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배고픔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1986~7년도의 어느 날이었다. 북한 국가보위부로부터 중국 연변 자치주 변방대대에 긴급협조 요청이 들어왔다.
내용은 “두만강 연선에서 군무 중이던 조선인민군 경비부대 xx 중대의 정치지도원이 권총 2자루와
탄알 수백 발을 지니고 도강하여 중국 경내로 들어갔으니 시급히 체포해주기를 중국 변방부대에 요청한다.”였다.
연변 변방부대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당시는 북한인들의 탈북이 가물에 콩 나듯 거의 없을 때였고 같은 공산권 사회주의 형제 나라에서
군인이 당과 정부를 배신하고 총을 휴대하고 탈출한다는 자체가 크나큰 충격으로 안겨 온거다.
더욱이 무기를 휴대했고 총알까지 많이 휴대했다니 말이다.
거기에다 북한 측에서 수차나 거듭 강조한 건 탈북한 군관이 뛰어난 명사수로
사격 실력이 정말로 뛰어나다는 거다.
당시 조선족 자치주 특성상 무장경찰 변방지대 대대장부터 산하 변방부대 지휘관들은
거의 모두 조선족 장교들이었고
전사(戰士)급 군인들은 대부분 내륙지방에서 군복무하러 온 18세 이상의 한족 청년들이었다.
이것이 90년대까지 쭉 이어져 오다가 변방지대 대대장이
남한과의 간첩 문제로 체포되어 총살당한 후 많이 바뀌었다.
(이 내막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고 남한에도 책임이 있고 언급을 꺼리는 줄 알기에 이쯤만 하자.)
그래서 조선족 변방부대 지휘관들이 군인들을 거느리고 변경을 이 잡듯이 뒤지고
요해 교통로를 모조리 차단했으나 몇 주가 지나도 탈북군관(장교)의 흔적조차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럼 두만강을 건너온 탈북장교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사실 군인 생활을 오래했고 반탐능력까지 갖추고 있던 장교는 국경에서
수십 리 떨어진 산속으로 들어가서 그냥 꼼짝하지 않고 잠입해 있은 거다.
국경 연선에 난리가 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시간이 흘러 그 기세가 꺾이기를 잠자코 기다린 거였다.
하지만 인간이 나비처럼 이슬만 먹고 살 수가 없고 북한군이 기르는 염소처럼 풀과 나뭇잎만 뜯어 먹고 살 수 없기에 몇 주가 지나자 탈북장교는 슬그머니 산속의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산속의 어느 인삼장 막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약초를 캐고 인삼밭을 지키는, 이가 몇 대 없는 한족 영감이 있었다.
아직 산 아래 일은 모르고 있지만, 영감은 눈치로 이 불청객이 그냥 보통사람이 아니고 왠지 느낌상 강 건너 조선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키도 크고 날파람 있게 생기고 또 눈매를 보아도 그렇게 호락호락 할 것 같지 않으니 절대 내색은 내지 못하고 찾아온 손님과 함께 십여 일간 밥을 해 먹은 것이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니 쌀독은 날마다 내려가다가 결국 텅텅 비게 되었고 영감은 마을로 내려가 쌀을 가져오겠다고 말했다.(연변지역에선 토박이 한족들도 조선말로 옛말까지 구수하게 할 정도로 잘함.)
그 남정은 잠자코 있다가 그러라고 했고 말없이 마당에서 나무를 팼다.
이 한족 영감은 화룡시 임업국 원수림장에 가서 신고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화룡시 변방부대에서 이 정보를 입수하고 수 대의 군용찦차에 무장한 군인들 가득 싣고서 쏜살같이 달려와 그 영감을 대동하고 그 산속으로 쳐들어갔다.
물론 산막으로 거의 갈 무렵 차를 세우고 모두 걸어서 살금살금 산막으로 접근했고..
결론은 허탕이었다. 뭐 닭 쫓던 강아지 담장 쳐다보는 격이라고 해야 할지..
그후 알게 되었지만, 이 인민군 군관동무는 산 중턱에 앉아서 그 상황을 빤히 다 내려다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감이 겁나서 집에서 한주 지나서 다시 산막으로 올라갔는데 그 손님이 다시 찾아왔고 손이야 발이야 빌자 군인은 며칠 기거하면서 또 쌀이 떨어질 때까지 있을듯 하다가 홀연 쌀을 좀 챙겨가지고 떠났다.
군인이 떠난지 몇 시간 후 변방대 군인들이 다시 들이닥쳤지만, 또 헛물을 켰고..
그리고 또 군인의 행적은 가뭇없이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 신출귀몰하기에 모두 잡을 수가 없었고 변방대 지휘관들은 탈북군인이
언녕 변경을 벗어내 내륙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이젠 그냥 형식 삼아 길에서만 차를 몰고 다니며 순찰하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원수림장(임산작업소)에서 신흥동이라는 마을로 넘어가는 곳에 커다란 산이 있는데 그곳으로 자동차 길이 나 있고 소골령 령대로 이름난 곳이 있었다.
강원도 대관령처럼 말이다.
변방대대 지프 몇 대가 소골령을 막 넘어서 관성으로 내리막길로 내려오고 있는데 홀연 키가 껑충한 농민 한 명이 저벅저벅 길가로 올라가는 것을 스쳐지나게 되었다.
