춰세웠습니다.

고개를 내밀고 앞을 보니 약 100m 정도 앞에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도망을 포기한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뒷발로 눈을 박차고, 입으로는 눈을 씹어 공중에 흩뿌리며 하얀 눈보라를 만들어내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고수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재빠르게 멧돼지를 포위하였습니다.

그리고 각자 주변의 눈을 발로 밟아서 다져놓아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피할 수 있도록 대비해 두었습니다.

주변의 눈을 밟아놓지 않으면 눈 때문에 동작이 둔해져 자칫 놈의 역공에 당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약 20m의 거리에서 바라본 멧돼지는 굉장히 큰 놈이었습니다.

송곳니가 길쭉하게 콧잔등 위로 솟아 있는 수컷 멧돼지였습니다.

마침 일행이 멧돼지와 대치하는 곳의 지형이 약간 평평하고 잡목도 별로 없고 큰 소나무 몇 그루만 있는 억새밭이었습니다.

물론 억새는 고개만 내민 채 거의 눈에 묻혀 있었구요.

멧돼지는 연거푸 뒷발로 눈을 차고 입으로는 눈을 씹어 뿌려대며 우리와 결전을 치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사람들의 추격을 피해 눈을 헤치고 오느라 온 몸의 힘이 다 빠져버렸겠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 전사와 같은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들려왔습니다.

사실 저는 겁이 났습니다.

저 놈이 혹시 내 쪽으로 돌진해 오면 어떻게 하지?

돌진해 오는 순간 아버지한테 들은 대로 살짝 몸을 돌려 피하면서 놈의 귀 밑 동맥을 향해 창날을 정확하게 찔러넣을 수 있을까?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입 안은 바싹 말라버린 듯 침을 삼킬 때 목구멍에 통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행들 모두 긴장한 얼굴들이었습니다.

혼자인 멧돼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겠지요.

사냥터에서는 사냥꾼들 나름대로의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어기는 사람은 다음 사냥부터는 참가하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 하나가 바로 선창자 (先槍者 – 제일 먼저 창을 찌르는 사람)의 역할인데,

선창은 일행 중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하고 창질 솜씨가 뛰어난 고수만이 맡을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냥터에서는 선창을 맡은 고수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괜시리 선창자의 지시 없이 함부로 창을 던졌다가는 다시는 사냥 행렬에 동참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숲에는 멧돼지의 거친 숨소리가 차츰 잦아들고 솔바람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고,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고수의 오른팔이 조금 움직이는듯 했습니다.

고수의 손을 떠난 창은 멧돼지의 목덜미를 향해서 미끄러지듯 빠르게 날아갔습니다.

동시에, 멧돼지는 고개를 약간 숙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순간, 창날은 멧돼지의 목덜미 윗부분에 큰 상처를 내고 그만 눈 속에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멧돼지가 흥분했습니다.

하얀 눈밭에 시뻘겋게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붉은 피를 본 순간 몸을 돌려 우리 일행을 한 바퀴 둘러 보았습니다.

모두들 손에 번쩍이는 창을 하나씩 쥐고 엉거주춤 서 있었는데, 고수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습니다.

멧돼지는 고수에게 돌진했습니다.

고수는 역시 고수였습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소나무 근처에다 자신의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지요.

달려드는 멧돼지를 피해 재빠르게 소나무에 기어올랐습니다.

거구의 중년 아저씨가 저렇게나 재빠를까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멧돼지는 붉은 피를 흘리며 고수가 올라간 소나무를 머리로 들이받았습니다.

쿵, 쿵, 쿵…… 자칫 그 충격으로 고수가 떨어질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사냥꾼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놈을 향해 창을 던지려고 했습니다.

