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리는 집에서 옷 안 입어요
항상 매주 한두 번씩은 꼭 배송 가는 집이 있음
공동현관문 없고 좀 노후된 4층 빌라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의 집인데
4층에는 5세대 정도 사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보니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면에 바로 보이는 집이 이 부부 집이었음.
겨울 배송은 문제가 없는데
이 부부는 여름이 되면 항상
그 슬라이드식 모기장 있잖음. 그걸 해놓고 문을 열어놈.
요기까지는 별문제가 없는데
항상 이 부부는 서로 에덴동산합의를 했는지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벗고 있음
처음 배송 갔을 때 아줌마가 다 벗고 설거지를 하고 있길래
식겁해서 내가 소리지른 적이 있는데
그 아줌마도 창피했는지 집으로 후다닥 들어가드라고
근데 거기 사는 아저씨는 창피함이 없는지
자신의 똘똘이를 들어내면서
덜렁덜렁 택배를 받드라고. (별로 크지도 않으면서..)
한번만 그러겠지 했는데
항상 그러니까 서서히 무서워지더라고
아저씨야 상관없다 해도
아줌마가 성적 모욕감을 느껴서 잡혀가는 건 아닌가 해서
그래서 그때부터 항상 1층부터 소리를 내면서 올라감
올라갈 때마다 큰소리로 “어허 ~덥다”
“아 택배 많다” “아 이집은 어디일까?”
멍청하지만 항상 멘트 바꿔가면서 올라갔음
다행이도 이 말을 들었는지
항상 똘똘이 아저씨가 웃으면서 맞이해주시더라고..
아줌마만 있으면 방안에 들어가시니까
택배 문안에 넣기만 하고 튀면 됐고.
이렇게 우리만의 비밀 약속이 가까스로 맺어진 거 같았는데
8월 중반이였나
그 집에 gs쇼핑몰인가 거기 다이아 3종 세트가 왔더라고
참고로 고가품들은 터미널에서 기사한테 분실책임 사인 받고
기사는 그거 전달할 때 받는 당사자한테도 서명 받고
더 안전하게 가려면 사진도 찍어야 됨.
그래야 피해를 입지 않거든
하여튼 또 그 집이라 1층에서 소리를 내면서
“엇~ 오늘은 비싼 택배가 있네?” 하면서 올라갔더니
문은 열려 있는데 사람이 안 보이는 거야
아줌마만 혼자 계신 거 같아서
“택배 왔습니다~” 라고 말하니까
잠시 뒤에 사람이 나오는데 아줌마가 나체로 나오드라고
이 아줌마가 그날은 착각을 한건지
아니면 옷을 입었다고 망각을 한건지..
나중에 자기가 나체인걸 알고선 방으로 그냥 도망가는거임..
그리고선 방너머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환장하겠드라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택배 집안에 놓고 가면되는데
고가품이다 보니까 사인을 받아야했거든..
그때부터 협상가가 되서 아주머니를 진정시키고
사인을 받기 위한 협상이 시작됐어
아주머니는 계속 흐느끼면서 택배 그냥 놓고가라하는데
“죄송합니다 사인 안 받으면 받으신지 증명이 안돼서 안됩니다..”
“그냥 놓고 가세요..”
계속 의미없는 공방이 시작되는데
한 4분정도 하다가 지쳐서 결국
다음에 다시 올게요 하고 택배 들고 다시 내려가는데
2층에서부터 그 똘똘이 아저씨가
정장을 입고 올라오드라고. 구세주가 따로 없더라
아저씨한테 이 일을 말하면 화를 낼까봐
긴장하면서 말씀을 드렸는데
아저씨는 인자하게 웃으면서
마누라가 원래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렇다고
괜찮다고 하고 사인 해주시더라고.
이번 겨울엔 그래도 그 똘똘이를 보지 않아도 돼서 정말 행복했는데..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서 너무너무 슬프다
2.스님 인심 때문에 개고생
이건 명절 전 주에 겪은 일인데
내가 배송하는 지역은 번잡한 시내가 아니라
관광산 근처 주택 절이 대부분임
그날도 어김없이 큰절에 음료수를 내리고 있는데
거기 스님분께서 오시더니
더운날 고생한다 밥을 먹고 하시냐 물어보시더라고
그래서 “아니요 ㅎㅎ 나중에 집에가서 먹을거다” 하니
마침 공양 드리고 남은 비싼 쌀밥이 있으니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하는거야
나야 집에 가면 밥해야 되니까 ㅇㅋ를 했지
스님은 그럼 짐내리고 계시면 밥을 차에 실어 주겠다 하시길래
감사합니다 하고 음료수들을 절 안에 놓고 왔는데
차 짐칸에서 절에 일하시는 두분이 땀 흘리면서 나오시더라
뭔가 불안한 느낌이 나서 짐칸에 가보니까
장난 안 치고 100L 쓰레기봉투 알지?