그냥 평범한 연변지역의 농민의 허술한 옷차림에 무심한 듯 지나가는 그 모습에 그 누구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고 또 내리막의 특성상 급정거 할 수도 없고 그냥 내려가는데 조선족 지휘관이 눈을 깜빡이다가 문득 차를 세우라고 명령했다.
“방금 그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 농민이라 하기에는 뭔가 좀 느낌이 달랐고 이런 산속에 홀로 저렇게 걸어가는 게 이상하지 않냐? 차를 돌려 다시 가보자!”
급기야 찦차들이 좁은 길에서 차 머리를 돌려 다시 굽이굽이 산 오르막길을 전속력으로 올라가는데 한참 달려도 아까 그 농민이 보이지 않았다.
대뜸 느낌이 온 지휘관이 차에서 내려 군인들한테 길로 늘여서 산 중턱 길의 위쪽과 길 아래 방향에서 사람이 도망가는 인기척이 있나 들어보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 총을 지닌 군인의 본능 상 도망가면 아래쪽보다 방어하기 좋은 위쪽으로 올라갔을 수 있으니 위쪽을 더 중시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찦차에 설치한 무전기로 급히 화룡 시내와 각지의 변방부대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물론 이 행동과 소리들을 바로 얼마 위의 산 중턱 커다란 돌 뒤에 은신한 탈북장교는 다 보고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위치가 완전히 탄로나지 않은 시점에서 급히 뛰어 일어나 인기척을 내면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지프가 눈치를 차리고 급히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군관은 미처 그곳을 재빨리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잘 숨어 지내던 탈북군관의 실책이라면 현지의 농민들은 보통 산길을 넘기보다 오솔길을 이용하거나 달구지 경운기 등을 이용하고 그런 대낮에 이 산속의 소골령을 잘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탈북장교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약초 캐는 괭이나 비닐자루 하나 메고 다리를 걷어 올리고 온몸이 흠뻑 젖은채 걸어갔다면 의심을 덜 받을 수 있었는데 그것까지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다.
거기에 내리막을 내려오는 찦차가 시동을 끄고 관성으로 급히 내려왔기에 뒤늦게 차를 보고 미처 피하지 못한 것도 의심받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변방대 군인들이 여기저기 동정을 살피고 수색하는 사이 주변 산 중턱을 살펴보던 지휘관이 전사(戰士)들에게 저 위에 있는 커다란 돌 뒤를 살펴보라고 명령을 했고 81식 자동보총(소총)을 쳐든 군인들이 풀과 듬성듬성 난 굵직한 나무들을 헤치며 한 발 한 발 그쪽으로 향해갔다.
군인들이 2~30m를 사이 두고 접근했을 때 문득 그 돌 뒤에서 우렁찬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 조금만 더 오면 총을 쏴 사살하겠다! ”
그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엎디었고 지휘관은 그 돌 뒤에 탈북군관이 숨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바람에 다른 곳을 뒤지고 있던 군인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더욱 넓게 올라가면서 그곳을 포위해갔다.
탈북군관이 그만 멈추라고 재차 경고했으나 바로 앞의 군인들만 숨어서 총을 겨냥할 뿐 주변으로 포위하는 군인들은 계속 그곳을 향해 좁혀갔다.
자기의 경고가 더 이상 먹히지 않자 탈북장교는 결국 총을 발사했고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첫 방에 군용찦차의 후사경(백미러가)이 박살났다.
모두가 깜짝 놀랐고 급히 고개를 숙이며 여기저기 은폐했다.
현장 지휘관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더 이상 총을 쏘지 말고 투항하라!”
“네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쏴서 죽이면 넌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그대로 투항하라.”
하지만 이미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탈북했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탈북군관이 그런 권고에 대뜸 총을 놓고 투항할 리는 만무하고 계속 그대로 대치하고 있었다.
지휘관이 계속 지원을 재촉하면서 군인들에게 포위망을 좁히라고 명령하는데 또 다시 총소리가 울리더니 이번엔 다른 쪽 후사경이 탕~ 하고 박살이 났다.
군인들은 첫 총알이 후사경을 부수자 그것이 우연히 맞은 거라 생각했지만 두 번째까지 정확히 후사경이 박살나자 탈북군인이 겨낭하고 쏘는 것을 알아차리고 기겁한 표정이었다.
그건 그 군인이 몸을 은신한 돌덩이에서부터 길 아래 지프차 있는데까지 거리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소총도 아니고 권총으로 그 작은걸 면 바로 맞추었다는건 사격실력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라는 걸 말해줬다.
아무리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들이라지만 귀신같은 그 사격 솜씨에 감히 죽으려고 무작정 들어가는 병사가 없었다.
탈북군관이 이제 더 이상 양보는 없다고 명확히 경고했기 때문이다.
“ 더이상 들어오면 이번엔 사람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쏜다! 난 이미 죽을 각오를 했다.
나를 잡으려면 너희 여러 명의 목숨을 내놓아야 할것이며 난 절대로 산채로 너들한테 잡히지 않을 거다.
당장 철수해서 내려가라!”
현장지휘관도 철수하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더 이상 무작정 밀고 올라가고 포위망을 좁히면 자기 수하들이 적잖게 사상자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자명한 일이라그 상태를 유지한 채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대치한 상태에서 회유하고 거절하고 경고하고 시간이 흐르는 사이 화룡시 변방지대 대대장과 무장경찰 군인들을 태운 차량들이 속속 도착했다.
대대장은 상황을 다 듣고 나서 지휘관들과 잠깐 토론을 하더니 잠깐 위쪽으로 올라가 그 탈북군관한테 소리쳤다.
