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아버지를 뵜다는 이야기를 보고
나도 생각난 김에 적어보는 이야기임.
편의상 음슴반말로 적겠음. 요샌 그게 쓰기도 편하고 보기도 편한 것 같더라.
일단 우리 아버지는 굉장히 엄하셨던 분이셨음.
여타 아버님들이 그러셨듯이
예의, 면학, 성실 이런 것을 매우 엄격하셨었고
어렸을 때 부터 뭐 가훈, 집안내력 몇대손 이런 것들을 많이 가르쳐주셨지.
그런 아버지가 굉장히 싫었었음.
본인도, 굉장히 자유분방한 성격에 사실 공부와는 좀 안맞기도 했었고
억지로 엄격한 아버지의 매질에 못 이겨서 겨우겨우 중간이나 가는 성적에다가
뭐 솔직히 진짜 양반집인지는 모르겠어도 장손, 장남에 내가 사촌동생들도 다 챙겨야한다는 둥
그런 압박 아닌 압박을 받으며 조신하게 근엄하게 아주 어릴때부터 성격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강요받았었지.
그러다 IMF 이 후로 아버지는 퇴직하시고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손대는 사업,장사 족족 다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남는건 술만 술만 드시다가 5년 후 같이 돌아가셨네.
아버지 따라 이사를 어찌나 댕겼던가 중학교 한 학기만 마치기도 전에 그냥 전학간 학교도 많았고
그렇게 마지막으로 할머니댁에 맡겨진 후 칭찬 한마디 듣지 못했던 아버지한테서 어쩐일로 전화가 와서
“니가 큰형이니까 동생 잘 챙겨야 한다” 는 말을 마지막으로 돌연 돌아가셨지
사실 그 때 내 나이가 15살이었고 어머니도 돌아가신지 얼마 안된 마당에 슬픈 감정보단 원통한 감정이 좀 더 컸음.
나보고 앞으로 어쩌라고~~! 이러면서 엄청 울었던 것 같다.
남들은 부부금슬이 워낙 좋으면 같이 간다더라 이러면서 되도않는 위로를 받긴 했지만 그렇게 슬픈 감정보다는
진짜 막막하더라. 너무 미웠고, 맨 무뚝뚝하고 우왁스런 아버지의 모습만 보다가 허망하게 돌아가신 모습을 보니 참 어이도 없었고
짜증나고 화나고 원망스럽고.. 그렇게 보내드렸지.
그 후엔 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하고 산업체 공장으로 들어가서 이런 일, 저런 일 하다가
나이먹고 군대도 가고 검정고시로 고졸도 따고
동생 대학도 보내고 그러고 그럭저럭 할머니 할아버지 좀 챙겨드리고
아무 문제 없이 하루하루 계획한대로 살아가던 그날 밤이었는데
아버지가 꿈에 나오심.
오. 내가 항상 아버지 유골함만 보면 오열을 하고, 군대 전역 후 사진보면서 “술이나 한잔 사주지” 이러면서 운적이 몇번은 있어도
막상 꿈에서 아버지를 딱 맞닥드리니까 여전히 무뚝뚝하시고 할 말도 없고 그러대.
그 날 꿈은 아직도 기억에 나는게 차를 타고 아버지와 동생과 나 셋이서 여행을 가는 꿈이었음.
그 오래된 현대 엑셀 선팅도 안한 어항차. 뒷자석엔 시큼한 모과향과 아버지 담배냄새로 머리 아팠던 그차.
여전히 나는 투덜투덜 짜증만 내고 동생은 잠만 자고 그 묵묵한 느낌에 그냥 무덤덤한 얼굴로 운전만 하시던 아버지.
그렇게 첫 꿈에서 깼다.
거 뭐라도 말씀이라도 하시지. 처음으로 꿈에 나오셔서 또 암말도 없이 그냥 가시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음.
그러고 나서 또 한 달 쯤 지났을까. 되게 이른 날짜내로 아버지가 꿈에 한번 더 나오시더라고.
이번에는 오랜만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소풍나간 마냥 풀밭에서 돗자리 깔아놓고 노는 모양새의 꿈이었음.
동생이랑 같이 공차고 엄마는 다친다고 뛰지말라고 하시고.. 그럼 애기들 한테 공을 주질 말던가.
쨌든 되게 화사하고 예쁜 꿈이었다.
그러다 문득 꿈에서 자각을 하게 됐음.
이거 꿈이구나, 두분은 지금 돌아가셨는데..
그 생각이 확 들어차니 속이 너무 뜨끈해지는 거야.
와.. 이거 뭐라도 말을 해야겠다, 해야겠다, 뭐라고하지, 뭐라할까
생각하면서 뒷모습 뒤로 졸졸 쫓아만 다니다가 꿈에서 딱 깼음..
이게 그렇더라.
어쩌면 사실 말을 안하고 무덤덤하게 아무렇지않게 털어냈다 한들 사실은 그렇더라.
사실은 슬프고 아프고 서럽고 그렇더라고..
너무 아쉬운거야. 뭐라도 말해볼걸. 아.. 차라리 안아볼걸.. 하다못해 욕이라도 해볼걸..
다음에 만일에 다음에 또 꿈에 나타나시면 그 땐 지금처럼 허망하게 깨지 않을거라고 아침부터 줄창 줄담배만 빨아댔었다.
