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여타 평범한 날들과 다를게 없었다.
질 것 같은 게임은 이기고, 이길 것 같은 게임은 지며
그날도 나는 거부할 수 없는 브론즈의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새끼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 전부 나와 같은 평범한 핑거리스 브론지언들이었다.
그런데 그녀석이 픽창에 들어서 ‘애ㅡ미 허ㅡ벌 또 서폿이네’ 라고 했을 때,
그리고 곧이어 ‘라이엇 애ㅡ미 믹서기에 갈아버린듯’ 이라고 했을 때.
갑자기 조성된 불안감 속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은 직감했다.
이녀석의 패드립 실력은 진짜라고.
확실히 그녀석은 남들과는 다른 사악한 오오라를 풍기고 있었고,
그렇게 나를 포함한 우리팀 전원은 극도의 불안 상태가 되었다.
보통 패드리퍼들은 게임을 던지는 실력도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원딜러새ㅣ끼들 다 @ㅐ미 디져서 할맛 안나는데^^’
그 패드리퍼가 세번째 대사를 치고 나자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원딜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 두되는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닷지를 할까. 아니면 그냥 시작할까.
내 다년간에 걸친 브론즈 경험은 이미 이 게임의 시나리오를 120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해내려가고 있었다.
이대로 게임을 시작했다간 2랩에 더블킬을 따이고 나는
순식간에 어미 잃은 고아가 될 것이 분명했다.
어느덧 마지막 픽이 끝났고,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어머니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게임을 할 것인가.
절체절명의 선택을 코앞에 두고
나는 눈을 감았으며,
내 마우스는 닷지 확인버튼 앞에서 멈추었고,
이내 게임은 시작됐다.
어머니 죄송해요, 이번에 닷지하면 30분이라서..
아무튼 시작된 게임은 마치 왕을 모시는 기분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3대가 다 뒤질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느 놓친 cs 하나에 심장이 덜컹하고,
딜교환 한 번 실수하면 가슴 속에 어머니를 그리며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라인전을 수행해나갔다.
그런 내 노력을 알았는지 나는 게임 내내 한 번의 패드립도 듣지 않았다.
다만 우리 팀원들과 적팀들에게 강도 높은 패드립이 쏟아졌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정글러가 갱에 실패하면
패드립퍼 : ㅋㅋㅋ 그럴거면 정글 왜갔냐 너네 엄마 정글이나 뒤지지
미드가 솔킬을 따이면
패드립퍼 : ㅋㅋㅋ 꿀챔은 너희 어머니처럼 개나소나 돌려써야 꿀챔이라 하는거고요
그의 패드립은 인간 존엄성의 형이상학적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정신을 희롱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패드립을 들은 우리팀은 채찍을 맞은 것처럼 실력이 상승하고,
패드립을 들은 적팀은 채찍을 고환에 맞은 것처럼 실력이 떨어지고 자꾸 게임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중반쯤 탑잭스와 정글이 싸워서 잭스가 여신의 눈물을 6개 사서 우물에서 잠수를 타자
‘각각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그리고 새어머니한테 바치는 눈물이냐’
라는 말로 단번에 잭스를 전장에 복귀시켜버리는 마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나에겐 패드립을 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감동받아 최선을 다해 게임에 임했다
그렇게 조금씩 스노우볼링이 이루어지자 게임은 스무스하게 승리로 향했고
우리는 무난하게 넥서스를 파괴할 수 있었다.
나는 사실상 게임을 승리로 이끌어준 그에게 서둘러 감사를 표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결과창에 한 마디만을 써놓고 나가버린 상태였다.
‘원딜새끼 존 ㅡ 나 애ㅡ미 모유 못먹고 커서 cs도 저리 못먹는듯 ㅋㅋ 던질까봐 욕도 못했네.’
그는 내가 아는 패드립퍼중 당연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