“당신은 이미 겹겹이 포위되었으니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총을 내려놓고 투항하라!
당신이 우리 군인 몇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당신한테 그 무슨 이익이 있겠소?
하지만 총을 내려놓고 투항하면 우리는 당신을 좋게 처리할 수 있고 생명은 보존할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총을 어서 내려놓소!”
그러자 잠시 침묵을 흐르다가 커다란 돌 뒤에서 탈북군관이 말했다.
“나도 당신들을 쏴죽일 생각이 없고 당신들과 총싸움하려고 여기 건너온 것이 아니오.
내가 내 나라에 있지 못하게 되어 국경을 넘었으니 내가 무사히 타국으로 빠져 나갈 수 있게 나를 그냥 놓아주시오.
내가 이 땅의 인명을 털끝만치도 해치지 않고 고스란히 몸만 빠져나가겠소.
산막의 영감도 나를 신고했지만 나는 그걸 알고도 그를 전혀 해코지하지 않았소.
그러니 나의 약속을 믿고 그냥 물러가면 나는 나대로 중국의 법을 조금도 어기지 않고 이 땅을 빠져나갈 것이요.“
그러자 대대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당신 스스로 생각해봐도 뻔하지 않은가?
우리는 국가의 명을 받고 국경을 지키는 변방군인이요.
무기를 가지고 비법 월경한 군인을 포위했다가 그냥 아무 말 없이 풀어준다는것이 원칙에도 어긋나고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인 건 당신도 너무 잘 알지 않소?
반대로 중국인이 강을 건너갔다가 경비대에 포위당해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하면 당신들 입장에선 그냥 물러갈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당신의 생명을 걱정해서 총을 놓아라고 협상하는 것이지 끝까지 당신이 이렇게 나오면 수하에게 공격하라고 명을 할 수밖에 없소.
군인이 임무를 수행하다 죽을 수 있는 것은 응당 각오하고 있지 않겠소?
나는 지금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당신한테 총을 놓으라고 권고하는 거요.“
그러자 탈북군관도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총을 놓고 투항하면 당신들한테 잡혀서 두만강 너머로 압송될 터인테 내가 죽을 줄 빤히 알면서 순순히 내 손의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하기에 당신들도 나 때문에 애매한 목숨 여러 명을 잃지 말고 나도 죽지 말고 서로 물러서자는 말이요.
정말 그대로 공격해오면 나도 기필코 반격할 것이며 적이도 6~7명은 나한테 죽을 각오를 해야 하오.
절대 헛소리가 아니오.“
그렇게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팽팽한 기 싸움과 권고가 계속 되었지만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변방대대 대대장이 지휘관들과 몇 번 쑥덕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당신이 바라는 건 조선땅에 호송 당하지 않는것이 아닌가?
그럼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소.
당신이 총을 내려놓고 스스로 투항하면 조선으로 보내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소!”
…
잠자코 침묵이 흐르다가 탈북군관이 반문하듯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야 하오? 나를 정녕 믿게 하려면 당신들이 물러서면 그만 아니오?
나를 기어코 잡겠다고 하면서 조선으로 호송을 안 시킨다고 하면 내가 무엇을 근거로 그걸 믿을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대대장이 말했다.
“ 당신한테는 지금 다른 선택이 없지 않은가? 우리 말을 믿고 총을 내려놓냐?
아니면 총을 들고 싸우다 죽느냐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당신 스스로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느 걸 선택하겠소?”
변방대 대대장의 말을 믿기가 어렵지만, 그게 아니면 다른 선택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선택이란 지금 바로 모든 걸 거절하고 끝까지 총을 들고 나 죽고 너희들도 죽자 그건데..
아무리 죽기를 각오했다지만 다른 희망이 보이는데 그걸 스스로 포기하고 너무 빤히 알리는 죽음을 바로 선택하기란 진짜 주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약속이 진짜냐고 다시 한번 확인하자 대대장은
“내 명예를 걸고서 당신을 조선 측에 보내지 않겠다고 장담하겠소!
당신은 우리 측 변방군인들에게 체포되었고 당신을 처리할 권한은 우리한테 있지 조선 측에서 절대 관여할 문제가 아니오.
난 변방대 지휘관으로서 당신한테 감히 보증하오!”
하고 확신에 차서 장담했다.
한참이나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망설이던 탈북군관이 권고에 따르겠다고 대답하고는 두 손을 쳐들고 서서히 돌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무장경찰 군인들이 총을 겨냥한 채 사처에서 다가갔다.
권총과 총알까지 압수하고 군인들이 수갑을 채우고 길까지 내려오는 데 변방대 대대장이 그 수갑을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 스스로 총을 내려놓았는데 수갑을 왜 채우냐? 풀어줘라! ”
그리고는 자기 차 바로 옆자리에 앉혀서 시가지로 향했다.
수갑을 풀어줘라고 했을 때부터 탈북군관의 기색과 긴장이 차츰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대대장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상다리 부러지게 술상을 차렸고 변방대와 공안국의 간부들이 가득 자리에 앉아 탈북군관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동안 많이 굶었을 텐데 마음껏 먹고 마시고 하라면서 맛있는 것을 계속 권하다가 문득 대대장이 그 북한군 정치 지도원한테 계속 궁금하던걸 물었다.
“ 그래 어쩌다 탈북하게 되었소?”
공안국의 간부들이며 변방대의 지휘관들이 올챙이 눈을 해가지고 눈이 올롱해서 그 군관을 쳐다보는데 그 정치지도원이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말했다.