저도 따라서 창을 던지기 위해 창을 잡은 오른팔을 한껏 뒤로 젖혀 막 던지려는 찰나,

나무 위의 고수가 일행을 제지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게 함부로 창을 던지다 잘못하면 놈의 쓸개가 터질지도 모른다고……

그리고는 미리 약속된 재창자 (再槍者 – 두 번째로 창을 찌르거나 사냥감에 치명상을 입히는 사람)에게 눈짓을 했습니다.

재창자는 다소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곧 용기를 내어 몸을 숙이고 놈의 곁으로 빠르게 접근했습니다.

최대한 놈에게로 가까이 붙어 놈의 귀 밑 목덜미를 향해 침착하게, 그리고 힘차게 창날을 찔러넣었습니다.

놈의 두꺼운 가죽을 뚫고 들어간 창날은 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놈의 귀 밑부분에 깊숙하게 박혀버렸습니다.

마침 제가 서 있던 곳은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이었습니다.

여름 날, 물놀이 할 때 태양을 향해 입에 머금었던 물을 힘차게 내뿜으면 고운 무지개가 생기지요?

마치 그와 같은 상황이 눈 앞에서 펼쳐졌습니다.

창날에 대동맥을 정확히 끊긴 멧돼지는

1, 2초 정도 멈칫하는 것 같더니 뒤이어 몸을 돌려 몇 걸음 내달리며 처참한 비명소리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껑충 솟구쳐 올랐습니다.

놈의 목덜미에서는 엄청난 양의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습니다.

순간, 놈이 그려내는 핏빛 무지개가 한동안 새하얀 눈밭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하얀 눈밭에 뿌려지던 새빨간 무지개는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 20년도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야생 동물을 사냥한다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에 가해지는 인간의 잔인한 폭력이라는 생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런 의미마저도 무색케 할 만큼 신비로운 영상으로 지금껏 남아있다는 것이 또한 신비로울 따름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듯 놈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눈밭에 풀썩 떨어져 파묻힌 후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버둥거리다가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문득 다리에 힘이 풀려 그냥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곧 이어 해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놈의 가슴부터 배까지 지퍼를 내리듯 쭈욱 열고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간(肝)을 꺼냈습니다.

간잎 뒤에 붙어 있는 쓸개를 조심스럽게 떼어내 따로 보관을 한 후, 간을 썰어 소금에 찍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선창자 먼저, 그리고 재창자가, 그 다음부터는 연장자 순으로…… 맨 마지막에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멈칫거렸습니다.

선창자 고수가 핏발 선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생간을 소금에 찍어 입에 넣고 씹었습니다.

비릿한 맛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의외로 고소한 맛이 더 강했습니다.

한 점을 더 먹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놈을 골라 또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핏물이 흘러내리는 입가를 옷소매로 쓰윽 닦았습니다.

다음으로는 가죽을 벗겨내고, 고기와 내장과 뼈를 12등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선창자와 재창자에게는 2인분의 몫이 주어졌습니다.

산 속의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저의 몫으로 주어진 가죽과 고기와 내장과 뼈 등을 준비해간 비닐을 이용해 감싸 베낭에 넣고, 왔던 길을 되돌아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갈 때는 6시간이나 걸렸지만, 돌아오는 길은 3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

얼마 후 멧돼지 쓸개가 밀거래되었다며 고수 아저씨가 아버지와 저의 몫으로 20만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멧돼지 쓸개가 100만원 정도에 거래되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국립 사범대의 한 학기 등록금이 30만원이 채 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창 한 번 날려보지 못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멧돼지 사냥의 추억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물론 산토끼나 노루 또는 너구리는 혼자서도 많이 잡아 보았지만, 멧돼지 사냥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입니다.)

추석 연휴에 고향 집 창고에서 옛 추억이 묻은 물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돼지창인데요, 예전에 고향 마을에서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동네 아저씨들이 이런 창을 둘러메고 산에 들어가 멧돼지를 사냥하곤 했습니다.

물론 야생동물보호법을 위반하는 불법 밀렵이었지요.

이번 추석 연휴에도 목격을 했지만

강원도 산골마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멧돼지나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가 너무나 큽니다.

