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9개월 동안 한 사람을 후원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방법은 서로 다 다릅니다.
전 여러 사람을 다 아우르는 거 싫습니다.
그냥 한 사람만 챙겨주는 거 좋아요.
그래서 여자아이 한명을 오래 후원했습니다.
7년 9개월을요..
초등학교 때부터 50만원씩 꼬박꼬박 보냈고
그게 올해 대학 갈 때까지 지속 되었는데요..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등록금 보내고 이제는 한 짐 덜었습니다.
그 새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 녀석이 혼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누군지 모르는 제게
그 돈을 갚겠다고 까분(?)일도 있었고
올 해 첫 대학 등록금을 자신이 모아둔 돈으로 내겠다고 한 일도 그렇고요.
한 사람이 성년이 되어가는 시기에 모든 부분에 책임을 갖고 임하지 않았고
그저 돈으로 얼마간의 도움을 주었을 뿐이지만..
그래도 성년이 되는 동안 곁에 함께 했던 그 나날이 행복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절대 보는 일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편지는 제가 사무실이라고 칭해둔 오래전 어떤 곳으로 왔더라고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렇게 왔네요.
제가 낳은 아이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제 아이가 대학 간 것만큼 기쁩니다.
8년은 못 채웠어요.
그래도
7년 9개월 내내 저는 행복했습니다.
-다음글
딸아이가 취직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제가 낳은 딸은 아니고
오랜 기간 후원했던 녀석입니다만
그래도 가슴 벅차고 세상 살 맛이 납니다.
삼십 대 초반부터 8년 가까이 제가 가진 걸 조금씩 나눴습니다.
한 달에 50만원씩이요.
사실 생활이 여유로운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돈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저를 지치게 만든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성과를 내본 적 없는 사람이니,
이번만이라도 시작한 걸 마무리 하자는 마음이
부담감보다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여유가 없을 때는 아르바이트 까지 해가면서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고 애썼는데,
다행스럽게도 다사다난했던 제 삼십 대에서
이 약속 하나만큼은 끝까지 마무리 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자라
대학에 입학했고, 이제는 취업의 문턱도 무사히 넘게 됐어요.
그 사이 저는 삼십 대를 지나 어느덧 마흔넷이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많이 받았지만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어렵디 어려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누군가는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만
딸아이가 헤아려준다면,
비로소 제가 해왔던 일이 나름 가치를 남기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게는 아이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곧 여섯 살이 되는 꼬맹이 아들이지만,
다른 하나는 벌써 취업에 성공한 든든한 딸입니다.
올해는 두 녀석에게 걸맞는 선물을 건네고 싶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잠든 아들을 잠시 지켜보다가 운동하러 나왔습니다.
옅게 코를 고는 아들 너머 어딘가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딸아이의 모습이 스쳐지났습니다.
취업 소식에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만 같아요
부디 모난 데 없이, 사랑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해라.
아빠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