“ 헐벗고 굶주린 인민들을 동원하여 다른 일도 아닌 자꾸 김일성의 동상만 세우게 하니 생각해보다 못해 하도나 갑갑하여 여럿이 있는 곳에서 “저런 동상을 자꾸 세우기보다 자금을 모으고 사람을 동원하여 어떻게 잘살 수 있을지 거기에 몰두하는것이 더 좋지 않을까?“
라고 했는데 며칠 후 분위기를 보니 이대로 잡혀가 죽을 수 있고 위에서 체포조가 내려온다는 느낌이 딱 들기에 중대장 권총과 탄알까지 챙겨 갖고서 강을 넘게 된 것입니다. “
그 말을 들은 조선족 지휘관들은 서로 돌아보면서 기가 막힌 듯 한숨을 내쉬었다.
10여 년 전의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생각났을까?
그러면서 “그게 뭐가 틀린 말인데?! 조선은 밤낮 위대한 어버이 수령님하며 난리 부르스를 춰서 이 정로도 쇠락한거 아닌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리다간 언젠간 나라 꼴이 엉망이 되잖은가 보라니깐! ”하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술상의 분위기는 처음에도 그랬지만 그 탈북군관의 얘기를 들은 이후로 그냥 군관과 형제 사이라도 된 듯 엄청 가까워졌고 스스럼없어 졌다.
그리고 이튿날, 또 진수성찬에 고급술을 마시다가 문득 대대장이 그 정치지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찦차 후사경을 2개 박살 냈다고 들었소.
내가 거기 현장에 도착하기 전이더구만.
사격 실력이 대단한 같은데 한번 어느 정도까지인지 직접 볼수 있겠소?
술을 마셔서 괜찮겠소?”
탈북군관이 씨익 미소를 짓더니 말없이 일어섰고 모두들 우르르 화룡시공안국 뒤편의 간수소 울안으로 나갔다.
변방대 무장경찰 전사(戰士)들이 맥주병을 가져다가 저 끝에다가 줄르런히 늘여놓았고 대대장은 옆구리에서 권총을 쓰윽 뽑아서 지도원한테 건넸다.
주변에서 흥미진진해서 바라보는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자동소총을 메고 경계를 서는 무장경찰 군인들도 대대장이 직접 북한 군관한테 권총을 건네는 것을 흥미진진해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다. 수십 명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웃 나라 조선에서 비법 월경해 강을 넘어온 군인이 사격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과연 저기 맥주병들을 깨뜨릴 수 있을지?
지도원은 그 건네준 권총을 잠시 받아들고 쓰윽 지켜보았다.
그도 그것이 하나의 신임인것을 알았다.
대대장이 성격이 호방하고 자신을 믿으니깐 어쩌면 포로인 자기한테 권총까지 넘겨준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다고 장담까지 했고 자기한테 너무 잘해주는 그 대대장한테 마음속으로 무척 고마웠을 지도원이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실력인지?
그냥 쓸모없는 사람이 아닌지 보여주고 싶었을 터다.
하지만 왠지 지도원은 그 권총을 그냥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대대장 동지, 제가 갖고 온 권총을 내어줄 수 있습니까?”했다.
“어? 그..그래? 야, 그 권총 가져오라!”
자신의 권총을 손에 받아든 지도원은 잠시 손에 들고 흔들어 보다가 다시 그 권총을 왼손에 옮 겨쥐었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쓰윽 넣더니 웬 성냥갑을 꺼내 들었다.
모두 쳐다보니 그건 길죽하게 생긴 플라스틱 마우재 성냥곽이었다.
당시는 북한엔 라이터보다 성냥을 주로 쓰고 있었는데 군인들은 젖으면 그냥 버리는 종이갑보다 러시아산 비닐 성냥갑을 더 선호했다.
성냥개비를 그 속에 넣고 긁는 인화지만 곁에 끼워 넣어 쓰는 식이었다.
북한 장사꾼 아줌마들이 가끔 가져오기에 조선족들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지도원은 그 성냥갑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냥 휘익 손을 휘둘러 그걸 하늘로 올려 던졌다.
종이곽이 아니라 무게가 있는터라 꽤나 높게 올라간 성냥갑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찰나 지도원의 왼손의 권총이 들렸다.
탕!!!
연변 자치주 화룡시 공안국 뒤 울안 마당에서 조선인민군 국경수비대 정치지도원이 허공에 던진 비닐 성냥갑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다가 그가 쏜 총알에 맞아 산산히 부셔져 버린 것이다.
하얗게 우수수 떨어지는 성냥갑을 쳐다보면서 주위의 군인들과 경찰 간부들은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입을 딱 벌린 채 차마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명사수 명사수 해도 직접 본 적이 없었으니 진짜 그런 사람 있을까 했었지만 지금 실제로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다.
김일성 장군이 백두산에서 솔방울 던지니 수류탄 되어 추격하던 일본군 토벌대가 사처에 쓰러지고 북한의 국모인 김정숙이 머리에 뜨거운 솥 얹은 채 총을 쏘니 뒤쫒던 일본군이 갈대 쓰러지듯 했다는 뻥은 다들 믿지않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하고 모두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만거다.
그런데 이 지도원이 주변의 지휘관들이 침을 닦을 여유도 주지 않고 그대로 총을 들어 그 맥주병들을 향해 탕탕탕!!! 하고 쏘았는데 맥주병들이 그것도 모가지만 다 날라간것 이었다.