겨울철에 멧돼지를 사냥하던 풍습은 그러한 피해를 예방하려는 목적도 있는, 일종의 자구책이었다고나 할까요?

사진에 보이는 것은 아버지께서 직접 사용하시던 창입니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집에 2개의 창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쓰던 것이지요.

아버지께선 창 관리에 무척 세심하게 신경을 쓰셨습니다.

한 번 사용하고 나서는 반드시 숫돌에 창날을 갈아 시퍼렇게 날을 세워놓고, 기름칠을 하여 녹이 스는 것을 예방하셨지요.

그리고 광목을 꼬아서 창집을 손수 제작하고 창집에도 기름을 먹여 창을 꽂아 소중하게 보관하셨습니다.

20여 년 만에 꺼내 본 창은 사진에 보이듯이 거의 녹이 슬지 않았더군요.

아쉽게도 창고에서 하나밖에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었나 봅니다.

이 물건을 사용할 때는 물푸레나무 창대를 창에 꽂고,

사진 좌측에 보이는 구멍에 질긴 줄을 연결하여 창대에 홈을 파서 묶으면 사용할 때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아버지께서 사용하시던 창대의 길이는 약 2m 정도로 그렇게 길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실전에서 창대가 너무 길면 창질을 재빠르게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창대로 물푸레나무를 쓰는 이유는

목질이 단단하고 질기며 위로 곧게 자라는 특성이 있고 잔가지가 별로 없어 매끈하기 때문에

창대로 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리라 추측해 봅니다.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가느다란 놈이라 할지라도 마른 물푸레나무는 사람 힘으로 절대 부러뜨릴 수 없을만큼 단단합니다.

저는 멧돼지 사냥 경험이 딱 한 번 있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였으니까 20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이지요.

아마 3학년 겨울방학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해 겨울에 양양에는 눈이 무척 많이 내렸습니다.

한 번 왔다 하면 보통 어른 허리께까지 내렸으니까요.

그렇게 눈이 많이 오면 마을 아저씨들은 베낭을 꾸립니다.

베낭 속에는 며칠 동안 먹을 쌀과 간단한 밑반찬, 그리고 벼 못자리할 때 쓰는 비닐과 담요, 그리고 냄비와 숟가락, 낫이나 손도끼, 양말 몇 켤레 등이 들어있게 마련입니다.

멧돼지 사냥은 짧게는 하루, 이틀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사냥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되게 마련이니 양식을 여유있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거기에다 설피는 필수적인 물건입니다.

부러질 경우를 대비하여 여분으로 한 벌씩 따로 챙기기도 합니다.

평지에서는 허리까지 빠지는 눈이지만 길도 없는 산 속으로 들어가면 가슴께까지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였지요.

그러나 설피를 신게 되면 정강이 정도까지밖에 빠지지 않으므로 체력을 아낄 수 있고, 이동이 수월해지는 장점이 있었던 것이지요.

(참고로 설피는 다래덩굴을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가마솥에 소 여물을 끓일 때 함께 넣어 삶든가,

아니면 아궁이의 숯불에 달구어 타원형으로 구부려 틀을 잡은 다음 잘 말려 다듬고,

쇠가죽을 이용해 가로 세로로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단단히 엮어서 만들지요.

나이론과 같이 화학 재질로 된 끈을 사용할 때보다 쇠가죽을 이용하게 되면 효과가 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비닐을 준비하는 이유는 잠자리를 만들 때 요긴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텐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산 속에서 비박을 할 때,

눈 위에 나뭇가지로 대충 움막의 뼈대를 튼튼하면서도 낮게 세우고

그 위에 비닐을 여러 겹 덮은 다음 비닐 위에 부드러운 눈을 1m 정도 덮습니다.

그리고 눈 쌓인 바닥에다 마른 낙엽을 구해 충분한 양을 깐 다음 비닐을 여러 겹 깔고 다시 담요를 깔고 덮어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잠을 잤다고 합니다.

