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바쁘고 무난하게 흘러가던 어느 평일.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팀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던 중.
소소한 수다를 떨며 국밥을 들이마시던 때,
느닷없이 내 폰에 소액결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두 푼도 아니고, 무려 49만원이나..
내 소액결제 한도는 50만원이라 다행히 여기서 멈췄지만,
10만원씩 쭉쭉 긁다가 한도가 걸렸는지
5,500원, 1,000원 단위로
아주 알뜰하게 다 털어가고 있더라.
뭔가 명의도용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며
숟가락을 내려놓고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고,
어차피 이런 것은 구글 측에서 환불을 해줄 터이니
팀장님과 과장님이 걱정스럽게 물어봐도
안심하시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 번은 무조건적으로 환불조치를 해준다고 들었다.)
먹던 점심을 마저 해결하고 구글 측에 연락.
내 계정이 도용당한 것 같으니
확인 후 환불을 부탁 드린다고 문의전화를 넣고..
구글 측에선 그 쪽 사건팀(?)
정확한 이름은 기억 나지 않지만
그 쪽을 통해 확인 후 답변을 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한다.
통신사에도 소액결제 금지를 내려놓고 환불 문의를 한 후
답변을 기다리며 마음의 평화를 애써 찾고..
문의 답변을 기다리며 구글 계정을 정지시키기 위해
홈페이지 로그인을 해봤는데..
문득 스쳐가는 작은 의심 하나.
나는 1년 전 스마트폰을 도난 당했었다.
주말 아침까지 여자친구, 그리고 친구들과 술을 들이마시다
잠시 편의점에 들리러 나간 찰나 사라진 내 폰.
분실 사실은 피로를 풀러 들어간 모텔에서
결제를 하기 전에 알아챘고
급하게 전화를 했지만 누군가 받은 후
나지막한 “ㅆ1발” 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은 뒤 고의로 받지 않았었다. (아예 폰을 꺼버림)
줏어간 새끼의 행동이 너무나 괘씸하여
경찰에 신고 후 자초지종을 설명 하였고,
안 그래도 술과 아침 햇살이 피곤하게 끼어드는데
경찰까지 와서 어수선하게 분위기를 조성하니,
그 과정이 너무 기분 상하고 창피했던 여자친구는 집을 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서로에게 실망과 감정이 상했던 우리는
결국 ㅆ1바 헤어졌다.
아무튼 그 사건은 시간이 흐른 후,
우리 유능하신 대한민국 경찰께선
고작 내 폰 따위 안중에도 없었고,
어지간히 귀찮으셨던지 위와 같이 마무리를 지었다.
자꾸 밀려오는 수상한 촉에 의지하며,
혹시나 해서 구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위치추적을 해보았는데..
뜬다.
그것도 접속중인 상태로.
접속한 주소와, 해당하는 와이파이 이름까지 아주 생생하게 뜬다.
심지어 주소도 우리 동네 근처다.
이거다.
작년에 사라진 이 폰이 문제일거라 확신했다.
이 모든 정황들을 정리하여
작년 미해결 사건으로 분류한 형사에게 다시 연락했다.
자초지종 설명하고, 위치추적을 해본 결과
방금 전까지 지도에 나타난 저 위치에서
훔쳐간 핸드폰을 사용한 흔적이 잡혔다고.
아파트 동수까지 얼추 나왔으며,
알아본 결과 오차범위 100m정도 된다.
해당하는 아파트에서 일치하는 와이파이 집 주소만 찾는다면,
범인을 잡을 수 있습니다! 라고.
출동만 하시면 1~2시간 안에 잡으실 수 있다고!
라고 말했지만
우리 위대하신 경찰관께서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한 아파트에서 사용하는 와이파이가 몇 개인데
그걸 일일이 무슨 방법으로 확인을 하느냐.
라고 여전히 귀찮은 듯 대답하신다.
방법도 알려드렸다.
단순하지만.. 스마트폰 와이파이를 켜놓고
수신감도가 가장 높게 잡히는 집이 범인의 집일 가능성이 있따.
한 두 가구정도 될테니,
잠깐만 수사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얼토당토 않는 소리로만 받아들이며,
경찰나으리께선 일단 내일 한 번 찾아가볼텐데
역시나 큰 기대는 하지 마란다.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일까.. 단념하며
업무에 다시 집중하려 했지만,
여전히 신경쓰이고 분하고 짜증이 밀려왔다.