지금 연변 자치주 공안국 국장급 간부가 20여메터 밖에 술병을 세워두고 권총을 쏘았는데 다섯발에 겨우 몸뚱이만 맞히는걸 내가 지켜보며 킥킥 웃었으니 이 지도원의 사격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두 감이 오는가?
그것도 일부러 왼손으로 말이다.
대대장이 왼손잡이인가 물으니 지도원이 웃으면서 “아니, 오른 손잡이입니다.”했다.
이게 한 사람만 구경했으면 뻥이라고 하겠는데 나포 현장에 동원되었던 변방대 지휘관들이며 술 마시러 참석한 공안국 간부들이며 경계를 선 무장경찰 군인들이며 수십 명이 직접 목격한것이니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단다.
(숫자로만 따진다면 사실 김일성장군이 백두산에서 빗자루 타고 눈을 쓸며 날아 다니고 솔방울 던진 얘기는 수백명이 증언하니 그게 사실 더 신빙성이 있겠지만…)
대대장이 지도원이 마음에 들어 더욱 진수성찬을 접대하고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다가 한 침실에서 잠을 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그 사이 윗선에선 탈북군인 처리를 놓고 많은 얘기가 오갔다.
화룡시에서는 변방대 대대장이 시위서기 급에는 못 미쳐도 짱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그 윗선에 길림성무장경찰총대, 연변변방무장경찰지대가 있고 그아래 화룡시 변방무장경찰대(중)대가 있듯이 그 고위간부들에 비하면 이 대대장의 권한은 새발의 피였다.
대대장이 아무리 탈북 정치지도원을 중국에 망명 받아주고 싶고 신변에 두고 싶어해도 이건 애초에 일개 변경도시의 변방대 지휘관이 이래라저래라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북한은 국가보위부 차원에서 중국무장경찰총부(總部)에 탈북자 나포를 긴급요청 했었고 탈북군인 나포소식은 이미 상부에 다 보고가 되었고 북한에서도 이미 연변지역 사처에 있는 조교(朝僑)로 구성된 현지 간첩망을 통해서 다 인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탈북군관 나포 소식을 봉쇄하려고 시도한다 해도 그건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번은 변방부대에서 북한에서 건너온 장사짐이 규정량을 초과했다가 몰수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정부의 관원들의 인맥과 관계망을 통해서 해결되는지라 뇌물도 어느정도 받고 곧 짐도 풀려났는데 물건임자가 물건이 적어졌다고 항의를 해온 거다.
적게 없어졌으면 모르겠는데 낙지 한드럼이 그냥 사라지고 없어졌는데 그 값이 적지않았다.
(북에선 대한민국과는 달리 오징어를 낙지라고 바꿔서 말함.)
경비가 삼엄한 무장경찰부대 울안에 두었는데 일반 도둑이 훔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수사를 해도 좀처럼 알수가 없었는데 며칠 후 지휘관이 출근하다 보니 정문앞 초병들이 하나같이 입을 우물거리면서 질근거리고 있었다.
다가가 따졌더니 글쎄 초병들이 장사꾼 짐차에서 오징어를 드럼채로 내려서 감춰버린거다.
변명하면서 하는 말이
“간부들은 뇌물이라도 받는데 우리는 초소에서 씹을거리라도 좀 있어야 할거 아닙니까?“
하더란다.
이처럼 무심한듯 자기 생각없이 명령에 따르는듯한 일반 군인들도 상급의 일거수 일투족까지다 파악하고 있는데 모든 눈들이 다 서로 보고 알고 알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군인을 잡고서 안잡았다 거짓말 할 수도 없고 놓쳐버렸다 주장할 수도 없는거였다.
(더욱이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로 혈맹이라 칭하는데 그 국가를 배신한 비법월경 군인을 체포를 하고서 그냥 넘겨주지 않는다는건 그 어떤 합당한 핑계를 대기가 어려웠다.
북한과 연변 현지 조교들의 영향력이 어느정도인가 하면, 연변일보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김정일이 1941년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났다고 썼는데 바로 며칠 후 다시 정정보도로 1942년 조선 백두산 밀영 정일봉아래에서 태어났다고 시정할 정도다.)
며칠 후 연변변방지대(邊防支隊)에서 화룡 변방부대에 탈북군인을 변경까지 압송하여 남평해관을 거쳐 북한 측에 인계하라는 명령(공문)이 내려왔다.
대대장이 그러지 말자고 다른 방도가 없겠냐고 요청을 했지만 보기좋게 묵살당했다.
그렇게 드디어 북송하는 날자가 되었고 대대장은 그 현장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위나 위치 상, 그리고 해당사건을 직접 지휘하고 나포까지 한 현장 지휘관이라 끝까지 동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깊은 고민을 거치고 그날 아침 식사를 하는데 정치지도원이 대대장한테 물었다.
“ 대대장 동지, 혹시 안 좋은 일이 있습니까? 표정이 너무 어두운 것 같습니다.”
“아니오, 좀 일이 생각대로 쉽게 풀리지 않아 내가 화를 냈을뿐이요.
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거요. 걱정마오.”
대대장은 고민 끝에 지도원의 북송이 기정사실이라는걸 이미 느끼고 있었기에 두만강가 남평해관까지 지도원이 눈치를 차리지못한 채 아무 말썽없이 가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아침밥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담소를 하다가 대대장이 문득 상부의 결정을 기다리기도 지루한테 우리 함께 한번 당신이 살았던 조국땅도 둘러보고 자기도 변경순찰을 할겸 두만강가로 드라이브 가지않겠냐고 건의했다.
