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게 너무 예쁜 ‘야 걔 결혼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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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걔 결혼한다며?”

“진짜? 생각보다 엄청 빨리 하네.”

“축의금 얼마 내야 되냐? 일단 우리는 다 가는거지?”

“난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3만원은 좀 그런가?”

드디어 너의 사랑이 결실을 맺나싶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억지로 시간을 내 참석했던 고등학교 동창회가 아깝지 않았다.

너가 결혼을 하는구나.

웨딩드레스를 입겠구나.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싶다던 너가 몇 년뒤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겠구나.

기다림 끝에, 우리 연애가 그랬던 것처럼, 너가 결혼을 하는구나.

14살, 막 중학교에 입학했던 때였을거다. 그 때는 소개팅이나 맞선이라는 이름 대신 남소, 여소라는 말을 쓸 때였다.

그닥 친하지는 않았던 친구가 쉬는 시간에 우리반을 찾아와 소개받을 생각이 없냐고 물었었다.

네 이름와 얼굴만 알았었는데 갑자기 왜 그러냐 물었다.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냥 여자애가 한 번 물어나 봐달라는 식으로 했다고, 문자나 해보라 그러길래 별 생각 없이 네 번호를 받아 연락을 주고 받았다.

두 달정도였나? 도서관도 같이 다니고, 방과 후 교실도 같이 신청해 다니다보니 주위에선 도대체 언제 사귀냐고 안달이었다.

너도 아마 내 고백을 기다리고 있었을거다.

같이 도서관 주변을 산책할 때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너였으니까.

엄청 더웠던 여름 날이었는데, 수학학원이 끝나고 그늘진 정자 아래에서 너랑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진지한 목소리로 네가 나에게 물었었지.

나한테 할 말 없어?

아무리 바보에 쑥맥이어도 그 때만큼은 내가 할 말을 알았다.

나랑 사귈래? 그리고 이어지는 10초간의 침묵.

넌 내 팔뚝을 꼬집으며 그 말이 그렇게 어려웠냐고 투덜댔다.

14살,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어색한 그 감정이 커지기 시작한 때였다.

손을 잡는 데에는 100일이 넘게 걸린 것 같았다.

집을 바래다 주다가 자꾸 네 손등과 내 손등이 스치길래, 너의 엄지를 먼저 감싸고 살짝 떨리기에 나머지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그 땐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집 앞에서 손만 5분은 넘게 잡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우리는 동네 공식 커플이 되어있었다.

1000일이 넘게 사귄 커플은 그 또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1지망부터 마지막까지 같은 학교를 적어냈고 운 좋게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받았었다.

야자가 끝나고 가로등 밑에서 살짝 입을 맞춘 것,

쉬는 시간이면 네 교실로 가 엎드려 자는 너를 바라본 것,

손 잡고 매점 주위를 돌던 것,

수학여행 날 방에서 빠져나와 너가 내 어깨에 기대 제주도 하늘을 바라본 것.

모의고사날 야자가 없으면 카페에 가 오답노트를 만든다면서 결국엔 네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얘기만 한 것.

나는 내 고등학생 시절을 몽땅 너로 채웠다.

수능을 볼 때쯤 우리는 6년차 커플이 됐다.

부모님끼리 안부도 주고 받고 명절이면 서로의 집에 가 명절음식을 먹고 세벳돈도 받았었다.

난 어느 순간부터 너의 부모님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두세달에 한 번은 자고 오기도 했다.

그 때부터 난 너와 결혼하면 어떨까란 상상을 한 것 같다.

수능날 아침을 먹고 체했던 나는 수능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반면 너는 생에 최고 점수를 받아 그토록 원하던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했다.

난 원서를 쓰지 않았다. 꼼짝없이 재수를 할 판이었다.

너가 합격증을 받고 난 학원에 등록하고 나자 네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넌 내 손을 꼭 잡아주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정말 넌 일주일에 세 번은 학원 앞에서 날 기다리고 모의고사 날이면 간식을 잔뜩 싸오고, 내가 답장이 없어도 그날 뭘 먹었는지, 뭘 하고 있는지 꼬박꼬박 알려주었다.

너 덕분인지는 몰라도 난 이 학교에 오게 됐다.

합격소식을 들은 난 가장 먼저 너에게 전화를 했다.

