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건달이였다.
80년대 후반 쯤, 지역에서 잘나가는 건달이였다고 했다.
술만 들어가면 한쪽손엔 수백만원이 담긴 가방을 들고
각종 업소들을 돌아다니며 관리했다는 얘기를
술만 드시면 신나서 떠벌리곤 하셨다.
그러던 중
공부만 하던 소녀였던 어머니는
학력고사가 끝나고 친구들과 일탈을 꿈꾸며
아버지가 관리하는 나이트클럽에 갔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아름다운 외모에
첫눈에 반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어머니에게 물량공세를 퍼부었고,
그렇게 누나를 임신하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끔 농담처럼 그때
나이트클럽만 가지 않았으면..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결혼 후 얼마뒤 정부의 범죄와의전쟁이 시작되었고,
아버지는 기반을 모두 버리고 어머니와 함께
다른 도시로 도망을 가 숨어 살았다고 한다.
말씀하신 것과 달리 말단조직원이였는지
다행히도 수배명단엔 오르지 않았고,
방탕하게 살았던만큼 모아놓은 돈이 없었던 아버지는
도망간 도시에서 막노동부터 시작해
안해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건달생활동안 한번도 일반인들 상대로
금품갈취를 한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항상 입버릇처럼 두가지 말을 달고 사셨다.
‘힘이 없는건 부끄러운게 아니다.
정말 부끄러운건 힘을 가지고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힘을 가진건 자랑스러운게 아니다.
그 힘으로 약자들을 보호하고 지켜냈을 때
자랑스러워지는 것이다.’ 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실제로 아버지는 불의를 보면 참지못하고
약자를 보호하는데 망설임이 없으셨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옆집 아저씨를 때려눕힌 적도 있고,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싸워준 적도 있었다.
덕분에 우리집은 항상 가난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늦게온 사춘기 때문인지 나쁜 길로 빠지게 되었다.
건달과 일반인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에 1년정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피는 못속인다면서 호탕하게 웃으시고는
처음으로 날 향해 주먹을 날리셨다.
살면서 한번도 아버지에게 맞아본 적 없었던 나는
적지않게 충격을 받았고,
이후 정신을 차리고
착실하게 공부를 한 뒤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괜찮은 직장에 취직하고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그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다.
나는 아버지가 항상 강인할줄 알았다.
나는 아버지가 영원히 아프지 않을 줄 알았다.
6년전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아버지는 재활에 전념했다.
흔히 말하는 ‘아버지의 넓은 등이 좁아졌다’
라는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커다라고 굵었던 손은 한없이 야위였고
얼굴엔 생기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않았고
열심히 재활훈련을 한 덕에
일상생활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아버지를 좋은곳으로 보내드리고 왔다.
언젠가는 해야될 일인줄 알면서
막상 하려니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볼은 상기되어 있었고
마지막까지 투덜거리던 아버지는
떠나기 직전에 웃어주셨다.
그냥.. 문뜩 멋있는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끄적여봤다.
누군가에겐 건달이고 나쁜 사람이였을지 몰라도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멋진 아버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