순간 지도원이 조금 움찔 하며 눈치를 살폈으나 대대장의 기색이 전혀 달라지지않고 곁의 군관들이 웃으면서 다른 내색을 안지으니 지도원은 망설이다가 “그럼 그럽시다.”흔쾌히 대답했다.
누가 태어나고 나서 자란 고향땅, 조국땅이 보고싶지않고 그립지 않을까?
그 땅만 생각해도 가슴이 울렁이고 눈물이 나고 두고 온 부모형제, 아내와 자식까지 사무치게 그리울건 인지상정 아닐까?
하지만 산속에서 굶주리며 고생하다가 겨우 구사일생으로 생명의 끈과 희망을 잡은 지 불과 며칠만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도 않은 그 공포의 무서운 땅과 사품치는 두만강을 다시 보고싶은 마음은 지도원한테 꼬물도 없었을터였다.
남한에 와서 자리를 잡고 수년의 시간이 흐르고 남한의 여권으로 여행하는 기분이라면 몰라도 필경 그 땅은 현재까지 탈북군인에겐 지옥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모든걸 다 맡기고 깊이 믿고있는 대대장이 함께 드라이브 하자고 권하는데 “난 피곤하니 당신들끼리 그냥 다녀오슈.”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도원은 그냥 따라 나섰다.
어쩌면 그것이 마지막 길이 될지도 모르고…
차안에서 아무리 웃고 떠들며 분위기를 띄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찦차안의 분위기는 어색했고 무거웠다.
그냥 드라이브라 하기엔 함께 가는 군인들이 많았고 모두 삼엄한 무장을 했고 분위기가 사뭇 달랐으니 말이다.
지도원은 가끔 창밖을 바라보며 침묵에 잠기곤 했다.
그런데 그 소골령 올리막을 올라가서 내려갔더면 탈북군인의 심경이 더욱 복잡해질것이지만 다행히 차는 신흥동 그 동네에서 소골령대로 올라가지 않고 좌로 틀어 남평쪽으로 달려갔다.
누구도 아무말 없었다.
가면서 경치가 뛰어난 선경대도 있었건만 드라이브 하면서 경치를 둘러보련다는 대대장은 아무말 없었고 차는 계속 국경이 있는 남평으로 내달렸다.
차가 남평향 마을로 들어설 때까지 지도원은 자꾸 무언가 불안하고 할 말이 있는듯 했으나 차마 먼저 물어보기가 저어되는듯 말을 안하고 있다가 차가 곧장 변경의 다리로 향해가자 계속 불안한듯 바깥을 기웃거렸다.
그때부터 차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다만 누구도 그 침묵을 깨뜨리지 않고 있을뿐이었다.
차가 변경해관에 멈추어 서자 창밖을 흘깃 내다보던 지도원이 덥썩 대대장의 옷깃을 잡았다.
“대대장 동지! 저랑 남자대 남자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저를 조선 땅에 보내지 않는다고! 지금 설마 그 약속 어기시려는겁니까?!”
지도원은 이미 중국측에 건너와 있는, 눈에 익숙한 황갈색 군복을 창문밖으로 보았던거다!
대대장은 더 이상 그 어떤 핑계나 구실도 지도원을 속일수가 없고 또 그럴 필요 자체가 없어졌다는걸 깨닫고 붉어지고 상심한 얼굴로 “이건 내 권한밖의 일이라 결국 그렇게 되었소. 진심으로 양해 바라오.”하고 사과하듯 말했다.
“대대장 동지!! 저는 저 땅에 가면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죽습니다!!
이럴꺼면 왜 저더러 총을 내려놓으라 했습니까? 차라리 저더러 자결하라고 하지 왜 이렇게 사람한테 희망을 주었다가 무참히 도로 빼앗아 갑니까?!
대대장동지, 제발 저를 여기 내려놓지 마십시오!! 대대장 동지!! 제발!…..”
지도원이 눈물 쏟으면서 애원하자 대대장도 눈시울을 붉히면서 황급히 먼저 차에서 내려버렸고 무장경찰 군인들이 차문을 열고 지도원을 끌어내렸다.
주위의 모두의 시선이 열린 차문으로 끌려져 내려오는 정치지도원을 바라보았고 모두 죽음의 길인 줄 아는 그길로 다시
끌려가는 지도원이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마구 발광할까 걱정했다.
죽음을 직감하고 있는 사람이 무엇인들 못하랴?
변방대 군관들은 어서빨리 이 난처한 상황이 말썽없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실 변방대 군인 거의 모두가 그 지도원과 함께 술을 마셨고 속심을 나누었고 그의 탈북경위를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또 뛰어난 사격술도 보았기에 모두 지도원의 송환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고 있었다.
지도원은 다시 고개를 돌려 대대장을 바라보았으나 대대장은 급히 그 눈길을 피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황갈색의 군복을 입은 북한군인 몇 명이 앞으로 다가와 무장경찰 손에서 그 지도원을 넘겨 받으며 그 팔을 잡는 순간 그 지도원의 너무나 잊지못할 표정과 행동을 모두가 생생히 목격했다.
차안에서 그렇게 살려달라고 대대장한테 애원하던 지도원이 북한 보위군관이 팔을 잡는 순간 얼굴색이 그대로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야말로 핏기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색이 되어 버린거다.