난 울지 않았는데 넌 전화 너머로 펑펑 울었었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나도 답했다. 내가 더 사랑하고 더 고맙다고.

새내기인 나, 2학년이었던 너.

미팅이 그렇게 재밌다는데 한 번 나가보라던 너.

내가 장난으로 진짜 나간다? 라고 말하자 잔뜩 삐져 실컷 나가라던 너.

내가 어떻게 미팅을 나갔겠었어.
동기들에게 나는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떠들고 다녔었는데말야.

남들은 새내기 때 술을 배우고 사람을 배운다지만 난 너에게 사랑을 배웠다.

사실 7년전부터 가르쳐줬던 너지만 2000일을 채우고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설렘이, 다정함이, 뜨거움이 나는 늘 신기했다.

사랑이란 단어는 흔하지만 난 그 단어를 생각하면 그냥 너가 떠올랐다.

1학년을 마치고 그 다음 해 2월 난 입대했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넌 대수롭지 않게 ‘그냥 여행간 셈 치지 뭐.’ 라며 호국요람 글자 밑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네 부모님께 들은 말이지만 넌 일주일 넘게 밥도 못 먹고 펑펑 울기만 했다면서.

나도 똑같았어.

10시에 누우면 울며 뒤척이다가 12시가 넘어 잤고 처음으로 포상전화를 한 날은 5분동안 너가 한 말을 한 단어도 빠짐없이 되새김질했어.

수료식날은 무슨 상견례도 아니고 너의 부모님과 너, 우리 부모님이 모두 와서 마치 약혼식이라도 하는 듯 했지.

왜 이렇게 탔냐며 네 화장품을 꺼내 나에게 발라주던 손길,

하나라도 더 먹고 들어가라며 음식을 떠먹여주던 너의 어머니,

너가 그냥 내 아들해라 라던 너의 아버지,

질세라 너에게 그냥 내 딸 하라던 우리 아버지.

난 그 날 나에게 다른 가족이 있을수도 있단 걸 알았어.

휴가 때마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며 얼굴만 비춘 뒤 너에게로 달려갔지.

신병위로휴가, 1차정기, 포상, 2차정기.. 휴가 때 너 얼굴을 보지 않은 날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군인일 때 받은 편지는 200통이 꼬박 넘어갔다.

선임들은 진짜 결혼하라며 자기들을 꼭 불러 달라 했었다.

넌 우리 부대에서 꽤나 유명인사였다.

제대하는 날 넌 말없이 날 꽉 안아주고, 조용히 울며 수고했다고 토닥였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펑펑 울면서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엄청 많았는데 막상 네 얼굴을 보니 딱 그 말밖에 나오지 않더라.

10년이란 시간은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확인의 시간이었다.

10년동안 어떻게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아직도 손을 잡을 때면 난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걸까.

너의 집에 찾아가 큰 절을 올리고 넌 또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고. 한 달 뒤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고.

신혼여행으로 칠지 말지 다퉜었다.

나는 찬성, 너는 반대.

나와 신혼여행은 무조건 유럽으로 가야된다고 우겼던 너. 왜냐고 물으니 일본은 너무 가깝단다.

재수 1년, 군대 2년을 기다렸는데 일본은 너무 가깝다고 우겼던 너.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래, 너가 가고 싶던 프랑스도 가고 영국도 가자라며 열심히 돈을 벌겠노라 약속했다.

가끔 사람들이 묻곤 한다.

너에게도 묻곤 한다.

한 사람이랑만 연애한게 아깝지 않냐고.

그럼 우린 미리 말을 맞춘 것도 아닌데 똑같은 대답을 한다.

아까운데, 솔직히 아까운데, 너무 확실하다고. 3000일, 또 10년을 훌쩍 넘겨 20년은 챙길까 말까 고민하는 지금도 이 사람을 사랑하는게 확실하다고.

다른 사람이랑 있는 걸 상상하면 도저히 내가 내 자신이 아닌 것 같다고.

난 네가 없는 나를, 아니 내 삶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너와 보낸 봄부터 겨울까지, 10번이 넘어가는데 어떻게 내가 너 없는 봄의 벚꽃을, 여름의 햇살을, 가을의 단풍을, 겨울의 눈을 생각할 수 있겠어.

이제 너와 안 해본 건 결혼 하나가 전부인데.

“야, 너 결혼 한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