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여느 동네와는 다름없이
‘파지 줍는 할머니’가 계신다.
원미구 원미동.
우리 동네는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중도시 즈음 된다.
그러한 곳에 옥에 티가 되듯
한 할머니는 매일 새벽 우리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가며
온갖 뒤섞인 쓰레기더미를 헤치곤 한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즈음
항상 아침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내가
그 할머니를 처음 본 날이다.
추위에 벌벌 떠시며 쭈글쭈글하지만
크기는 어느 조막만한 아이의 것 같은 그 손으로
묵묵히 폐지를 줍는 것이 눈에 한 두번 밟히다 못해
내가 도와드리기로 한 날 이기도 하다.
그 때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할머니와 마주치는 날엔
비록 내 몸집에 비하면 큰 일은 아니지만
아파트 단지 내의 파지를 모아서
굴러가는 것인지 끌려가는 것인지 모를
낡은 공수레에 채워 드리곤 하였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의 관계는
마치 손주관계와 같이 제법 서먹서먹할지도 모르나
서글서글한 관계가 되었다.
“아이구, 청년아..! 오늘도 왜 도와주누..”
입에 단물이 나도록 그러한 말을 내뱉으시면서도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띄는 그 모습이
나에게는 제법 동기부여가 되어서
마치 은행창구 앞 ‘사랑의 빵’ 같이
소박한 금액으로 기부를 하는 것 마냥
소소한 기쁨이 들곤 했다.
어디서 부터 느릿느릿
그 많은 거리를 걸어 오셨을까 상상하다
뭇 할머니가 추운 날에 숨이 탁 막히듯
목은 마르지 않으실지 걱정스런 나는
한 번, 두 번 할머니께 따뜻한 커피음료를
권하는 것 또한 내 일상이 되었다.
그럴 때 마다 할머니는 항상
“청년아..! 이거 살 돈 모아서 고기 사먹기라..!”
하는 레퍼토리가 있었지만
아주 좋아 하셨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항상 그 말 뿐이였다.
“고기 사먹기라.”
일생을 가난하게 살아오신 할머니의
가장 큰 소비는 바로 ‘고기’ 아니었을까.
허름한 옷과 낡아 떨어지는 장갑 또한
어딘가 옷수거함에서 주워오신 듯한
내음이 풍기는 것에
괜히 짠한 것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곤 했다.
그렇게 하시는 일 만큼은
아주 춥고 고된 일이었을지 모르나,
새벽의 귀와 포도청같은
목구멍 만큼은 따뜻하게 해 주고 싶어서
할머니 곁을 한 십분 마냥 서성거렸었던
오지랖 넓은 내가 벌써 1년이 지났다.
때는 5주 전, 겨울 중 유일하게 따뜻한 날인
크리스마스날이 조금 지났을 무렵,
그 때 부턴가
할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고
낡은 파지들은 수북히 쌓여
눈과 함께 젖어 가는 날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그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관리실 아저씨의 쓰레기를 치우는 고생만
다시금 생겼을 뿐이다.
여느 사람 같았으면 전혀 개의치 않았겠건만,
그래도 뭇 가까이 가끔씩 보던
그 할머니의 흰머리는
눈과 같이 조금씩 녹아가면서
나의 궁금증과 작은 그리움을 돋구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
무언가 허전했던 아침
운동 가는 길이 계속 지속될 무렵,
그리 별 일 없는 일주일 전 토요일,
문득 내가 “할머니 어디 사세요..?” 하고 물어 보았을 때
대답했던 말들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구청 사람들이 참 친절해.. 매달 돈준다이 허허”
기초연금을 말하셨던 걸까,
문득 생각난 나는 할일도 없는 서늘한 오후
그늘막을 뒤로지고 원미구청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 있으실까..’ 근황이 궁금하고
그 발걸음이 제법 긴장되어서 도착했을 땐,
‘대기표를 뽑아야 하나..
그냥 빈 창구에 조심스레 말해 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들에 복잡해 괜시리 두근거렸다.
“저기.. 혹시 파지 줍는 할머니 아세요..?
매달 기초연금 같은 것 수령하는 것 처럼
보이는 할머니 혹시 아시나요??”
“아.. 박형태 할머니요?”
1년 만에 이름을 안 내가
여태껏 할머니와 조회하며 뭘 했는지
갸우뚱 했던 순간인 찰나,
구청 직원 아저씨는
“아 할머니 돌아가셨어요. 무슨 친척이나 손자 되세요?”
“..”
무언가 내 머리를 꽝! 하고 치다 못해
잘 못 들었는지 되물어 보았을 때,
더욱이 들었던 말은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정확히 하루 되는 날인데,
지인이십니까?
분향소 내일 즈음 문 닫으니
한번 방문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하며 손바닥만한 조각의 포스트잇 위에
어느 병원 지하를 써 주는데,
그걸 받은 나의 손은 제법 따뜻한 구청 내
라지에이터를 무시하기라도 한 듯
차가워 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싸늘했다.
“XX병원 B1 305호 분향실
(모퉁이로 가다가 꺾으면 나옵니다.)”
달리는 것 같은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나는,
여느 분향소와 같이
근조화환이 넓게 자리잡은 곳이 아닌
모퉁이 화장실 옆 아주 작은 분향실을 찾았다.
그 곳에는 온돌조차 틀어져 있지 않았으며,
싸늘한 기운이 감쌌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았을 때,
그 작은 주민등록증을 복사해 크게 만든 듯
보이는 것처럼 픽셀이 커서
화질이 영 이상했는데
그것보다 엉망인 것은
되려 가지런히 정리된 손님맞이 테이블이었다.
조금이라도 사람의 발길이 닿았다면
탁자들은 무언가 어질러져 있고
나뒹굴어져 있어야 함인데,
도리어 정리되어 있던 것들이
나에게는 지극히 어지럽고 엉망인 형태로 보였다.
그리고 반대로 가지런하고
곧잘 서있어야 할 향초 안의 길다란 향대는
언제 꺼진 듯 알 수 없이 먼지만 풀풀 날리고
그 수명을 다해서 모래로 되돌아 갔을 뿐이었다.
그렇게 신발을 벗고
고인을 위한 절을 끝낼 무렵
일하시는 아주머니 분이 들리더니
고기를 퍼 주셨다. 이내 곧,
“오늘 구청에서 오시는 분들 말고
처음 오시는 젊은분이시네.. 무슨 아는사이예요?
“…”
“아이고.. 가족도 없다던데? 쯧쯧..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끝을 외롭게 가시는데
와줘서 할머니는 참 고맙겠네 학생”
항상 따뜻한 음료를 내어드리고
그 후 말하시던 “고기 사먹으라..” 하시던
그 말이 연신 떠오르며
난 그 곳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조금은 빛깔이 돌고
제법 맛이 있던 그 돼지고기는
옆의 근조화가 가득한 방에서
얻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가는 세월 그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시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며
과연 할머니는 이러한 고기를
배불리 드셔본 적이 있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그 식어버린 향초에
마지막 내 마음을 표현할 방법으로
향대를 하나 꽂으며 돌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리고, 오늘 저녁.
담백한 냄새가 거실너머 내 방까지 솔솔 풍겼다.
그리 자주 해 먹지도,
그렇다고 안 먹지도 않는 주 메뉴로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 내 왔던 저녁 밥상다리 였다.
그렇게 몇 주 전 겨울날의 슬픈 바람같은 이야기는
저녁을 먹은 후
문득 내 방 책상에 앉았을 때 내 콧등을 시큰거렸다.
“아이구, 청년아..! 오늘도 왜 도와주누..”
이 말이 그리워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