그 밀려오는 짜증은 앞으로 찾아온 2시간 안에 극대화 되었다.
1.구글 측에서 온 답변.
-확인 해보았으나, 어찌됐건 고객님 명의로 결제가 된 사항이니
도용이라 보기엔 어렵다.
그러므로 전부 환불 해주긴 어렵고 일부만 환불해주겠다.
꼬우면 통신사에 문의해라.
2.통신사에서 온 답변
-우리는 구글을 통한 결제 대행일 뿐,
환불해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구글에다가 문의해라.
3.게임사에 문의
-십1새기들 전화 한 40번은 한 것 같은데
유령회사인지 전화 연결 자체가 안된다.
아, 무슨 게임이냐고?
나우 리미트? 생전 처음보는 병1신같은 게임이다.
구글에 검색하면 홈페이지와 주소, 번호가 뜨지만 연락은 안된다.
사무실도 이전했는지 주소도 잘못 되어있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카페에 문의글 올렸다가 욕만 디지게 먹음)
결정적으로, 이 ㅆ1발새기가 드디어 미치셨는지
페이스북 해킹을 시도했다.
그 이후로 인스타 계정까지.
다른건 다 참아도 SNS까지 뒤져서 뭘 하려 하는지 눈에 뻔하기에
이대로 나둘 순 없었다.
애초에 충분히 구글을 통해 핸드폰을 잠궈 놓을 수 있었지만,
혹여나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더 많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나뒀건만..
오늘 하루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심기를 많이 건드렸다.
원격으로 폰 화면을 잠금화면으로 바꿔놓고,
마지막 기회로 내 번호를 적어 놓았다.
좋게 넘어가려면 전화 하시라고.
그러나 그는
와이파이 끄고 잠수타기를 선택했다.
나는 퇴근하고 직접 찾아가서 면상을 확인 한 후
내 손으로 이 새끼를 경찰에 넘기기로 결심했다.
구글 지도에 뜬 그 주소, 그 아파트.
혹시나 GPS 정보가 엄한 곳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갤럭시를 통해
이곳 저곳 와이파이를 연결하며 실험을 해보았다.
구글 위치추적은 생각보다 굉장히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수없이 많은 와이파이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지금부터 1층부터 차근 차근 사박사박 걸어가며
그 놈을 찾아낼 것이다.
1층부터 계단으로 이동하며
어느덧 꼭대기 한 층만을 남겨둔 상태..
여전히 와이파이 목록에는 그 새끼의 주소가 잡히질 않았다.
속으로 정말 많이 고민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이제 한 층 남았는데 그곳마저 없으면
마주하고 있는 아파트 한 동도 더 뒤질 생각으로
더욱 천천히 걸었다. 그결과
반갑다 이 개1새기야
어느 위치에서 아주 기적적으로
그 새끼의 와이파이가 미미하게 잡혔다.
우리,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범위를 좁혀본 결과
최종적으로 가장 꼭대기 층인 이 곳으로 스스로 확정 지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일반 가정집을 수사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그런 말을 믿어나줄까.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이 동 경비아저씨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경비아저씨를 사이에 두고 집 주인과 대화를 하는 것.
나이가 지긋이 든 경비아저씨를 설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과의 통화 내용,
내일 이 곳으로 형사가 방문 할 것이라는 문자와 통화 내용.
무엇보다, 동네가 더 소란스러울 수 있으니
피해자인 내가 직접 와서 말로 좋게 해결하고
경찰이 조용히 데려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이니 협조를 해달라고 사정했더니
마지못해 동행 해주시더라.
그렇게 경비아저씨의 동행하에 그 집의 문을 두드렸고,
경비아저씨의 설명에
조금은 의심스러운 말투로 문 앞에 나온 사람은
어떤 늙은 할머니셨다.
좃됐다.
90% 이상의 확률로 다들 머릿속에 해당 범인이
그나마 젊고 철 없는 아들일거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라니..
당황하지 않고 다시 여쭤봤다.
어머님, 혹시 아드님이랑 같이 살고 계시지 않으시냐고.
