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땐 사촌형이 중앙대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중앙대에 막연히 꿈을 가지고 공부를 했는데
결국 원하지 않았던 단국대 입학후
1학년 과대로 즐거운 생활을 하던
철없던 20살 소년이였다.
한학기를 쉬원하게 망치고 마시고 놀다가
종강후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친했던 친구 두명이 해병대를 지원했다고 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소주한잔 마시며
웃고 떠드는데
이새끼들은 군대도 빨리가고
거기다 멋있어 보였던 해병대를 지원입대했네?
라는 생각을 했고 뭔가 지는 것 같은 기분이더라
내색은 안했지만
다음날부터 추진력있게 해병대 입대 지원 했고
며칠사이에 포항까지 가서 면접을 보고왔다.
이왕 가야할 군대 일찍 다녀오고
거기다 해병대 네임드도 있으니
다시 복학하면 애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라고
기대를 내심 했었다.
아직 초여름 며칠후 집으로 우편이 왔고
두달 뒤 9월 입대였다.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입대를 시켜준다고 하니깐 너무 가기 싫더라
그 당시 정확하지는 않는데
입대날짜에 입대를 안하면 벌금을 내야한다고 들었고
그래서 결국 허둥지둥 두달 놀다 입대했다.
사실 입대날이 잘 기억이 나지않는다
같이 가주던 친구들이랑
전날 포항에서 술을 너무 과음한 탓이기도 하고
얼타면서 욕먹다 보니깐
입대 첫날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개ㅈ같이 더운 9월 22일
개같이 훈련소에서 뺑이쳤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힘들고 억울했다.
여기에 나보다 더 선임 해병님도 있겠지만
내가 입대했던 2005년에도
훈련병들은 인격이 없었다
그렇게 큰 탈없이
포항 1사단 게릴라부대 박격포 병으로 배치받고
좋은 해병님들이랑 생활했다.
정말 많이 맞긴 했어도 뒤끝은 없었고
내가 두대 맞으면 4배 이상 잘 챙겨주셨다.
아마 너무 편했나보다..
븅신같은 나 새끼는 결국 평화를 내 발로 걷어찼다
평화롭던 어느날 상부 명령으로
이라크 파병인원 20명을 뽑는다고 했다.
모든 해병사단 총 20명 지원을 받는다고 했다.
지원 조건도 자격도 나한테는 해당하지 않는게 없었고
막상 그 당시 파병이란 단어의 무게를 이해못했다
물론 멋있어 보였고
스펙에 한줄 더 적을 수 있을만한
커리어라고 생각해서 지원했고
지원하고 돌아와서
정말로 하늘이 노랗다 생각들 정도로 많이 맞았다
이유는 내가 자기들 의견을 묻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서였다
ㄱh새끼들
그후 사단 본부로 이송후 2개월간
교육과 훈련을 다시 받고
1개월간 파병대기로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눕고 싶으면 눕고
티비시청 자유에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병이 혼자 피엑스도 갈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본부중대장이
스타크레프트에 미친놈이라
잘하는 애들 몆명 차출해서 자주 게임도 했었다
그러다 대기 한달이 좀 넘었나?
정말 갑자기 통보 받았다.
70시간 뒤 출발이니 지금 자고 일어나면
한국에서 신변정리부터 시작하라고.
도착하고 들은 얘기론
우리가 파병 가는게 국회에서 말이 많아서
허가 떨어지는게 힘들었다고 들음
허가 떨어지자마자 출발하는 거였다더라
신변정리랄께 뭐있나..
21살 짧은 인생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친구랑 전화 몆통 하고
대대장님 휴대전화로
여자친구한테 문자 한통 남긴 걸로 끝이났다.
출국 전날 개목걸이를 추가 지급하더라
둘 다 꼭 소지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한개는 세탁하다 잃어버림
교육 들을 땐 18시간 정도면
널널하게 도착한다고 들었는데
2회 경유해서 21시간 소요됐음.
도착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각설함
난 선출부대라
같이 온 15명이서 따로따로 이라크로 입성함
당연한거지만 이라크 국제 공항으로 들어가면
몸에 구멍 생긴다
그렇게 도착 후 4시간 가량 차로 이동
차로 이동 후 간단한 저녁식사와
un군(앞으론 연합군이라고 함)들이랑 인사 후 취침
내 주임무는 시설 방어와 치안 유지인 줄 알고 갔지만
사실 도로건설 관련 임무가 대부분이였다.
근데 딱히 힘들지는 않음
날이 워낙 덥고 우린 절대 개인 화기와
헬멧 장구류 피복 방탄복을 벗을 수가 없어서
오전 잠깐, 늦은 오후 잠깐, 관리식으로 투입되던거라
사실 편했다고 생각든다.