눈이 의외로 보온 효과가 있어 마치 이누이트족의 이글루처럼 눈을 깔고 덮고 잔 셈인데요,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날 아침 일찍 아버지께서 저를 깨우셨습니다.

멧돼지 사냥 가자고……

요즘처럼 등산화가 있던 시절도 아니라

양말을 여러 겹 신고 그 위에 비닐을 여러 겹 두르고 끈으로 동여맨 다음 운동화를 신고 설피를 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신 베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해에는 눈이 유달리 자주 내린 탓에 멧돼지들이 큰산 (태백산맥 쪽의 높은 산들을 마을에서는 ‘큰산’이라 했음)을 버리고

먹이를 찾아 야산으로 많이 내려온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날 사냥에 나선 일행은 모두 열 명이었습니다.

다들 아버지 또래의 40대 중 후반 이상의 연배들이셨고, 저만 혼자 2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었던 것이죠.

행선지는 ‘곤지골’로 정해졌습니다.

곤지골은 큰산 방향이 아니라 반대로 해안쪽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일행 중의 한 명이 며칠 전 큰산 쪽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곤지골로 향하는 멧돼지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행은 한 줄로 늘어서서 길을 가게 되는데, 맨 앞의 사람이 가장 체력 소모가 많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은 앞 사람 발자국만 밟으며 가면 되지만,

앞장을 선 사람은 생눈에 길을 내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젊은 혈기만 믿고 맨 앞에서 열심히 길을 뚫으며 곤지골로 진입하였습니다.

그러다 한 시간도 못 돼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습니다.

요즘말로 오버 페이스를 한 것이지요.

결국 숨을 헥헥거리다가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께선 잠시 쉬었다가 나중에 뒤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20분 정도 눈 위에 누워 쉬면서 잠시 체력을 보충한 뒤 일행의 발자국을 뒤따라갔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발자국만 따라 가는 것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시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한 명씩 교대로 선두를 맡으면서 사냥길을 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세 시간 가량 걸었을 무렵, 드디어 멧돼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발자국을 보니 금방 지나간듯 선명했고, 여러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였습니다.

눈이 깊게 쌓여 있어 멧돼지도 눈을 뚫고 다니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눈 위로 걸을 수가 없으니 멧돼지가 눈을 뚫고 지나간 자리는 마치 짚단을 끌고 간 듯 뻥 뚫려 있었습니다.

더구나 멧돼지는 후각이 특히 예민한데,

다가오는 인간들의 냄새를 이미 맡고 다급하게 도망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행은 힘을 내서 멧돼지 발자국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물이 가까이에 있어 언제 놈과 조우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들 베낭에서 창날을 꺼내 창대에 장착을 하고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또 세 시간 정도….. 도중에 베낭에서 식어버린 주먹밥을 꺼내 허기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목이 마르면 눈을 씹어 먹으면서 말이지요.

오후의 햇살이 하얀 눈에 반사되고 있었습니다.

사냥 경험이 제일 많은 고수(高手) 아저씨가 일행을 멈춰세웠습니다.

고개를 내밀고 앞을 보니 약 100m 정도 앞에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도망을 포기한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뒷발로 눈을 박차고, 입으로는 눈을 씹어 공중에 흩뿌리며 하얀 눈보라를 만들어내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고수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재빠르게 멧돼지를 포위하였습니다.

그리고 각자 주변의 눈을 발로 밟아서 다져놓아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피할 수 있도록 대비해 두었습니다.

주변의 눈을 밟아놓지 않으면 눈 때문에 동작이 둔해져 자칫 놈의 역공에 당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약 20m의 거리에서 바라본 멧돼지는 굉장히 큰 놈이었습니다.

송곳니가 길쭉하게 콧잔등 위로 솟아 있는 수컷 멧돼지였습니다.

