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만났을 때 재미가 예전같지 않다는 말들이 참으로 많은데
20대 초반 때 친구들과 놀 때와 30대 초중반 이후에 친구와 노는건 정말로 많은 차이가 있죠.
호주머니에 달랑 돈 몇천원 가지고도 재밌고 지루하지 않게 놀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한도 넉넉한 카드와
가득찬 캐쉬로 돼지처럼 뚱뚱한 지갑을 들고 나가도 한없이 지루하고,
일찍이 집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고,
씁씁한 뒷말이 남는 술자리만 늘어나죠.
생각해보면 20대 초반 때는 다들 근거없는 희망에 가득차서 조금씩은 들뜬채로 살아갔던 것 같은 희미한 기억이 납니다.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 모르고,
쉽지 않을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풍파를 헤쳐 나갈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잘될 것 같고,
30살이 되면 뭐가 되어도 되어 있을 것 같고,
30살이 오지 않았으면 하면사도 찌질한 지금과는 다른 근사한 미래가 얼른 다가와줬으면 하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희망?
그 시절에는 누구나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고 지금보다 분명히 나아진 미래가 있을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러..
30대 초중반을 넘은 지금 다시 만난 친구들은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지 않더군요.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세월이 스스로에 대해 냉혹한 견적서를 발부해 버렸거든요.
내 능력으로 얻어낼 수 있는 성취,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과 그 역사를 토대로 예측되는 앞으로 얻어낼 것으로 기대되는 수치,
사회에서 생활인으러 구르면서 계산이 끝나버린, 들어오고, 나가고, 모두 다 제하고 내 손에 떨어지는 진짜 배기들.
이 시점에서 다들 깨달은 겁니다.
내 인생에서 더 이상 뒤통수를 때려저리는 강력한 반전은 기대하기 힘들겠구나.
그 순간부터 인생이 한없이, 진짜 재미 없어지는거죠.
희망과 꿈을 안주로 삼기에는 상상력에 제한을 걸어버릴만한 명백한 근거가 너무 오래도록 많이 쌓여있거든요.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재미가 없어집니다.
발전적인 화제가 안 나오거든요.
미래보다는 좋았던 시절.
아무것도 없었지만 꿈과 희망만으로 즐거웠던 시절을 꺼내서 추억팔이를 합니다.
그것도 곧 지겨워지죠. 꽃 노래도 2절부터는 지겹거든요.
팔아볼만한 추억이 다 떨어지고 한탄과 징징거림이 이어집니다.
공감과 성토가 이어지지만 이것도 흥미를 오래 붙들어 놓지는 못하죠.
남자는 여자와 달리 공감만으로 내적 갈증을 채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집에 가서 영화나 드라마, 음악을 틉니다.
술자리에서 생겨난 공허감을 매우려고 안간힘을 쓰죠.
어느순간 의자에 퍼더버리고 앉아 코딱지나 파면서 집중을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껍데기만 다를 뿐 다 거기서 거기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랜시간동안 너무 많은 작품을 접하고 경험한겁니다.
작품의 큼직한 줄기나 클리셰들은 오랜시간동안 사람들에게 잘 팔리는 패턴 위주로 분석되고 고착화 되었기 때문에
종내에서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설정이나 디테일로 차별화를 두는 스타일이 많아지고 초기에는 이건 못본거네 참신해!하고 집어들지반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되는거죠.
결국 똑같네 이것도.. 뭘해도 새롭지가 않은겁니다.
몇 십년의 세월동안 너무 많은걸 보고, 듣고, 겪었고 해봤기 때문이죠.
먹고 살기위해 하는 일은 힘들고 지겹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지루하고 의미있는 가치를 찾기 점점 힘들어집니다.
뭘 해도 다 해본 것, 먹어본 것 같고 잠시 새로운걸 찾았다 싶어도 예전에 겪었던 걸 미세하게 변형한 개량버전이라는걸 깨닫게 됩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나 자신도 새롭지 않죠.
몸은 아직 젊은이의 것인데 열정과 흥미는 젊은이의 그것이 아닌 것이죠.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아직 10대다!라고 애기하는건 거짓말입니다.
열정과 호기심은 10대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몸보다 마음이 2배 3배는 더 늙어버린건데 스스로 자각을 못할 뿐이죠.
삶의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몸보다 마음의 성기가 더 급속하게 제 기능을 잃어가는 기분이랄까요?
드물게 가지는 술자리에서 ‘왕년’을 이야기하는 분들을 참 많이 봅니다.
검증 할 방법은 없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죠.
아무도 ‘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앞으로’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당연히 더 없구요.
저 분들은 자신의 ‘현실’이 불편한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과거, 과거, 과거, 끝없는 과거의 연속.
관찰해보니 사회적으로 어지간히 잘나가지 않은 사람 아니고서는 ‘현실’을 어필하는 사람은 참 드물더군요.
제 눈에 비치는 사람들은 추억의 책갈피 속에 머무른채 영영 그곳에 맴도는 지박령처럼 보였습니다.
눈을 돌려 스스로를 봅니다.
열정과 영혼은 세월의 격류 속에서 퇴색되고 풍화되었고
무엇을 시작하든,
체험하든 어린시절의 반짝이는 호기심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시큰둥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더 잦겠죠.
단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왕년’보다는 ‘현실’을 많이 자주 생각하고
시큰둥하가면 그저 시큰둥한 채로도 ‘미래’를 꿈꾸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