그 후 정신없이 한 2년 정도 시간이 흘렀네.
회사도 나름대로 잘 다녀서 서울로도 이사가게 됐고 서울살이하면서 그토록 바라던
넥타이 정장의 지하철 출퇴근 과 6시 퇴근 – 실제로는 야근의 연속이었지만 – 이라는 인생목표를 이뤄냈다고 어어엄청 뿌듯해서
힘든지도 몰랐지. 돈모아서 집살생각, 결혼은 어떻게 해야할까 등등의 청사진으로 하루를 살아가던 평범한 어느 날 이었는데
그 때 예고도 없이 또 꿈에 나타나셨더라.
이번에는 아버지 혼자 오셨었어.
장소는 어느 저수지? 호숫가? 왜 그런데 있잖아 물가 근처 민박집에서 물 위에 평상깔아놓고
닭백숙 먹는 그런 곳.
사람들도 많은 북적북적 한 식당에 동생은 어린나이의 모습으로 막 여기저기 뛰다니고 있었고
나는 그런 동생에게 밥먹을 땐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핀잔을 주곤 했지.
아버지는 여전히 말씀도 없으시고 묵묵하게 소주만 드시더라고.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불편하다 꽁시랑꽁시랑 하다가
아버지가 잠깐 둘이서 걷자고 하시는 거야.
그렇게 아버지랑 가볍게 강변에서 산책을 했음.
“공부는 잘 되냐?”
“네”
“요새 힘든거 있냐?”
“아니요”
“그래 동생 니가 잘 챙기고”
“네”
어디 여타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처럼 몇마디 간단한 상투적인 대화를 마치고
주섬주섬 동생 챙겨서 아버지 배웅하러 나루터에 갔음.
왜 그 목조로 건조된 나룻배인데 돛은 없고 길다란 노 로 바닥을 긁어 나가는 그 나룻배.
그 배를 타고 그냥
“간다”
한마디 하시고 슥슥 나아가시더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 엄청 찝찝하고 엄청 답답하고 뭐 하나 빠진거 같고 이상하다..이상하다 하면서 속으로 꿍시렁하다가
퍼뜩.
깨달은 거야.
그 때.
꿈에서.
여기 꿈이다.
아버지는 진즉 돌아가셨다.
이거 지금 꿈이다.
이거 말해야 한다.
지금 아니면 왠지 안될 것 같다. 지금이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왜 그런거 있잖아. 꿈에서 쌈박질하면 주먹이 느리게 나가고 힘도 없고 생각대로 안움직여지고
딱 그랬어.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계속 안나와.
그냥 농아처럼 어버버 어버버 하다가
노래방에서 목소리 안나올때 목젖 누르잖아?
그렇게 목 왕창 꼬집어가며 안움직이는 혓바닥을 뭉태기로 씹어대고 겨우 겨우
멀어져 가는 아버지 뒷모습 보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
“아빠. 사실 사랑해.”
토씨하나 안틀리고 기억남.
그러더니 날보고 손흔들며 웃으시더라.
사실 아버지 웃는 모습은 술자리에서 친구분들 앞에서 술 거나하게 취하셔서는 나를 부둥켜 안고
“얘가 효자야” 하는 거 밖에 기억이 안났었는데
그날 그 꿈에서도 그렇게 거무잡잡한 입술 사이로 니코틴낀 그 누런 치아가 보이게 아주 살짝
날보고 손흔들며 웃으시더라.
그렇게 꿈에서 깼다. 깨자마자 너무 생생해서 아침부터 펑펑 울어댔다.
왠지 속은 후련하고 시원한데 그래도 뭔가 섭섭한게 차올라서 얼마나 울어댔는가 눈이 벌겋게 붓고 목소리가 다 쉬어서
출근하니까 사람들이 어제 술 많이 마셨냐고 이따 점심에 쌀국수로 해장하러 가자고 하더라고..
그 이후론 꿈에 안나오시더라. 지금은 결혼도 하고 고향에 내려와 살아서 다복다복 납골당 찾아가는데도
안나오시더라
그래서 사실 좀 섭섭한 면이 없잖아 있긴 있다.
좀 칭찬 좀 해주시지.. 고생했다고 어깨나 좀 토닥여 주시지.. 무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래서 말인데 뭐 그냥 이렇게 된거 여기다가 썰 마치는 김에 아버지한테 그때 더 못했던 말 남겨보자면
아부지요. 나 건강하게 잘먹고 잘살고 비록 전셋집이지만 번듯하게 아파트도 구하고 동생 대학 졸업은 지가 하기 싫대서
안시켰지 내가 안시킨거 아니구요. 아부지 며느리 이쁜 사람 데려다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근데요.
나 진짜 힘들었거든요….
한번만 더 오셔서 고생했다고 해주심 안됩니까..
그럼 그때 내가 정신 차릴란가 모르겠는데 내 그때 아부지랑 소주한잔 같이 할께요.
그리고..
에이.. 아니다 그냥 뭐 에이 그냥 뻘글인데 뭐..
암튼.
어쨋든.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나이와 내가 먹은 나이가 점점 가까워 지는데
내가 만일 그 때의 나이와 같아진다면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가끔은 우리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