마침 일행이 멧돼지와 대치하는 곳의 지형이 약간 평평하고 잡목도 별로 없고 큰 소나무 몇 그루만 있는 억새밭이었습니다.

물론 억새는 고개만 내민 채 거의 눈에 묻혀 있었구요.

멧돼지는 연거푸 뒷발로 눈을 차고 입으로는 눈을 씹어 뿌려대며 우리와 결전을 치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사람들의 추격을 피해 눈을 헤치고 오느라 온 몸의 힘이 다 빠져버렸겠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 전사와 같은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들려왔습니다.

사실 저는 겁이 났습니다.

저 놈이 혹시 내 쪽으로 돌진해 오면 어떻게 하지?

돌진해 오는 순간 아버지한테 들은 대로 살짝 몸을 돌려 피하면서 놈의 귀 밑 동맥을 향해 창날을 정확하게 찔러넣을 수 있을까?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입 안은 바싹 말라버린 듯 침을 삼킬 때 목구멍에 통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행들 모두 긴장한 얼굴들이었습니다.

혼자인 멧돼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겠지요.

사냥터에서는 사냥꾼들 나름대로의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어기는 사람은 다음 사냥부터는 참가하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 하나가 바로 선창자 (先槍者 – 제일 먼저 창을 찌르는 사람)의 역할인데,

선창은 일행 중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하고 창질 솜씨가 뛰어난 고수만이 맡을 수 있는 특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냥터에서는 선창을 맡은 고수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괜시리 선창자의 지시 없이 함부로 창을 던졌다가는 다시는 사냥 행렬에 동참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숲에는 멧돼지의 거친 숨소리가 차츰 잦아들고 솔바람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고,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고수의 오른팔이 조금 움직이는듯 했습니다.

고수의 손을 떠난 창은 멧돼지의 목덜미를 향해서 미끄러지듯 빠르게 날아갔습니다.

동시에, 멧돼지는 고개를 약간 숙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순간, 창날은 멧돼지의 목덜미 윗부분에 큰 상처를 내고 그만 눈 속에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멧돼지가 흥분했습니다.

하얀 눈밭에 시뻘겋게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붉은 피를 본 순간 몸을 돌려 우리 일행을 한 바퀴 둘러 보았습니다.

모두들 손에 번쩍이는 창을 하나씩 쥐고 엉거주춤 서 있었는데, 고수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습니다.

멧돼지는 고수에게 돌진했습니다.

고수는 역시 고수였습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소나무 근처에다 자신의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지요.

달려드는 멧돼지를 피해 재빠르게 소나무에 기어올랐습니다.

거구의 중년 아저씨가 저렇게나 재빠를까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멧돼지는 붉은 피를 흘리며 고수가 올라간 소나무를 머리로 들이받았습니다.

쿵, 쿵, 쿵…… 자칫 그 충격으로 고수가 떨어질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사냥꾼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놈을 향해 창을 던지려고 했습니다.

저도 따라서 창을 던지기 위해 창을 잡은 오른팔을 한껏 뒤로 젖혀 막 던지려는 찰나,

나무 위의 고수가 일행을 제지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게 함부로 창을 던지다 잘못하면 놈의 쓸개가 터질지도 모른다고……

그리고는 미리 약속된 재창자 (再槍者 – 두 번째로 창을 찌르거나 사냥감에 치명상을 입히는 사람)에게 눈짓을 했습니다.

재창자는 다소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곧 용기를 내어 몸을 숙이고 놈의 곁으로 빠르게 접근했습니다.

최대한 놈에게로 가까이 붙어 놈의 귀 밑 목덜미를 향해 침착하게, 그리고 힘차게 창날을 찔러넣었습니다.

놈의 두꺼운 가죽을 뚫고 들어간 창날은 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놈의 귀 밑부분에 깊숙하게 박혀버렸습니다.

마침 제가 서 있던 곳은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이었습니다.

여름 날, 물놀이 할 때 태양을 향해 입에 머금었던 물을 힘차게 내뿜으면 고운 무지개가 생기지요?