곁에서 그 장면을 모두 목격한 변방대 중위군관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현장의 군관의 시각을 빌어 당시의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하려는 의도이다.)
“ 우리는 그 총을 들고 우리한테 다가오지 말라고 나도 죽고 너들도 죽는다고 고함치던 지도원이 아주 당당하게 아니면, 적어도 우리한테 너희들 왜 약속 안지키냐? 따지던지?
아니면 보내지 말아달라고 원망이라도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 조선 보위군관이 다가와 팔을 잡는 순간 사람의 얼굴색이 그렇게 하얗게 변하는는것을 정말 난생처음 목격했다.
정말 고양이앞에 잡힌 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냥 삶의 희망을 스스로 싹 버리고 포기하는듯한,
힘이.. 아니 그냥 넋이 싹 빠져나가는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였다.
우리도 내가 저 상황이면 얼마나 공포스럽고 소름끼칠까 하는 생각에 온몸에 닭살이 돋으면서 소름이 쫘악 끼쳤다.
정말 우리한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사람이 팔을 잡히는 그냥 한순간에 모든걸 다 포기한듯 넋이 나가버린듯한 모습에 우리까지 그냥 전율을 느껴졌다.“
그럼 왜 탈북 정치지도원이 그렇게 한순간에 모든걸 포기하고 넋이 나가버렸을까?
물론 너무나 빤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곧 바로 놀랍고 믿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 겨우 지탱하고서 보위부 군인들한테 잡혀있는 그 지도원 앞에 한 보위부 군관이 다가 서더니 손에 들었던것을 쳐들었다.
그것은 이미 끝을 뾰족하고 날카롭게 갈아 온 기다란 철삿줄(반생이)이었다.
변방대 지휘관들, 공안국 간부들, 그리고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는 무장경찰 전사(戰士)들..
거기에 탈북군관이 잡혔고 오늘 북송된다는것을 미리 알고서 변경다리 근처에 가득 모여온 공사마을 백성들과 조교들…
또 두만강 건너에 단체로 가득 모여온 북한 백성들과 자동소총을 들고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는 북한 경비대원들..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래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보위부 군관은 높은 소리로
“ 위대한 어버이 수령님과 성스러운 우리 당을 배신하고 영광스러운 조선인민군을 배신한 민족의 반역자 XXX를 지금 인민의 이름으로 체포한다!”
하고는 곧 좌우의 보위군인에게 눈치하자 그들은 정치지도원의 손을 잡아서 손바닥을 합장하듯 합쳐버렸다.
그러자 보위군관은 곧 그 뾰족한 반생이로 정치지도원의 손을 꿰기 시작했다.
두만강에서 잡은 이면수를 버들가지에 꿰듯이…말이다.
그 순간 양안의 수많은 백성들은 아무말도 못하고 경악한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욱이 중국 측 조선족 군인들과 백성들은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흰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비추는 백주대낮 두만강가에서,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데…
공산주의 정권의 중조 두나라 국경에서 사람이 사람의 손바닥을 철사로 꿰고 있는 그런 광경이 한창 펼쳐지고 있는거다.
조교 출신이었다가 그 스스로 자격을 버리고 귀화한 독립군 김학철 작가의 “20세기의 신화”에도 이러한 대목은 없었을진대..
그것이 만인이 평등한 삶을 누린다는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국경에서 20세기의 백주대낮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잠시.. 멍하니 보고있던 조선족 대대장이 괴성을 지르며 폭발하듯 터졌다.
“야아! 이 개새끼들아! 너네 지금 대체 무슨 짓거리 하고 있는 거냐?!
사람을 어떻게 철사로 손바닥을 꿰냐?! 이 천하에 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너희들이 이러자고 우리한테 사람 잡아달라고 했냐??
이런 백주대낮에 어떻게 인간이 인간의 손바닥을 쇠줄(철사)로 꿰냐?! 엉?!
너희들도 사람이냐?
너희들도 사회주의 나라,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나라 군인들이냐?
야, 자본주의 적들도, 남조선 놈들도 이런 짓을 절대 안할꺼다!
너희들이 사람새끼냐?! 이 개새끼들아!! 당장 집어 치우지 못하겠냐?!
이 땅에서 지금 나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다 가만 내버려 두지 않겠다!
당장 두만강을 건너가라! 손바닥을 그렇게 꿰고 싶으면 니네 땅에 가서 꿰던지 매던지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다시는 우리한테 사람 잡아달란 소리를 하지말라!!
이 개새끼들아 당장 건너가지 못하겠냐?!“
대대장이 너무 흥분을 하여 외교상 절대 입에 담지 못할 말들도 마구 쏟아내며 엄청 고함을 지르고 주변의 조선족 변방대 지휘관들이 항의를 하고 조선족 백성들이
“우와~ 인간들이 너무한거 아니오?!! 세상에! 너무 지독하다!”
며 항의가 빗발치자 보위부 군인들은 뜻박의 상황에 엄청 당황해 났다.
북한(함경도)과 연변자치주는 언어도 비슷했고 많은 왕래를 해왔는데 조금만 깊게 접촉을 하면 바로 이런 문제에서 서로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금방 드러나곤 했다.
북한 보위부에선 중국 측에서 협조를 하여 탈북군인을 나포하여 주자 고맙기도 하고 이김에 나라와 수령을 배신한자는 어떠한 최후를 맞고 나라에서는 어떠한 처벌을 한다는걸 똑똑히 보여주어 일벌백계하기로 작심하고 일부러 수많은 양안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충격적인 체포장면을 연출하려고 기획했던거다.