그 크기에 김장 봉투에 찐밥이 가득 담긴 채
무려 3봉지가 짐칸에 있더라고
내가 아무리 뚱뚱해 보여도 이건 좀..
당황해서 반납하려고 스님을 찾으려고 하는데
역시 산에 있으면 기공이 남다른지 그새 사라지셨더라
거래처 택배수거 시간이 촉박해서 결국엔 찾기는 포기하고
그 밥을 들고 배송을 시작하는데
알고 있지만 산 근처에는 무당집들이나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많음
그래서 무당 집에 과일을 내리는데
짐칸에 무당분이 밥을 보고 저게 뭐예요? 물어보시길래
절에서 받은 밥이라 하니까
자기도 좀 나눠 달라드라고.
그때 뇌리에 팍 스쳤지.. 아 이거다
그때부터 웃긴 절 찐밥 영업직이 시작됨;
할머니, 할아버지 집쪽에 배송가서
저기 집에 밥 해노신거 없으시면
제가 방금 절에서 받은 따끈따끈한 맛 좋은 쌀이 있는데 드시겠냐고
다행히도 기독교 종교분들(딴 종교밥을 예민해함)을 제외하곤
다들 ㅇㅋ 하셔서 서서히 밥양을 줄였음
이게 뭐하는 짓인가.. 어휴 하다가도
항상 가서 웃으면서 잘 말씀드리니
다들 쌀 좋아보인다 이웃한테도 줘야겠다 반응이 뜨거워 지시더라
배송이 완료되면서 쌀은 딱 내가 먹을정도만 남게 되었고
이게 영업에 재미 있구나 하고 히히 하고 들어감
다음날 절가니 그 스님이 이번에는 집에 국없지 않냐고 물어보길래
저희집은 국물 절대 안 먹는다고 하고 10초만에 도망침
3.미션임파서블
7월초에 겪은 에피인데 아직도 뭔가 자랑스러움
그날 배송지는 진짜 와 이런집에 살고 싶다하는
으리으리한 대기업 회장들이 살거 같은
마당 넒은 외진 저택이였음
문제는 택배가 닌텐도 스위치 6개가 든 박스라
괜히 잘못했다가는 쪽박 찰수도 있음
그래서 고객한테 전화를 하니까
자기들이 지방출장중이라 한달뒤에 온다 하드라고
택배는 웃긴게 고객이 없다고 해서
배송완료를 안 시키면 3일이 지나면 벌금이 나와
그래서 웬만하면 고객한테 빨리 물건이 주는게 중요함
근처에 편의점이나 세탁소 같이 맡길 곳이 없는 곳이라
어떡하지 하고 고민하는데
고객이 집에 들어갈 방법이 있긴한데
힘들거라고 말하길래 그래도 알려주십쇼 하고 부탁하니
알려준 방법은 비싼 저택답게 존나 화려했음
1.큰 대문 옆 작은 초소가 있는데 그 초소 단자박스를 열어서
안에 눈에는 안 보이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손을 너보면 집열쇠가 있음
2.대문에는 잠금장치가 2개 있는데
열쇠를 반쯤 돌린상태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띠링 소리가 나면 키를 돌려 들어가야 됨
3.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측에 보일러실로 보이는 집채가 있는데
거기가 잠겨 있음 옆 창문은 열수 있어서
그 창문으로 손너서 마당에 무슨 감지 센서인가 그걸 꺼야됨
이게 좀 힘들었음
4.스위치 오프 후 본집 대문은 지문인식이라 열 수 없으니
좌측 담쪽을 넘어서 계단으로 올라가
3층 온실에 비밀번호 입력하고 택배 넣고 오면 미션 완료
처음에는 고객이 되게 귀찮듯이 말하더니
점점 자신도 내가 미션미션 하나를 완료하니까
흥미를 느끼시는거 같드라
고객은 전화통화하면서 PC로 집 CCTV보면서 오더내리고
나는 그 오더따라서 하나하나 보안 풀고..
결국 완료 하고 정말 고생했다고
고객이 민원 잘 써줘서 보너스 받았음
글재주가 없어서 이정도 바께 못 썼는데
택배기사 하다보면 재밌는 일 진짜 많다..
다음에 또 쓰러옴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