마치 그와 같은 상황이 눈 앞에서 펼쳐졌습니다.

창날에 대동맥을 정확히 끊긴 멧돼지는

1, 2초 정도 멈칫하는 것 같더니 뒤이어 몸을 돌려 몇 걸음 내달리며 처참한 비명소리와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껑충 솟구쳐 올랐습니다.

놈의 목덜미에서는 엄청난 양의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습니다.

순간, 놈이 그려내는 핏빛 무지개가 한동안 새하얀 눈밭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하얀 눈밭에 뿌려지던 새빨간 무지개는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 20년도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야생 동물을 사냥한다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에 가해지는 인간의 잔인한 폭력이라는 생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런 의미마저도 무색케 할 만큼 신비로운 영상으로 지금껏 남아있다는 것이 또한 신비로울 따름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듯 놈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눈밭에 풀썩 떨어져 파묻힌 후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버둥거리다가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문득 다리에 힘이 풀려 그냥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곧 이어 해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놈의 가슴부터 배까지 지퍼를 내리듯 쭈욱 열고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간(肝)을 꺼냈습니다.

간잎 뒤에 붙어 있는 쓸개를 조심스럽게 떼어내 따로 보관을 한 후, 간을 썰어 소금에 찍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선창자 먼저, 그리고 재창자가, 그 다음부터는 연장자 순으로…… 맨 마지막에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멈칫거렸습니다.

선창자 고수가 핏발 선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생간을 소금에 찍어 입에 넣고 씹었습니다.

비릿한 맛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의외로 고소한 맛이 더 강했습니다.

한 점을 더 먹었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놈을 골라 또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핏물이 흘러내리는 입가를 옷소매로 쓰윽 닦았습니다.

다음으로는 가죽을 벗겨내고, 고기와 내장과 뼈를 12등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선창자와 재창자에게는 2인분의 몫이 주어졌습니다.

산 속의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저의 몫으로 주어진 가죽과 고기와 내장과 뼈 등을 준비해간 비닐을 이용해 감싸 베낭에 넣고, 왔던 길을 되돌아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갈 때는 6시간이나 걸렸지만, 돌아오는 길은 3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

얼마 후 멧돼지 쓸개가 밀거래되었다며 고수 아저씨가 아버지와 저의 몫으로 20만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멧돼지 쓸개가 100만원 정도에 거래되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국립 사범대의 한 학기 등록금이 30만원이 채 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창 한 번 날려보지 못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멧돼지 사냥의 추억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물론 산토끼나 노루 또는 너구리는 혼자서도 많이 잡아 보았지만, 멧돼지 사냥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입니다.)

사진 속 이 물건이 바로 20여 년 전 아버지께서 사용하셨던 멧돼지 사냥용 창인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 보면 그 날의 멧돼지 사냥은 한낱 개인적인 추억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산골 마을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힘들게 농사를 지으며 그 나름대로의 공동체의식을 다질 수 있는

하나의 숭고한 의식(儀式)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날 저녁에는 멧돼지 사냥에 동행하지 못한 이웃들을 초대해 맛있는 멧돼지 고기 요리를 나누어 먹으며

무용담을 자랑하던 기억이 남아 있거든요.

또한 그렇게 멧돼지 사냥에 한 번쯤 참가해야지만 마을의 진정한 청년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의 가장 원초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는 수렵 행위는,

자연의 힘과 대결하며 생존해 나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순수한 동기를 지닌 활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야생 동물에 대한 적절한 개체수 조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멧돼지 사냥을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농촌이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고전적인 방법으로 사냥을 할 수 있는 연령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시골 마을에서도 지금은 70대가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대신 지자체에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신고하면 엽사들을 고용하여 멧돼지 사냥을 해 준다고 하더군요.

엽총과 사냥개를 이용해서 말이지요.

낭만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조금은 쓸쓸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저런 물건도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나 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