하지만 불행히도 평화는 오래 않았다.
우리가 있던 기지는 전투에 용의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전투를 위한 시설이 아니였던게
표적이 된거같다.
평소라면 연합군이 상시 시설내 거주하며 방어하지만
단 한번도 공격당한 적도 없었고
물자 지원 헬기가 연합군 전투기, 보호기, 관찰기의
보호를 받으면서 오는 중이라
시설 방어에 신경을 안 쓴거 같음
(이렇게 3개는 이동중일 때는 상시 결체 이동함)
그시각 나는 시설내 지하 3층에서
죠셉이랑 자는중이였음
나는 몰랐지만 시설밖에 있던 사람들에 의하면
그 당시 시설 3키로 밖에 있는 돌산에서
갑자기 비행물체가 포착됐고
평소 원칙이던 비행물체는
1회 수신 불응시 사격하라 라는 원칙도 없이
바로 발포했지만 몆초 후
시설 근처에 있던 연합군이 사용하는
농구장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큰 굉음과 몆번의 섬광이 터지더니
시설 주위로 일시다발적으로 폭발 후
상황이 종료 됐다고 함
일반인 사망자 3명
시설 방어중이던 연합군 미국인 한명
총 4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넘는 부상자 발생
시설 지상 1층은 컨테이너인데
컨테이너 안에 있던 한국인 한명 부상
자고있던 나랑 죠셉은 폭발음과 같이
벌떡 일어나서 진짜 찰나에 순간에
개인화기 장착 후 침대뒤로 엄패하고
문쪽으로 총을 겨누면서 약 1분? 2분정도
사격 대기 부동자세로 있었는데
거짓말 정말 한개도 안하고
1~2분만에 땀으로 팬티까지 다 젖었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1분이 하루같이 느껴지는 시간이였음
내 숨소리 심장소리 발한번 움직이는 소리마저도
내가 죽을수도 있는 위험한 소리라고 생각되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게 맞을까?
나가야하나?
나가면 우리빼고 다 죽은게 아닐까? 등등
생각하다보니 공포에 사람이 미칠것만 같아서
죠셉보고 내 머리통에다
한발 쏴달라고 하고싶을 정도로 무섭고 떨고있었다
1~2분후 상황 사이렌이 울렸고
시설내 전인원
빅토리아 건물로 집합령 방송이 나오더라
환복 후 빅토리아 건물로 나갈 때까지
나는 상황 종료 된 줄 몰랐고
진짜 전쟁하겠구나 이런 생각으로 나갔다.
초저녁이였는데
이때부터 전인원이 야투경 씨씨티비 레이더
관측 통신 등으로 경계작전으로
해뜰 때까지 긴장속에서 아침을 맞이함
엄청 피곤했지만 또 잠들면 일이 터질까
겁먹고 잠도 앉아서 잠깐 졸거나
밥도 못먹다가 다시 밤이 찾아옴
밤이 무서웠고 어제 그 시간쯔음 되니깐
주위가 고요해지더라
또 있을지 모를 적습에 다들 바짝 긴장했고
약 이틀을 더 시설 경계를 하다가
한국에서 자이툰부대 소속 파병인원들은
전원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마음한편으론
한국에서 우릴 보호할려는 마음에 감사하고
또 여길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기뻤지만
약 11명의 자이툰소속 군인이 빠지면
남은 인원들은? 이란 생각에
남아있을 연합군들에게 미안했고
여기 남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우리는 전투지역과 거리가 멀고
전투소속도 아니며
안전한곳으로 파병 온다고 알고왔는데
이런 일을 격으니 어딘지 모를 분노가 생겼던거같다
왜 나한테 이런일이 일어나서 이런 공포를 격게 만들지?
이런곳인 줄 알았으면 내가 왜와 ㅆ1발
이라고 생각했지만
금방 또 전쟁중인 곳에 안전한곳이 어딨어
사실 올 때 이런일도 기대하고 온거잖아
라고 오락가락 하면서 잠이 들었고
해 뜨자마자 여기 남을 연합군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날 맨날 리-가드 라고 부르던
커스랑 라먼트 이렇게 셋이서 친하게 지냈는데
위험하다고 나만 빠져버리니깐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나더라
다들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형들같이 잘해주던 애들인데
남겨두고 가는게 야비하고 비겁한거 같아서
발이 안 떨어졌다
자이툰 소속 11명중 1명 부상자 제외
10명이서 총 차량 5대에 나눠탄 후
어느 외각 지역에서 다시 임무를 수행한다고 하더라
임무 내용도 전과 비슷
치안유지와 시설방어라고 했다.
약 3개월간 안전가옥에서 생활하며 임무를 했고
정말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로웠고
점차 이곳에 익숙해질 때쯤
우리가 거주하던 가옥 남쪽에서
큰 ㅌ러가 있었고 목표는 연합군 기지였다.