하긴 배신자들은 체포당한 후 벼라별 고문을 다 겪고 아예 사람취급을 당하지 못하므로 사실 철삿줄로 손바닥을 꿰는건 아무것도 아니기에 나라의 반역자에겐 수갑이 아니라 철사로 꿰어 간다는걸 보여주려 했는데 함께 거들어 주고 동조를 해야 할 조선족 군인들이 생각외로 엄청 반발하며 고함을 지르니 무척 당황 하게 된거다.
간혹 생기는 탈북자를 잡아서 쇠줄로 코를 꿰어 갈 때도 조선족 군인들이 혀를 찼지만 이처럼 반발을 안했었는데 지금 이런 반응에 보위부군관들은 엄청 당황했고 더욱이 개보다 못한 새끼들이란 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했다.
사실 그들은 도강했던 정치지도원이 그동안 변방부대 지휘관들과 어떤 정을 쌓았고 그동안 어떤 일들과 속마음들이 오고갔는지는 자세히 알수 없었고 그냥 연변군인들이 자기들에 협조하여 민족의 반역자를 잡아 주었다고 생각했던터다.
조선족 군인들에게 엄청 질책 당하고 당황한 나머지 대꾸조차 못하고 황급히 다리를 건너던 보위부군인들은 강건너에서 조선백성들이 자기들이 엄청 질책당하고 무시당하는 모습을 빤히 지켜 본것을 아는지라 그대로 꼬리를 내린 채 들어갈수 없었는지
다리중앙의 경계선을 넘자 바로 멈춰섰고 아까 하던 그 소름끼치는 행동들을 마저 마무리 지었다.
손바닥을 철사줄로 꿰매고 마무리로 코까지 꿰어서 질질 끌었다.
잠깐.. 지도원이 다리위로 개처럼 끌려가기 직전 고래고래 고함 지르면서 보위부 군인들한테 욕설을 퍼붓는 대대장을 잠깐 돌아보았다.
그 눈길은 더 이상 살려달라는 애원의 눈길이 아니었다고 한다.
자기한테 권총을 넘겨주고 자기와 술잔을 마주치던 사내대 사내로 흉금을 터놓던 대대장에게 그윽하게 보내던 그때의 시선이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얘기 들어봤냐? 눈앞이 노래서 하늘을 쳐다봤더니 하늘 역시 노랗더라고…
지도원은 손바닥이 철삿줄에 꿰이고 코까지 꿰인 채 피흘리며 개처럼 다리위를 질질 끌려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땅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아내와 자식들을? 아니면 지나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까?
며칠이나마 자유와 희망을 만끽했던 타국땅에서의 나날을 떠올려 보고..
그 총알에 박산나서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던 무수한 성냥개비들도 잠시 떠올렸을까?
자신이 잠깐이나마 가졌던 삶의 희망과 자유가.. 그 허공의 성냥개비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한 발 한 발 그 머지않은 두만강 다리를 피 흘리며… 끌려갔다.
3만 여명의 탈북자가 자유를 찾아 남쪽동네에 내려와 살고 있는 2017년, 부지중 떠올랐던 30년 전의 한 탈북장교 이야기를 여기까지 쓸까 한다.
사람의 생명은 다 같이 소중하고 탈북한 그 누구나의 탈북스토리는 다 눈물겹고 굴곡적이다.
하지만 잠깐의 자유만 맛보고 다시 철사줄에 꽁꽁 꿰이고 끌려간 한 탈북장교의 사연은 그 누구의 사연에 비해서 가슴 아프고 눈물나지 않은가?
누구나 이땅에 와서는 북한의 세습 독재탓에 어떻게 고생했고 힘들게 살았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어쩔수 없이 숨죽이며 동조하며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나 사람들이 그 땅에 있을때도 과감히 “이건 아니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반문한 적이 있더냐?
주체사상을 만들고 호의호식 하다 망명한 황장엽 선생도 많은 환영을 받았고 북한의 사상을 전파하고 체제선전에 앞장섰던 태영호 공사도 북한정권에 충성하다가 이땅에 귀순을 해왔다.
물론 그들의 과거를 트집잡고 비판하려고 따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죽음이 두려워 혹은 내 안위와 목숨이 두려워, 또 내가 잘 살기 위해서 모르는 척 그땅에서 충성경쟁하고 어버이 수령님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이 이땅에 와서 북한정권과 지도자를 비판한다고 모든 것이 똑 같은 탈북자인 것인가?
지구상에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지옥의 북한 정권과 북한 지도자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충성과 지지속에 아직도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보다 수십년 전 감히, “왜 굶주리는 백성을 돌보는것이 중요하지 김일성의 동상만 계속 만드냐?!”고 의문을 제기했던 한 정치장교의 탈북과 희생이 다른 누구의 탈북보다도 더더욱 가슴 아프고 값진것이 아닐까?
황병서나 김원홍이 탈북해와도 어쩔수 없이 그랬다고 변명할것이며 이땅의 사람들은 최고위급 출신이 탈북을 했다고 엄청난 환영을 할꺼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고 또 알지 못하는 한 탈북 정치 장교의 사연에 대해서 썼다.
30여 년전 남평 국경다리위에서 철사줄에 손바닥과 코를 꿰이고 죽음의 지옥으로 끌려간 어느 용맹한 군인을 추억하기 위해서 쓴 글이고 이렇게 이름 짓고 싶다.
“북한군에는 반생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