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한다는 옆집 여자’ 생각하다가 마누라한테 들킨 유부남의 대처

나는 6년 전 개인의 삶을 청산하고

현재 토끼같은 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남자사람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우리 딸 아이와 또래를 키우는 가구가 몇 있는데,

그 중 한 집의 아이와

우리 딸이 우연히 잘 어울려 놀게 되었고

그 계기로 엄마끼리도 알고지내게 되어,

서로 집으로 놀러도 가고

같이 밥도 먹고 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편의상 그 집을 303호라 하겠다)

나는 303호의 존재를 줄곧 모르다가,

언제부터인가 퇴근 후 딸아이에게

‘오늘은 뭐하고 놀았니’라고 물어보면

‘303호 집에가서 그 집 아이와 놀았다’라는 말을

아내와 딸에게 들음으로서

303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303호댁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은

최근 단지 내에서 우연히

우리가족과 303호 가족이 마주쳤을 때였다.

아내 ‘우리집 아빠에요~’

나 ‘ 아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지 아빠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딸 ‘안녕하째요~(꾸벅)’

303호댁 ‘네네 처음 뵈어요 호호. 그래, 윤지야 안녕~’

그런데 문제는

이 303호댁이 상당한 미인이라는 것이었다.

아주 굉장한 미인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단아하달까.

암튼 누구라도 보면 미인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단아함과,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분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후로

가끔 단지 내에서 303호를 마주치면

가볍게 목인사하는 정도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을 한 나는,

지친 몸으로 집에서 딸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그렇게 딸 아이와 놀아주면서

아내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어쩌다보니 우연히 303호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앞 내용은 각설하고, 이어 아내가 말했다.

“아, 내가 얘기 안해서 몰랐구나.

303호 필라테스 강사야.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 여자 이뿌자나”

(이뿌자나.. 쁘자나.. 자나.. 자나.. 나..)

나와 아내가 나누던 이야기는

303호의 외모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의 대화였는데

뜬금없이 아내는 ‘그 여자 이뿌자나’

의 멘트를 말 끝에 붙였다

303호가 평균 이상의 미인인것은 진작 알고있었던 나는,

필라테스 강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미모가 평범하지 않다 싶더니 역시 그랬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303호가 필라테스 강사라는 것에 대해

왠지 모를 당위성 마저 느끼던 차였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며) 필라테스 강ㅅ.. 아~~

어쩐지~~ 그렇구나~ㅎㅎ 어쩐지 예쁘시더라ㅎㅎ”

라고 말이 터질 뻔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줄을 챙기고 생각했다.

만일 이렇게 떡밥을 덥석 문다면,

내일부터 있을 황금같은 주말은

아내의 이유없는 짜증과 괴롭힘에

내내 시달릴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에이~ 이쁘긴 무슨..

무슨 여우랑 너구리랑 합쳐놓은 것처럼 생겼던데?”

의 식의 너무 강한 부정은 자칫,

“왜에~? 303호 그정도는 아닌데

너무 강하게 부정한다~? 뭐가 켕겨?”

와같이 역공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303호에게 다른 맘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어쩌다 마주치면

‘미인이시네’ 정도의 생각을 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마음은 중요한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아내에게

‘그 여자 이뿌자나’ 에 대한 대답으로

너무 약하게도, 강하지도 않게 부정하는 것이었다.

만일 적절히 대응치 못한다면

나의 주말은 그야말로 물건너 가는 것이다.

대답이 너무 지체되어도 안되었다.

대답에 너무 신중하다 타이밍을 놓친다면

그 자체로 또 다른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뭘 그렇게 생각해~? 응?

뭐가 생각이 많네? 수상한데 응?” 를 시작으로

‘내가 이쁘냐, 303호가 이쁘냐’ 테크를 타기라도 한다면

나의 소중한 금요일 저녁이 정말 피곤해질 것이다.

즉 타임어택과 신중함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난이도 높은 시추에이션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이 모든 생각은

여기까지가 아내의 ‘303호 예쁘잖아’ 멘트 이후

불과 0.5초만에 머리를 스치고 간 생각이었다

나는 아내의 말이 끝나자마자 1초만에 대답했다.

나 : “필라테스? 그게 뭔데?”

아내 : “..”

나 : “윤지야~ (딸과 놀아주며) 필라테스가 뭐야?

우리 윤지가 아빠 좀 가르쳐주세요 뿌잉뿌잉~

아유 우리 윤지 잘한다~(블럭 쌓는 중)..

근데 진짜 필라테스가 뭐야?”

아내 : “..”

평소에 운동과 담을 쌓고 사는 나의 모르쇠 대응은

어느정도 신빙성있다고 판단했는지 아내는,

“아니야.”

라고 말하며 저녁을 차리러 갔다.

나의 현명한 대응으로

나는 주말을 편히 보낼 수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