며칠간 아무것도 안하고 대기했다
더이상 교전이 없다고 확정되면
지원을 갈거라고 했다.
더이상의 교전은 없었고
약속대로 우리는 지원물자를 싣고
남쪽으로 차를 타고 이동
난 이라크가 한국보다 작은 나라인 줄만 알았는데
차타고 남쪽으로 이동만 이틀정도 했다
쭉 직선으로만 갔다면 하루면 가겠지만
길이 좋지도 않고
거기다 위험지역은 피해 이동하다보니
오래 걸린다고 들었다 난 그렇게 이해했다
이동 차량은 총 3대
1번 차량은
연합군 간부, 연합군 일반병사들 4명
2번 차량은
연합군 간부, 자이툰부대 일반병 4명
3번 차량은
연합군 간부, 자이툰부대 간부,
나 막내 이렇게 이동했고
우리보다 하루먼저 선출로 동일한 인원이 출발했다
무슨 사건이든 갑자기 찾아오더라
자정쯤 될시간 막바지 이동후 취침을 해야하는데
욕심을 내서 조금 더 이동중이였다.
지금 조금 더 이동하면
기상 후 2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거 같았다고 했다.
근데 앞서가던 1번차가
아무 징조도 없이 지 혼자 터져버리더라
2번차는 1번차와 충돌했고
우리차는 좌측으로 빠진 후
다시 후진해서 대열을 지켰다
(추후에 들은건데
1번차는 부비트랩에 의해 폭발했다고 함)
절대 차밖으로 내리지는 않았다
혹시 이게 적습이라면
지금 내가 있는 차보다
더 안전한곳은 이곳에는 없을거다.
2번 차량도 후진 후 대열을 벗어나
우리 차량 뒤로 돌아왔다
1번차와 무전은 끊겼고
2번차는 우리가 소리치면 들릴 위치에 있었다
영화에서 보듯 차에서 불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고
폭발 후 연기만 날뿐 불은 안 붙었다
나한텐 엄청난 공포였다
분명 저정도 충격과 폭발이면
앞에 타있던 사람들은 죽었을거다 라는 생각이
곧 내가 저차에 탑승했다면
나도 죽었을거다 라고 생각이 닿았고
짧은 머리카락이지만 쭈뻣쭈뻣 섰다
2번 차량이 그 사이
본부와 연합군한테 무전을 했고
지원응답도 받아냈다는 무전을 듣자마자
1번차량에 총알이 박히더라
한발 두발?
처음 한두발을 신호로
정면에서 셀수없이 탄이 쏟아졌고
약 20초 동안 발포했다
방탄차 특성상
일반 화약탄은 어느정도 막을 수 있지만
방탄차라는게 모든 탄에서 방어를 한다는건 아니다.
아무리 작은 탄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위치에 박힌다면
방탄 차라고 하더라도 찢겨져버린다.
실제로 나중에 보면
방탄차 내부로 꽤 많은 탄이 관통당했음
우린 차 내부에 기어들어가있었고
2번차, 3번차 연합군 간부 둘이서는
약 5분후 차에서 내린 후
차량 후방 포차 내부에 있는 야투경을 꺼내서
주위를 경계할거라고 했다
지금은 총격이 없으니
차에서 나가지 않는게 좋지 않겠냐? 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이미 적습이 확인된 이상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려면
적 위치를 알고 대응사격 하는게 최선이라고 하더라
연합군 간부는 그렇게 나갔고
소름돋게 움직임이 있자마자
처음보다 약간 더 퍼져서 탄이 날라왔다
방탄차 내부로 한발이 관통했고
이미 깨진 유리 바닥을 기어다녀서
무릎, 팔꿈치는 피범벅이였는데
전혀 고통스럽거나
거부감을 못 느낄 정도로 무서웠다
눈깔이 돌아갈 것 같았고 눈도 잘 안 떠지며
머리에서 땀인지 피인지 모를 액체가 계속 흐르지만
칠흑같은 어둠이라 이게 땀인지 피인지
구분도 못하고 하염없이 닦아내고 있었다
중간에 몆번의 무전이 오갔지만
급한 마음에 내가 다시 무전을 했고
지금 정면에서 탄이 날라온다
대응하면 되겠냐 라고 물었고
3번의 번복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응하라고 했다.
연합군 간부는 우측의 돌뒤에서
야투경에 의지해서 경계를 하고 있었고
우린 적어도
근처까지 침투한 군들은 없을꺼라 추정 후
방탄차 내부 바닥을 열면
딱 사람 한명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데
거기로 한명씩 나온 후
차량 밑에 엎드린채 두명은 정면
두명은 좌우를 주시하면서
화약의 불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대응사격을 계속했다.