그 말이 끝나자 안쪽에서 어떤 배불뚝이 대머리 아저씨가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말을 끊었다.
아저씨: 누구쇼?
나: 아, 안녕하세요 아버님. 다름이 아니고..(상황설명)
그래서 그런데, 실례지만 아버님
이 집 와이파이 한 번만 써봐도 될까요?
제가 인터넷이 잘 안되서 증거를 보여드리기가 곤란해서요..
아저씨: 그러쇼.
나: 감사합니다. 혹시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나요..?^^;;
이 집이 확실해졌다.
이제 그 갈아며서도 시원찮을 새끼가 직접 눈 앞에 나오기만 하면 된다.
늙은 할머님과 아저씨에게 설명했다.
사실 와이파이를 단서로 찾아 왔다고.
내일 아침, 경찰이 나와 같은 방법으로 수사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아파트 모든 집을 다 확인 할텐데
분명 어수선하고 분위가가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와서
좋게 대화로 해결하고 최대한 이 아파트에 경찰이 안오고,
조용히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니
이 집에 계신 아드님 얼굴 좀 뵙게 해달라.
하다못해 통화라도 연결 시켜줘라.
라고 팩트를 설명했더니,
그 험상궂은 배불뚝이 아저씨가
잠깐 얘기 좀 하자며, 경찰아저씨를 돌려보냈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복도 비상구 계단으로 자리를 이동한 나에게
그 아저씨는 1년 전 당시 상황을 해명하기 시작했다.
버스기사를 하던 그 아저씨는 직장을 잃고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해선 안될 짓을 하였고,
그 이후로 훔친 폰을 처분 못하고 잊혀 두었다가
오늘 다시 발견한 이 폰을 보고 못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정말 죄송하다며, 한 번만 봐달라고.
자기도 몸이 안 좋아서 병원비가 필요했고,
늙은 부모님과 누나 한 명과 살고 있어서
손도 벌릴 수 없는 못난 아들이다.
제발 부탁이니 용서 해주고
내일 자기가 경찰서에 자진해서 자수 할테니
부모님에게 알리지만 말아달라며.
그랬다, 이 집엔 어린 아들따윈 없었고
할머니와 아줌마,
그리고 배불뚝이 아저씨1발롬 셋이서만 살고 있었다.
핸드폰은 중요한 증거물이니 허튼 짓 말고
내일 형사에게 그대로 자진해서 갖다 받치라고 말하고
오늘 발생한 무단결제 금액과 더불어
스마트폰 값 모두 청구 할 것이니 그렇게 알라고,
용서는 없다고 말하며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나는 범인의 집 주소, 핸드폰 번호,
증거 사진, 증거 물품 모두 파일로 정리하여
오후에 연락했던 형사에게 그대로 전송했다.
그냥 연락해서 잡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밤 12시에 헐레벌떡 전화하더라.
진짜 직접 잡으셨냐고.
참 대단하시네요.. 라는 말과 함께
지난 미해결 사건과 더불어 무단으로 결제한 건까지 포함해서
조사하겠다고 약속 받고 그리 진행하였다.
아래는 형사와의 문자 내용
그리고 그 이후, 범인은?
해당 사건은 검찰청으로 넘어가 현재 정밀 횡령,
컴퓨터 정보 보호 사기 (맞나? 설명 들었는데 정확히 못 받아적음)
총 3가지 죄목으로 벌금 300만원이 약식으로 판정.
그러나 내 명의로 무단 결제한 그 40만원이 넘는 금액들은 물론이요,
합의금은 개뿔, 벌금 낼 돈도 없다며
구치소에서 지내겠다고 배째라 시전^^
말하는 뽄새 보면 내가 더 잘못한 사람 같음.
게다가 접수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선고가 나지 않아서
벌금조차 이 놈에게 떨어지지 않은 상황.
매일 출근해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검찰청 홈페이지에 사건번호 조회하는게
가장 먼저 하는 일과가 되어버림.
현재 민사로 바져야 하는 상황인데
워낙 소액이라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기가 차고,
법률구조공단에 배상명령신청에 관해
상담받는게 전부인 현재 상황..
나름 후련했는데 요즘 다시
하루에 고구마 300개씩 처먹으며 살고 있음.