이때는 나도 미쳤고
나랑 같이 차에 타고있던 모두가 미쳐있어서
잠깐이나마 무서움은 없었지만
다들 암묵적으로 누군가 총에 맞기라도 한다면
지금처럼 미쳐있지 못할 거라는 예감을 했었다
우린 총구앞열 가리게를 설치
빛이 안세어 나가도록 대응사격를 했는데
아무 쓸모없다
한치앞도 안보이는 어둠일수록
작은 빛은 더 밝게 빛나더라
총열에서 나오는 불꽃이 문제가 아니라
날아가는 탄에서도
불꽃을 뿜으면서 날아가는게 보이더라
적이 내 근처로 쏠때는 우린 대기하고
우리쪽으로 쪼금 멀리 탄이 박힐 때만 대응사격을 했다
몆분간 교전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착탄했던 200발은 순식간에 다 썼던거같다
40발 장전된 탄창을 넣고
3초정도 갈기면 한 탄창 끝이다
우리가 3번차지만
2번차가 대열이탈 후
우리 뒤로 자리 잡았다고 아까 말했듯이
뒷차는 우리가 대응사격하며 방어할 때
지원이 올때까지 단 한발도 안 쏘고 가만히 있었다
연합군 간부가 내리고 일반병만 4명 남아있다보니
대응사격이랑 판단을 내려줄 사람도 없었고
그저 공포에 질려있었다고 나중에 진술했다.
난 이미 탄이 없어서
조용히 혹시 움직임이 걸릴까
차 밑에서 털끝하나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었는데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귀가 먹먹해서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뛰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위치가 발각됐나?
ㅅ1발 지금 뛰쳐나가서
수류탄이라도 까고 뒤져야하나?
뒤에있는 차로 먼저 뛰어서
탄이라도 뺏어서 사격할까 등등
흥분해있던 내가
이런저런 호전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연합군 간부가 우리쪽으로 m16 한자루랑
탄창을 밀어넣고 다시 뛰어갔다.
지금 생각하니 그 미친놈은
자기가 쏘던가 할것이지
나한테 주고 갔을까 라는 생각과
움직임이 극히 조심스러운 상황에
그렇게 대범하게 뛰어다닐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파병 나갔을 당시
한국도 k2보급이 덜 된걸로 알고있고
미국은 m16 4라고 하는 총을 지급받아서 썼는데
둘다 사용해본 결과
어떤 면에서든 m16 4가 좋다
쫌 더 무겁다고 느낀거 빼고
암튼 총은 왜 준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왜 받은 총으로 바꾼건진 모르겠지만
어쨋든 총을 교환후 다시 대응사격만 하던중
연합군 간부가 소리지르면서
손등에 총상을 맞고
얼마 후 우리쪽 지원군이 도착했고
거짓말 같이 정면에서 총성이 멎었다
영원처럼 길게 느껴질만큼 고요해졌고
눈에서 막 눈물이 쏟아졌다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미 살아있는게 다행이고
그 많은 총알에서 한대도 안 맞은게 기적 같았다
온몸엔 힘이 풀렸고
눈물 범벅이 된채로 연합군 수송기로
un소속 병원으로 이송했다더라
기억이 안나지만 같이 있던 해병들이 말해줌
딱히 다친 곳은 없었고
유리조각 때문에 왼쪽 무릎 6바늘
팔꿈치 두바들씩 꼬매고
차량 엔진 열에
팔뚝 살이 500원 동전 크기정도 녹아서
허벅지살 떼서 이식했음
모두 금방 끝났고 약 4일뒤에 한국으로 이송됨
한국와서도 기억이 듬성듬성있고
정신이 좀 나가있어서
자다가도 막 소리 지르고 그랬음
곧 정신차렸고 전역 6개월 남기고 조기전역했다
아직도 총성만 들어도 몸이 덜덜덜 떨리고
전쟁영화만 봐도 트라우마가 생겨서
눈감고 귀막고 예비군도 안갔음
생각보다 멘탈이 좋은지 정신치료는 안 받았고
이거 쓰면서도
아까 악몽꾼거 때문에 머리가 다섬
그당시 공포와 충격으로
내가 많은것을 포기하고 살고
생각하는 많은 것을 바꾸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술자리 안주거리로는 최고의 썰을 경험함
물론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고 후회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경험을 통해서
내 인생도 꽤 많은 부분이 변했으니
그냥저냥 살아갈만한 거같다
암튼 일찍 일어나서 잠깐 글 쓸라고 했는데
와이프가 오늘 토요일인데
왜이렇게 일찍 일어났냐고 개지롤을 다해서 더 길게 썼음
난 사우나 쫌 갔다가 배스나 잡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